일본의 애니메이션을 즐겨 보는 사람이라면 건담(GUNDAM)이라는 이름을 한 번쯤을 들어 봤을 것이다. 79년 기동전사 건담이라는 TV 애니메이션이 제작된 이래 30년에 걸쳐서 소설 및 모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셀 수 없는 관련 콘텐츠가 나왔다. 심지어 일본 애니메이션을 대표한다고 하여 일본에서는 설정상의 실제 크기 모델까지 제작되어 화제다.



건담을 다루는 콘텐츠 중에는 TV 애니메이션이나 OVA 또는 프라모델이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만화와 소설 외에도 이를 바탕으로 제작된 게임 역시 거짓말 조금 보태서 저 하늘의 별만큼 많다. 어쩌면 하나의 콘텐츠를 바탕으로 게임이 제작된 것 중에서 건담 월드로 제작된 게임이 모든 게임 중에서 가장 많을지도 모른다.



일본의 원 소스 멀티 유즈라는 콘텐츠 활용 산업의 전형적이자 교과서적이고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가 바로 건담 콘텐츠이다. 그래서 기자는 콘텐츠의 성공적인 확장과 재활용 및 팬층 굳히기 등등의 다양한 수법 차원에서 건담을 좋아한다.



뜬금없이 웬 건담 타령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본론은 지금부터다. 지난 8월 6일 SD건담 G제네레이션 워즈(SDガンダム Gジェネレーションウォーズ, 이하 지제네 워즈)라는 이름의 건담 세계를 바탕으로 제작된 게임이 발매되었다.(한국은 8월 13일 매뉴얼만 한글화하여 정식 발매)







거의 1년여만에 새로 나온 신작이라 발매와 동시에 구입하여 전속력으로 집에 들어가서 PS2에 게임 DVD를 집어넣었다. 역시 예상대로 시작은 각 건담 시리즈의 주인공과 라이벌급들이 출연하는 CG 오프닝이 펼쳐졌고, 오프닝이 끝난 후의 타이틀 화면에서 망설임 없이 스타트 버튼을 누르고 다시한 번 건담 월드로 뛰어들었다.



역사와 전통의 SD건담 G제네레이션

지제네 시리즈는 과거 1998년 반다이(현 반다이남코)에서 플레이스테이션용으로 제작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시작된다. 유명한 콘텐츠인 건담에 등장하는 각종 병기들과 캐릭터가 하나의 게임에 전부 등장하고, 이런 유닛들을 조합하여 자신만의 부대를 만들어서 건담 월드의 전쟁에 개입하는 게임이다.



게임 진행방식 자체로만 따진다면 유닛을 성장시키고 배치 및 이동하면서 시나리오를 진행하는, 속칭 일본식 시뮬레이션RPG라고 불리는 장르 중 하나의 게임이다. 그렇지만 건담이라는 콘텐츠와 플레이스테이션이라는 당시 최고의 콘솔 기기를 채택했기 때문에 일본 내에서 높은 인기를 얻었다.



그 후 거의 매년 하나씩 다양한 기종으로 지제네 시리즈가 제작되었으며, 그 중에는 PC판으로 한국에 정식 발매된 것도 있다. 그렇지만 주로 PS1과 PS2용으로 제작되었고, 휴대용으로는 GBA나 원더스완 및 NDS용으로도 몇 가지가 나왔다. 이번에 발매된 지제네 워즈는 지제네 NEO 이후 PS2용으로 제작된 4번째의 지제네 시리즈이자, 최초로 PS2와 Wii의 2개 플랫폼으로 동시에 발매되어서 화제다.



SD건담 G제네레이션 시리즈의 재미

어디까지나 지제네 시리즈는 건담의 팬들을 위한 게임이기 때문에, 건담을 모르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는 조금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건담 시리즈를 한 편이라도 재미있게 본 사람이라면 쉽게 빠져들게 만드는 장치가 게임 곳곳에 숨겨져 있다.




[ 전투의 흐름은 체스와 비슷하다 ]




  • 원작을 즐긴다

    지제네 시리즈의 특징 중 하나는 원작 애니메이션의 중요 장면에 자신만의 부대를 끌고 참전하여 전황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시나리오가 원작 그대로 결과를 따라가도록 승리 조건을 제시하지만, 주어진 기본 부대만으로는 승리하기 어렵기 때문에 자신만의 부대 편성이 승리의 밑거름이 된다.


    또한 이렇게 원작에 직접적으로 참가하도록 하여 사람에 따라서는 겪어 보지 못한 건담 시리즈에 대해 흥미를 갖게 만드는 역할도 하므로, 건담의 팬층을 더욱 굳히는 장치이자 재미라고 할 수 있다.







  • 나만의 부대를 만들고 육성한다

    지제네에서 부대의 편성은 원작을 초월하여 부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즉 70년대 나온 건담 세계 초기의 시나리오에 최신 건담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강력한 기체를 부대에 넣고 전쟁에 개입하여 적 기체를 쓸어버릴 수도 있다. 물론 그 반대로 약한 기체로 부대를 편성하여 어려운 시나리오에서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뿐 아니라 부대에 편성하는 기체와 파일럿은 많은 전투를 거쳐서 원하는 방향으로 개조를 하여 능력치를 올려서, 약한 기체도 강력하게 만드는 등 자신이 원하는 부대를 만들어가는 재미를 준다. 현재 넷마블에서 서비스중인 SD건담 캡슐파이터의 기체의 강화 구조나 무기 구현 중 상당 수가 지제네 시리즈의 그것과 공유하기도 한다.




    [ 기본적인 기체 정보 표시 화면 ]




  • IF의 재미

    지제네 시리즈는 원작의 스토리를 그대로 따라가는 시나리오식 진행 방법과, 슈퍼로봇대전에서 널리 알려진 짬뽕 시나리오의 2가지 진행 방법이 있다. 전자는 단순히 원작의 주요 전투에 참가하여 줄거리를 따라가는 방법으로, PS1과 PS2로 나온 지제네 시리즈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후자는 GBA나 DS와 같이 휴대용 기기로 나온 지제네 시리즈에서 많이 채택되었다.


    특히 후자의 경우 슈퍼로봇대전의 영향을 받아서 게임 스토리가 일직선으로 진행되며 스토리 선택의 자유도는 없는 대신, 건담 세계관의 시대를 뛰어넘는 가상 세계의 재미를 주기 때문에 슈퍼로봇대전 시리즈를 즐겨 한 사람들이 반기는 진행 방식이다. 물론 그만큼 원작을 충실히 재현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불만이겠지만.



  • 수집욕을 자극한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자신만의 부대를 만들 때는 기체를 상점에서 구입하거나 전투에서 적의 기체를 포획하여 사용한다. 부대에 편성된 기체와 파일럿은 전투로 경험치를 얻어서 기체의 각 능력을 올리거나 아예 다른 기체로 업그레이드 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기체끼리 조합하여 새로운 기체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그렇게 얻을 수 있는 기체와 파일럿의 숫자는 지제네 시리즈마다 점점 늘어나고, 게임 내에서는 얻은 기체나 파일럿의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도감 기능을 제공하기 때문에 도감을 채우기 위한 수집욕을 자극한다. 일부 지제네 시리즈에서는 도감 달성율이 일정 수치에 도달할 때마다 숨겨진 기체나 파일럿을 얻을 수 있기도 하다.




    [ 각 시리즈별 기체 도감, 스크린샷은 기동전사 건담 OO의 기체들 ]




    지제네 워즈의 특징

    지제네 워즈는 가장 최근에 나온 탓에 공략 사이트 및 게시판에서의 정보 교환이 최근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지제네 워즈는 정통 스토리 진행 방식과 시대를 넘나드는 방식 모두를 동시에 채택하고 있으며, 전작 지제네 스피리츠와 마찬가지로 전투 화면에서 유닛들을 큼직큼직하게 표현하여 보는 눈이 즐겁다.




    [ 기공무투전 G건담의 주인공과 라이벌의 대결 전투 영상 ]




    특히 원작의 한 장면을 재현하는 시나리오를 진행하다가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아군 또는 적의 원군이 원작대로 등장하고, 이 상태에서 또 어떤 조건을 채우면 다른 시나리오의 캐릭터들이 크로스 오버 형태로 참전하여 2가지 지제네 시나리오의 재미를 모두 맛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다단 메뉴 형식으로 이루어져서 메뉴 선택에 많은 시간을 소비했던 인터페이스의 불편함을 개선하고, CD 또는 DVD 등과 같은 매체의 고질적 문제인 로딩도 빨라져서 쾌적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다. 그 외에도 기존의 기체 입수법인 개조/개발/설계 외에도 일정 비용을 지불하면 비슷한 능력치를 가진 다른 기체와 교환할 수도 있어서 기체 수집도 쉬워졌다.



    하지만 지제네의 신작이 쉽게 만들어졌다고 해서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지제네 워즈가 PS1의 지제네 F와 자주 비교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게임의 볼륨이다. 2000년에 발매된 지제네 F는 당시 파격적인 CD 3장이라는 대용량으로 출시되었고, 게임에 등장하는 기체 및 등작 작품의 숫자는 아직까지도 기록이 깨지지 않을 정도로 많다. 그리고 구현된 시나리오 역시 원작에 충실했기 때문에 많은 호평을 받았었다.







    그렇지만 지제네 워즈 기체의 숫자 자체는 적은 편은 아니지만 외전과 소설판 등 다소 매니악한 작품까지 다뤘던 지제네 F에 비하여, 애니메이션 원작 중에서도 TV 방영편을 위주로 과도할 정도로 압축한 탓에 2000년대 이전의 건담 시리즈는 각 시리즈가 시나리오 5편을 넘지 못한다.



    과거의 건담들은 압축된 것에 비해 2000년대 이후의 건담들은 시나리오 분량이 많고 기체 역시 강력하여, 최근 건담에 접한 세대들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과거 팬의 입장에서는 조금 씁쓸한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건담 시리즈 중 가장 최신작인 더블오의 팬층을 건담 월드로 끌어들이기 위한 반다이남코의 개발 방향인 것을.



    별 수 없이 과거의 팬들도 한 번 건담의 팬은 영원한 건담의 팬이라는 말이 있듯이 불만은 있어도 자신이 좋아하는 과거 시리즈의 건담들이 화려하게 등장하니 어쩔 수 없이 구입하게 된다.




    [ 소설판의 한 장면을 CG로 재현한 영상, 이걸 보는 맛에 지제네를 하는 사람도 많다 ]




    지제네 워즈에서 일본 콘솔 게임의 방향을 엿보다

    지금까지 건담 관련 게임들 대부분은 건담의 팬층만을 위한 게임이었다. 워낙 기존의 팬층이 많기 때문에 일정 이상의 판매량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일뿐, 발매된 게임들 중 많은 수가 기본적인 게임의 요소를 충분히 갖추지 못해서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심지어 반다이제 건담 게임은 정신 건강상 하지 않는 편이 좋다는 비난이 쏟아지던 시절도 있었다.



    그렇지만 건담이라는 콘텐츠 역시 매니아 위주에서 대중화의 길을 걷게 되고, 게임 분야 역시 지제네 시리즈와 건담전기 및 건담 배틀 시리즈 등을 시작으로 점차 게임성을 갖추면서 하나의 게임 시리즈로 기반을 굳히게 되었다.




    [ 적 유닛이 많아 보이지만 나중에 가면 강력한 아군 부대로 간단히 전멸시킨다 ]




    특히 작년 여름에 나왔던 지제네 스피리츠만 해도 90년대 초까지의 과거 건담 시리즈의 향수를 그리워하는 매니아층에게 바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올해의 지제네 워즈는 역대의 주요 건담들이 총출동함과 동시에 가장 최신의 더블오를 메인으로 내세우면서 또 더블오의 팬층을 건담 월드에 편입시키고 있다.



    이것은 모든 건담이 등장한다는 지제네 시리즈로 건담의 팬층 및 소비자층을 확대시킴과 동시에, 편의성의 개선 등으로 쾌적함과 간편성을 제공하여 게임을 '쉽고 편하게 즐기는' 것으로 만들어가는 반다이남코의 의도로 생각된다.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본다면 온라인 게임 시장의 확장에 따라 편의성을 제공하는 서비스 방식이 콘솔 게임 제작에도 반영되었을 수도 있다.



    더 나아가서는 누구라도 쉽게 즐길 수 있도록 게임을 제작하여 게임 시장의 파이를 키우려는 최근 일본의 콘솔 게임들의 하나의 예시이자, 이제는 유명 콘텐츠로 게임만 내 놓으면 팔렸던 시대에서 소비자의 입장에서 게임을 만들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시대로 바뀐 일본 게임 시장의 현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