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오래하면 뇌는 어떻게 변할까.


모든 게임은 아니지만, 적어도 테트리스 게임에 대해서는 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어바인 명예교수인 신경과학자 리차드 하이어 박사는 테트리스를 플레이하면 두뇌의 회백질이 증가하고 뇌의 효율성이 높아짐을 밝혀냈다.


리차드 하이어 박사가 이끄는 마인드 리서치 네트워크 연구팀은 26명의 10대 소녀들을 대상으로 테트리스를 플레이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3개월이 지난 후 테트리스를 플레이 한 실험집단과 플레이하지 않은 집단의 두뇌를 자기공명영상 촬영한 결과를 비교해보기 위해서였다.


사실 리차드 하이어 박사는 이와 비슷한 연구를 1992년에 이미 한 차례 진행한 바 있다. 양전자단층촬영(PET)을 통해 50일간 테트리스 플레이를 지속했을 때의 뇌 변화를 측정했던 것.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테트리스 게임의 레벨이 높아져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 뇌 활동도 왕성해 질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참가자가 숙련되면 될수록 뇌의 활동도는 줄어들었던 것.



▲ 활동도가 줄어들었다는 것은 뇌의 효율성이 높아졌다는 것



이번 2009년의 연구에서는 새로운 자기공명영상 기술을 도입해 뇌의 기능적 변화는 물론 구조적 변화까지 비교해볼 수 있게 되었다. 실험 결과, 대뇌 피질의 두께가 더욱 두꺼워지고, 1992년의 연구 결과와 같이 뇌의 특정 영역의 활동도가 줄어들었다.


이런 연구결과는 그래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한국을 방문해 게임 전문 기자들과 만나 이번 논문의 내용을 설명한 하이어 박사는 조심스러운 입장이었다.


"피질이 두꺼울수록 뇌세포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확인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뇌세포가 많은 게 적은 것보다는 좋지 않겠어요? 그런데 비슷한 다른 실험에서는 실험과정에서 늘어난 피질은 실험이 끝난 후 원래의 상태로 돌아갔어요. 또 피질이 증가했다고는 하지만 1밀리미터도 되지 않은 미세한 양이긴 하죠. 물론 뇌에 있어서 1밀리미터는 아주 중요한 수준이지만요."



▲ 캘리포니아 대학교 어바인 명예교수, 신경과학자 리차드 하이어 박사



'테트리스를 하면 머리가 좋아진다?'로 제목을 미리 뽑아놓았던 다른 기자는 황급히 제목을 수정해야 했다. 이번 연구는 그럼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란 말인가. 야마(기사의 핵심내용을 뜻하는 기자들의 은어)를 뽑으려는 기자들은 당황해하면서 질문을 이어갔다.


효율성이 높아진 두뇌의 영역이 실험 이후에 다른 두뇌 활동에도 영향을 주는지. IQ에 따라 실험결과에 차이가 있는지. 10대 소녀를 실험대상으로 했는데 중장년층 이상이나 치매에 걸린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험하면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지 등등.


그만하면 슬쩍 '테트리스와 두뇌활동은 관련이 있지요'라고 한 마디 흘려줄 만도 한데, 올곧은 신경과학자 하이어 박사는 어떤 질문이든 과학자적 대답을 빼놓지 않았다.


"이번 연구는 테트리스나 게임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학습과정을 거치면서 뇌가 어떤 변화를 겪는지에 대한 연구" 라고 주의를 환기시키고 "IQ가 높은 사람들이 두뇌효율성이 높게 나오긴 했지만 충분한 연구 결과는 없다", "뇌의 노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 예상이 되긴 하지만 앞으로 연구를 해 볼 과제"라는 식이었다.


심지어 "피질이 늘어나는 현상은 명상이나 음악, 시험을 준비할 때와 같이 새로운 무언가를 배울 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덧붙이기도.


기사를 작성하고 있던 기자들의 노트북에서는 게임이 두뇌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짚으려던 기사의 제목이 '두뇌 활동을 하면 두뇌 피질이 늘어난다'와 같은 학술지 제목으로 변형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물론 하이어 박사의 연구는 이것으로 끝은 아니었다. 향후에는 초고수 플레이어의 두뇌가 얼마나 빠르게 활동을 하는지, 또 테트리스 플레이로 인한 두뇌의 변화가 IQ 검사의 점수향상에 영향을 주는지 등을 계속해서 연구할 것이라고.


결국 하이어 박사의 결론은 이것이었다. '두뇌는 아직 신비의 영역'이라는 것. 실제로 이번 연구에서도 효율성이 높아지는 두뇌의 영역의 대뇌 피질이 함께 두꺼워지는 것이 아니라, 두꺼워지는 부분은 따로 있고 효율성이 높아지는 부분도 따로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살짝 허탈해지기도 한 기자들의 '혹시 다른 게임으로 비슷한 연구를 해보지는 않았냐'는 질문에 하이어 박사는 연구에 드는 비용이 상당하다며 연구의 어려움을 에둘러 표현하기도 했는데, 기자의 눈에는 0.1초의 수줍은 표정이 스쳐지나가기도.


하지만 이번 연구에 대한 하이어 박사의 진정성을 기자는 굳게 믿기로 했다. 이번 연구는 테트리스 컴퍼니의 지원을 받아 진행된 것이라 '혹 다른 게임사가 연구지원을 한다면 다른 게임으로도 비슷한 연구를 할 계획이 있느냐'고 묻자 "그들이 원하지 않는 결론이 나오더라도 발표할 수 있는 조건이라면 괜찮다"는 대답에서 학자로서의 양심과 고집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게임을 하면 머리가 좋아진다'거나 '테트리스를 하면 공부를 잘한다'는 말은 할 수 없지만, 하이어 박사의 다음 연구를 통해 게임과 두뇌의 비밀이 풀리길...


한편, 이번 연구 "10대 소녀들이 시각적이고 공간적인 과제를 3개월 수행한 후 피질의 두께나 기능적인 활동을 측정하기 위한 MRI 촬영 (MRI assessment of cortical thickness and functional activity changes in adolescent girls following three months of practice on a visual-spatial task)는 두뇌 운동을 통해 피질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사상 최초의 연구 결과로, 논문이 발표 된 후 첫 2주 동안 온라인상에서 5,000회에 달하는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해당 분야에서는 높은 관심을 이끌어냈다.



▲ 테트리스 초고수 플레이어의 시연도 잠시 있었다. 박사는 흥미롭게 시연자의 뇌(속)를 살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