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마크로스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게임이 PSP로 발매되어 일본의 각 매체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화제가 되고 있다. 2009년 현재 계란 한 판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거나 혹은 그 이상인, 80년대와 90년대 애니메이션을 즐겨 봤던 세대에게 마크로스라는 단어를 들려주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제법 연륜(?)이 있는 사람이라면 린 민메이와 '사랑·기억하십니까' 를 떠올릴 것이다.



마크로스는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와 함께 일본 애니메이션의 역사라고 불리는 코드라고 부를 수 있다. 건담처럼 2~3년에 하나 꼴로 쭉쭉 쏟아져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1982년 TV 애니메이션을 시작으로 하여 올해로 27년째 시리즈가 나오고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 아직까지도 높은 인기를 자랑하는 마크로스의 히로인 민메이 ]


노래, 공중전, 삼각관계를 3대 원칙으로 삼아서 제작된 애니메이션인 마크로스 시리즈에서 마크로스는 대형 모함의 이름이고, 대부분의 전투는 발키리라고 불리는 가변전투기들이 맡는다. 또한 주인공을 둘러싼 히로인들과의 삼각관계 및 인간군상들을 그리고, 히로인의 노래가 전투의 흐름을 좌우하는 것이 시리즈 전통의 특징이다. 일본 외 지역에서는 로보텍이라는 이름으로 수출이 되었고, 한국에서도 공중파 방송으로 상영된 적이 있다.



마크로스 세계관을 이용한 게임이 발매되다

건담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마크로스 시리즈 역시 애니메이션의 내용을 포함하는 게임들이 다수 제작되었다. 패미콤 시절부터 주역 메카닉인 발키리의 3단변신을 재현한 횡 스크롤 슈팅 게임이나 PS2용으로 나온 3D 비행 슈팅 게임, 심지어 PC판으로는 보드판 전략 시뮬레이션+어드벤처라는 요상한 장르의 게임도 나왔다. 전체적으로 대박은 치지 못하고 그저 그런, 또는 평작 수준 정도의 게임들이 많았기 때문에 사람들의 기억에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 2008년의 가을, 마크로스 에이스 프론티어(이하 MAF)라는 긴 이름의 슈팅 게임이 PSP로 발매되었다. 건담이나 마크로스나 게임 하나 새로 나온다고 해서 게임계가 흔들리는 것은 아니지만, 툭하면 나오는 건담 게임에 비해 수가 매우 적은 마크로스 게임이 나왔다는 것으로 인해 관심을 모았다.




[ MUF 발매전 게임 프로모션 영상 ]


처음 게임 발매 소식이 나왔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크로스 25주년 기념으로 상영된 TV판 애니메이션 마크로스 프론티어의 인기에 힘입어 나온 슈팅 게임일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각종 매체를 통해 공개된 스크린샷은 영락없이 반다이남코의 건담 배틀 시리즈에 마크로스 스킨만 씌워 놓은 것이 아닌가.



하지만 뚜껑이 열린 게임은 생각 외의 물건이었다. 분명히 건담 배틀 시리즈의 엔진을 채용한 것은 맞지만, 건담 배틀 시리즈 이상의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건담 배틀 시리즈의 장점을 그대로 승계하면서 문제점이었던 비행 조작을 대폭 개선하여 발키리의 3단계 변신과 전투를 그대로 재현해 놓았던 것이다. 그덕에 반쯤 시험작에 가까웠던 게임은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올해 11월의 마크로스 프론티어 극장판 공개에 맞춰서 후속작인 마크로스 얼티밋 프론티어가 발매된 것이다.



일단 건담 배틀 시리즈부터

마크로스 얼티밋 프론티어(이하 MUF)를 말하기 전에 우선 건담 배틀 시리즈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건담 배틀 시리즈는 PS2용으로 2003년 발매되었던 건담 배틀 택틱스에서 시작된다. 3D의 전장에서 모빌슈트를 타고 적과 교전하는 간단한 난이도의 액션 게임으로, 발매 당시에는 평범한 건담 게임에 속했다. 그렇지만 휴대용의 성능을 살린 PSP로 이식되면서 급격히 인기를 얻게 되어 지금까지 4개의 시리즈가 발매되었으며 높은 판매량을 자랑한다.



건담 배틀 시리즈의 기본 시스템은 전장에서 기체를 타고 사격과 격투 및 점프와 방어로 특정 임무를 수행하며, 임무 수행 결과로 얻는 포인트로 탑승한 기체의 능력을 강화시켜 나가는 방식이다. 원작 애니메이션의 명장면에 참가한다던가 자신의 캐릭터를 전투 스타일에 맞춰 입맛대로 개조하는 등의 장점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기체가 땅에서 걸어다니던가 우주를 떠다니는데 그 중에서 비행이 가능한 대형 기체들은 조작방식이 일반 기체들과는 달리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외면받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런 조작 문제 때문에 발키리(전투기)-가워크(중간)-배트로이드(인간형)의 3가지 형태로 변하는 마크로스의 발키리가 하늘에서 비행하는 것을 건담 배틀 시리즈의 조작법과 엔진으로 커버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 발매 전의 평가였다. 그렇지만 MAF에서는 그런 문제점을 상당히 수정하여 발키리 상태에서도 건담 배틀 시리즈에 비해 상당히 쾌적한 공중전을 즐길 수 있게 한 것이 성공의 원인 중 하나이다.



지금은 PSP 게임의 기본이 된, PSP의 근거리 무선 통신 기능을 이용하여 최대 4명까지 대전 또는 협력 플레이를 즐길 수 있게 되었고 원작 자체가 편대 전투 위주였기 때문에 인기가 높았다. 그 인기에 힘입어 올해 10월에 많은 부분이 강화된 후속작인 MUF가 발매된 것이다.



성공적인 원작 재현도가 인기의 비결

건담 배틀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MAF와 MUF 모두 원작의 재현도가 매우 높은 것도 인기를 얻은 이유 중 하나이다. 일단 원작에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 및 기체들이 전부 출현하며, 특정 조건을 달성하면 그들을 사용할 수 있다. 또한 플레이어의 분신은 일반 병사로 시작하지만 전과를 쌓아가면서 진급하고 더욱 좋은 기체를 받는 등 성장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서 몰입감을 부여한다.




또한 원작의 발키리 변형 과정을 매끄럽게 구현하여 전투 중 자유자재로 변형하면서 상황에 맞는 전투를 할 수 있다. 발키리 상태에서는 선회가 떨어지지만 이동 속도가 매우 빠르고 배트로이드 상태에서는 스피드는 낮지만 팔다리가 나와 있기 때문에 주먹질과 발차기로 상대를 제압한다던가 하는 등 원작 이상의 액션을 보여준다. 물론 기체마다 능력치나 공격 방식 및 필살기가 전부 다르게 구현되어 있고, 원할 경우 색깔도 바꿀 수 있어서 자신만의 플레이를 할 수 있게 해준다.



마크로스의 꽃이라고 부르는 공중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든다면 하늘과 우주를 가득 메운 미사일의 비와 그 속을 자유자재로 헤쳐나가는 메카닉을 들 수 있는데, 실제로 게임 내에서도 화면 가득히 미사일을 발사하고 그것을 피하거나 심지어 날아오는 미사일을 쏴서 요격하는 모습까지 완전히 재현되었다. 원작의 유명한 장면을 재현한 미션에서는 원작의 캐릭터들이 등장하여 아군 또는 적으로 등장하여 원작의 현장에 있는 느낌을 받는다.




[ MUF 게임 플레이 영상 ]


덤으로 특정 조건을 달성하면 적으로 등장하는 진영에서도 같은 미션에 참가할 수 있는데, 상황에 따라서는 지옥을 구경할 수도 있다. 초대 마크로스를 예로 들면 최종전투에서 민메이의 노래로 젠트라디군을 약화시켜서 전황을 유리하게 하는데 젠트라디군 입장에서 최종전투에 참가하면 민메이 노래가 가장 무섭다. 일단 걸려들면 바보가 되어버리니 도망쳐야 산다.



마크로스7에서는 전투는 안하고 전장 한복판에서 기타나 치고 노래나 부르는 넷키 바사라를 격추시켜버리고 싶을 정도로 원수같지만, 적측인 바로타군으로 전장에 나서면 엄청나게 빠른 발키리를 타고 바짝 쫓아오며 노래를 부르는데 근처에만 가도 기체 내구도가 쭉쭉 줄어드니 소름이 끼친다. 전속력으로 도망쳐도 뒤를 돌아보면 코 앞에 바사라가 노래하고 있으니 손발이 오그라들 지경이다.




[ 아군이 부르면 연출이고 적이 부르면 공포인 히로인의 노래들 ]


게임 자체로 바라보는 MAF&MUF의 개성

그럼 이제 게임성 자체를 보자. 시스템은 건담 배틀 시리즈의 그것을 대폭 개선하여 사용했기 때문에 조작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 대신 기체 자체의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플레이하는 본인은 느끼기 어렵지만, 옆에서 보는 사람은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이다. 처음에는 이것을 어떻게 조작할까 하고 고민하게 되지만 튜토리얼을 포함한 미션 몇 개만 통과하거나 포인트를 모아서 기체를 강화하면 누구나 에이스 파일럿이 될 수 있다.






[ 시대상으로 가장 빠른 마크로스 제로에서 최신작 프론티어까지 총출동 ]


특히 건담 배틀 시리즈의 고질적인 문제인 비행 기체 조작성을 개량하여 발키리의 중간 형태인 가워크 상태에서는 공중에 둥둥 떠 있는 호버링이나 벽을 타고 달리는 독특한 액션을 구사하고, 발키리 자체도 자동 추적 기능을 넣어서 화려하게 공중전을 할 수 있다. MUF에서는 실제 플라이트 시뮬레이션 게임과 같이 헤드업 디스플레이(HUD) 표시로 리얼 플라이트 조작법도 선택할 수 있어서, 에이스 컴뱃 시리즈와 같이 간략화된 실제 비행 전투게임 모드도 구현되었다.



건담 배틀 시리즈의 공통적인 게임 플레이타임 늘리기 시스템도 여전히 건재하다. 게임 초반에는 기체마다 초기 능력치와 올릴 수 있는 능력의 한계가 정해져 있었지만, 그것을 해제한 이후에는 한 없는 기체 개조의 늪에 빠진다. 등장하는 기체를 하나하나 전부 개조하다 보면 엄청난 시간을 들이게 되고, 30시간 전후면 웬만큼 게임 엔딩을 볼 수 있지만 개조의 마수에 걸리면 플레이 타임이 수백 시간으로 늘어난다.




[ 에이스 컴뱃 시리즈가 생각나는 리얼 플라이트 모드 화면 ]


게임은 재미있긴 한데

처음 MAF가 발매되었을 무렵 기자는 건담 배틀 시리즈의 신버전 정도로만 생각했으나, 실제 발매 이후 건담 배틀 시리즈보다 더 즐기게 되었다. 지금까지 나온 비행 액션 게임들 중에서 MAF와 MUF만큼 재미와 대중성 모두를 잡은 게임은 에이스 컴뱃 시리즈를 제외하고는 찾기 어렵다. 물론 에이스 컴뱃 시리즈 역시 공중전 게임으로 명작의 범주에 들어가지만 마크로스 시리즈는 어렵다고 불리는 캐릭터 게임으로서 성공한 것이기에 가치가 높다.




[ 주요 오프닝 장면에서는 원작 애니메이션 장면을 사용한다 ]


하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정식 판매를 하지 않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일본에서 주문해야 하고, 정식으로 판매하지 않으니 당연히 일본어로만 플레이할 수 있다. 얼마 전 MUF를 주문할 때 특전 영상 UMD가 들어 있는 한정판을 주문한 것은 좋았는데, 게임 자체가 일본 내수용인 탓에 특전 UMD 영상이 기자의 PSP에서 구동되지 않아 고민중이다. 기자의 PSP는 한국 정식 발매 PSP이기 때문이다.



130분 분량의 고급 영상들이 가득 차 있는데 단 1분도 볼 수 없다니. 게임도 안돌아가면 이해나 하겠지만 게임 UMD는 잘만 돌아가면서 왜 특전 UMD만 안돌아가는 것일까. 그래도 1년여만에 다시 하늘과 우주에 미사일로 그림을 그리는 발키리 파일럿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은 행복하다. 역시 누가 뭐라고 해도 발키리의 로망은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