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7세 생일이 지나자마자 LCK 무대에 나선 '클로저' 이주현은 데뷔전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 '쿠로' 이서행을 상대로 거대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팀의 승리를 이끈 것. 신인들이 으레 하는 긴장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되려 자신감 있는 무빙과 정교한 스킬 샷을 뽐내며 T1의 미래를 책임질 특급 선수의 등장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후로도 '클로저'는 승승장구를 이어가고 있다. 무상성 라인전과 극한의 숙련도를 자랑하는 조이는 물론 아칼리-사일러스, 신드라로도 충분한 활약을 펼치며 10세트 전승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제 진짜 시험 무대가 '클로저'를 기다리고 있다. 바로 현 LCK 최강 전력을 자랑하는 담원게이밍과 최상위권 미드 라이너인 '쇼메이커' 허수와의 한판 대결이다.


'강강약강' 파괴전차, 담원게이밍

담원게이밍의 전력은 수없이 증명됐고 또 분석됐다. '너구리-쇼메이커'의 라인전 능력과 '캐니언-베릴'의 번뜩이는 플레이메이킹, 이 모든 것을 아우르고 지원하는 '고스트' 장용준의 유틸리티 능력. 그리고 상황이 어떻든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이는 서로에 대한 믿음과 호흡. 특별히 전략이랄 것도 없는 단순한 경기를 펼치는 팀이지만, 각 구성원의 빼어난 기량과 뚜렷한 색깔이 담원게이밍이라는 강렬한 맛을 만들어내고 있다.


2020 LCK 섬머 스플릿에서 담원게이밍이 패배한 경기는 단 다섯 세트뿐이다. 그것도 호흡이 완성되지 않았던 1라운드에서 네 번 패배한 것이고, 2라운드에 들어와서는 젠지에게 한 세트를 내준 것 외에 전승을 거뒀다. 더 긍정적인 부분은 1라운드 대결서 역전패를 내줬던 DRX와 젠지를 모두 꺾었다는 점이다. 초반 우위를 통한 굳히기 능력은 훨씬 강해졌고, 최근 경기에선 열세인 흐름을 가볍게 역전해내는 모습까지 선보이며 완전체가 되어가고 있다.

물론 담원게이밍이 과거를 호령했던 절대적인 강팀들처럼 완벽한 팀은 아니다. 경기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면 무리수를 던지는 경우와 그에 따른 잔실수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담원게이밍의 실수는 10번의 도전과 9번의 성공 끝에 나오는 것이기에 쉽사리 패배까지 연결되지 않으며, 그 과정 자체에 더 많은 의미가 있다. "리스크 있는 플레이를 하지 않으면 결국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없다"고 전한 '베릴' 조건희의 이야기처럼, 담원게이밍은 도전과 실수를 반복하며 담원게이밍은 지금도 쉼 없이 발전 중이다.


'클로저', 진짜 가치를 증명하라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어디 있으랴. T1의 상징이자 중심인 '페이커' 이상혁은 이번 시즌에 평소보다 부진한 경기력을 보였다. 그리고 과거 그가 흔들릴 때 '이지훈' 이지훈과 '피레안' 최준식이 그랬듯, 03년생 미드 라이너 '클로저'가 '페이커'의 바통을 이어받아 그의 역할을 완벽히 해내고 있다.


미드 라이너의 기본적인 역할은 라인 주도권을 잡고 미니언을 빠르게 지운 후 시야 확보-제거하고, 로밍 및 카운터 정글 등을 통해 전반적인 경기 흐름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이러한 역할을 해낼 수 있는 건 당연히 피지컬을 바탕으로 한 라인전 능력에서 비롯된다. '클로저'의 압도적인 피지컬은 이미 수없이 쏟아져 나온 매드 무비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는데, 중요한 건 솔로 랭크나 비공개 스크림에서의 기량을 대회 무대에 그대로 들고 나올 수 있느냐였다.

그리고, '클로저'는 팬들의 우려와 걱정을 곧바로 종식시켰다. 그는 '쿠로-플라이' 등의 베테랑을 비롯한 유수의 LCK 미드 라이너들을 상대로 챔피언 상성에 상관없이 주도권을 잡은 채 팀원들의 요청 사항을 이행했다. 존재감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 세트에서도 묵묵히 제 역할을 수행해내고, 데뷔전 승리를 시작으로 끝내 10세트 전승을 기록하며 T1 미드 라이너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이제 '클로저'는 '쇼메이커' 허수 앞에서 본인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쇼메이커'도 '클로저'와 마찬가지로 LCK 입성 당시 피지컬에 대한 많은 기대를 받았으나 경험 부족과 긴장으로 분명한 기복을 보였다. 그러나 네 번째 LCK 시즌을 맞이한 현재는 매 경기 경이로운 기량을 뽐내며 명실상부한 LCK 최고 미드 라이너 후보가 됐다.

진짜 강적을 만난 '클로저'는 과연 어떤 플레이를 펼칠까. 담원게이밍의 힘은 라인전에서부터 시작하는 만큼, 만약 이번 대결에서 '클로저'가 '쇼메이커'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경기 흐름이나 분위기가 T1쪽으로 넘어갈 확률이 높겠다.


승부처는 상체? 탑-정글 변수 나올까


'클로저'와 '쇼메이커'의 만남 외에도 상체의 매치업이 큰 기대를 모은다. 한때 반드시 캐리해야 했던 '소년 가장'이었다가 많은 부담을 내려놓은 '너구리' 장하권과 T1의 또 다른 특급 신인 '칸나' 김창동이 탑에서 만나고, 영리한 곰 '캐니언' 김건부와 '클로저'의 기용과 함께 물오른 '커즈' 문우찬이 정글 심리전을 치른다.

'너구리'와 '칸나'의 경기 양상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칸나'의 방패가 하도 단단한 탓에 '너구리'의 창이 잘 들지 않는 구도다. '칸나'의 데뷔 시즌이자 두 선수가 처음 만났던 2020 LCK 스프링 스플릿 2라운드 대결에서는 솔로 킬을 비롯해 두 세트 모두 '너구리'가 더 많은 영향력을 끼쳤는데, 2020 미드 시즌 컵에선 '칸나'가 판정승을 거뒀다. 더군다나 지난 1라운드 대결에서는 서로 한 점씩 나눠 가졌기에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기 어려운 상황이다.

팽팽한 탑 대치 구도에 힘을 싣는 건 '캐니언'과 '커즈'인데, 이번 시즌 '캐니언'의 폼이 예사롭지 않다. 어떤 챔피언을 고르든 2인분 이상의 역할을 해내며 MVP에 무려 아홉 번이나 선정됐다. 상대의 와드를 예측하고 피해 가는 예술적인 갱킹 각은 감탄을 자아내며 최고 효율을 뽑아내는 정글 사냥 동선을 통해 상대 정글러와의 성장 격차를 벌리는 데도 탁월하다.

'커즈' 역시 최근 느낌이 좋다. '클로저'의 출전과 함께 폼을 되찾고 발에 날개 돋친 듯 활약 중이다. 볼리베어나 세트 등으로 이니시에이팅이나 다이브 각을 보는데, 주도권이 있을수록 더욱 예리하게 경기를 펼친다. 샌드박스 게이밍전에선 오랜만에 시그니처 챔피언인 렉사이를 꺼내 톡톡히 재미를 봤고, 다이나믹스전에선 카직스를 꺼내 다양한 무기가 있음을 알렸다.

공격적인 플레이와 다이브를 워낙 좋아하는 담원게이밍이기에 챔피언 상성이나 딜 교환 상황에 따라 탑에 강하게 힘을 실을 수 있다. 그때 T1의 반응과 대처가 이번 경기에 가장 큰 변수가 되지 않을까. 물론 T1도 언제든 '너구리'에게 칼날을 들이밀 수 있으며 '클로저'가 탑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충분히 고려된다.


한편, 상대적으로 캐리 부담이 적은 봇에서는 세나에 대한 밴픽이 중요하게 작용하겠다. 세나를 선호하지 않던 '테디' 박진성이 최근 아프리카 프릭스전에서 두 세트 모두 세나를 기용해 승리를 따냈고, '고스트'와 담원게이밍의 세나 활용 능력은 두말하면 입 아프기 때문이다. 이외 양측 봇 듀오 모두 기량이 출중하기에 순수 2:2 구도에서 균형이 깨지는 일은 없겠으나, 먼저 4~5인 다이브의 희생양이 되는 쪽은 눈물을 삼키게 될 것이다.


롤드컵 직행을 위한 한 방

2020 LCK 섬머 스플릿 정규 시즌이 종반에 접어든 현시점에서도 최종 순위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았다. 또한 상위권에 위치한 각 팀의 남은 경기는 롤드컵 직행 여부에 큰 영향을 주기에 승리의 가치가 매우 큰 상황이다. 매 경기 중요하지 않은 승부가 어디 있겠냐마는, 정규 시즌 1위가 간절한 담원게이밍과 3위가 간절한 T1에게 있어 이번 대결은 특히나 큰 의미를 가지겠다.

두 팀의 1라운드 대결은 T1의 0:2 패배로 끝났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T1은 '클로저'의 출전으로 새 바람이 부는 중이며, 담원게이밍은 현 메타에서 본인들이 가야 할 올바른 길을 찾았다. 쟁쟁한 기량을 보유한 10명의 선수가 만들어낼 승부는 어떤 과정과 결과가 나오든 수많은 파급 효과를 낳을 것이다.


2020 LCK 섬머 스플릿 정규 시즌 42일차 일정

1경기 T1 vs 담원게이밍 - 20일(목) 오후 5시
2경기 아프리카 프릭스 vs kt 롤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