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놀라게 한 '빈' 천 쩌빈의 미래는 어떨까.

10월 31일 진행된 2020 LoL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 결승이 담원게이밍의 승리로 종료됐다. 그전까지 담원게이밍이 압도적인 기량에 손쉬운 승부가 예상됐지만, 쑤닝의 물오른 경기력에 치열한 접전이 펼쳐지며 세트스코어 3:1 승부가 나왔다. 그리고, 기대 이상의 결승전을 연출한 쑤닝의 중심엔 탑 라이너 '빈'이 있었다.

중국에서 '빈'은 일찍이 주목받던 유망주였다. 02년생인 그는 2019 LDL 스프링 스플릿부터 본격적으로 대회에 출전하며 '중국 더샤이'라는 별칭까지 붙을 정도로 많은 기대를 받았다. 대체로 '국밥' 챔피언들을 선호하는 중국 탑 라이너들을 '칼챔'으로 뚫어버리는 압도적인 피지컬과 패기, 실전에서도 결코 주눅 들지 않는 배짱과 신념. 유망주 발탁에 선구안을 가진 e스타 게이밍의 오너 'PDD' 류 머우도 '빈'의 잠재력을 높게 사며 영입을 강력하게 원했다고 한다.

동시에 그는 국내에도 조금씩 이름을 알렸다. 프로게이머와 팀 관계자는 물론 LoL 한국 서버의 최상위권 경기를 즐기는 e스포츠 팬들은 'love camille'이란 닉네임의 유저를 자주 볼 수 있었다. 만인이 궁금해했던 'love camille'의 정체는 바로 '빈'이었고, '너구리' 장하권을 비롯한 다수의 선수들이 특이점에 오른 그만의 실력과 플레이 스타일을 고평가했다.


그렇게 '빈'은 더없이 큰 기대 속에 2020 LPL 스프링 스플릿에서 데뷔 무대를 가졌다. 하지만, 결과는 더없이 처참했다. LDL에서 수많은 적들을 쓰러뜨렸던 피지컬이 LPL의 베테랑 탑 라이너들 앞에선 통하지 않았다. 상황에 따라 기용해야 했던 모데카이저, 오른 등 그의 몸에 맞지 않는 옷은 스스로의 목을 졸랐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로 인한 자가격리로 데뷔전 이후 약 2달의 휴식기를 가지기도 했다. 결국 '빈'은 19세트 출전, 8승 11패로 데뷔 시즌을 마무리했다.

기대치에 전혀 미치지 못한 '빈'의 플레이와 성적에 많은 팬이 조소를 보냈다. 한때 최고 유망주였던 그에게 있어선 최대의 굴욕이었으리라. 그렇게 평범한 탑 라이너로 전락할 뻔했던 '빈'은 2020 LPL 섬머 스플릿에서 화려하게 떠올랐다.

'빈'은 단점을 보완하기보다 강점을 살리는 쪽을 택했다. 피지컬을 앞세운 라인전 능력과 공격적인 운영을 한층 강화해서 돌아왔다. 실패로 끝난 스프링 스플릿에서의 경험치를 모조리 흡수해 성장을 마친 '빈'의 기량은 쑤닝의 많은 승리와 롤드컵 진출을 이끌었다. 레넥톤-오공을 필두로 잭스로도 우수한 경기력을 뽐냈고, 정규 시즌에서 17회, 플레이오프에서 8회의 솔로 킬을 기록하며 통합 25회로 최다 솔로 킬의 주인공이 됐다.

그 이후론 모두가 아는 대로다. 롤드컵에서도 '빈'은 상대가 누구든 본인의 플레이 스타일을 그대로 유지했다. 외나무다리에서 서로에게 칼을 겨눈 상태로 벌이는 치열한 대치. 다소 불안정해 보이기도 하고 실제로 종종 실수도 나왔지만, 탑 라이너로서의 존재감과 캐리력이 훨씬 돋보였다. 마치 직진밖에 몰랐던 작년의 '너구리'를 그대로 재현해낸 듯한 모습이었다.


이번 결승 2세트에서 피오라를 꺼낸 '빈'은 롤드컵 결승 최초의 펜타 킬을 기록하며 전 세계 e스포츠 팬들에게 본인의 이름을 제대로 각인시켰다. 그러나 그보다 인상 깊었던 점은 당시 '빈'의 태도였다. 적진에서 완승을 확정 짓는 펜타 킬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환호를 지르거나 흥분하지 않았다. 되려 당연한 일을 해냈다는 듯, 아직 한 점 만회에 불과하다는 듯이 눈썹만 잠시 까딱거렸을 뿐이다.

경기 후 이어진 기자회견에서도 '빈'은 담담했다. '너구리'가 라인전과 팀 플레이 모두 잘 해낸 것에 반해 본인은 그렇지 못했다고 이야기하며 "내년 롤드컵에 꼭 돌아와 우승하겠다"라는 포부를 조용히 밝혔다. 패배에 대한 분노를 속으로 삭히며 상대를 인정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것, 승부욕과 자존심이 누구보다도 강한 프로게이머가 보일 수 있는 가장 성숙한 자세가 아닌가.

앞서 밝혔듯 '빈'은 02년생으로 만으로 18세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는 벌써 꿈의 무대에 올라봤고, 그곳에서 본인이 가진 모든 것을 펼쳐 보였다. 무엇보다 큰 동기 부여를 받았을 '빈'은 본인이 겸비한 재능과 열정으로 끊임없는 노력을 이어갈 것이 분명하다. 프로게이머로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많이 남은만큼, 언젠가 '빈'이 LPL 최강의 탑 라이너로 성장해 전 세계를 위협할 날이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