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와 안주, 그 사이에서 맞추지 못한 장단


실존 메이저리그를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즐기겠다면 MLB 더 쇼(이하 더 쇼) 시리즈를 대체할 게임은 딱히 없다. MLB가 직접 나선 RBI 시리즈 정도가 있다지만, 이쪽은 아케이드 게임에 가까운 편. 하지만 NBA나 WWE 등 비슷한 포지션의 게임이 멀티 플랫폼으로 나오는 것과 달리 소니 산하 개발사인 SIE 샌디에이고 스튜디오가 개발한 더 쇼는 오랜 기간 PS 진영 게이머들만 즐길 수 있는 게임이었다.

이번 시즌은 다르다. MLB의 주도하에 Xbox 진영으로 그 영역이 확장됐다. 플레이스테이션 로고가 Xbox 기기에 오르는 참 오묘한 순간이다. 차세대 콘솔 출시와 양대 콘솔 멀티 플랫폼 등장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 변화의 순간을 맞은 셈이다. 실제로 매년 플스로 즐기던 더 쇼를 스포티파이로 내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고 들으며 Xbox에서 플레이하는 재미는 또 새롭더라.

하지만 변화를 그리기 딱 좋아 보이는 이 시기에 시리즈 신작 더 쇼21이 보여준 방향성은 어딘가 중구난방이다.

게임명: MLB 더 쇼21(MLB The Show21)
장르명: 스포츠 / 시뮬레이션
출시일 : 2021. 4. 20.
개발사 : 샌디에이고 스튜디오
서비스 : SIE / MLB AM
플랫폼 : PS, Xbox

관련 링크: 'MLB 더 쇼21' 오픈크리틱 페이지


여전한 그래픽, 프레임도 간당간당

매년 시작되는 새 시즌에 맞춰 시리즈 신작을 출시해야 하는 스포츠 게임 개발사에 변화는 퍽 어려운 일이다. 여러 작품이 이미 쌓이며 스포츠 자체로의 시스템은 이미 충분히 갖춰졌고 그래픽 역시 1년 만에 큰 변화를 그리기 어렵다는 걸 생각하면 더 그렇다.

해마다 큰 변화를 담아내긴 어려우니 스포츠 게임들은 몇 년 주기로 엔진이나 그래픽의 대대적 개선을 약속하고 짧은 주기로는 로스터 최신화와 함께 모션이나 최적화에 힘쓴다. 그래서 올해는 그간 큰 변화가 없었던 더쇼 시리즈가 차세대 콘솔의 강력한 성능에 어울리는 진화를 보여주기 좋은 타이밍이기도 했다.


하지만 더 쇼21은 오히려 차세대 콘솔에서 헤매는 모습이다.

전작들이 이미 훌륭한 수준의 그래픽을 보여줬던 만큼 눈에 확 띄는 변화를 많이 체감하긴 어려울법 했다 치더라도 이번 작품의 그래픽은 확실히 아쉽다. 전작을 가져다 직접 비교해도 어느 쪽이 더 나은지 쉽게 구분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같은 더 쇼21을 두고 차세대 기종과 이전 세대 기종이 큰 차이를 보이는 것도 아니다. 피칭이나 배팅 같은 정적인 상황에서의 초당 프레임은 60을 유지하지만, 선수들이 클로즈업되거나 특정한 컷신에서는 세대 가리지 않고 여지없이 프레임이 곤두박질친다.


그나마 압축 기술이 적용된 SSD 덕에 이전 세대와 비교해 빠른 로딩을 보여주지만, 게임마다, 화면 전환마다 발생하는 자잘한 로딩은 여전히 고통스럽다.

차세대 기종에서 이런 퍼포먼스를 보여주니 게임 플레이 자체만 두고서는 차세대 성능을 체감하기가 어렵다. 사실 PS3에서 PS4로 넘어가던 시기에도 그래픽 변화에 집중하지 않았던 샌디에이고 스튜디오인 만큼 다음 작품에서나 그 변화를 체감할 수 있으려나?

비록 게임플레이나 시스템 자체에서는 기대만큼 변화가 없었지만, EA나 2K는 FIFA와 매든, NBA2K에서 차세대 버전으로 애니메이션과 그래픽 등 이전 세대와의 차이를 보여주고자 했다. 코나미의 경우 차세대 콘솔 버전 집중 등을 이유로 정식 넘버링 신작을 넘기고 비교적 저렴한 로스터 업데이트만을 내놨다.

그런 면에서 더 쇼21이 보여준 행보는 소니 퍼스트 파티로서는 더없이 아쉬울 따름이다.




결국, 내 지갑을 열어야 하는 건가

스타팅 라인업 9명에 25인의 메이저리그 선수들과 40인의 로스터. 그리고 직접 조작하는 단 한 명의 선수까지. MLB는 상황마다 생각할 요소들이나 선수의 수가 굉장히 다양하다 보니 이를 구분한 각각의 모드가 유저들의 성향에 따라 저마다 다른 인기를 얻었다.

구단 운영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면 코칭 스태프부터 트레이드에 드래프트, 마이너 관리까지 모두 이루어지는 프랜차이즈 모드를 즐기면 되고 주어진 상황에서 팀을 가을 야구로 이끄는 마치 투 옥토버도 색다른 재미를 줬다.

이런 모드 자체는 이미 어느 스포츠 게임에나 포함된 만큼 큰 변화보다는 세부적인 손질에 집중되는 편이다. 하지만 나만의 선수 한 명을 키우는 로드 투 더 쇼. 일명 RTTS는 어느 때보다 진화광선을 제대로 맞았다.

2021시즌에도 도전이 이어지는 에인절스 오타니 쇼헤이의 이도류의 인기가 RTTS에도 적용되어 투수와 타자를 겸하는 투 웨이가 드디어 가능해졌다. 근래 야구에서 투 웨이 자체가 제대로 된 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만큼 아직은 일정이 기괴하게 짜이는 등의 단점은 있다. 그래도 그간 마땅히 새로운 시스템을 찾을 수 없었던 팬들에게는 투 웨이 플레이가 신선한 경험이 될 법하다.


문제는 RTTS가 전혀 다른 모드였던 다이아몬드 다이너스티, 일명 DD와의 어중간한 융합을 그렸다는 데 있다.

FIFA의 FUT와 비슷하게 카드 팩을 열고 선수들을 수집해 플레이하는 DD는 그 성향상 다른 게임 플레이 모드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게임이었다. 하지만 샌디에이고 스튜디오는 이번 더 쇼21을 통해 생성한 볼 플레이어의 능력치를 대폭 향상해주는 퍽, 미션이나 선수 성장을 위해서 RTTS만이 아니라 DD까지 함께 플레이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RTTS의 시뮬레이션으로 성장하는 선수 능력치를 제한하고 DD 보상을 두어 선수 성장은 하나보다는 이 두 모드를 함께 플레이했을 때 더 빠르게 이루어진다. 결국, RTTS만 즐겼던 플레이어는 굳이 다른 모드를 강제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비록 비슷한 다른 스포츠 게임과 비교하면 뽑기를 위한 보상이나 확률이 후했고 트레이드를 위한 재화 확보도 이해할 정도였다는 평이 우세했지만, 어쨌든 확률형 아이템이 존재하는 모드 접근성을 높인 점은 팬에게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닐 거다. 여기에 DD와의 연계로 그간 이어지던 세이브 연동도 결국 사라져버렸다.


다만, DD 자체가 나쁜 콘텐츠라는 건 아닌데 굳이 멀티플레이를 하지 않아도 전설적인 레전드 선수를 조작해 특정 상황을 헤쳐나가는 모먼츠나 등 다양한 싱글플레이는 건재하고 DD 로스터로 즐길 수 있는 플레이도 여전하다.

두 콘텐츠를 묶지 않아도 새롭게 즐겨볼 여지가 충분했는데 이를 하나로 묶어낸 건 아쉬울 따름이다.



그냥 어렵게? 플레이어의 숙련도에 따라 납득할 수 있게

모드에서의 아쉬움은 두드러지지만, 그래도 더 쇼는 더 쇼다. 각 게임에 들어가면 새로운 변화들과 함께 여전히 대체할 수 없는 재미를 주는데 이런 변화는 막 시작한 단계에서 체감되는 난이도 상승과 관련이 있다.

이번작은 타구 방향을 결정하는 디렉셔널 배팅이든 날아오는 타구를 직접 따라가 때리는 존 타격이든 전작 이상으로 타이밍을 맞추기 어렵고 타구 질도 만족스럽지 않을 때가 많다. 더 쇼20 이후 1년 만에 이 정도로 동체 시력이 떨어지는 늙은이가 됐나 싶기도 하지만, 새로워진 타격 훈련을 보면 개발진의 목적을 나름 파악할 수 있다.

이번 작품에서는 그간 도입이 절실했던 세분된 타격 연습이 가능해졌다. 상대 팀과 투수를 선택하면 투수가 던지는 구종, 그리고 9칸으로 나뉜 스트라이크 존을 직접 지정해 타격 연습을 할 수 있다.

류현진의 체인지업 타이밍이 영 어렵다면 구질을 체인지업만 설정하고 중앙으로만 뿌리게 해 연습하는 게 가능하다. 이제 류현진은 체인지업만 주구장창 던지는데 부족하다면 수백 번, 수천 번 타격할 수 있다. 또 스트라이크 존 바깥으로만 던지게 해 볼에 대한 대처법을 습득하는 것도 가능하다.


결국, 야구는 타이밍 싸움이다. 축발을 두고 앞으로 발을 내딛기 위해 들어 올리는 동작. 그리고 손에서 공을 던지는 릴리스 포인트의 방향과 거리 등이 투수마다 모두 다르다. 이를 눈에 얼마나 익히느냐에 따라 타구의 정확도도 오른다.

기본적으로는 전작보다 공이 잘 안 맞을지 모르지만, 배팅 훈련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어 훈련으로 이를 극복하게 했다.

피칭에서는 새롭게 도입된 핀포인트 피칭이 돋보인다. 핀포인트 피칭은 투구 준비 자세에서 오른쪽 아날로그 스틱을 정해진 방향대로 움직이고 공을 던지는 릴리스 포인트에 맞춰 아날로그 스틱을 다시 한 번 튕겨주는 식으로 공을 던진다.

쉽게 적응하기 쉽지 않은 방식인데 핀포인트라는 이름만큼 플레이어가 원하는 방향에 더욱 정확하게 꽂아넣을 수 있는 피칭 방식이다.


사실 낮은 난이도에서는 그냥 구종과 방향만 설정하면 알아서 던지는 클래식이나 타이밍만 맞추면 되는 펄스, 미터 방식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높은 난이도에 오를수록 쉬운 피칭 방식은 내가 원하는 방향과는 다른 곳으로 공을 던질 확률이 높아진다. 반면 핀포인트 피칭은 이런 실투 확률이 적은 방식이다.

배팅과 피칭 모두 플레이어가 훈련을 통해 더욱 정확하고, 유리하게 게임을 풀어나갈 방법을 만들어 준 셈이다. 게임에서까지 반복 훈련을 해야 한다는 점은 슬픈 일이지만, 익히는 게 빠르다면 간단한 조작 방식을 쓰는 유저보다 한발 앞서나가는데 이런 실력 차이를 조작과 숙련도로 구현한 것이다.




새로운 변화에 대해서는 박한 평가를 줄 수밖에 없지만, 더 쇼21은 여전히 최고의 MLB 게임이다. 그간 쌓아온 장점은 여전하고 게임 플레이 역시 아쉬움을 말하는 입과는 별개로 꾸준히 플레이할 콘텐츠가 잔뜩 있다.

여기에 이번 작품에서 처음 선보인 스타디움 크레에이터는 나만의 독특한 구장을 꾸미는 새로운 재미를 준다. 축구나 농구, 미식축구와 달리 필드 형태가 자유롭고 외부 조형도 자유로운 만큼 꽤 참신한 아이템들도 눈에 띈다.


다만, 이런 몇 가지 요소를 빼고는 큰 변화가 없다는 뜻은 결국 이전 시리즈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RTTS 선수를 이전할 수 없으니 그냥 로딩 등 일부 플레이의 쾌적함을 포기한다면 더 쇼20으로도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다음 시리즈는 DD 같은 확률형 아이템 요소가 담긴 모드에 플레이어를 억지로 끌어들이기보다는 차세대 콘솔에 어울리는 그래픽과 새로운 게임 플레이가 포함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않는다면 게임 더 쇼가 아닌 '또 쇼' 소리를 들으며 이전 작 유저들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굳이 새로운 작품을 사지 않아도 충분히 재밌는 게임. 다시 한 번 믿고 더 쇼를 사는 건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