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폰이치 소프트웨어’. 이름에 ‘일본 제일’이란 이름이 들어간 특이한 명칭을 내세우는 회사다. 중소 규모로 운영 중이지만, 직원의 수는 적지 않고 그들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밀어주는 몇 안 되는 회사다. 덕분에 ‘루프란의 지하미궁’이나 ‘신 하야리가미’ 같은 작품을 볼 수 있었지만, 작품성이 애매한 ‘마녀와 백기병’이나, 플레이 타임이 극히 짧은 타이틀도 출시되었다.

짧은 플레이 타임과 높은 가격의 딜레마. 그리고 실험 정신이야 인정하겠지만 꾸준히 출시해 온 게임들의 면면을 살펴 보면 니폰이치 소프트웨어가 걸어온 최근의 행보에는 다소 의문점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물론, 게임업계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보면 B급 게임이라 할지 언정, 개발자의 자유도를 인정해주고 여러 시도를 허용하는 니폰이치의 마인드는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장은 냉정하고 유저의 평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 니폰이치의 이미지를 아직까지 유지시켜주는 게임이 있다면 바로 ‘디스가이아 시리즈’다. 한국에서 니폰이치하면 ‘디스가이아’를 떠올릴 정도로 시뮬레이션 RPG의 정점에 서있는 게임이기도 하다. 극한의 육성을 비롯해 노가다의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는 디스가이아 시리즈. 명성이 자자한 것은 알고 있지만, 기자는 아직 디스가이아 시리즈를 제대로 플레이해본 적은 없다.

그런 나에게 ‘마계전기 디스가이아 6’이 들어왔다. 자신 있어 하는 장르는 아니지만 패기있게 도전해 본 결과, 첫 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나름 풀 보이스로 입혀진 메인 스토리하며 상당히 많아 파고들기 좋은 시스템, 깔끔한 3D 그래픽과 함께 턴제 특유의 생각하는 재미가 녹아있었다.

게임명: 마계전기 디스가이아 6
장르명: 시뮬레이션 RPG
출시일 : 2021. 5. 27.
개발사 : 니폰이치 소프트웨어
서비스 : 세가퍼블리싱코리아
플랫폼 : PS4, 닌텐도 스위치

관련 링크: '마계전기 디스가이아 6' 오픈크리틱 페이지


언제나의 디스가이아와 주인공 '제트'

디스가이아 6은 ‘초전생 시스템’이라는 특성을 이용해 스토리가 진행된다. 어떻게 해서든 ‘파괴신’을 없애려고 발버둥치는 주인공 ‘제트’를 중심으로 초전생을 통해 끊임없이 강해져 최후에는 파괴신을 쓰러뜨리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스토리는 초전생 시스템 탓에 여러 행성으로 옮겨가면서 고독히 싸움을 반복하고 있던 '제트'가 행성에서 다양한 동료들과 조우하고, 인연을 알게 되면서 파괴신을 쓰러뜨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캐릭터의 첫 인상은 팬층이 돈독히 쌓인 '디스가이아 시리즈'의 명성대로였다. 그 중에서는 '마왕 이바르'의 이미지가 상당히 깨져보이는 게 독특했다. 각 캐릭터가 전부 자신만의 개성을 갖추고 있고, 그 개성을 극대화함으로서 극을 재미있게 이끌고 있었다. 제트는 주인공 판박이긴 하지만, 멜로디아, 삐요리, 슈센드르, 마죠렌 등, 전혀 마계에 사는 악마 같지 않은 면모의 등장인물들의 매력이 그대로 고스란히 드러나있다.

게임의 스토리 진행은 3챕터로 나누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에 동료를 만나는 부분에서 1챕터, 그리고 동료와 만났었던 구간을 다시 들러 동료의 성장을 거쳐가는 2챕터, 그리고 진실을 밝히는 구간까지의 3챕터인 셈이다. 게임의 진면모가 스토리 클리어 후의 수많은 노가다 요소를 통한 육성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스토리의 완성도는 상당히 준수하다.

▲ 파괴신에게 도전하다 죽으면

▲ 초전생으로 인해 전생해버리는 그

▲ 근데 동료들이 하나같이 맛이 간 것 같다

▲ 생각보다 모델링과 연출 퀄리티가 좋았다

암흑회의, 만물상, 마계병원, 기록소, 부대샵, 퀘스트샵, 시공의 뱃사공, 아이템계 담당자, 아이템계 조사단, 치트샵, 스킬샵, 드링크바 등등, 게임 내에 들를 수 있는 샵과 시스템도 정말 다양하다. 디스가이아 시리즈 특유의 노가다를 위한 준비물로서, 이 중에서 중요하게 볼 수 있는 시스템은 회의를 통해 각종 편의 기능이나 시스템을 해금할 수 있는 '암흑회의', 아이템 노가다를 치룰 수 있는 '아이템계 담당자'라고 볼 수 있다.

시공의 뱃사공은 말 그대로 '스토리'다. 여기에 들어가서 스토리를 진행할 수 있고 퀘스트샵을 통해 퀘스트 수주를, 부대샵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부대를 생산할 수 있고, 치트샵을 통해 다른 효과 (마나 획득량이나 경험치 획득량 등)를 제한하는 대신, 그 분량만큼 효과를 올릴 수 있다. 그야말로 노가다를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인데, 역시 사상최흉이라고 불릴만 하다.

노가다 수치도 상당히 높아졌다. 최고 레벨이 9999만 9999 레벨이라는 다른 RPG 게임과 비교했을 때, 말도 안되는 수치에 최대 대미지도 9999경 9999조 9999억 9999만 9999 대미지를 줄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해본 게임 중에서 대미지가 '경' 단위까지 올라간 게임은 '디아블로 3' 정도 밖에 보질 못했다. 생각해보니 디아블로 3과 흡사한 것 같다. 끝없는 노가다로 이루어진 게임들은 전부 이 경지에 도달하는 것일까.

▲ 쎄보이는 파괴신도 노가다면 한 방이지

▲ 연출상, 귀여운 프리니가 대신 맞아줬습니다

▲ 딴죽걸기 대마왕, 이바르

▲ 스토리를 진행하면 마계가 개방된다



'자동사냥', 이번 작품의 핵심 쟁점

이번 작품의 쟁점이라고 한다면 바로 ‘자동 사냥’과 이를 반복할 수 있게 해주는 ‘마심 에디트’라고 본다. 기본적인 맵에서 최적화된 전투를 펼치며 원하는 노가다 장소를 지정하고 편집해서 원하는 루틴을 만들면 만들어진 행동대로 자동 전투를 진행한다. 심지어 이를 반복해서 진행할 수 있게 되어 게임을 켜둔 상태라면 무한정으로 반복해서 전투를 실행할 수 있다.

물론 '마심 에디트'를 통해 루틴을 최적화하여 설정하지 않는 이상, ‘지오 이펙트’ 같이 맵의 특수기물을 부수거나 하진 않는다. 그래서인지 게임 플레이 도중, 자동 사냥으로만 스토리를 진행하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대신에 자동사냥으로 노가다를 하고, 그 뒤에 자동 사냥으로 도저히 진행할 수 없는 구간이 나오면 직접 조작해서 쉽게 클리어하는 방식을 거쳤다.

캐릭터마다 있는 '마심 에디트'는 초전생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암흑회의를 통해 개방할 수 있다. 해당 기능을 해방하면 자동 전투를 진행할 캐릭터의 루틴을 직접 조정할 수 있는데 ‘어디에서?’, ‘누구에게?’, ‘무엇을 하는가?’로 이루어져 있고, 각각의 패턴을 조합해서 원하는 루트를 짤 수 있다. 일반적인 자동 전투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구간에서 자주 쓰인다.

그래서인지 스토리를 진행하려면 자동전투를 풀고 수동으로 전투를 하거나, 아니면 마심 에디트를 이용해 루틴을 짜야 했다. 즉, 손놓고 간단하게 하기엔 진입장벽이 많기에 아직 ‘디스가이아’만의 노가다 특성이 남아있다고 볼 수 있다. 덕분에 자동전투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어폐가 살짝 있다.

▲ 마심 에디트를 통해 명령을 기록해

▲ 캐릭터가 어떻게 행동할지 짜는 것도 재미 중 하나다

▲ 암흑회의에선 뇌물을 줘서 호의를 줘야 하는 것이 포인트

▲ 자동전투 하다보면 연출 보지 않고 스킵하거나 그냥 끄게 된다

다만, 자동 사냥은 디스가이아 시리즈의 핵심인 ‘노가다를 통한 끝없는 강해짐’을 굉장히 손쉽게 해낼 수 있다. 아마 기존 팬들의 입장에서는 이 부분에서 불만을 크게 느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스테이지의 패턴을 설정함으로써 게임이 켜져 있는 이상, 무제한으로 스테이지를 돌 수 있고 맵을 도는 동안에는 캐릭터의 행동이 전부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레벨 업에 더 이상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런만큼 디스가이아 시리즈를 즐기는 팬들의 입장에서는 이 자동 전투 시스템과 관련된 찬반의 논쟁이 좀 있다. “패키지 게임에서까지 자동 사냥을 보고 싶지 않다.”가 중론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플랫폼의 RPG들이 필드에서의 불필요한 노가다를 줄이기 위해 자동 사냥같은 편의 시스템을 꾸준히 도입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현재 변화하고 있는 게임 시장과 모바일 게임에 익숙해지고 있는 라이트 게이머들에게 어필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실제로 기자는 디스가이아 시리즈의 초보자기에 해당 시스템을 굉장히 만족하면서 사용했다. 하지만 실제로 이 시리즈로 ‘자동 사냥이 없는 전작’까지 해보고 싶냐고 자신에게 물어보았을 때, 굳이 그러면서까지 전작을 플레이하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디스가이아 6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전작 대비, 무기별 스킬 제거, 범용 캐릭터의 수 부족, 애니메이션 오프닝 삭제 등, 다양한 요소가 잘려 나갔기 때문인데, 이러한 부분은 스토리 클리어 후에 제공되는 ‘수라 모드’나 ‘나찰 모드’를 통해 난이도를 높여 더욱 극한의 시뮬레이션 게임을 즐기는 것으로 어느 정도 메꿀 수도 있다.

▲ 자동전투 하다보면 100레벨이 아니라 6000레벨도 쉽게 올린다

▲ 만들 수 있는 부대원 수도 좀 줄었긴 했지만

▲ 재밌으면 그만 아닐까

▲ 죽어라 노가다 하는 게임. 이젠 자동전투가 다해준다




마계전기 디스가이아 6은 나쁜 게임은 아니다. 원한다면 자동 사냥을 버리고 일반적인 플레이를 통해 육성의 재미를 느낄 수 있고, 한계를 넘는 대미지를 뽑아내는 재미는 여전하다. 스토리도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충분히 만족스럽게 뽑혔다. 만약 자신이 한계를 넘은 전투력을 보여주고 싶다면 초전생을 포함한 여럿 시스템을 건들이면 충분히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다만, 일본 아마존의 구매 평점 등을 살펴 보면 기존의 디스가이아를 즐겼던 팬들 사이에서는 시리즈 고유의 전통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자동 사냥의 도입에 대해 크게 반기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반대의 평가를 보면 이러한 변화를 반기는 팬이나 신규 유저층도 있었다. 이렇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가 디스가이아 시리즈에 미칠 영향 혹은 니폰이치가 걸어갈 길에 어떤 발걸음으로 남게 될지 궁금하다.

과감한 실험을 해왔던 만큼, 이번 변화가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동 전투 시스템도 '마심 에디트'를 지정하지 않으면 단순 공격 밖에 하지 못하는 AI가 되어버리기에 루틴을 짜고, 시험해보는 시뮬레이션만의 재미는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거기에 강렬한 개성의 캐릭터와 다양한 재미를 갖춘 턴제 전투까지 갖추고 있는 디스가이아 6은 아직까지 니혼이치 소프트웨어의 대표작이라고 부를만한 게임이다.

▲ 게임 오버창 떴다고 당황하면 안된다. 연출이다

▲ 귀여운 프리니도 빠지지 않는 디스가이아

▲ 눈나... 눈나가 왜 적이야...

▲ 마지막으로 파렴치한 모습 (공식)이나 보고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