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으로는 견뎌내기 힘들었던 다크 얼라이언스의 무게, 아직은 시간이 있다
던전 & 드래곤(D&D) 시리즈의 '포가튼 렐름'을 게임 팬들에게 각인시킨 건 단연 '발더스 게이트'입니다. TRPG의 룰을 게임화하고 전에 보기 어려운 자유로운 게임 플레이는 새 세대 CRPG의 본격적인 서막을 열었습니다. 이런 특징 탓에 탑다운 핵앤슬래시를 그려낸 외전 다크 얼라이언스(Baldur's Gate: Dark Alliance)는 팬들의 의구심을 살 수밖에 없었죠. 제대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한 CRPG의 틀에서 다시 멀어지는 모양새였으니까요.
하지만, 2001년 출시된 발더스 게이트 다크 얼라이언스는 이름 없는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세계관 속의 이야기를 이전 수준 훌쩍 뛰어넘는 그래픽으로 구현했습니다. 뭐든 부수고 연계하는 호쾌한 플레이는 콘솔 핵앤슬래시에서도 '발더스 게이트'의 이름을 남겨버렸죠.
인터플레이가 D&D 판권 갱신을 하지 못하고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 '발더스 게이트 다크 얼라이언스2'로 오랜 기간 남아있던 상황. 디비니티 시리즈의 라리안이 '발더스 게이트3'로 발더스 게이트의 이름을 이었고, D&D의 IP를 가지고 있는 위저드 오브 더 코스트는 다크 얼라이언스의 이름을 이었습니다.
이제는 D&D 이름을 단 다크 얼라이언스. 포가튼 렐름 캠페인 최고 인기 캐릭터 드리즈트 두어덴 파티를 직접 조작할 수 있게 만들고 화려한 그래픽에 파밍의 경험까지 곁들인 코옵 플레이는 D&D 팬들의 가려움을 긁어줄 것처럼만 보였습니다. 직접 만나보기 전까지는 말이죠.
◆ 해당 리뷰는 출시 전 버전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정식 출시 버전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게임명: 던전 앤 드래곤: 다크 얼라이언스 | 개발사: Tuque Gam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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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링크: '던전 앤 드래곤: 다크 얼라이언스' 오픈크리틱 페이지
이게 바로 아이스윈드 데일의 드리즈트다
던전 앤 드래곤: 다크 얼라이언스(D&D: DA)는 스토리를 따라가는 일반적인 콘솔 핵앤슬래시에서 벗어나 파밍이 게임의 핵심으로 자리 잡은 루트 슬래셔로 그 장르를 바꿨습니다. 보더랜드를 시작으로 워프레임, 데스티니, 디비전 등 흔히 슈터가 잘 자리 잡은 장르이기도 한데 이를 근접 전투 위주로 즐긴다고 생각하면 비슷할 것 같습니다. 최근 게임으로 한정하면 갓폴과 비교할 수 있겠네요.
이런 루트 방식 게임은 나름의 핵심이 있습니다. 바로 반복 플레이를 통해 '강력한 장비를 얻어 강력해지고', 훌륭한 아이템을 드랍하는 '위협적인 적을 제압하기 위한 협동 플레이'죠. 위저드 오브 더 코스트가 포가튼 렐름의 대표적인 이야기, 아이스윈드 데일 3부작을 D&D: DA의 배경 이야기로 설정한 것 역시 이런 루트 게임의 협동 플레이를 강조하기 위한 방편 중 하나였습니다.
포가튼 렐름을 대표하는 인물인 드리즈트 두어덴을 비롯해 그의 반쪽 캐티브리, 인간 울프가와 드워프 브루노 배틀해머 등 아이스윈드 데일을 이끈 핵심 파티 4인을 플레이어의 손에 쥐여줬죠.
어쌔신, 바바리안, 아처, 탱크 등 캐릭터마다 역할군이 딱 정해져 있고 4명까지 함께 즐기는 코옵에서는 같은 캐릭터를 고를 수 없으니 플레이어가 딱히 고민하지 않아도 조합이 맞춰지는 셈입니다.
장르가 가진 특징. 그리고 인터플레이의 '아이스윈드 데일'처럼 제목과 세계관만이 아니라 드리즈트 파티원 개개인을 그린 점은 마치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이거 친구랑 제발 같이 좀 해봐, 그러라고 만들었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정작 이 게임을 함께 즐긴다면 정말 이걸 함께 즐기도록 만들었는지 머리를 갸웃거리다 관자놀이가 어깨에 붙을 지경이죠.
같이 할수록 머리는 어지럽고 손은 힘들고
일단 이 말부터 해야 할 것 같네요. 아무리 재미없는 게임도 같이하면 재밌습니다. 그리고 뒤에 더 설명하겠지만 D&D: DA가 그 정도로 재미가 없는 게임은 또 아니라 친구, 혹은 온라인을 통해 누군가 함께 즐긴다면 그 속에서 즐길 거리는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게임의 시스템이 이런 재미를 조금씩 깎아 먹는다는 데 있습니다.
다양한 적이 쏟아지고 이를 화려한 공격의 연속으로 잡아내는 게임 특성상 가장 먼저 해결돼야 할 문제는 시인성입니다. 누가 적군이고 아군인지. 혹은 내가 제대로 된 적을 충분히 공격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구분해야죠.
그런데 협동 플레이에서는 누가 아군인지 쉽게 구분할 수 없습니다. 얼음발이 날리는 지역과 용암이 끓어오르는 던전 등 분위기를 살리는 다양한 지역이 게임 플레이에 다채로움을 주기는 합니다. 하지만 던전은 지나치게 어두워 적을 효과적으로 식별하기 어렵고 필드에서는 위장색이라도 챙겨입은 듯한 적과 지형을 종종 헷갈려버리곤 합니다.
특히 드워프인 브루노는 고블린 정도의 키를 가지고 있는데 중갑옷 있는 고블린이 나오면 아군인지 적인지 바로 알기가 어렵습니다. 체력바가 적 근처, 혹은 타격 중이 되어야 뜨니 일단 눈에 보이면 드워프인지 고블린인지 신경 쓰지 않고 일단 먼저 때리고 볼 정도였으니까요.
공격 모션의 불편함도 있습니다. 대개 일반 공격은 약공격과 강공격의 입력 숫자와 조합법에 따라 콤보 형태로 연달아 이어지는데 공격 모션 과정에서 공격 방향을 돌리는 게 쉽지 않습니다. 적이 한번 공격을 피한 상태에서 적을 따라가지 못하고 공기 가르기만 멋지게 해대는 거죠. 게임 자체의 공격 모션은 굉장히 매끄럽게 이루어짐에도 게임 속에서 무겁고 번거롭다고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앞선 두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는 록온도 영 편리하게만 작동하지는 않습니다. 어느 정도 적의 방향으로 시점을 옮긴 뒤에야 록온 타겟팅이 가능하고 타겟 간의 이동도 굉장히 훅훅 지나갑니다. 평소 FPS 게임만 하면 3D 멀미를 겪던 동료도 3인칭이라는 점에 안심했지만, 정신없이 돌아가는 화면에 헛구역질해댈 정도였죠.
폭발 가능한 화약통이 록온 목록에 들어와 적 잡고 다음 타켓팅이 이 화약통으로 잡히는 경우도 손으로 셀 수 없었습니다. 결국, 함께 즐긴 4인팟 중 절반은 록온 없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플레이했죠. 헛손질로 허공에 해머질을 하고 브루노에게 칼을 꽂아 넣는 게 록온으로 보는 불편함보다 낫다고 생각한 거죠. 이것도 시점 자체가 굉장히 좁고 록온을 끄면 시점 이동 자체가 굼떠 적응하기 쉽지 않고요.
회피, 공격 모두에 쓰이는 스태미나는 게임 특유의 속도감을 되려 제한하는 역할을 합니다. 공격 몇 번, 회피 한두 번이면 스태미나가 바닥나버려 잠시 거리를 두고 회복할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아니면 그냥 적에게 맞아 던전 천장 보고 회복하기도 하고요.
공격 하나하나가 둔탁하지만, 비교적 큰 피해를 주는 다른 캐릭터들은 그나마 나은 편입니다. 일반 공격으로는 발차기하는 캐티브리에게는 이 스태미나 부족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캐티브리는 너무나 빈약한 일반 공격 대신 원거리 공격을 빠르게 적 미간에 꽂아넣을 수 있습니다. 공격력도 우수하고요. 하지만 스태미나를 워낙 많이 소모하는 공격이라 마음껏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일반 공격은 약하니 결국은 뒤에서 특수 능력인 힐을 써주는 역할에 집중하죠.
여기에 원거리 공격은 아군이 이미 때리는 상대에게는 제대로 먹혀들지 않습니다. 동일한 대상에 복수의 타격을 금지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여러 명이 보스를 둘러싸고 넉백을 시켜 움직이지도 못하게 두들겨버리는 게 가능한 걸 생각하면 원거리 위주 캐릭터에게 너무 가혹한 판정 계산이 아닐까 싶긴 합니다.
사실 피격 모션은 근거리 공격이라도 딱히 나은 편은 아닙니다. 묘한 레이턴시로 인해 플레이어의 공격과 이걸 맞는 적의 움직임이 제대로 맞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어색할 정도로 늦게 반응합니다.
넷코드를 통한 높은 지연 속도는 여러 명이 함께 플레이하는 게임에서 인터넷 속도가 느린 유저와의 통일성을 가지고 끊기는 현상을 방지한다는 목적이 있긴 합니다. 그걸 생각해도 D&D: DA는 중계 서버가 국내에 있지 않기에 발생한다 싶을 정도로 요즘 게임답지 않은 느릿한 피격 반응을 보여줍니다.
액션 자체는 호쾌하다 보니 거기서 오는 부조화가 더 크게 와 닿죠. 어차피 종잇조각 때리는 타격감을 가지고 있다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피격음이나 화면 떨림 등을 정말 효과적으로 사용하니 이 어설프게 느린 반응이 더 아쉽습니다.
D&D기에 한 선택, 여기에 먹히지 않기를
일부러 게임이 가진 단점을 주우욱 나열했는데 이 단점 대부분은 게임이 목표로 하는 코옵. 그러니까 여러 명의 플레이어가 함께 즐기는 협동 플레이를 방해하는 것들입니다. 재밌는 건 홀로 플레이하는 게임에서는 이 불편함의 상당수가 사라진다는 거죠.
피아 식별의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으니 눈에 보이는 적은 그저 죽이면 됩니다. 호쾌하게 적을 두들기고 내 공격이 아닌 건 그저 확실하게 피해버리면 그만입니다.
또 도전하는 플레이어 수가 적을수록 스태미나에 가해지는 보정치 덕에 공격은 한결 수월해집니다. 혼자 스테이지에 돌입하면 따로 스태미나 관리하지 않고 공격 마구 남발해도 소모량이 굉장히 미미한 수준으로 조절되죠. 회피만 잘 쓰면 4명이 몰아서 때리는 것보다 더 많은 공격을 혼자 때려 넣을 수 있습니다.
지연랙에 버벅거리듯 반응하던 적도 공격에 확실하게 반응합니다. 단순히 타격감에 좋다는 선에 그치는 게 아니라 때린 만큼의 손맛을 보상받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멀티플레이의 앞선 단점들은 그저 게임 디자인의 오류라고 생각하기에는 목표하는 바가 분명합니다. 그래서 그저 '게임 참 못났다'라며 혀를 끌끌 차고 마는 게 아니라 아쉽다는 생각이 가득해지죠.
D&D: DA는 단순히 적을 강력하게만 만들기보다는 스태미나를 보정해 아군과의 협동 플레이를 유도하려 했습니다. 비슷한 장르인 마블 어벤져스가 높은 레벨 달성 후 스킬로 캐릭터의 성장과 역할 차이를 만든 것과 달리 원거리나 근접 공격의 수행력이 완전하게 구분돼 그 역할을 분명하게 구분한 캐릭터는 자연스러운 협업을 꿈꾼 결과물이죠. 시인성이 부족한 화면은 화려함과 수려함이라는 그래픽 방향성 구현 사이에서 미처 매조 짓지 못하고 결과물에 포함된 부분 정도쯤인 겁니다.
던전 탐색이라는 특징은 이 싱글플레이서 더 확실히 빛납니다. 루팅의 핵심인 보상이 적을 제압하는 것 보다 맵 곳곳에 있는 보물 상자를 통해 얻도록 구성한 데 그 이유가 있죠.
얼음으로 뒤덥힌 바닥을 그냥 밟고 지나가 상자를 연다면 너덜너덜한 체력에 돌아오다 쓰러져버리겠지만, 화로 근처에서 몸을 뜨끈히 덥힌 뒤라면 추위에 의한 대미지를 한동안 방지할 수 있죠. 독이 퍼진 습지는 불로 날려버릴 수 있고 가시 함정은 적절한 타이밍을 알아내거나 숨겨진 스위치를 찾아내는 등 플레이어의 직관력과 관찰력이 더 많은 보상을 약속하는 구조입니다.
이렇게 개인 중심으로 탐험 구조가 짜여있어 팀으로 움직일 때 확실한 콜이 없다면 이거 다 놓치고 그냥 지나쳐버리고 맙니다. 여기에 스테이지를 여러 차례 반복할수록 비슷비슷한 퍼즐이 반복된다는 건 붙은 흥미를 점점 식혀버릴 요소긴 하지만요. 이런 기믹이나 상태 변화를 게임 내에서 딱히 설명해주지 않으니 플레이어의 직관력에 더 크게 의지하는 것도 안타깝고요.
싱글플레이에서 드러나는 D&D: DA의 강점을 보자면 아이스윈드 데일의 파티. 그리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장르 선택과 콘셉트에 게임 플레이가 먹혀버렸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르게 보면 목적 자체가 뚜렷하고 이 과정에서 잘못된 점도 분명하니 어떻게 개선하면 될지가 확실한 셈이기도 하고요.
D&D의 게임화에 대한 갈증은 TRPG 팬은 물론 CRPG로 시리즈를 처음 접한 이들 모두 같습니다. 특히 수많은 대화와 파티 조합, 전략적 전투는 빼고 핵심만 간단하고 화끈하게 즐기고 싶은 팬들에겐 D&D: DA만한 게임은 없어 보였을 겁니다.
실제로 눈에 보이는 만족할 수준의 그래픽과 훌륭한 액션 등 게임으로서의 기본 중 일부는 잘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영상으로만 본다면 설명한 것 이상으로 매력 넘치는 게임으로 보이기도 하고요. 쓸데 없이 광활한 오픈 월드 형태 대신 스테이지별로 각각의 세션을 구분해 스토리를 전달하는 것도 쉬운 편이죠.
기본이 나름 잘 잡혀있는 셈이라 시스템적 과실을 수정하거나 게임 개발의 방향키를 돌리는 건 더 쉽긴 할 겁니다. 굳이 출시 후 피드백을 받기 전에 내부적으로 게임을 살펴보고 불편함을 느껴 실제 출시 버전에서는 미리 여러 문제점을 해결했을 가능성도 있고요.
그렇다고 시간이 잔뜩 남은 건 또 아닙니다. 스토리 등이 준비되어있기는 하지만 멀티플레이를 통한 지속적인 게임 플레이를 유도하는 작품인 만큼 초반에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금방 팬들이 빠져나가 버리고 말 겁니다. 뒤늦게 외양간을 고쳐도 떠난 소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건 이미 실패한 수많은 루트 슈터, 슬래셔가 증명했죠. 그나마 AAA급 그래픽과 연출을 자랑하는 게임임에도 5만 원 정도 하는 비교적 낮은 가격대 덕에 입문 장벽이 낮다는 건 장점이겠네요.
결국, 관건은 이미 잘 짜인 콘텐츠 추가 계획에 앞서, 출시 후 바꿔 나갈 수 있는 불편사항과 아직은 허전한 미드, 엔드 게임 단계의 즐길 거리를 어떻게 채워나가느냐에 있습니다. D&D라서 선택한 여러 요소로 아쉽게 만들어진 게임이 아니라 오롯이 D&D이기에 가능한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는 좀 더 빠르게 움직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