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가보고 싶은 곳은 어딘가요?"

처음엔 가벼운 농담처럼 들리다가, 세월이 가면 갈수록 더욱 무겁게 느껴지는 질문일 겁니다. 특히나 코로나19로 어디 돌아다니기 어려워진 지금은 더욱 더 간절하면서도, 무거운 느낌입니다. 때로는 억하심정이 느껴질 수도 있겠죠.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황, 얼마 못 가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을 알고 있는데 괜히 이런 말을 들으면 희망이 잠깐 불타올랐다가, 더욱 더 눈앞이 컴컴해질 테니까요.

그래도 만일 그 어둠이 다가오기 전, 마지막으로 그곳에 갔다는 '기억'을 떠올리면서 맞이한다면 어떨까요? 그 기억이 조작되었다는 걸 알기 전에, 그 모든 걸 잊고 마지막 소원을 이루었다는 느낌만 받는다면?

이 질문은 2011년 '투 더 문' 이래로, 캐나다의 인디 개발사 프리버드 게임즈가 줄곧 게이머들에게 던져온 질문이기도 합니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턱턱 막히는 이 질문들을 감미로운 음악과 탄탄한 이야기로 풀어내면서, 지금까지도 감동적인 게임 중 하나로 화자되는 작품이기도 하죠.

그 뒤로도 꾸준히 에피소드를 내던 그들은 잠시 휴식기를 가진 뒤, 다시금 이야기 보따리를 풀고 있습니다. 플랫폼 확장, 그리고 '파인딩 파라다이스'에 이은 '임포스터 팩토리'까지. 화려하지 않지만 어느 새 다가와 눈물을 살짝 훔치고 가는 그 이야기를 잠깐 훑고 가고자 합니다.



■ 왜 조니는 달에 가고 싶다고 했을까, '투 더 문'



조니는 아내와 사별한 뒤, 그 자신도 병을 얻어 시한부 선고를 받은 노인입니다. 죽기 전에 달에 가고 싶지만, 9G의 중력가속도를 버티는 훈련을 거쳐야 우주선 탑승이 가능한데 시한부 노인에게 그것이 가능할 리가 없었죠. 그렇기에 그는 마지막의 마지막, 지그문트 사에 의뢰를 합니다. 그곳은 사람이 죽기 전, 그 사람의 기억에 들어가 이루지 못한 꿈을 이뤘다는 기억을 넣어주고 편안한 임종을 맞이하게 도와주는 곳이죠.

의뢰를 받은 지그문트 사는 로잘린 박사와 와츠 박사를 파견, 조니의 기억을 훑어가기 시작합니다. 조니의 몸 상태는 너무 쇠약해진 나머지 당장 달에 갔을 거라고 조니 스스로가 받아들일 리가 없었죠. 그래서 그들은 그 꿈을 꿨던 시점을 조금 더 앞당겨서 달에 갔던 기억을 만들어내야만 합니다. 그는 언제부터, 그리고 왜 달에 가고 싶어했을까요?


2011년, 프리버드 게임즈가 RPG 쯔꾸르로 개발한 어드벤처, '투 더 문'의 주요 내용이죠. 유저는 로잘린 박사, 그리고 와츠 박사의 입장에서 차근차근히 조니의 옛 과거를 되짚어나가게 됩니다. 모로 가도 서울로 가면 된다고 달에만 갔다고 하면 그만이겠거니 싶지만, 한꺼풀 한꺼풀 벗겨나가면서 그 안에 숨은 또다른 무언가가 조금씩 비쳐지기 시작합니다.

조니의 현재 시점에서부터 앳된 시절까지 시간을 거슬러오른 뒤, 다시 순리대로 가면서 유저들은 조니의 기억 속에 숨어있는 단서들을 하나하나 찾아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짜맞추면서 조니가 좀 더 빠르게, '달에 가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하죠.

▲ 조니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소망의 근거를 찾고 달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야 합니다

'투 더 문'은 이 기나긴 여정을 RPG 쯔꾸르 특유의 고전적인 도트 그래픽에 섬세한 광원, 배경 효과에 집중하면서 특유의 감성적인 그래픽을 만들어냈습니다. 특히나 창가에 비치는 햇살이나 촛불 등, 따뜻한 느낌을 주는 광원을 살려 맵 곳곳에 배치하면서 감성적인 느낌을 가미했죠. 여기에 창문 밖의 풍경을 입체적으로 표현해 몽환적이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한 층 더 풍부하게 살려냈습니다.

여기에 감수성을 자극하는 BGM, 스토리가 삼위일체를 이루었습니다. 로라 시기하라가 작곡하고 보컬을 맡은 'Everything's Alright'은 주제를 응축하면서도, 심금을 울리는 멜로디로 지금도 종종 회자가 되는 곡이기도 하죠.


그 외에도 여러 주옥 같은 명곡과,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스토리를 보여준 투 더 문은 그 해 인디씬을 뒤흔든 게임이 되었습니다. 포탈2, 제노블레이드 크로니클 등을 제치고 게임스팟 선정 2011 베스트 스토리 게임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조작감이 다소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음에도 메타크리틱 및 오픈크리틱에서 80점 이상의 높은 점수를 얻기도 했습니다. 출시한지 조금 지나서도 게임 레이다 선정 시대의 게임 100선 안에 드는 등,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게임이기도 하죠.

이후 XD에서 퍼블리싱을 맡아 2017년 모바일 버전, 2020년에는 스위치 버전으로도 출시가 됩니다. 스위치 버전은 XD에서 개발사를 지원해 RPG 쯔꾸르가 아닌 유니티 엔진으로 제작, 그래픽과 디테일이 좀 더 개선이 되고 조작감도 한 층 업그레이드되었죠. 물론 플랫폼이나 엔진이 바뀌어도 스토리의 위력이 사라진 건 아니었기에, 모바일 버전과 스위치 버전은 NAVGTR 올해의 게임 후보작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 퍼블리셔 XD의 지원으로 스위치 버전은 쯔꾸르가 아닌 유니티 엔진으로 다듬어서 출시했습니다



■ 그가 가고 싶은 마지막 낙원은 어디일까요, '파인딩 파라다이스'



시간은 흐르고 흘러서, 이야기에 목마르던 유저들에게 이슬 같은 소식들이 몇 방울 떨어졌습니다. 작중에 언급되던 지그문트 사가 어떤 곳인지 짧게 소개하는 이야기와, 어느 한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외전작들이 출시됐기 때문이죠. 그 중 하나인 '버드 스토리'는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느라 바빠 홀로 외로이 지낼 때가 많은 어느 한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부모님도 자주 못 보고, 친구도 별로 없어 의기소침해있던 소년은 어느 날 새를 구해주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게 됩니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닥쳐온 사건과 함께 다음 편을 이야기하는 문구가 떠오르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죠.

2017년 출시된 '파인딩 파라다이스'는 그 끝에 떠오른 문구이자, 투 더 문에 이어 임종을 맞이하는 또다른 누군가의 이야기입니다. 2014년 짤막하게 소개된 '버드 스토리' 이후, 당시 소년이었던 콜린 리즈는 어느 덧 노인이 되어 이제는 지병 때문에 곧 임종을 맞이할 처지가 되었죠. 일생 동안 가족에게 헌신적이었던 그는 임종 직전, 아내의 반대와 본인의 망설임을 떨쳐내고 지그문트 사에 의뢰를 하게 됩니다.

▲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콜린은 지그문트 사에 의뢰를 합니다

이번에도 의뢰인을 찾아가는 로잘린 박사와 와츠 박사, 그런데 이번 의뢰인은 저번보다 더 힘듭니다. 그가 왜 지그문트 사에 의뢰했는지, 그가 가고 싶은 곳이 어딘지 도통 입을 열지 않기 때문이죠. 그저 "충실한 삶을 살았다고 느끼게 해주세요"라고 하는데, 그는 이미 조종사이자 첼리스트 그리고 한 가족의 가장으로 충실히 살아온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야기는 더욱더 미궁으로 빠집니다.

가족들에게 물어보지만 역시나 가족들도 짐작이 가는 것이 없다고 말하는 상황. 오히려 가족들은 오손도손 부족한 것 없이 잘 살아왔는데 왜 갑자기 이런 결심을 했나 모르겠다고 되묻고 있죠. 결국 로잘린 박사와 와츠 박사는 콜린의 기억 속에서 이 단서를 찾아내기로 하고 아무 사전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그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여정을 떠납니다.

그가 피아니스트인 아내를 만나 아들을 낳고 행복하게 살아온 나날 한 켠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그리고 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지난 세월을 보내왔던 것일까요? 유저는 이번에도 좌충우돌하는 로잘린 박사와 와츠 박사의 시점에서 차근차근 이야기를 되짚어가게 됩니다.

▲ 조종사였던 콜린이 어떤 의미에서 '충실한 삶을 살았다'고 느끼게 해달라고 한 걸까요?

와츠 박사의 다소 김빠지지만 헛웃음으로 주위를 환기시키는 유머에 이를 날카롭게 받아치는 로잘린 박사의 대꾸는 이번에도 종종 양념처럼 들어가고, 마치 심리학에서 나오는 은유처럼 묘한 사물들이 나오면서 이번 이야기는 조금 더 환상에 가깝게 흘러가죠. 콜린의 모호한 희망사항처럼, 이야기는 시점이 일정하지 않고 왔다갔다하면서 진행됩니다.

아울러 이야기에만 치중한 나머지 게임으로서 조작감 요소가 적다는 비판을 수용, 커스터마이징이나 캐릭터 스위칭, 퍼즐을 가미해서 전작과 다르게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한 것이 특징이죠. 한국어 현지화도 이전보다 더 개선됐습니다. 특히 와츠 박사가 중간중간 환기용으로 내던지는 각종 드립 같은 부분도 더 와닿게 번역해서 이야기 흐름의 완급을 더 영문판에 맞춰 느낄 수 있게끔 했습니다.

여기에 전작에서 호평받은 섬세한 광원과 배경, 그리고 BGM은 건재한 만큼 '파인딩 파라다이스' 또한 전작 '투 더 문'에 이어 평론가 및 유저들에게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투 더 문과 다르다보니 조금씩 이견이 있긴 했지만, 전작과는 다른 방식이더라도 시리즈의 핵심 가치를 잃지 않고 변주해나갔다는 점을 인정받았죠.



■ 2021년, 이야기는 다시 이어질까


▲ 시리즈 세 번째 이야기, '임포스터 팩토리'의 공식 트레일러

그 뒤로 시간이 지나 XD의 지원을 받아 투 더 문의 모바일 버전과 닌텐도 스위치 버전이 출시되는 사이, 프리버드 게임즈에서는 새로운 소식들을 발표합니다. 파인딩 파라다이스의 닌텐도 스위치 버전과 또다른 신작, '임포스터 팩토리'가 그 주인공이었죠.

2019년 공개된 트레일러 소개문에 '프리버드 게임즈의 다음 작품은 핏빛 살인으로 가득할 것이다'라고 써있어 팬들 사이에서는 추측이 난무한 상황. 그 해에 추가로 공개된 트레일러는 한여름 밤의 꿈마냥 개그성 희극으로 끝나버렸고, 2020년에 달에서 바라본 지구, 결혼식 등 배경으로 보이는 장소를 몇 곳 추려낸 공식 트레일러가 나오면서 조금씩 추론이 가능해지고 있죠.

'파인딩 파라다이스' 닌텐도 스위치 버전과 신작 '임포스터 팩토리' 모두 2021년 출시를 예고한 데다가 올해 11월이면 '투 더 문' 출시 10주년을 맞게 되죠. 개발자가 직접 2020년 특별 영상을 통해서 이를 예고한 만큼, 지그문트 연구소 그리고 의뢰인들의 이야기를 줄곧 지켜봐온 유저라면 올해 프리버드 게임즈의 행보를 주목해볼 법합니다.

▲ 아울러 2021년에는 파인딩 파라다이스의 닌텐도 스위치 버전도 출시될 예정입니다

만일 투 더 문과 파인딩 파라다이스를 여기서 처음 들었다고 한다면, 취향에 따라 갈리겠지만 한 번쯤은 봐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사람마다 게임에서 스토리가 차지하는 비중에 대한 견해 차가 크긴 하지만, 이 시리즈가 가슴 한 켠을 울리는 양식 같은 그런 시리즈임은 분명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