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0일 대법원은 MMORPG ‘리니지’의 게임머니의 현금거래로 기소된 김씨와 이씨를 무죄 선고했고, 이 일은 적잖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김씨와 이씨는 2007년 온라인 게임 중개사이트에서 리니지 게임머니인 '아덴' 2억 3천 400만원 어치를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사들인 후 2천여명에게 되팔아 약 2천만을 벌어들인 혐의로 기소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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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나 해킹 등 불법적인 방법을 이용해 만들어진 물량이 아니라면 현금거래 자체는 불법이 아니라는 판결이다. 이 사건 이후 게임머니 현금거래 중개사이트인 ‘아이템베이’와 ‘아이템매니아’는 대법원의 판결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들은 최근 몇 년간 게임 머니 중개사이트를 운영하면서 게임 서비스까지 그 영역을 넓혀왔다. 아이템매니아는 몇 해 전부터 샴페인 매니아, 레드 매니아 등 여러 게임의 채널링, 리퍼블리싱 사업을 벌여왔고, 최근 아이템베이도 ‘무림외전’의 채널링 서비스를 시작한 바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은 아이템 중개업을 자사의 가장 큰 비즈니스 모델로 선택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 서비스하는 게임의 약관에는 현금거래를 금지하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 애초에 이들이 게임 서비스와 중개업을 연동하는 형태의 수익모델을 선택하지 않은 것은 법적인 영향력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현금 거래에 대한 국내 정서 때문이라 보는 것이 옳다.


그러나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게임머니 현금 거래는 옳지 않은 일’이라는 기존까지의 사회적 통념을 뒤흔든 사건이었기에 앞으로 이들이 어떤 노선을 선택할지에 대한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 ▲ 현금거래 중개사이트가 서비스하는 게임들이 어떻게 변하게 될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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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게임을 개발하고 서비스하는 게임사가 자사의 게임과 연동해 직접 아이템 현금거래 중개를 시작한다면 어떤 상황이 발생할까? 아직 한국에서는 이런 사례가 없지만, 해외에서는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고, 현재도 여전히 게임서비스와 현금거래 중개서비스를 병행하고 있다. 중소규모의 이름 없는 게임사도 아니며, 게임도 누구나 들어봤을 만한 세계적인 대작이다. 바로 소니 온라인엔터테인먼트의 ‘에버퀘스트2’와 넥슨의 ‘메이플스토리’이다.



세계적인 비난? 새로운 수익모델? 에버퀘스트2, 2005년 현금거래 자체 서비스 시작


에버퀘스트, 스타워즈 갤럭시즈, 파이널판타지 등 쟁쟁한 게임들을 서비스하고 있는 ‘소니 온라인 엔터테인먼트(이하 SOE)’는, 2005년 아이템 현금거래를 금지하거나 방관하던 입장에서 180도 선회하여 에버퀘스트2의 아이템 현금거래를 지원하는 플랫폼을 갖추고 이에 동의한 게이머들을 상대로 아이템 현금거래가 가능한 서버의 오픈 계획을 발표한다.




[ ▲ WOW 이전 전세계적으로 가장 큰 기대작이었던 에버퀘스트2의 갑작스런 현금거래 중개서비스 발표 ]



SOE는 이 같은 입장 변경 이유에 대해 '에버퀘스트를 서비스하면서 음성적으로 발생한 아이템이나 계정의 현금거래 과정에서 많은 피해자들이 발생했지만 구제할 방법이 없었으며 더 이상 제 3자를 통한 무허가 거래들로 인해 피해자가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안전한 거래시스템을 제공하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SOE는 2005년 6월 에버퀘스트2의 유저들이 게임 속 아이템들을 경매에 부쳐 실제의 돈으로 팔수 있도록 해주는 스테이션 익스체인지 사이트를 개설하고 현금거래 중개서비스를 시작한다.




[ ▲ 현금거래 중개서비스를 하고 있는 스테이션 익스체인지 사이트 ]



거래 방식은 간단하다. 스테이션 익스체인지 서비스를 이용해 게이머들간에 현금으로 ‘게임 내 화폐인 플래티넘’를 구입하거나 판매할 수 있도록 한 것. 그리고 캐릭터나 아이템 자체도 현금으로 거래가 이루어지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SOE는 중개 수수료를 얻게 된다. 한국의 중개사이트들과 다를 것 하나 없지만 이 모든 과정이 게임 서비스와 직접 연동이 된다는 점만 차이가 있다.


에버퀘스트2의 모든 서버에서 현금거래 중개서비스가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거래가 가능한 서버는 당시 새롭게 오픈한 Vox, The Bazaar서버만으로 제한되었으며 이 서버에서 플레이 하는 것은 유저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기존 서버에서 현금거래가 가능한 서버로의 계정 이전은 가능했고 현금거래 가능 서버에서 불가능 서버로의 이전은 금지되었다.


SOE는 서비스를 시작하며 현금거래를 자체적으로 지원하고 있지만 직접 아이템이나 게임머니, 계정을 판매하는 행위는 하지 않겠으며, 현금거래 가격은 유저들의 시장논리에 의해서만 결정될 것이며 SOE가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 공표했다. 또한 이렇게 정해진 서버를 제외한 다른 서버에서의 현금거래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엄격하게 금지한다고 밝혔다.



[ ▲ 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현금거래 중개서비스가 진행중인 서버는 단 두개 뿐이다. ]



국내외 많은 게임개발사들은 아이템 현금거래가 재미를 추구하는 게임의 본질을 훼손할 뿐 아니라 게임내 밸런싱 훼손 등의 문제를 유발한다며 약관을 통해 철저하게 부정해왔다. SOE가 직접 현금거래 중개서비스를 시작한다는 것을 공표하자 전세계 게임업계는 매우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다크에이지오브 카멜롯’ 개발사인 미씩엔터테인먼트 마크 자콥스 대표는 “MMORPG 역사상 최악의 결정”이라고 맹비난했고, 한국의 엔씨소프트, 웹젠 등 국내 게임사들도 ‘현금거래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기존 방침을 고수했다.


지금은 에버퀘스트2의 한국서비스가 종료되었지만, 당시 에버퀘스트2의 국내 퍼블리싱을 담당했던 감마니아코리아측은 ‘SOE의 정책과 관계없이 한국 서비스에서는 현금거래 중개서비스를 이행할 계획이 없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 게임업계 전문가들은 SOE의 현금거래 지원 정책의 변화가 SOE가 밝힌 대로 단지 ‘공인되지 않은 거래를 통해 피해를 보는 유저들의 보호’ 차원일수도 있지만, SOE의 매출 감소를 만회하기 위한 새로운 수익모델로 선택했을 가능성도 높다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SOE는 현금거래 중개서비스를 시작하며 이를 통해 얼마나 수익을 올렸을까? 그리고 어떤 효과들을 보았을까? 에버퀘스트2의 공식 현금 거래 사이트 스테이션 익스체인지를 런칭한 후 1년간의 상황을 담은 보고서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1년간 등록된 총금액은 187만 달러, 실 수익은 약 27만 달러(약 2.5억원)


판매자들은 스테이션 익스체인지 경매에 아이템과 화폐를 등록할 때마다 1달러, 캐릭터를 등록할 때마다 10달러를 지불한다. SOE는 또한 경매의 최종 가격의 10%를 서비스 요금으로 수집했다. 또한 캐릭터의 이름을 다시 지을 때도 요금을 낸다.


2005년 6월부터 2006년 6월 사이에 등록된 총 금액은 약 187만 달러였고, 하루 평균 2,588달러였다. 이는 서비스 시작전 SOE가 예상한 하루 평균 100달러 안팎의 금액을 한참 초과하는 액수였다. 첫 해의 수익은 총 274,083달러(한화 약 2.5억원)로 집계되었고, 주요 수입원인 수수료는 187,353달러로 나타났다.


실제 수입이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중개서비스가 이뤄진 서버가 두 개 뿐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다.


이 보고서에서는 2006년 6월 기준으로 두 서버에는 40,663명의 유저들이 있었고, 이중 약 25%인 9,042명이 서비스를 이용했다고 밝히고 있다. 1년간 총 51,680건의 경매가 열렸으며, 그 중 약 4만건이 완료되었다. 캐릭터의 판매는 5,577건, 아이템은 7,094건, 게임 머니는 2만 7천여건으로 집계되었다.




[ ▲ EQ2 중개서비스 1년, 캐릭터, 아이템, 게임머니의 거래량 및 거래 금액 ]



가장 많은 거래건수를 기록한 게임머니의 거래를 보면1년간 게임머니 10플래티넘은 평균 7.35달러에 거래되었다고 보고되고 있다. 2010년 현재 The Bazaar 서버의 경우 10플래티넘의 평균 거래금액은 3.75 달러로 감소했다. 이는 지난 5년간 에버퀘스트2의 실유저수의 감소 및 거래량 감소에 따른 영향으로 판단된다.


이 보고서에서 연령대별 거래량, 지역당 거래량, 어떤 캐릭터들이 잘 팔리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등 보다 자세한 내용들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 보고서는 중개서비스를 통해 얼마나 수익을 냈느냐는 부분이 아니라 집계된 자료를 통해 왜 이들이 현금거래를 하는지, MMO 게임에 가상 상품 경매가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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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버퀘스트2 현금거래 공식화 1년의 보고서 - 게임 기획 모임 김가린 번역』 바로가기 [클릭!!]



넥슨, 일본에서 '메이플 스토리' 현금거래 중개 시스템 도입


게임사가 직접 현금거래 중개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에버퀘스트2의 SOE가 최초였지만, 이후 유사한 중개서비스가 다른 게임에서도 등장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너무나 유명한 '메이플스토리'도 일본에서 중개서비스를 도입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넥슨은 일본 법인인 넥슨재팬을 통해 2006년 8월부터 '메이플 스토리' 게임 내에서 무기, 아이템 등의 유저간 거래를 중개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중개서비스의 도입 이유는 SOE와 동일하다. 현금거래시 사기 사건이 많아 대부분의 구매자들은 작업장을 통해 현금거래를 하게 되는데 이에 대해 운영상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운영상의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머니 트레이드 시스템을 구축하고 중개서비스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매매 형태는 메이플 스토리 유저가 자신이 가진 무기와 아이템을 팔고자 할 경우 게임 내 전용 사이트에 아이템과 가격을 등록하면 다른 유저가 버튼을 눌러 해당 아이템을 구매하는 방식이다. 판매자가 물품을 등록할 시에는 기본 5000메소(메이플 스토리 내 게임머니)를 지불해야 하며, 구매자가 물품을 구매할 시에는 구매금액 이외에 판매가의 10%에 해당하는 넥슨 포인트(한국의 넥슨 캐쉬 포인트)가 수수료로 징수된다.




[ ▲ 넥슨재팬의 메이플스토리 아이템 거래 화면 ]




향후 한국 게임사의 현금거래 중개서비스의 행보는..


사실상 게임사가 직접 현금거래에 관여한 게임은 에버퀘스트2가 최초가 아니다. 애초에 현금거래를 염두해두고 설계된 소셜 네트워크 게임인 세컨드 라이프나, 엔트로피아 유니버스 등이 이미 운영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대한 MMORPG의 현금 거래에 게임사가 직접 관여하는 최초의 시도였기 때문에 서비스 전환 당시 엄청난 주목을 받았던 사건이었다.


국내에서는 아이템 거래에 대한 역기능, 국내 정서를 이유로 현금거래를 반대하고 있지만, 해외 서비스에서는 현금거래 중개서비스를 이미 시작했거나 준비하고 있는 국내 게임사들도 여럿 있다. 위에서 이야기한 SOE, 넥슨재팬 뿐 아니라 NHN도 2009년 북미 법인인 NHN USA가 현지에서 운영하는 게임포털 이지닷컴에 현금거래 중개서비스를 도입하기로 결정하고 관련 솔루션 사업자 라이브 게이머와 제휴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북미나 일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에서도 게임사를 통한 현금거래 중개가 가능할까? 인벤에서도 2006년 12월경, 북미처럼 게임사가 자사 게임에 대해 현금거래 중개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하나의 방안이 될 수도 있다는 기사를 올린 적이 있다. 현행법률을 살펴보았을 때 법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가까운 시일내에 이루어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


☞『 [칼럼] 현금 거래에 대한 사회적 타협 (2006. 12. 22)


한국에서 현금거래가 약관상 금지되고 (약관상 현금거래를 용인하는 게임은 아직 없다!) 또 애초에 게임사가 그런 시도를 하지 못했던 것은, 게임사의 독자적인 판단 때문이라기보다는 현금거래에 대해 상당한 거부 정서와 함께 게임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이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기 때문이다.


현금거래가 자주 일어나는 게임들, 특히 대형 게임사나 게임포탈들에서 현금거래를 공인하거나 직접 중개하는 일이 벌어질 경우, 해당 회사에 대한 온갖 비난의 화살이 쏟아질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모난돌이 정맞는다고 먼저 나서는 곳이 비난을 다 뒤집어쓸수도 있기에 서로 눈치만 볼 수도 있다.


나아가 단순히 비난에 그치지 않고 정부나 관련 기관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말라는 직간접적인 요청이 들어올 가능성도 높다. 비난을 받을지라도 온전히 해당 게임사의 선택만으로 결론이 날 수 있는 해외의 상황과는 또 다른 것이 한국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무시하기에는 현재 상황이 그리 녹녹치 않다. 게임사에서 수십~수백억원을 들여 게임을 만들어 놓으면 정작 이 게임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업체는 중개사이트이다. 신작 게임이 출시되면 중개사이트들은 숟가락만 얹어 월 수억원 단위의 현거래 수익을 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의 현금거래량 규모는 연간 1조 5천억원 정도로 추산되고 있는데, 이런 거대한 시장을 장악한 것은 게임 개발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중개사이트들이었다. 이제는 역으로 중개사이트들이 그동안 벌어들인 돈으로 게임을 서비스하는 상황에 이르기도 했다.


게임사 입장에선 입맛이 쓸 수 밖에 없다. 자기들의 게임으로 돈을 벌고 있는 중개사이트가 이뻐보일리 만무하다. 그렇다고 직접 중개업을 시작하기에는 사회적인 질타가 두렵다. 수익을 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캐시아이템에 목을 매야 하는 상황이다.


이미 현금거래 시장은 쉬쉬하기엔 너무나 당연하고 큰 시장으로 변해버렸고, 현금거래로 중개사이트들이 배부를때 게임사는 캐시아이템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제살 깎아먹는 밸런스 줄타기를 하고 있다. 게임사가 직접 현금거래 중개서비스를 하는 것이 옳은가, 그른가? 대법원의 현금거래 무죄 판결, 이제는 현금거래 중개서비스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민하고 토론해야 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