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어쩔 꺼야, "반"? 악몽을 두를래, 말래?”





“──그래 좋아, 악몽 같은 건 십 몇 년 전부터 꾸고 있으니까......”











“샤드 해방── 악몽을 둘러라테이크 더 그렌델!”


좋습니다. 지금 당신은 '악몽'을 두르는 선택을 했습니다.
그리고 향후, 이 이야기는 궤적 시리즈 후반을 좌우하는 중요한 이야기가 되겠죠.

'영웅전설 여의 궤적'. JRPG를 제작한 회사 중에서도 상당히 오랫동안 살아남은 게임 개발사, 니혼 팔콤에서 개발한 작품입니다. 또한, 시리즈 역사 20년을 맞이하고 있는 『궤적 시리즈』의 정통 후속작이기도 하죠. 사실 게임계에서 시리즈의 이야기가 연이어지듯 이어지면서 연속적으로 출시되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궤적 시리즈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이를 태연히 해낸 작품이죠.

지금까지의 궤적 시리즈의 큰 장점을 일컫는다면 총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방대한 세계관과 이를 엮어내는 듯한 시나리오'입니다. 장기 시리즈로 이어져 오면서 NPC 하나하나 허투루 다루지 않고, 숨겨진 부분까지 설정을 부여해 자유도가 제한되었음에도 극도로 연결된 상호작용을 만들어냈죠. 그리고 설정 오류가 극히 일어나지 않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여의 궤적에서도 이와 같은 장점은 빛을 발하고 있을 정도죠.

두 번째는 '일본의 유명 성우가 대거 출동한 호화 성우진'이라는 점이죠. 물론, 유명 성우를 많이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나 유명 IP의 게임을 했다면 별로 와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블루 아카이브처럼 유명 성우를 많이 기용하지 못한 예도 있습니다. 궤적 시리즈는 60명 남짓한 중소기업에서 제작한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성우진 기용을 자랑합니다. 과거에는 '아오니 프로덕션'과 협력했다고 하더군요.

세 번째는 '게임 고유의 재미'와 '이를 받쳐주는 음악'입니다. 알맞은 속도감이 부여된 턴제와 밸런스가 가끔 맞춰지지 않은 문제점도 있지만, 팔콤의 노하우로 설계된 밸런스로 적당한 난이도를 제공하는 전투 시스템, 그리고 각종 편의 기능을 제공하는 부분 또한 매력적입니다. 무엇보다 세계관과 전투를 받쳐주는 음악은 가히 정평이 나 있을 정도입니다. 오죽하면 팔콤을 '음반회사'라고 불렀을 정도니깐요.

▲ 뛰어난 재미와 방대한 세계관, 유명 성우진이 모여있는 궤적

▲ 훌륭한 OST가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죠
(출처: 유튜브 'Falcom Music Channel' 채널)

제가 이번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과거 시리즈인 『섬의 궤적 시리즈』가 이와 같은 훌륭한 장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섬의 궤적 시리즈는 전개를 비롯해 지루하다시피 한 요소로 점칠 된 피날레, '섬의 궤적 4'로 마무리했는데요. 나름대로 끝을 맺은 엔딩과 전작 주인공의 총집결적인 요소는 큰 장점으로 작용했지만, 억지 요소나 무리한 불살, 그리고 지루한 전개가 그 원인이었죠.

여의 궤적은 이를 무마했을 뿐만 아니라, 후반부로 이어지는 궤적 시리즈에 대한 흥미까지 끌어냈습니다. 사실상 전작 등장인물들이 많이 얽혀있는 편도 아닌 새롭게 이어지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특히, 전작에 있었던 오점들을 깨끗이 씻어낸 것이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전개는 좀 더 흥미로워졌고, 악역은 매력적인 모습을 담았으며, 무리한 불살은 이제 찾아볼 수도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선택지를 늘려놓아 여러 흥미 요소를 자극하고, 전투 시스템을 새롭게 갈아엎어 향후 궤적 시리즈의 새로운 출발점을 다져놓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저에게 있어 팔콤은 알던 맛 그대로 내놓던 동네 맛집이었는데, 갑자기 주방장이 바뀌어서 알던 맛에 감칠맛을 더한 업그레이드 요리를 내놓은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축약해서 말씀드리자면 "한 방 먹었네요."

팔콤 콘도 토시히로 대표의 언급에 의하면 "여의 궤적은 후반부 돌입과 함께 여명의 여(黎)자로부터 수수께끼가 풀려나간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궤적 시리즈의 첫 시작을 맡은 '하늘(空)의 궤적'과 대비되면서도 그만큼의 중요성을 담은 듯해 보입니다. 그러니 여명의 대지, 칼바드 공화국에서 펼쳐지는 뒷세계 해결사스프리건, 반 아크라이드의 모험은 여기서부터 시작입니다.

게임명: 영웅전설 여의 궤적
장르명: RPG
출시일 : 2022. 2. 10
개발사 : 니혼 팔콤
서비스 : 클라우디드 레오파드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 PS4

● 관련 링크: '영웅전설 여의 궤적' 오픈크리틱 페이지

Law - 전투, 그래픽 등, 모든 면에서 가장 크게 진화한 ‘궤적 시리즈’



사실 섬의 궤적 3에서 이미 시스템적인 완성도는 뛰어나다고 생각했습니다. 턴제 전투는 심리스화로 로딩 없이 진입할 수 있고, 브레이브 포인트와 오더 시스템, 전술 링크 등 다양한 요소가 큰 재미를 주었거든요. 그래서 이 이상의 발전은 없을 줄 알았습니다. 근데 웬걸, 팔콤은 이를 개선해서 가져가려는 것이 아닌, 한 번 분해하고 다시 재구축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우선 크게 필드에서 싸울 수 있는 선택을 두 가지로 나눴습니다. '액션'과 '턴제'입니다. 다만, 액션 쪽은 이스 시리즈만큼의 재미를 맛보기는 힘듭니다. 정확하게는 턴제를 위한 보조역할에 가깝거든요. 중요한 전투는 전부 턴제로 이루어지고, 웬만한 기술 사용 또한, 턴제에서 사용할 수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O버튼을 써서 공격, X버튼을 써서 회피, R2를 이용해 차지 어택을 사용할 수 있는 굉장히 심플하고도 간단한 구조입니다.

그리고 액션에서 차지 어택, 또는 공격을 이용해 적을 스턴(기절)시키면 바로 □버튼을 눌러 '샤드'를 전개해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턴제 배틀을 더욱 여유히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전 궤적 시리즈에 있었던 100% 확률로 도망칠 수 있게 해주는 아이템, '연기 구슬'이 사라진 대신, 이제 O버튼을 길게 누르는 것으로 언제든 샤드 전개를 풀고 액션으로 전환도 가능한─ 양측을 자유자재로 이동 가능한 심리스가 구축되어 있습니다.

샤드에서 쓸 수 있는 턴제 커맨드는 공격, 방어, '크래프트', '아츠', 도구 등이 있습니다. 이는 기존의 턴제와 다를 바가 없지만, 대신 확률적으로 등장하는 샤드 스킬, 전술 링크의 강화판인 S.C.L.M. 시스템, CP를 100까지 채우면 됐던 전작과 다르게, '샤드 부스트'를 2번 올려야 쓸 수 있게 된 S-크래프트 등, 시스템의 변화로 인해 더욱더 다채로운 게임이 되었습니다. 또한, 무조건적인 S-크래프트 남발이 조금 힘들어졌습니다. 물론, 아예 남발을 못 하게 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참고로 잡몹은 액션 파트에서 열심히 공격해 CP를 잔뜩 채워놓고, 그 상태에서 거대한 잡몹 혹은 보스와 상대하면 훨씬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샤드 부스트를 처음부터 전개해서 S-크래프트를 남발해 최대한 부스트 게이지를 확장하고, 게이지가 잔뜩 채워지면 S-크래프트를 잔뜩 사용해 적을 몰아붙이는 방법이죠. 물론 난이도 노말 정도에서나 통하는 편법으로, 그 이상의 난이도면 최대한 두뇌를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 중요한 시스템은 턴제지만, 잡몹은 액션만으로도 충분합니다

▲ 정체 모를 할아버지, 베르가르드 선생님은 셉니다

▲ 감동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서브 퀘스트들과

▲ '다스와니 경감'과의 커넥트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픽과 연출도 한층 강화되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여전히 전작에서 활용되는 에셋이 많았다는 점입니다. 인물 그래픽도 개선되었지만, 뼈대가 되는 모델링은 전작을 그대로 활용하는 부분이 많았고 주변 환경 그래픽도 변화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섞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전작보다 좀 더 깔끔해 보이고 한층 다채로워졌습니다. 이제야 엘리 맥도웰이 말했던 "절경이네."를 써도 될 정도가 되었습니다.

콘도 대표가 이야기했던 대로 '반사 효과'가 그나마 보기 좋은 형태로 적용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광원도 개선되었고, 흐르는 물에 대한 표현이 좋아졌습니다. 색감도 좋아진 것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쉐이더를 개선한 모양입니다. 연출 또한 모션 캡처를 활용한 부분은 좀 더 다채로운 움직임을 보여줬지만, 아쉽게도 모션 자체를 구작에서 가져와 쓰는 것은 여전했습니다. 조금 더 자연스러워진 건 맞지만, 아직 어색한 부분이 많네요.

아 참, 그리고 전작에서 혹평을 받은 '인연 이벤트'가 '커넥트'로 새롭게 변화되었습니다. 꽤 긍정적인 변화를 맞이했는데요. 캐릭터의 배경을 더 깊게 파고드는 점은 변함없지만, 더 주인공의 연애 관계와 관련이 없어졌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서 전작의 '로이드 배닝스'나 '린 슈바르처'는 인연 이벤트를 통해 사귀고 싶은 히로인을 고를 수 있었지만, 이 때문에 실제로 캐릭터와 엮이게 되는 히로인이 누군지 짐작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였습니다. 이를 커넥트에서 개선해 연애 관련 문제를 완전히 배제한 것입니다. 덕분에 반은 두 주인공처럼 연애 트러블에 휩싸일 걱정은 덜게 되었습니다.

근데 아쉬운 점이 꽤 많습니다. 편의 기능 몇 가지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시작의 궤적에서 편의 기능과 관련된 기능을 전부 다 때려 박았던 것을 고려하면 본작에서 유일하게 퇴보된 부분이기도 합니다. 물론 대사 오토 기능이나 컷신 스킵 기능 등 기본적으로 있어야 할 부분은 있지만, S-크래프트가 아닌 일반 아츠, 크래프트, 공격과 관련된 부분을 스킵하지 못하거나 컷신 빨리감기 기능 등이 부재해 있었습니다. 이제 여의 궤적 2의 개발에 돌입한 지금, 부재한 편의 기능의 추가는 차기작에서나 기대해야 할 부분이겠네요.

▲ 연출 면으로서도 더욱 발전된 여의 궤적

▲ 그래픽 측면에서도 상당한 발전을 이륙했습니다

▲ 피 클라우젤로 본 궤적 시리즈 모델링 발전도

▲ 진동이 쉴새없이 울리는 그렌델 전!



Gray중립 - ‘제네시스’에 얽힌 사건들을 해결해가며, 반은— 악몽을 두른다.



과거 작에서 수도 없이 언급되었으며, '에레보니아 제국'과 버금갈 정도의 땅을 보유하고 있는 다민족 국가, 칼바드 공화국. 그 안에서 사는 '아라미스 고등학교'의 여학생, '아니에스 클로델'은 아는 인물의 소개와 도력넷을 이용한 검색을 통해 '아크라이드 해결사 사무소'의 정체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곳으로 가기로 하게 됩니다.

칼바드 공화국 구시가지에 있는 아크라이드 해결사 사무소. 그녀는 심호흡하고 노크를 했고, 곧이어 졸린 듯한 사내가 문을 열었습니다. 그것이 뒷세계 해결사, 반 아크라이드와 증조부의 유산 《제네시스》를 찾으려 하는 아니에스 클로델의 만남입니다. 처음에는 돌려보낼 목적으로 이야기를 하지만 아니에스가 준비한 다과에 그만 정신을 못 차린 반은 의뢰를 마지못해 수락하게 됩니다.

그리고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정보상, '자코모'를 만나게 된 그들은 그와의 이야기 끝에 자코모가 제네시스에 대한 정보를 숨기고 있다는 정황상 증거를 잡고 맙니다. 반은 평소 뒷세계를 오가던 인물이기에 자코모가 자주 이용하는 은신처를 알고 있었고, 그렇게 리버사이드역 지하철 정비로로 이동하게 됩니다. 하지만 지하철 정비로에는 마수가 득실거리고 있죠. 반과 아니에스는 마수를 해치우면서 자코모의 뒤를 쫓게 됩니다. 하지만 자코모는 수상한 2인조를 만나게 되는데......

▲ 그저 단것을 좋아할 뿐인 뒷세계 해결사, 반

▲ 근데 왠 불청객이 들어오더니

▲ 차례차례 이상한 사람들이 합류하기 시작하고

▲ 반은 그만 정신을 놓고 마는 것이 이 게임의 본 줄거리 (아닙니다)

이미 본작의 1장 마지막까지 체험하고 오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위의 내용이 본격적인 프롤로그입니다. 프롤로그 이후에는 큰 흐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작은 이야기가 여러 가지 전개됩니다. 예를 들어서 큰 흐름은 여주인공, 아니에스 클로델이 들고 있는 《옥트 제네시스》. 즉, 8개의 제네시스를 모아야 한다는 이야기와 이를 통해 대립하게 되는 악역 조직, 『아르마타』와의 대립입니다. 특히 아르마타와 제네시스는 높은 확률로 이야기에 얽혀있죠.

작은 흐름은 반의 동료가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칼바드 공화국 그 자체에 대한 소개로 이루어집니다. 콘도 대표가 심도 있게 기울인 칼바드 공화국의 이야기는 그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만들죠. 그러면서도 반의 동료가 될 캐릭터들도 자연스럽게 소개합니다. 3장까지 대충 설명해 드리자면, 페리드 알파이드 / 애런 웨이 / 리제트 트와이닝이 반의 동료로 잠깐 합류하면서 자신의 배경과 지역 소개를 해줍니다. 리제트의 경우에는 파견이니까... 이에 해당하지 않지만요.

그리고 뒷세계 해결사로서의 반은 이미 경험이 많은 숙련된 능력자입니다. 그래서인지 첫걸음부터 시작한 에스텔, 로이드, 린과는 다른 면모가 자주 보이죠. 능구렁이처럼 주변의 위기를 능숙하게 빠져나가기도 하고 주변에 아는 사람 천지여서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이런 경험차와 뒷세계에서 뿜어내는 위협과 압박감 덕분에 지금까지 해왔던 궤적의 느낌을 받으면서도 색다른 경험을 체험할 수 있죠.

전작에서 겪은 세계구급 위기에 비하면 살짝 단순해졌을 수도 있지만, 아르마타의 위협은 결사보다 훨씬 잔인하고, 무자비해 보입니다. 전작에서 악명을 떨친 D∴G 교단과 흡사한 느낌을 자아낼 정도죠. 그 때문인지 훨씬 전작보다 몰입하기 쉬우면서도 간결한 느낌을 줍니다. 확실한 악당 한 무리가 거리의 위협을 안겨주는 것이니깐요. 특히 '멜키오르'와 그를 연기한 '아오이 쇼타'의 연기력 때문에 한층 더 즐거운 이야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반은 이런 무자비한 악인들과 회피가 불가피한 상황에 맞닥뜨리면서 위기를 맞이하기도 하는데요. 그럴 때마다 제네시스가 동조해, A.I. '메어'가 입체화해 반의 앞에 나타납니다. 그녀가 말하는 말은 항상 일정합니다. "악몽을 두를 것인지. 말 것인지." 이에 반은 악몽을 두르고 그렇게 '마장귀그렌델'로 변신하게 됩니다. 악몽을 둘러싼 반의 앞날이 과연 칠흑 같을지, 아니면 여명처럼 밝아올지는 다음 이야기에 달려있겠네요.

▲ 게다가 변태 괴도 고양이랑 맞붙기도 하고

▲ 이상한 사람들은 더더욱 늘어나지

▲ 왠 변태(?)까지 따라붙으니 반의 고생길은 지금부터겠네요

▲ "내... 내 최고의 시간이......"



Chaos혼돈 - 모든 걸 내려놓았기에 탄생한 팔콤의 ‘이단아’



지금까지 콘도 대표의 발언대로 팔콤은 궤적 시리즈에 큰 변화를 주었습니다. 비공정을 타면서 판타지에 충실한 세계관을 어김없이 보여준 하늘의 궤적에서 갑작스럽게 비틀어 근현대까지 올라와 자동차, 컴퓨터까지 등장한 세계관을 제로/벽의 궤적에서 보여주었죠. 물론, 스토리 내에서도 ‘크로스벨’이라는 작은 도시였기에 가능했다고 언급하긴 합니다.

이런 배경과 다르게 제로/벽의 궤적은 터닝 포인트라는 느낌을 주었을 뿐, 기본적인 시스템은 하늘의 궤적과 흡사했다면 섬의 궤적은 꽤 많은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기술의 발전 자체는 제로/벽과 비슷했지만, 지금까지 시도해본 적이 없던 소극적이고 인간미를 갖춘 주인공을 내세우고 학원물을 시도했죠. 그리고 학교가 나오니까 주변 주연들도 무려 9명까지 늘리는 파격적인 시도까지 부여했습니다. 시스템적으로도 3편에 와서는 로딩 구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심리스화까지 했으니 말이죠.

하지만, 그 선택에 대한 말로는 지금까지 게임을 해왔던 궤적 시리즈의 팬층이라면 알고 있을 겁니다. 섬의 궤적 시리즈는 전체적인 평가가 크나큰 호불호가 갈리고 있죠. 물론 그중에서는 무리하게 끊어 먹은 엔딩이나 비중을 챙기지 못해 겉돌게 되어버린 등장인물들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진중한, 그 누구도 안심할 수 없는 전쟁과도 같은 상황에서 주변 등장인물들과 엮인 불합리한 불살이 제일 큰 이유였습니다. 예를 하나 들면 죽어도 죽지 않는 ‘그 인물’을 생각하면 편할 것 같네요.

그렇기에 팬들은 궤적 시리즈의 변화를 그 누구보다 강력하게 원했습니다. 그리고 제작진도, 팬들도 점점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기에 팔콤 내부에서도 변화에 대한 생각이 강했을지도 모릅니다.

▲ 궤적의 문제아였던 섬의 궤적 시리즈.

▲ 그리고 섬궤와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여의 궤적

그렇게 탄생한 여의 궤적은… 현재의 팔콤을 부정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아니, 정수 그 자체로만 보면 확실히 팔콤 게임다운 색채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무언가가 뒤틀려져 있다고 해야 할까요? 제가 저번에 섬의 궤적을 팔콤의 문제아로 소개했다면 이번에는 이렇게 소개하고 싶습니다. 팔콤의 ‘이단아’라고요.

지금까지 동화적이면서도 왕도적인 전개를 자주 보여줬던 궤적 시리즈였기에 더욱 파격적인 변화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잘 와닿지 않는 팬들에게 가볍게 설명해주자면… 이렇게 설명하면 좋겠네요. ‘사람이 죽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것도 무자비하게.

지금까지 경찰이나 민간인을 돕는다는 유격사의 명분에서도 사람이 죽거나 하는 부분은 최소화해서 보여줬던 것이 팔콤이었습니다. 그런 팔콤이 거리낌 없이 등장인물들을 죽이는 모습이 꽤 과감하게 느껴질 정도였죠. 반면, 최근 유행하고 있는 권선징악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도입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표현이 전작보다 과격해진 측면도 있습니다. 전작에서는 위협을 가하면 ‘아, 그래. 그래도 죽지 않겠지. 뭐.’라는 가벼운 생각이 들었다면, 본작에서는 ‘어? 이 상황이면 정말 위험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등장인물들의 죽음 자체가 가볍게 다뤄지지 않으며, 위험한 줄타기를 여러 번 시도하는 주인공들을 보면 이전보다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집니다.

▲ 사람이 죽는다는 무게감

▲ 그리고 그런 무게를 떠맡기 위해 '어른'이 있다

시나리오의 개연성 또한, 제로/벽의 궤적 시절로 돌아온 듯한 느낌이 강했습니다. 정확하게는 구성 자체가 그때와 비슷해졌다고 해야 할까요. 크로스벨 경찰이란 입장에서 사건을 조사하고 그것을 풀어내는 과정이 있었는데, 아크라이드 해결사 사무소의 방식도 이와 흡사합니다. 다만, 입장이 조금 달라서 경찰이란 입장상 제한이 걸렸던 로이드 일행과 다르게 꼼수를 부리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선택지가 생겨 작은 서브 퀘스트들도 선택하는 즐거움이 생겼습니다. L.G.C. 얼라이먼트 시스템으로 선택지에 따라 로우(선함) / 카오스(악함) / 그레이(중립)의 그래프가 올라가며, 협력자 또한 달라진다는 시스템입니다. 실제 퀘스트를 클리어하면 반의 입장에서 고민하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하나를 예시로 들자면, 이런 선택지가 있습니다.


“체포하려는 적들이 마수에 둘러싸여 곤란에 처했군. 이를 어떻게 할까.”
1. ‘그래도 보고만 있을 순 없지. 마수 섬멸을 도와주고, 적은 적대로 잡자.’
2. ‘이럴 땐, 어부지리다. 적들이 마수와 싸워 힘이 빠졌을 때, 돌입하자.’

이럴 땐, 민간인을 돕는 유격사나 법에 얽혀있는 경찰이라면, 분명 1번을 우선시해 도와줬을 것입니다. 비록 뒷통수를 세게 맞더라도 말이죠. 하지만 아크라이드 해결사 사무소, 뒷세계까지 손을 내미는 중립적인 상황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위 예시는 실제로 앞으로 닥치게 될 선택지로 2번을 선택하면 카오스/그레이의 그래프가 올라가지만, 마수와 적들의 체력이 절반 깎인 상태에서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어갑니다. S-크래프트 게이지까지 차 있다면 그야말로 진수성찬인 셈이죠. 이렇듯 L.G.C. 얼라이먼트는 반의 도덕성을 계속해서 시험합니다. 그 도덕성을 어떻게 이끌어나갈지는... 플레이어의 선택에 달려있죠.

▲ 반의 도덕을 그려내는 'L.G.C. 얼라이먼트' 시스템

▲ 해당 시스템에 따라서 나중에 만나게 되는 '협력자'가 달라질수도...

심지어 전작에서는 챙기지 않았던 완결성마저 챙겼습니다. 물론 궤적 시리즈 전체의 수수께끼나 후속작을 위한 떡밥은 당연히 수거하지 않습니다만, 적어도 본편 내에서 매우 크게 벌려진 사건들은 전부 매듭짓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자연스럽게 사건 하나를 종결시키고 엔딩을 맞이한 ‘제로의 궤적’이 떠오를 정도입니다.

마지막으로 궤적 시리즈의 재미이자 진입장벽으로 여겨지던 과거작의 연결고리도 최소화되었습니다. 이번에는 큰 줄기의 사건, 그리고 그 이야기가 전부 새로운 전개로 흘러가기에 신규 유저 입장에서 ‘이게 무슨 소리지?’할 만한 부분은 크게 줄었습니다. 물론, 전작의 등장인물들이 출연하고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이런 부분까지 완전히 제거하면 팬들의 재미가 하나 없어지는 셈이니 이 정도는 괜찮을 듯합니다.

▲ 이런 과거 캐릭터 간의 캐미도 있지만

▲ 무엇보다 신규 캐릭터들의 매력이 더욱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영웅전설 여의 궤적’은 향후 팔콤을 이끌어나갈 궤적 시리즈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입니다. 그야말로 스토리 후반전에 걸맞은 작품이며, 첫 작품인 ‘하늘의 궤적’과 견줄 만큼, 그리고 그에 대비되는 색채까지 겸비한 훌륭한 게임입니다. 시작의 궤적이 신인 작가들이 작업했다는 언급이 있었던 만큼, 베테랑 작가가 집필한 본작을 오히려 달가워하지 않았던 팬들도 많았지만, 이제 그럴 필요 없습니다.

새로이 추가된 시스템이 많으면서도 근본적인 부분은 궤적 그 자체인 본작은 앞으로 팔콤이 어떻게 나아갈지를 보여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늘의 궤적에서 방향성을 보여준 결사의 움직임이 애매해진 지금, 필요한 악역인 아르마타를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여의 궤적이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해주었고, 반 아크라이드의 행적을 통해 칼바드 공화국을 보여주면서도 뒷세계 해결사는 유격사, 경찰과는 다르다는 점을 인식시켜줬습니다.

전작의 등장인물은 당연하듯이 등장하지만, 연결고리는 최소화되어 과거작을 전부 알아야 할 필요성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궤적 시리즈의 모든 것을 파악하려면 전작을 해야 하겠지만, 적어도 이제 입문작으로 여의 궤적은 상당히 준수한 선택이 될 수 있겠군요. 물론 지금 상황을 고려하면 제로의 궤적으로 입문하는 편이 좋겠지만, 고전적인 그래픽을 싫어할 수도 있을 테니 비교적 깔끔한 결말을 그려내는 여의 궤적도 좋은 선택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여의 궤적은 "왜 섬의 궤적은 이렇게 되었냐?"라고 묻는 팬들에 대한 팔콤의 대답입니다. 섬의 궤적에서 비판받았던 눈부셨던 밝은 행적들은 이제 어둡게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더 이상의 불필요한 불살을 행하지도 않고, 실망을 안겨준 시나리오는 다시 깔끔하게 다듬어졌습니다. 물론 대사의 느낌이나 대략적인 구조 등 뼈대 그 자체는 궤적이란 느낌을 받게 되지만, 적어도 베테랑 작가들이 전심전력을 다 했다는 것이 느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이번 변화는 굉장히 긍정적이지만, 궤적 시리즈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향후 어떤 전개를 펼쳐나갈지 더욱 기대되는 부분입니다. 특히, 일단락을 내린 반 일행의 새로운 여정이 어떻게 시작될지가 감이 잡히지 않는군요. 아 참,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아직 게임을 하지 않은 상황이군요. 그럼 아크라이드 해결사 사무소 일행이 칼바드 공화국을 떠돌며 얻어낸 값진 경험과 모험의 기억은 곧 이 작품을 플레이하실 '여러분'들을 위해 남겨두도록 하겠습니다.

▲ 각자에게 넘기 힘든 시련들이 찾아오지만

▲ 그것을 넘어서며 한 사람의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본작

▲ 여러 이해가 얽히고 설킨 칼바드 공화국에서

▲ 과연 반 일행은 내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그래서 어쩔 꺼야, "반"? 악몽을 두를래, 말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