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비레인은 스토리의 전개와 결말을 미리 알고 플레이하게 되면 재미가 급감하는 게임 중 하나입니다. 리뷰 기사를 작성하면서 글과 사진에 최대한 스포일러가 없도록 노력 했습니다만, 이 리뷰가 아직 헤비레인을 해보지 않은 분들의 흥미를 떨어뜨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에 이렇게 글의 서두에 미리 말씀드립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를 수 있는가


최근 PS3 독점작으로 출시하여 화제가 된 게임, 헤비레인(Heavy Rain). 사실 이것이 게임인지는 좀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만, 아무튼 플레이의 목표는 주어진 스토리 안에서 4명의 등장인물의 행동에 직접 관여함으로써 위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된다.


등장인물을 '조종한다'가 아니라 '행동에 직접 관여한다.'라는 식의 돌려차기 표현을 굳이 택한 이유는 '게임이냐, 아니냐'는 논제와도 연관이 깊은데, 여느 게임들처럼 게임패드를 잡는 것 자체는 동일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조종'이라고 부르기가 힘든 것이 화면에 특정 버튼을 알리는 표시가 나올 때마다 타이밍에 맞게 해당 버튼을 입력해야 하는 일명 '상황 액션'이 플레이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특정 키를 입력하면 캐릭터 주위에 몇 가지 주제가 떠오르고, 그 주제를 선택하면 해당 캐릭터는 자신의 생각을 마음 속으로 읽어낸다. 그로부터 정보를 얻어 주위의 어떤 사물이나 인물과 상호 작용을 하게 되는데 그 방법은 위에서 말한 상황 액션이 담당한다.


요점은 플레이 자체가 게임 제작자가 애초에 의도한대로 흘러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게임을 플레이 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냥 제 3자가 되어 지켜보다가 장면과 장면, 스토리와 스토리의 연결점에서 그냥 확인만 누르는 입장과 별 차이를 느끼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나마, 입력할 수 있는 확인버튼의 개수, 즉 선택지의 개수가 4개 정도는 되지만, 이것도 이미 그어진 선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 사건을 풀어가는 중요한 단서가 되는 종이접기




긍정적인 면도 있다. 주인공이 양치질을 하고, 샤워 후 수건으로 몸을 닦고, 옷을 갈아입는 등 일상의 사소한 동작까지 억지로 상황액션을 통해 하게 만드는 것이 처음에는 무리수처럼 보이지만, 차츰 차츰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고, 본격적인 스토리가 전개될 쯤에는 놀라운 정도의 몰입감에 약간의 피로까지 느낄 정도며, 사실 이런 체험은 생전 처음이다.


패드의 진동을 제외하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이 전혀 없는데도, 아들을 잃어버린 아버지의 참담하면서도 복잡한 심리 상태뿐 아니라, 아들을 구하기 위해 깨진 유리들이 잔뜩 깔린 통로를 힘겹게 기어갈 때의 육체적인 고통까지 전달 하는 기법은 '상황액션'과 그로 부터 발생하는 연출을 통해 헤비레인이 이룩한 크나 큰 업적이다.


거기에, 한 화면에 두, 세 가지 시점을 교차 편집해서 보여주는 것과 극도로 클로즈업된 얼굴 표정을 통해 등장 인물의 감정 변화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등, 영화적인 도구의 활용까지 가세하면서 스토리적인 몰입은 절정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서 또 쓴 소리를 할 수 밖에 없는데, 영화, 소설, 게임을 포함해서 지금껏 어떤 매개체보다 강한 몰입도를 전해주는 만큼, 스토리에서 발견할 수 있는 헛점들이 더욱 자주, 더욱 크게 보이게 되고 이는 애써 모른 척 하기에는 그 정도가 꽤 심한 편이다.


그리고, 스토리텔링의 완급조절이 실패하는 문제, 즉, 더 많은 감정과 스토리가 전달되어야 하는데 급작스럽게 서두르거나, 쓸데 없는 곳에서 진을 빼어 지루함을 주는 등 스토리와 스토리, 장면과 장면과의 연결 부분을 매끄럽지 않게 만드는 경우가 발생한다. 특히, 갑자기 극중 연인관계가 발전하는 부분과 '왜 갑자기 남의 살인 사건에 목숨까지 걸면서 도와줄까'하는 부분처럼 원인과 결과가 잘 이해되지 않는 상황은 전체 스토리를 바라보는 만족도를 크게 떨어뜨리게 된다.






이처럼,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강한 몰입도'와 '조금씩 비틀거리는 스토리 라인'은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 쉴새 없이 평행선을 그리며 헤비레인에 대한 오묘한 감정이 싹트게 하다가, 매우 중요한 선택 포인트가 등장하기 시작하고, 결국 모든 사건이 밝혀지는 엔딩 이후에는 아래에 설명할 단 하나의 결론을 도출하게끔 만든다.


사실, 헤비레인을 일단 잡으면 엔딩을 보고 이후에 다시 해야겠다는 욕구가 첫 플레이 내내 용솟음친다. 아주 사소한 것부터 스토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점까지 선택의 포인트가 상당 수 존재하는데, 일단 선택을 내렸을 때 벌어지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혹시나 다른 선택을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호기심이 마구마구 생산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하던 걸 멈추고 새로 시작 해보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런, 격한 감정은 엔딩을 본 직후까지도 이어지는데, 문제는 막상 다시 하려고 하면 손이 잘 가지 않는 다는 것이다. 다른 선택을 했을 때의 결과와 최종 엔딩이 머릿 속에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상황, 즉 한번 엔딩을 보면 헤비레인 자체가 상당히 단순한 구조를 지닌 사지선다형 질문지의 배열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밖에 없다. 이는, 헤비레인이 주어진 선택지 이외의 플레이는 완전히 배제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게다가, 마지막 반전이라는 것도 플레이어의 선택과는 전혀 상관없는, 제작자가 이미 스토리상으로 결정지은 범인이 '영화적인 트릭' 에 숨어 있다가 시기가 되면 알아서 나오는 것이어서 리플레이의 의지는 한번 더 꺾인다.






최종적으로 말하자면, 아쉬운 점도 많지만 역시나 헤비레인은 상당한 만족감을 주는 작품 중에 하나다. 제작자인 데이브 케이지는 금번 헤비레인을 통해 자신이 주장하는 인터랙티브 드라마가 과연 어떤 것인지 입증하는 데 절반은 성공했다고 본다.


실제 연기자들의 말과 행동을 직접 캡쳐 해서 담은 자연스러운 그래픽과 게임 로딩 때 화면에 표시되는, 얼굴에 잡티와 주름까지 그대로 보여지는 주인공의 얼굴 묘사는 이미 게임의 경지를 넘은 수준이며, 게임을 전혀 모르는 일반인들도 별다른 사전지식 없이 바로 플레이하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장르를 개척했다는 점도 닌텐도의 그것과는 구분되는 헤비레인만의 강점이다.


특히, 게임 속 주인공과 내가 완전히 일치가 된 듯한 몰입감은 오직 이것 하나만으로도 올해의 게임상에 올려 놓고 싶을 정도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게임 진행을 종종 방해하는 버그와 프리징 현상, 그리고 비정상적으로 긴 로딩 시간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자,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고민을 해보자. 7시간 동안의 '반쪽' 능동적 영화체험을 즐기는 데 필요한 돈은 극장에서 보통 상영하는 일반 영화의 7배. 결코 만만치 금액이다. 만약, 헤비레인의 속편이 나온다면 어떨까? 글쎄, 지금의 나라면 헤비레인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쉽게 결정을 내리진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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