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르면 당한다! (사진 출처 - KBS 뉴스)

점원의 화려한 언변에 홀랑 넘어가버려 물건을 덜컥 구매했던 적, 있다. 분명 베스트셀러라고 소개받았는데. 재고 처리에 당했다는 걸 알아버렸을 때는 한참 늦었다. "나는 이성적이다, 나는 합리적이다"라고 자기 자신을 정의해왔지만 무언가 물건을 구매할 때라면 꽉 부여잡고 있던 이성이 곧 무지성으로 변질되더라.

후회를 해도 늦었다. 다음번엔 여기저기 검색을 하던 지인에게 물어보던 치밀하게 알아봐야겠다는 반성의 시간만 가질 뿐이다. 잠깐, 나 같은 친없찐은 뭐니 뭐니해도 검색이 극약처방이겠구나. 여기저기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수소문하는 것도 좋지만 가장 믿음직스러운 건 역시 제품을 구매해서 써 본 실사용자들의 데이터다.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아래 판매 전략에 도가 튼 기업들도 이를 잘 알고 있는지, 사용자 데이터들을 싸그리 모아 지표로 나타내어 개인 의사결정에 확정타를 꽂는다. 물론 그 데이터들이 신빙성이 있는지, 수집량이 방대한지 기준에 따라서 힘이 더 실리겠지.


하루 데이터 수집량이 2,000만이라면 없을 신뢰마저 생길 정도로 충분하다. 밸브의 스팀(STEAM) 통계라면 세계 곳곳의 게이머를 대상으로 하니 아무래도 '대표' 게임 플랫폼이라 해도 손색없을 테고. 특히 게이머의 하드웨어 통계라면 일반 사무용 PC가 아닌, 게이밍 목적의 사양일 테니 더욱 유의미하다.

스팀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설문조사는 고객이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종류에 대한 데이터 수집하기 위해 매월 설문 조사를 진행하며, 익명으로 진행된다. 데이터는 최대 5개월까지 표시되며, VGA, CPU, 코어, 운영체제 등의 정보를 수집한다. 게임을 종료하면 일정 확률로 팝업 되는 그 설문창이 맞다.

스팀이 제공하는 지표는 물론 '컴잘알'에게는 유용한 정보가 될 수 있으나 '컴알못' 입장에선 제품 명칭을 뚫어져라 보거나 아무리 설명을 왈왈왈 늘어놓는다 한들, 그저 아리송할 뿐이다. GTX RTX 3050, 3080 Ti 12GB, i9-12900K? 영어를 이리도 갖다 붙여놨나. 제품명에 수식어 SUPER가 붙는데 이건 왜 1위가 아닌 건지. 가격은 또 왜이리 변동이 심한 건지. 아무래도 예시나 지표가 있으면 설명이 쉽고 이해가 빠르지 않을까. 그래서 준비해 봤다. 스팀 6월 하드웨어 통계에 따른 IT 하드웨어 설명 및 분석.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점은, 스팀 하드웨어 통계는 특정 제조업체의 제품 정보까지는 제공하고 있지 않으므로 제품 고민 시 참고 정도만 하면 좋을 것이다. 통계에 흥미가 생겨 따로 더 조사해 본다면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처럼 날카로운 질문 정도는 쉽게 대응할 수 있겠지만.



CPU편 - 제일 재밌는 구경은 역시 불구경과 싸움구경


▲ 2022년 6월 CPU 제조업체 및 CPU 속도 점유율 (클릭 시 커집니다)

선의가 됐던 악의가 됐던 경쟁 관계를 뜻하는 라이벌은 장르불문 어디에나 존재한다. 예를 들면 드래곤볼의 손오공과 베지터, 해외 축구의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가 있겠지. 매니악한 장르라 여겨질 수 있는 CPU 분야 또한 수십년간 1위와 2위 명맥을 이어온 인텔과 AMD가 있다.

물론 오랜 기간 동안 인텔의 독주가 이어져 왔지만 AMD의 1세대 라이젠 프로세서 출시 이후 연이은 신제품 출시 때마다 둘 사이의 점유율 격차가 점점 좁혀지고 있다. 실제 반영된 데이터로도 그 차이를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AMD 라이젠 1세대 출시 이전, 스카이레이크에 이어 카비레이크를 출시를 발표한 인텔은 우수한 게이밍 성능을 앞세워 시장을 장악했다. 라이젠 1세대는 멀티스레드를 활용한 작업에서 괜찮다는 평과 함께 게이밍은 인텔에게 밀린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이후 인텔 CPU의 과도한 발열과 소비전력, 적은 멀티 코어 및 스레드로 주춤하더니 라이젠 2세대 젠+ 출시 이후부터는 점유율을 점차 내주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은 AMD 라이젠 2세대 출시를 두 팔 벌려 환영했다. 가격은 메인스트림이지만 스펙은 한두 단계 높았으며 소켓 호환, 비교적 낮은 난이도의 오버클럭 등으로 메인스트림을 지향하는 유저 입장에선 구미가 당길만한 요소들이 가득해 이 시기부터 반등의 발판을 마련했다.

▲ 16년 12월부터 현재까지의 스팀 하드웨어 통계 CPU 점유율 (클릭 시 커집니다)

라이젠 3세대부터는 기존 약점으로 평가되던 게이밍 성능을 대폭 향상했다. 더군다나 AAA 타이틀 게임들이 요구하는 멀티 사양과 프로그램 자체 최적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져 게이머들에게 제대로 어필할 수 있는 사양을 갖췄다.

21년 상반기에는 인텔 11세대 로켓레이크와 AMD 라이젠 4세대가 격돌하던 시기였다. 이전까지 싱글스레드 성능 만큼은 인텔이 근소하게나마 꽉 잡고 있었지만 AMD가 이마저 추월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인텔이라고 당하고만 있진 않았다. AMD 프로세서의 성능이 올라감에 따라, 권장 소매가격을 전체적으로 올린 것에 반해 인텔은 대부분의 CPU 가격을 낮춰 가성비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마지막으로 2021년 출시한 인텔 12세대 엘더레이크는 P코어(Performance Core)와 E코어(Efficient Core)가 합쳐진 하이브리드 구조의 CPU로 전세대 대비 엄청난 성능 향상을 보였다.

▲ 라이젠 3세대가 인텔을 부르던 시절.jpg (사진 출처 - TweakTown Pinterest)

위 스팀 하드웨어 통계 CPU 점유율을 보면 현재 엎치락뒤치락인 상황인 것을 알 수 있다. 현재는 인텔의 13세대와 AMD 라이젠 7000번대 프로세서에 관한 소식이 쏟아지고 있다. 공식적인 발표가 아닌 이상 어디까지나 루머에 해당하지만 관련 소식이 많다는 것은 곧 출시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뜻한다.

기업의 경쟁은 소비자를 풍요롭게 한다. 강 건너 불구경, 비슷한 속담으로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된다는 말이 있듯 소비자 입장에선 그저 양측 신제품을 기대하며 그냥 팝콘이나 뜯으면 된다.



게이밍 노트북편 - 채굴 끝, 엔데믹 시작! 하지만 노트북 인기는 여전..

▲ 어랍쇼? 내 글카였어야 했는데 왜 저기서 일을하고 있지? (사진 출처 - AFP)

희미한 기억으론 20년 하반기였을거다. 사이버펑크 2077 발매 전 소식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고 기대를 한껏 부풀렸을 시기. 방대한 맵 스케일이나 키아누리브스 형님이 선글라스를 벗는 장면만 봐도 어지간한 그래픽카드론 어림도 없겠다란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때마침 RTX 30 시리즈가 시장에 막 풀리던 참이라 살까 말까 고민을 한참이나 했었다.

그래픽카드가 어디 한두 푼 하는 물건도 아니고. 특가나 쿠폰을 맥여 조금이라도 싸게 사보겠다는 심보로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고 있었는데 어랍쇼? 몇 년 간 잠잠했던 비트코인이라는 녀석이 연일 최고가를 경신했다는 뉴스가 점차 보이더라. 각만 잡다가 제대로 타이밍 한 번 잡아보지 못하고 결국 내 꿈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리고 싸펑은 혹평을 무더기로 받았다고 한다. 돈 굳었다!)

그렇게 시작된 가상화폐 채굴 광풍과 그래픽카드 대란. 그리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코로나19 이슈까지 터져 가뜩이나 부족한 공급량에 기름을 붓는 상황이 지속됐다.

▲ 코로나 수혜를 톡톡히 본 노트북 시장 (출처 - Strategy Analytics)

이 시기 지속된 그래픽카드 품귀 현상으로 브랜드 완본체 PC나 게이밍 노트북으로 눈길을 돌리는 사용자들이 부쩍 늘었다. 브랜드 완본체 PC라면 동네 대형 마트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물건인데, '가성비는 조립 컴퓨터>브랜드 컴퓨터'라는 인식을 완전히 뒤바꿨다.

그래픽카드 가격은 싯가에 맞춰 실시간으로 가격 변동이 있지만 브랜드 완본체 PC의 경우 대량 생산을 한 상태에서 공급가를 고정한다. 그러다 보니 대란 이전 책정된 브랜드 PC 가격을 조립 컴퓨터가 뛰어넘게 된 것. 게이밍 노트북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다만 노트북은 팬데믹 현상으로 늘어난 재택 업무, 화상 회의로 늘어난 수요도 있다.

▲ 2022 2월~6월 노트북 그래픽카드 점유율 (클릭 시 커집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범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리던 코로나19 사태도 어느 정도 저물고 있고, 지난 몇 년 간 폭증한 수요로 골머리를 앓던 그래픽카드 시장도 빠르게 안정화되어 게이머들이 RTX 30 시리즈를 사용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지만 생각보다 그 속도가 매우 느리다. 오히려 노트북 점유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사무용 노트북에 내장된 그래픽카드나, 게이밍 노트북에 탑재된 고성능 GPU가 그러하다.

위 스팀 하드웨어 통계를 보면 알 수 있듯, 올해 6월 그래픽카드 중 노트북에 장착된 3000번대 Laptop GPU 점유율은 전반적으로 규모가 커지고 있는데 비해, 데스크톱용 3000번대 GPU는 오히려 감소하거나 아주 약간 상승한 것으로 기록됐다.

이러한 이유로는 비약적으로 상승한 게이밍 노트북의 성능을 꼽을 수 있겠다. 아무래도 데스크톱과 모바일 GPU의 격차는 좀처럼 좁히기 어렵다는 평이 있지만 모바일 CPU 부문에서는 데스크톱 턱 밑까지 따라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게이밍 노트북 시장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는 제품군의 모바일 CPU는 인텔 12세대 엘더레이크-P와 AMD 라이젠 5세대 램브란트로 구성된다.


인텔 모바일용 CPU는 등급에 따라 P코어 2~8개와 4개 또는 8개의 E코어가 탑재되며, 코어 수가 배로 증가해 이전 세대 대비 퍼포먼스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해외 PC 하드웨어 전문 매체 Videocardz에 따르면, i9-12900HK의 경우 M1 MAX 프로세서보다 성능이 앞선다고 밝혔으며, HX 제품군은 HK 성능을 상회한다고 벤치마크 결과를 공개한 사례가 있다.

AMD 6000 시리즈는 모바일 프로세서로 이번 년도 1월 CES에서 공개되었다. 코드네임 램브란트 프로세서를 탑재한 노트북들도 2월부터 하나 둘 시장에 보이기 시작했으며, PCIe4 도입, 전세대 대비 평균 10~20% 성능 향상이 이루어졌다. 싱글 및 멀티 성능은 인텔 12세대 모바일 프로세서에 밀리는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배터리 및 전력 관리 기술만큼은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평이 많다.

날로 갈수록 미세해지는 공정과 여러 기술의 도입 등으로 데스크톱과 노트북의 CPU 성능 격차가 놀라울 정도로 좁혀졌다. 휴대성은 두말할 것없이 노트북의 압승이며, 모니터, 음향 장치 등 별도 구매가 필요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노트북 살 바엔 데스크톱을 산다'라는 말은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VGA편 -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파스칼.. 40 시리즈가 나오면 은퇴할 수 있을까

▲ ???: 저 이제 퇴근해볼게요 (클릭 시 커집니다)

엔비디아의 역작이라고 불리는 GTX 10 시리즈, 파스칼 아키텍쳐. 개중에서도 최고 가성비를 자랑하는 GTX 1060 (3GB, 6GB)는 이전 세대의 GTX 970을 압살하는 것은 물론, 두 체급 위인 GTX 980과 어느 정도 비빌 수 있는 성능을 자랑했다. 권장 소비자 가격은 GTX 980의 반도 안되는 199 달러라는 가성비는 덤. 이에 힘입어 출시 이후 스팀 하드웨어 통계의 VGA 점유율 1위 왕좌를 아직도 굳건히 지키고 있다.

하지만 연식이 연식인지라. 2016년에 출시한 파스칼 라인업은 어느덧 은퇴를 바라보고 있다. "엥? 나는 GTX 750ti 잘만 쓰는데 10 시리즈는 애기지 애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스팀에서 고사양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고 롤 같이 그래픽카드를 비교적 덜 갈구는 유저에게는 아직 현역이겠지.

위의 통계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 2022년 6월 GTX 1060의 점유율은 7.02%이며, 15.65%로 최고치를 경신한 18년도 1월과 비교하면 반 이상이 빠진 값이다. 또한, GTX 1060을 포함한 모든 파스칼 라인업의 점유율이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신형 그래픽카드가 출시될 때마다 구형 그래픽카드의 점유율이 빠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지만 GTX 1060의 케이스는 특이한 편이다. 20년, 21년도에 발생한 채굴 광풍 이슈로 점유율 반등이 여러 번 있었던 것. 쉽게 말해 존버용으로 대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고 생각하면 된다.
▲ 2020년 12월 이후 RTX 3070, 3080 가격 변동 (사진 출처 - 다나와)

▲ ???: 200만 원? 야 엔비디아, 귀엽네? 우린 19억 원인데 ㅋㅋ

특히 30 시리즈 출시와 맞물린 채굴 광풍으로 권장 소비자 가격의 배가 되는 시세를 형성하며, 일반 소비자가 신형 그래픽카드를 도저히 구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권장 소비자 가격은 안중에도 없었고 판매가는 초기 가격의 2배, 많게는 3배까지 줘야 구매가 가능해 커뮤니티 내에서는 '금래픽카드'라는 말도 생겨났다. 심한 경우에는 품절 처리를 대신하여 아무도 구매하지 못할 가격으로 상품을 올리는 웃픈 상황까지 발생했다.

이 시기 30 시리즈를 포함한 20 시리즈까지 채굴장으로 끌려갔으며, 게이머들은 10 시리즈 심지어 9 시리즈까지 울며 겨자 먹기로 사용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현재는 최근 가상화폐 가격이 폭락하면서 덩달아 그래픽카드 가격도 하락했다. 올해 초부터 점진적으로 하락세를 탄 가상화폐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각국 증시 하락장으로 가상화폐도 덩달아 추가적인 시세 하락을 전망한 전문가들의 의견이 지배적이다.

가상화폐 가격의 최고점과 현재를 비교해 보았을 때 약 30% 가량 가치가 떨어졌지만 그래픽카드 시세 하락은 더 컸다. RTX 3080, 3070 Ti의 경우 약 50% 감소했으며, 플래그십 라인업인 RTX 3090 Ti, RTX 3090은 오히려 권장 소비자 가격보다 내려간 상황이다.

▲ 40 시리즈 필요한 사람 손

여지껏 존버한 당신에게 경의를 표하며, 이제는 정말 존버를 풀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가상화폐 가치 하락 이외에도 금리 상승, 전기 요금 인상 등 여러 이유로 채굴 수요가 없다시피 한 마당에 중고 시장에 채굴용 그래픽카드가 신제품으로 둔갑되어 판매되고 있다는 사례도 있다니 구매 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겠지만.

아예 40 시리즈까지 더 버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매체에서 신뢰되고 있는 엔비디아 소식 유출자 'kopite7kimi'에 따르면 Q3(3분기) 중 40 시리즈 출시를 예상하고 있고 여러 매체에서도 신제품 출시일을 올해 하반기로 점치고 있다. 엔비디아는 보통 2년을 주기로 차세대 GPU를 내놓는데 30 시리즈 출시일이 2020년 9월인 것을 미루어볼 때 금년 하반기 출시를 으레 짐작해볼 수 있다.

결국 자신의 상황과 시기적절한 타이밍에 지르는 게 제일이다. 그 누가 코로나 이슈가 터질지, 그래픽카드 대란이 일어날지 감히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그저 모든 게이머들이 온전한 가격에 PC를 맞출 수 있는 날이 계속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