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리포니 디지털 야마우치 카즈노리 프로듀서

일본 최대 규모의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개발자 대상 컨퍼런스 행사 'CEDEC 2022(이하 세덱)'이 금일(23일) 온라인을 통해 개최됐다. 행사의 첫 순서는 '그란 투리스모' 시리즈의 아버지로 불리는, 폴리포니 디지털의 야마우치 카즈노리 프로듀서의 강연으로 꾸며졌다.

폴리포니 디지털의 대표이자 그란 투리스모 시리즈의 프로듀서이기도 한 야마우치 카즈노리 CEO는 '그란 투리스모의 25년, 그 배경과 철학'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그의 강연은 폴리포니 디지털이라는 회사에 대한 소개를 시작으로 '그란 투리스모'라는 게임이 밟아온 지난 여정들, 그리고 야마우치 카즈노리 대표 자신이 생각하는 향후의 비전과 게임 업계 종사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로 채워졌다.

폴리포니 디지털은 비디오 게임의 태동기인 1980년대에 '플레이스테이션'과 함께 탄생한 회사다. 폴리포니 디지털이 세운 설립 이념은 '세계의 삼라만상을 계산 가능한 존재로 만드는 것', 그리고 '사회에 대해 개방된 존재로 있을 것'의 두 가지였고, 이때의 의지는 현재까지 쭉 이어지고 있다.

야마우치 대표는 회사가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학교 같은 공간이자, 지식인들이 모이는 교류의 장, 그리고 다양성이 존중되는 회사가 되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회사의 문화는 곧 회사의 능력이라며, 지난 25년간 변하지 않는 하나의 팀으로서 '그란 투리스모' 시리즈를 꾸준히 만들 수 있었던 원동력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폴리포니 디지털의 대표작, '그란 투리스모'는 어렸을 적부터 자동차를 너무나 좋아했던 야마우치 대표의 꿈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는 플레이스테이션이라는 월등한 기술력의 하드웨어가 처음 등장하는 역사적인 시점에, 바로 그 개발팀 내에 소속되어 있었던 자신의 환경적 요인과 운까지 겹쳐 '더 사실적인 레이싱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실현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꿈이 실제 게이머들의 니즈에 들어맞느냐는 질문에는 강한 확신을 가질 수 없었지만, 무모한 실험이라도 도전해보자는 생각이 앞섰다고 전했다.

그란 투리스모를 이루는 주요 요소는 '더 사실적인 자동차 시뮬레이션', 그리고 '현실에 있는 실제 자동차의 수록'에 있다. 레이싱 게임에 실존하는 자동차가 등장하는 것은 지금 보면 당연하게 여겨지는 기본적인 요소일 수 있지만, 당시엔 가정용 비디오 게임이라는 것이 희귀한 시절이었고, 레이싱 게임이라고 해봤자 '마리오 카트' 정도가 전부였기에 실제 자동차 메이커를 찾아 협력을 구하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의 야마우치 대표는 자동차 카탈로그를 보고 전화로 연락해 자동차 메이커 하나하나를 직접 방문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는 소니의 첫 비디오 게임 사업인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를 소개하고, 다음으로 그 회사가 만드는 게임 콘솔인 '플레이스테이션'을 소개하고, 또 여기서 놀 수 있는 게임인 '그란 투리스모'까지 소개해야만 했기에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고 회고했다. 계속되는 자동차 메이커들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에도 그는 굴하지 않았고, 결국 관심을 보여준 '도요타'를 시작으로 물꼬를 틔워 지금의 그란 투리스모가 만들어질 수 있게 됐다.

야마우치 대표는 '그란 투리스모'라는 말 자체가 유럽 상류층 귀족 자제들이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보며 문물을 익혔던 여행을 일컬으며, 지난 25년의 역사가 폴리포니 디지털과 그에게 있어 여행이자, '그란 투리스모'였다고 설명했다. 도요타를 시작으로 닛산, BMW, 벤츠 같은 자동차 산업으로 시작하여 나아가 '나이키' 같은 비 자동자 산업에까지 협력 범위를 넓힐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시도한 여러 도전을 통해 다양한 문물을 익히는 여행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 무엇이든 시작이 어려운 법. 나중엔 자동차 기업 외 다양한 기업들과도 협력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

마지막 순서로 야마우치 대표는 자신이 생각하는 개인적인 전망, 그리고 미래의 비전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는 강연을 듣고 있는 청중들에게 '여러분은 어떤 게임을 우리의 아이들에게 플레이하게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오늘날 아이들이 게임을 접하는 시간은 수십에서 수백 시간에 이르고, 이 비디오 게임이라는 경험이 다른 어떤 것들보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에, '어떤 게임'을 제공하느냐가 무엇보다도 더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그는 '하루 밤을 즐기고 싶다면 술을, 일주일을 즐기고 싶다면 친구들과 연회를, 평생 즐기고 싶다면 정원사가 되어라'라는 중국의 명언과 '평생 즐겁고 싶다면 낚시를 배워라'라는 영국의 명언을 예로 들며 예측할 수 없는 자연에 다가가면 평생을 질리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폴리포니 디지털의 창립 이념이 '세계의 삼라만상을 계산 가능한 존재로 만드는 것'에 있듯, 그 역시 게임을 통해 자연을 이야기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 물론 생명을 포함한 자연 그 자체를 시뮬레이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므로, 그가 추구하는 방향성은 박물학적으로 자연을 자세히 관찰하여 기능적으로 이를 보여줄 수 있는 모델을 제시하는 것에 있다.

야마우치 대표는 자신이 환경학자 같은 거창한 사람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자연을 접할 기회를 더 만들고 싶다고 설명했다.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을 가지고 있는 자연은 일견 불안감을 가져다주는 요소로 비치지만, 아이들의 눈으로 봤을 때 '그렇기에 더 아름다운 것'이 되기도 한다. 그는 컴퓨터 기술을 활용하여 자연을 재현하고, 그 감각을 우리의 자손들이 느낄 수 있게 하고 싶다며, 세상 전체를 느낄 수 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고 전했다.

야마우치 대표는 이러한 주제를 담은 게임이 흥행에 성공하고 큰 이익을 거둘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조금이나마 '왠지 재미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게 된 이들이 있다면 함께 게임을 만들어가자고 제안했다. 끝으로 그는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그란 투리스모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엉뚱한 이야기처럼 들렸을 수도 있지만, 단 한 명의 청중에게라도 어떠한 영감을 줄 수 있었길 바란다고 말하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 자연 그 자체를 게임을 통해 표현하는 것, 이것이 폴리포니 디지털이 꿈꾸는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