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초창기 팬들의 주목을 받으며 명작으로 기억되는 작품. 그 명맥이 끊기는 건 꽤 흔한 일입니다. 초기 개발진이 떠나서일 수도 있고, 플레이 방식이나 장르의 유행이 지났을 수도 있죠. 때로는 그저 기존만큼의 재미를 주지 못해서 일 수도 있습니다. 원숭이 섬의 비밀을 시작으로 하는 원숭이 섬 시리즈 역시 비슷했죠. 원작 개발자의 이탈. 그 이후 준수한 평의 후속작이 나왔지만, 어드벤처 장르의 쇠퇴와 게임 내부적인 문제점도 여럿 부각됐고요.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한 시리즈가 제목 그대로 귀환했습니다. 루카스아츠에서 포인트 앤 클릭 어드밴처의 대중화를 이끌고, 회사를 떠나서도 꾸준히 어드벤처 한 우물을 팠던 론 길버트가 게임 개발의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팬들이 원한 원숭이 섬을 제대로 가져왔습니다.

게임명: 원숭이 섬으로의 귀환
장르명: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출시일: 2022. 9. 20.
리뷰판: 524692
개발사: 테러블 토이박스
서비스: 디볼버 디지털
플랫폼: PC / NSW
플레이: PC


30년을 지나 다시 만난 원숭이 섬

론 길버트는 원숭이 섬 시리즈. 정확히는 어드벤처라는 장르에서 시에라의 로버타 윌리엄스와 함께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시에라가 텍스트 중심의 게임에서 그래픽과 연출력을 활용해 무대를 넓혔다면 론 길버트는 SCUMM 엔진을 통해 마우스와 미리 정해진 키워드의 선택을 통한 직관적인 조작을 구현했습니다. 사실상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의 대중화를 이룩한 셈이죠.

여기에 루카스아츠는 스타워즈로 유명한 조지 루카스가 설립한 만큼 인디아나 존스를 비롯해 기존 어드벤처와는 다른 영화적 연출과 인터랙션이 강조됐습니다. 프로그래머, 작가, 게임 디자인 등 다방면에서 루카스 아츠에 영향을 미친 론 길버트의 손길이 닿았고요.

그중에서도 원숭이 섬의 비밀은 특유의 유머와 철학이 담겨있습니다. 주인공 가이브러쉬 쓰립우드가 사는 세계와 우리가 사는 현실을 오가는 메타게임 유머가 그랬고 틀을 잡은 포인트 앤 클릭 시스템을 활용한 인터랙티브 요소가 그랬죠.

하지만 론 길버트, 그리고 그와 함께 각본을 쓴 데이브 그로스만도 1, 2편을 끝으로 더는 작품의 이야기를 쓰지 않았죠. 지금은 더블 파인 프로덕션의 팀 샤퍼도 3편의 일부 디자인 부분에만 관여했을 뿐 더는 작품을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원숭이 섬으로의 귀환 이야기가 론 길버트로부터 시작하는 데에는 이번 작품의 정체성에 그 이유가 있습니다. 이는 게임을 처음 시작하고 나타나는 오프닝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죠.

게임은 이야기의 흐름을 완전히 뒤바꾼 2편 '르척의 복수'의 결말에서 시작합니다. 전편을 플레이하지 않은 이들을 위해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당대 엔딩은 상황이 딱히 이해되지 않는 반전으로 머리가 얼얼한 충격과 함께 뒷 이야기를 기대케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복선은 회수되지 못하고 주요 개발자 떠난 후 만들어진 3편, 원숭이 섬의 저주에서 없었던 일이 되죠.

즉, 원숭이 섬으로의 귀환은 단순히 3편, 4편, 텔테일의 스핀오프 작품을 잇는 신작이 아니라 2편에서 이어지는 후속작입니다. 단순히 시리즈의 귀환이 아니라 '론 길버트가 그린 원숭이 섬'의 귀환이라는 데 그 정체성이 있습니다. 여기에 론 길버트가 그다지 원하지 않았던 이후 작품의 결말 등의 설정도 살짝 이어 붙인 수준으로 담겼고요.

▲ 2편의 충격적 결말에서 이어 시작하는 3편, 아니 원숭이 섬으로의 귀환


어쨌든 이러한 배경에 게임은 벌써 30년 전 게임들인 1, 2편의 모습을 더욱 닮았습니다. 이제는 나이가 얼굴에서 드러나는 가이브러쉬는 물론 여전히 사랑스럽고 진취적인 일레인, 또다시 감옥에 갇혀있는 오티스나 장사꾼 기질은 여전한 스탠 등 기존 작품의 인물들은 그대로입니다. 본격적인 가이브러쉬의 여정 역시 1편처럼 망꾼과의 대화에서 시작하고요.



자유롭게 뻗어나가는 퍼즐, 그래도 쉽게쉽게

기존 인물, 전에 만난 장소 등 정겨운 요소들이 가득합니다. 다만, 원숭이 섬으로의 귀환은 이전 시리즈처럼 인물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서사가 아니라 퍼즐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나갑니다. 시리즈를 플레이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인물을 내세운 어드벤처 게임에서 그 인물이 오롯이 핵심이 아니라는 말에 꽤 고개를 갸웃거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고전 원숭이 섬에서 가이브러쉬의 행동이나 여정은 플레이어에겐 가장 중요한 '플레이'의 영역일 테지만, 사실 게임 세계 안에서 미치는 영향력을 보면 꼭 그렇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어떤 사건은 굳이 주인공 가이브러쉬가 아니어도 해결됐을 문제들이고 또 어떤 이야기는 플레이어의 여러 노력과는 별개로 벌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이브러쉬의 행동이나 목표 자체가 그다지 의미 없는 행위일 때도 많고요.

가이브러쉬는 수많은 인물과 엮이고 관계를 맺는 가장 핵심적인 인물임과 동시에 사건들을 동화 들려주듯 전하는 이야기꾼. 그리고 외부에서 이를 즐기는 주변인으로서의 정체성 역시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정체성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도전적인 퍼즐과 큰 그림보다는 당장의 상황에 더 집중하는 유머와 반응을 만들어낼 수 있게 하고 있고요.

▲ 대걸레 하나 때문에 그 고생을 할 줄이야

우선 퍼즐을 이야기해보죠. 꽤 중요한 하나의 목표 하나를 위해 이야기 안에서 꽤 다양한 목표가 연이어 발생하게 됩니다. 자세한 내용 자체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극초반부를 예로 들면 볼까요?

가이브러쉬가 르척의 배에 갑판수로 몰래 잠입하기 위해서는 갑판을 닦을 대걸레가 필요합니다. 이 대걸레가 위치한 장소에 가면 주인인 쓸에기 바의 요리사는 이걸 쉽게 내놓지 않고 대신 대걸레를 만들 방법을 알려주죠. 그것도 꽤 비약해서 말이죠. 그럼 이제 대걸레를 만들 숲에 가야하고요. 하지만 꼬불꼬불한 숲에서 제대로 길을 찾기 위해선 지도가 필요하고, 다시 만난 윌리에게 그 지도를 부탁해야 합니다. 하지만 나무 조각이 있어야 지도를 찾을 수 있죠. 나무 조각을 잘라낼 칼을 구해 돌아갔지만, 요리사는 대걸레에 손도 대지 못하게 하고요. 그럼 그의 시선을 돌릴 레시피가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를 통해 유추하고 그 레시피가 있는 총독 저택으로 향합니다. 그곳에는 멜레이 섬의 새 총독이 된 칼라가 있습니다. 그녀는 레시피가 담긴 책을 빌려주지 않습니다. 가이브러쉬가 전에 빌려간 책을 제대로 돌려주지 않았거든요. 그럼 이제 칼라의 화를 풀어줄 방법을 찾아나섭니다.

'대걸레를 찾아서'라는 단순한 목표 하나가 주어지지만, 퍼즐은 꽤 다양한 방식으로 그걸 이어 나갑니다. 그리고 이런 퍼즐은 때로는 꽤 논리적으로 퍼즐의 전개가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어쩔때는 제3의 눈을 켜고 직관력과 통찰력을 총동원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운 좋은 '꼼수'에 기댈 게 아니라면 이런저런 아이템을 꺼내 이 사람 저 사람 위에 올려도 보고, 아이템끼리 포개어도 보고, 대화 중에 빠진 부분은 없나 체크하고, 돌아온 길을 다시 찾아 상호작용 요소들을 둘러보기도 하고요.

퍼즐의 구성을 보면 알겠지만 그 진행이 대개는 이야기와의 연계성이나 흐름을 완벽하게 고려하지 않고 그려집니다. 이게 주변인으로서의 가이브러쉬가 가지는 특징 중 하나죠. 이야기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여정을 해나가니까요. 그게 퍼즐의 자유분방함으로 그려지고 풀이를 고되게 만드는 이유기기도 하죠.

하지만 이런 퍼즐 구성이 나름 정돈된 느낌도 있고 어려움을 느낄 플레이어를 위한 장치는 너무나도 훌륭하게 마련되어 있습니다. 시작화면부터 원숭이 섬의 비밀2처럼 쉬운 난이도 선택이 가능합니다. 이쪽을 선택하면 일부 복잡한 퍼즐 자체은 따로 풀지 않아도 문제가 해결되죠.


복잡한 퍼즐에 머리를 쥐어뜯을 정도라면 모조의 집에서 부두 여인이 주는 힌트 책이 도움이 됩니다. 말 그대로 지금 상황의 퍼즐을 풀어나갈 힌트를 하나씩 일러주는 책이죠. 책이 알려주는 정보는 한 번씩 물어볼 때마다 그 깊이를 더해갑니다. 처음에는 두루뭉술한 힌트를 툭 던져놓는 정도라면 한 번 더 물어보면 비교적 알아듣기 쉬운 진행 루트가, 더 물어보면 당장 해야 할 목표를 직접 알려주죠.

이 힌트를 약간만 받아 진행하는 정도로 퍼즐 풀이의 긴장감을 그나마 살려 즐길 수 있는 식입니다. 계속 캐물어 별도의 공략 없이도 쉽게 이야기 중심으로 게임을 즐길 수도 있고요. 이러한 퍼즐책은 별도의 부가 행위 없이 그저 인벤토리에서 책을 펼쳐보는 것만으로 그 힌트를 얻어갈 수 있습니다. 전작보다 한층 간소해진 접근의 힌트는 편의성 요소에서 강점을 가졌다고 볼 수 있지만, 플레이어가 자신이 원하는 수준의 힌트를 그때그때 수준에 맞춰 보는 특징에 맞춰 설정됐다고 볼 수도 있고요.

▲ 부두 여인이 그랬지, 책 속에 힌트가 있다고



간소화와 편의성, 그 사이의 인터랙션

다만 이 간소함과 편의성이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도 있는데 바로 게임의 UI입니다.

루카스아츠가 본격적으로 대중화시킨 포인트 앤 클릭 방식. 아니, 더 나아가 시에라가 시장을 주도하던 시기 이루어진 텍스트 방식의 어드벤처 역시 게임의 UI는 복잡함과 편리함 사이에서 어떻게 줄을 타느냐가 중요했습니다. 원숭이 섬의 비밀 1, 2에서는 다양한 키워드가 화면 아래 펼쳐진 SCUMM의 UI가 그랬고 3편인 원숭이 섬의 저주에서는 팝업을 통한 확장 선택을 통해 같은 상황에서도 다양한 선택지를 만들었습니다.

이번 작에서는 그러한 선택지를 최대 둘로 쪼갰습니다. 아이템을 화면 위에 올려두면 PC를 기준으로 왼쪽 클릭, 오른쪽 클릭에 따라 다른 선택이 가능하게 만들었죠. 상황에 따라 정해진 결과가 나오도록 조정됐습니다.

이러한 설정은 조작의 간소화와 함께 다분히 콘솔에서의 조작 편의성을 의도한 바입니다. 4편이 그랬듯 마우스로 이루어지는 포인트 앤 클릭 게임을 콘솔 조작 체계인 패드에서 어떻게 구현할지에 대한 고민이 반영됐거든요. 분명 조작할 여지 자체가 줄어들긴 했으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선택지가 줄어들며 게임이 시리즈가 자랑하는 상호작용 요소도 덩달아 줄었습니다. 똑같은 상황에서 쳐다보고, 말을 걸고, 밀고, 당기고, 사용하는 등 다양한 행동은 유추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퍼즐의 난이도를 높이긴 했습니다. 대신 그런 여러 행동에 가이브러쉬가 독백인 척 플레이어에게 핀잔을 주거나 다른 인물 역시 그에 반응하는 등 중요하진 않지만, 게임의 철학을 담은 인터랙션이 이루어졌거든요.

▲ 조작의 간소화는 곧 상호작용의 수 감소로 이어졌다

비록 편의성을 앞세워 인터랙티브 요소의 절대치는 줄었지만, 여전히 어드벤처 게임이 가져야 할 주변의 반응과 그걸 중심으로 하는 유머는 수준 높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건 원숭이 섬으로의 귀환이 오늘날에도 그 명성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자 론 길버트의 게임 개발 센스가 여전하다는 걸 증명하는 요소 중 하나죠.

오늘날 단순히 내러티브 자체에 무게 중심을 둔 어드벤처 게임은 충분한 몰입감을 전달하기 어렵습니다. 진짜 사람을 보는 듯한 사실적인 그래픽과 현실적인 연출, 그리고 플레이어가 직접 개입해 이루어지는 액션, 탐험, 전투 등 오늘날의 게임은 주인공 자체에 몰입함 여러 요소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야기, 그것도 텍스트를 중심으로 전달되는 이야기만으로 플레이어를 만족시키기란 쉽지 않죠. 그래서 근래 주목받는 어드벤처는 RPG 요소에 집중해 상황에 따라 무수하게 뻗어져 나가는 텍스트의 양, 혹은 참신하고 매력적인 아트 등을 무기로 합니다.

반면 원숭이 섬으로의 귀환은 과거 루카스아츠의 어드벤처가 그랬듯 수많은 상황과 디테일한 애니메이션을 앞세운 고전적인 방식으로 어드벤처 강점을 살리고 있습니다. 아이템 전달이나 대화, 주인공의 관찰 행동에 시시각각 반응하고 딴죽을 걸죠.

별거 아닌 상황을 잡아내고 그에 따른 반응으로 살아있는 듯한 세계를 그려내는 건 플레이어가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하고, 또 테스트 과정에서 이를 관찰할 수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 내용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낼 수 있는 능력도 있어야 가능한 부분이고요. 시리즈 제작진의 그런 장점은 이번 작에서도 빛나고, 그래서 빵 터지는 유머는 없어도 게임 내내 피식 웃어넘기고 낄낄거리며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거죠.

▲ 30년 넘게 루카스아츠의 룸을 홍보하고 있는 콥

그리고 출시 전에는 팬들의 심한 비판을 받았던 그래픽도 그런 인터랙티브 요소를 살리는 데에는 꽤 효과적인 편입니다. 잔뜩 과장이 들어갔지만, 때대때 지나치게 사실적인 묘사가 어우러지는 모습은 스폰지밥 같은 미국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들고요.

사실 시리즈가 바뀔 때마다 픽셀 아트부터 2D 셀 애니메이션, 3D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그 연출법을 바꿔온 만큼 이번에도 그런 변화가 이루어졌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 듯싶네요. 그리고 이런 과장된 연출은 기법 자체는 달라도 론 길버트가 앞서 팀블위드 파크를 통해 보여준 것과 비슷하고요.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모든 플레이어를 사로잡을 형태는 아니라는 건 분명합니다.



세계를 넘나드는 유머, 그리고 다시

연출법과 함께 상호작용은 곧 게임 특유의 유머로 표출됩니다. 정확한 시대상을 가늠하기 어려운 게임처럼 인물들의 대화와 모습을 중심으로 시시껄렁한 농담은 이야기와는 크게 관계없이 이루어집니다. 오히려 이야기와 관계가 없기에 더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하기도 하고요.

가이브러쉬가 아들 보이브러시에게 2편의 엔딩과 이번 작품의 엔딩을 비교하는 말을 하기도 하고 현실 세계의 논란을 꽤 적나라하게 돌려 비판하기도 합니다. 과학적인 근거를 들이미는 것보다 과장 광고를 덕지덕지 바른 전단지가 더 효과적이거나 쓸데없는 질문 양식지 같은 것들도 게임 곳곳에 있습니다. 메타 게임적 유머와 게임의 선을 넘어 유머를 펼치는 모습은 가이브러쉬의 정체성이 주는 또 하나의 특징이기도 하고요.


게임은 다분히 가볍고, 시대 분위기의 이야기를 캐치해 유머로, 말장난으로, 화장실 개그로 풀어냅니다. 이런 소소한 유머들은 30년 전의 것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바뀐 점이라면 이러한 유머가 30년 전에는 당대의 문화, 그 당시의 사회 현상이었다면, 지금은 30년 전의 컬트 문화라는 점이죠.

원숭이 섬 시리즈를 기다려 온 오랜 게이머에게는 당대의 충격과 신선함을 그대로 이어받았다는 건 장점입니다. 하지만 게임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는 너저분한 유머 그 이상이 아닐 수도 있죠. 날카로운 한 방을 기대한 이들 역시 끝까지 선을 크게 넘지 않는 잔잔한 유머 스타일이 만족스럽지 못할 거고요. 그래서 추억보정을 통한 과평가가 이 작품을 보는 또 다른 시선입니다.

그럼에도 호평을 남기는 건 이 게임이 너무나도 명확한 타깃을 두고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메인 메뉴에서 볼 수 있는 스크랩 북은 1, 2편의 주요 사건들을 이름 그대로 스크랩해 만든 책자 형태의 콘텐츠로 이전 시리즈의 이야기를 짤막하게 담고 있습니다. 마치 시리즈가 오랫동안 멈춰있다 신작 낸 근래 여러 시리즈가 그렇듯, '전작 해보지 않아도 문제 없어요'라고 강조하는 듯한 모습이죠.

하지만 실제로 게임 안에서 전작들과 이어지는 수많은 이야기를 살펴보면 서두에 말했듯 이 작품은 기존 작품의 귀환과 그에 따른 팬들의 기대감을 채워주기 위한 작품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가이브러쉬와 플레이어의 여정 시기 있었던 일을 마치 전설이나 읊듯 과장되게 떠드는 박물관 관리인이나 똑같은 장소, 하지만 시간의 흐름을 제대로 살필 수 있는 배경 오브젝트. 또 기존의 퍼즐 활용이나 가이브러쉬의 선택으로 바뀐 인물들의 운명. 그리고 때때로 1, 2편의 것을 그대로 오마주해 다시 그려내기도 하죠.

▲ 스크랩 북이 있지만 이전 작품을 떠올리는 데 용이하지 이것만 보고 시작하기에 적합하진 않다



시대착오적 자기 복제라는 비판 역시 가능합니다만, 적어도 원숭이 섬의 비밀 두 작품을 즐긴 이들이라면 30년 만에 이어지는 수많은 연결점에 행복한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고요. 귀를 통해 들려오는 게임 음악 역시 과거의 것을 쌓아 올린 작곡가들이 다시 뭉쳐 전하고 있죠.

목표를 너무나도 정확하게 상정하고 게임을 그려낸 만큼 평가 역시 그들의 시선에서 이루어졌을 때와 그러지 않았을 때 큰 차이가 있으리라 봅니다. 그리고 과거를 기억하는 팬들에게 이 게임이 주는 가치는 단순히 오랜 시간을 넘어 돌아온 옛 게임 정도가 아니라 가이브러쉬와 함께한 유머와 추억을 다시 잇는 데 있고요.

단순히 옛날의 것이라 예전의 기억을 배제하고 그저 낡은 과거의 유머와 텍스트라고 치부하기엔 그 안에 담긴 게임의 맛은 크게 바뀌지 않아도 30년간 잘 숙성됐습니다.

팬들의 호불호가 갈릴 줄 알면서도 또 비틀어 버린 결말부. 그곳으로 달려나가는 과정에 담아낸 론 길버트의 게임 철학 역시 참 그대로네 싶고요.

그리고 스크랩북으로 이어지는 진짜 결말은 마치 30년 동안 마무리 짓지 못한 이야기. 이제는 하얗게 머리 세고 나이도 그득히 먹은 자신들이 다시 이어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을 원숭이 섬이라는 게임에 마침표를 찍은 느낌이 강합니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 그 마무리를 함께 한 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감동과 함께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