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이나 슈터 등의 조합으로 대중성을 챙기는 경우도 있지만, 호러 하나에 집중한 게임은 분명 한정적인 수요를 지닌 게임이다. 그럼에도 열렬한 팬층은 존재했고, 기술의 발달과 연출의 향상으로 공포 게임의 많은 변화와 영향을 준 타이틀이 지난 2010년대 다수 등장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괴물에게서 살아남는 모습을 그린 아웃라스트와 암네시아, CCTV를 통해 애니매트로닉스들의 공포를 배가시킨 파이브 나이츠 앳 프레디(프레디의 피자가게), 그리고 PT의 계보를 잇는 심리 호러 레이어스 오브 피어 등이 모두 비슷한 시기 출시돼 뒤이은 많은 공포 게임에 영향을 줬다.

블루버팀은 자신들을 공포 게임 전문 회사로 뒤바꾼 레이어스 오브 피어 시리즈를 하나의 타이틀로 묶어 선보인다. 그래픽은 언리얼엔진5를 통해 개선했고 특유의 공포는 이었다. 그렇게 독특한 광기로 2010년대를 채웠던 게임은 그렇게 2020년대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그 공포는 좋은 의미로는, 나쁜 의미로는 여전하다.

게임명: 레이어스 오브 피어
장르명: 호러 / 어드벤처
출시일: 2023.6.15.
리뷰판: v.1.2.2 rb95581
개발사: 블루버 팀
서비스: 블루버 팀
플랫폼: PC, PS, Xbox
플레이: PC


복도가 주는 긴장감, 그 연장선의 레이어스 오브 피어

길게 뻗은 복도는 우리가 흔히 마주하는 일상의 공간이지만, 일상 안에서는 그 역할이 지극히 한정적이다. 집, 혹은 호텔 룸 등으로 나아가는 이동의 공간에 그친다. 하지만 그 가치를 찾을 수 없는 공간은 반대로 훌륭한 아드레날린의 촉발물로 그려지기도 한다.


좁은 복도 가득 채운 적들을 하나하나 물리치는 장면은 넓게 퍼진 시야를 모아주고 여기서 터져 나오는 폭력은 부족한 흥분감을 채운다. 장도리 하나 들고 싸우는 올드보이나 데어데블의 처절한 격투신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몰려오는 적을 아예 텅 비운다면? 어둡고 비좁은 공간은 적을 물리치며 나아갈 공간이 될 수 있지만, 반대로 비웠을 때 오는 적막감은 공포로 바뀐다. 대항할 수 없는 존재와의 조우에 피할 곳이라고는 나아가는 게 아니라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여기에 복도 끝에 다다를 때쯤 보이는 90도 모퉁이 저편의 새로운 복도 존재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무언가의 등장을 암시하며 긴장감을 높인다.

가장 유명한 복도 신인 영화 샤이닝의 쌍둥이 등장 장면은 밝은 공간에서도 그러한 공포감을 훌륭히 전달했다. 당연히 카메라 렌즈만으로는 쉽게 담아낼 수 없는 비현실적 빛의 조작으로 더 어둡고, 불완전한 빛의 변화가 가능한 게임은 이러한 공포를 더욱 효율적으로 담아낼 수 있고 말이다.

복도를 호러 게임에 구현한 첫 게임은 아니지만, 코지마의 P.T.는 공간과 요소, 반복이라는 형태로 복도를 담아내며 수많은 P.T.라이크 탄생을 이끌었다. P.T.의 계보를 잇는 레이어스 오브 피어 역시 같다. 거대한 저택과 유람선이라는 배경은 다르지만, 1편과 2편 모두 좁고 긴 공간이 주는 공포를 이어받는다.

복도가 주는 공포에서의 아드레날린 발산이라는, 2010년대 이후 가장 주목받는 요소에 충실한 게 바로 레이어스 오브 피어고 그 자체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공포감을 체감할 수 있다.

▲ 취소된 사일런트 힐즈의 플레이어블 티저는 여러모로 복도의 중요성을 각인시킨 공포 게임이 됐다



불안한 심리와 광기를 담아낸 구조의 변화

P.T.가 수많은 공포 아류작의 모델로 꼽히기 시작하면서 반복과 루프, 상대할 수 없는 크리처의 등장이라는 비교적 획일적인 장치들이 공포 게임을 채워나갔다. 레이어스 오브 피어는 여기에 또 다른 방식의 공포 유발 장치를 강조해 변화를 그렸다. 이제는 다른 게임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는 공간의 변화다.


방식은 꽤 간단한데 눈에 보이는 특정 구간으로 카메라를 돌리면 그 즉시 이전의 공간이 바뀌는 식이다. 예를들면 여기 그 끝에 유일한 탈출구처럼 보이는 문이 존재하는 일직선의 복도가 있다. 하지만 정작 달려가서 문고리를 잡으니 잠긴 문이라며 제대로 열리지가 않는다. 그때 시야를 다시 뒤로 돌리면 방금 왔던 공간과는 다른 복도, 혹은 다른 공간이 펼쳐지는 식이다. 특정 트리거가 발동되면 시야 밖의 공간이 새로 구성되는 식이다.

P.T.식 복도 구성은 분명 공포감을 극대화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공간 자체를 한정적으로 구현하면서 얻는 공간 활용. 즉, 제작의 용이성과도 이어져 있었다. 개발 코스트가 적어진다는 의미다. 다르게 말해 세밀한 조정이 없다면 P.T. 구성은 마땅히 새로운 무언가를 제시하지 못하고 비용 절감에 따라오는 미흡한 만듦새에 그치게 된다.

레이어스 오브 피어의 앞선 공간 활용은 획일화된 복도 구성을 탈피하는 동시에 게임이 가지는 내러티브 측면과도 이어진다. 레이어스 오브 피어1, 2편은 미술가, 배우 등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다르지만, 어디까지나 그들의 심리 상태, 그리고 추악한 예술계에 대한 근원적이고 메타적 성격을 동시에 가진다.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게임으로 옮겨냈을 때 얻어지는 시각적인 뒤틀림이 섞이며 게임 디자인과 어우러지는 있는 셈이다.

인상적이고 독창적인 게임 방식을 만들어내는 것 역시 큰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것을 게임의 주제, 이야기에 어울리는 방향으로 만들어낸다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다. 레이어스 오브 피어가 단순히 무서운 공포 게임을 넘어 훌륭한 공포 게임으로 불리는 것 역시 이렇게 유연하게 이어지는 게임의 구조와 디자인에 있다.



공포 구조의 남발과 여전한 내러티브

다만 인상적인 공포 전달 효과가 반복되고, 또 게임의 이야기 전달 자체가 이것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단점은 여전하다.

게임은 철저하게 워킹 시뮬레이션의 진행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따금 인상적인 연출이 공포 분위기와 함께 화면을 채우지만, 실제로 플레이어가 하는 건 정해진 길을 따라 이동하고, 꼭 해야 하거나 찾아야 하는 오브젝트를 건드려 다음 진행 루트를 여는 데 그친다. 여러 엔딩에 다다라는 분기와 행동은 있지만, 그것 역시 커다란 틀 안에서 정해진 행위의 반복이며 결국 플레이어는 한정된 상호작용 안에서 길을 따라 가는 데 그친다.

이색적인 연출이 주인공의 심리와 주제 의식을 전하기는 하지만, 정작 이야기 자체를 이끌어나가는 힘은 없다. 대체 지금 무슨 상황이고, 배경은 어떻고, 왜 이 지경이 됐는지는 복도로 그려진 진행 구간 중간중간 존재하는 노트를 찾아 꼼꼼히 읽고, 또 그걸 조합해야 온전하게 그려진다.

또 아무리 심리 상태를 옮겨낸 공포 연출이더라도 수없이 반복되고, 결국에는 그걸 점프 스케어를 통해 편의적으로 해결하려는 구간이 늘어나며 긴장감 역시 무뎌지게 된다.

▲ 스토리 이해는 여전히 노트 확인이 핵심

레이어스 오브 피어의 리메이크 소식이 나왔을 때 가장 기대했던 부분도 어쩌면 이런 수동적인 플레이와 내러티브 구조의 변화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리메이크는 큰 틀에서 게임의 구조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약간의 능동적인 플레이 요소를 담기 위해 랜턴이나 라이트로 쫓아 오는 유령의 움직임을 막는 정도가 추가됐지만, 2편에서는 이미 이러한 존재로부터 도망가야 하는 구간이 있었다. 그래서 1편 내용에서만 그 변화가 와닿을 뿐이다. 그마저도 어느 정도 이야기에 영향을 미칠 뿐 적극적인 플레이 요소로 긴장감을 더한다는 정도는 아니다.

스토리 역시 DLC를 포함해 기존 레이어스 오브 피어 작품들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는, 작가 시점의 이야기를 새롭게 추가했지만, 이게 그다지 유연한 연계를 그리지는 못했다. 어디까지나 노트나 여러 습득물을 통해 이루어지는 전개, 또 애초에 균형을 맞출 정도로 1, 2편 두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내기 적합한 내용도 아니거니와 구조상 그 사이를 잇는 작가의 역할도 한정적이다.

그나마 작가라는 인물이 겪는 고통 역시 시리즈 전체를 아우르는 예술과 광기라는 주제를 똑같이 관통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질감을 겨우 느낄 수 있는 수준이다.

결국 2023년의 레이어스 오브 피어는 기존의 장점도, 단점도 그대로 이어온 결정판에 가까운 타이틀이다.



그래도 다시 한 번쯤 해봄 직한 이야기

분명 소소한, 혹은 인상 깊게 짚을 수'도' 있었던 변화가 있었지만, 큰 틀에서 리메이크가 아니라 진화한 합본으로 이번 게임을 바라본다면, 그래픽의 변화는 분명 크게 다가올 요소다.

4K 충분히 뽑아낼 데스크톱에서의 플레이만이 아니라 스팀 덱에서도 충분히 게임 구동이 가능했는데 이렇게 이루어진 그래픽은 분명 언리얼 엔진5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그래픽 품질 정도는 아니다. 대신 게임의 구조, 그러니까 좁은 복도와 저택, 유람선 등의 한정된 공간 안에서 강화된 빛이 주는 긴장감은 분명 게임이 가진 정체성과 가치에 부합한다. 최고는 아니어도 오늘날 레이어스 오브 피어의 세계에 빠져들기에는 충분한 수준이다.


원작을 플레이했던 이들이라면 새롭게 추가된 몇몇 부분들에 흥미를 느낄 수도 있고, 처음 게임을 접한 유저들도 분명 지금 시대에도 만족스럽게 즐길 수 있는 수준의 그래픽으로 게임을 접할 수도 있다. 호러 게임에서 이 그래픽이라는 부분의 충실도 향상은 분명한 강점이라는 의미다.

이는 마치 블루버 팀이 옵저버를 시스템 리덕스라는 이름으로 다시 만들어낸 것과 비슷하다. 전작의 경험을 고스란히 이어가는, 그러면서도 강화된 연출로 보는 만족도를 높히는 방향으로.

물론 변하지 않는 게임의 강점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면 말이다.


2010년대의 레이어스 오브 피어는 분명 오늘날 공포 게임 장르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훗날에도 회자할 준수한 공포 게임임에는 분명하다. 그렇기에 내러티브와 경험이 이제는 꽤 낡고, 여전히 부족한 느낌이 들지라도 언리얼 엔진5으로의 변화, 한 타이틀로 만날 수 있는 이야기만으로 플레이할 가치는 아직 남는다.

2편까지 완벽한 한국어화, 그리고 풀프레이스 게임 가격이 천정부지 올라가는 시대에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는 메리트를 더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