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크민 시리즈는 ‘귀여운 외형에 귀엽지 못한 난이도’라는 말이 딱 맞는 게임입니다. 그리고 이번 시리즈, 피크민4 역시 그런 역설적인 부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일단 호불호야 갈릴 수 있지만, 꽃을 달고 우르르 따라다니는 피크민들과 이건 정말 귀엽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와치 덕에 플레이를 하는 내내 웃음이 얼굴에서 떠나질 않아요. 새로운 피크민이 한 종류씩 등장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심장을 부여잡고, 잘못된 선택으로 피크민들이 죽기라도 하면 또 다른 의미로 심장이 파르르 떨릴 정도니까요.

그러면서도 게임의 플레이 적인 측면은 마냥 쉽지만은 않습니다. 첫인상은 산뜻하지만,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풍성하고, 또 점점 많은 고민을 해야할 정도로 깊은 콘텐츠와 플레이를 선보이죠. 대신, 절대 무겁지 않습니다.

게임명: 피크민4
장르명: 액션, 어드벤처, 전략
출시일: 2023. 7. 21.
개발사: 닌텐도
서비스: 닌텐도
플랫폼: NSW



느긋함 속에 파고든 계획력

피크민4의 가장 큰 장점은 네 번째 시리즈임에도 진입 장벽이랄 것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는 부분입니다. 시리즈 특유의 플레이 방식을 분명 살려냈음에도 말이에요. 이는 훨씬 다양한 모드와 아주 친절한 설명, 여기에 다양하게 추가된 새로운 콘텐츠들 덕분입니다.

튜토리얼 과정을 길게 잡으면서 게임에 적응할 시간을 넉넉히 뒀고, 미션 등지에 큰 시간제한이나 제약을 두지 않았기에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플레이어라도 자신이 원하는 만큼 찬찬히 피크민 시리즈의 플레이 방식을 익혀나갈 수 있거든요.


피크민4의 경우, 난이도의 조정을 매우 잘해 둔 편입니다. 게임에서 난이도를 직접 나눠둔 게 아니라, 플레이어가 스스로 자신에게 맞는 경험을 그려낼 수 있도록요.

이는 메인 미션에 딱히 기간이나 시간의 제한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저 이곳저곳 원하는 맵을 돌아다니며 불시착한 우주인들을 구출하면 그만이죠. 맵에 입장한 뒤에는 시간이 흐르지만, 그 입장까지, 그리고 입장 후에도 무엇을 할 것인지는 플레이어에게 달려 있습니다.

계획력에 자신이 있다면, 바로 새로운 영역들을 모험하러 용감히 떠나도 되고, 반대로 저처럼 계획력이 살짝 부족하다면 열심히 기존 지역들을 돌아 장비도 업그레이드하고, 와치도 업그레이드해서 신규 지역에 도전해도 됩니다.


물론 그 과정이 무작정 느슨해지거나 여유로운 것만은 아닙니다. 일단 맵에 입장하고 나면 ‘시간’이라는 제한이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해가 지기 전까지 무슨 일을 해도 되지만, 그 주어진 시간 안에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어떤 보물을 모으고 어떤 동굴에 들어갈 것인지 등을 계획해야 하는 거죠.

즉, 느긋함 속에 ‘계획력’이 파고들어 가 있습니다. 하루라는 시간 안에 누군가는 하나의 보물을 모으겠지만, 계획력이 넘치는 누군가는 다섯 개의 보물을 모을 수도 있는 거죠. 그리고 이런 계획력을 돋보이게 하는 건 맵의 지형과 속성입니다.



지형의 고저 차와 물, 전기, 얼음, 불 등 특정 속성의 장애물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무작정 우르르 움직이는 게 아니라, 맵을 보며 최선의 해결법을 고민하는 과정이 필수거든요. 이는 동굴과 전투 등에서도 이어지는 부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계획력이 부족해 실수를 하더라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도전의 과정을 부담스럽지 않도록 하기 위해 되돌리기가 존재하기 때문이죠. 심지어 되돌리기 시점이 극단적이지 않기 때문에 일단 시도해 보고, 실패하면 다시 시도하는 플레이를 할 수 있어요.




피크민과 와치, 든든한 양 팔

우리의 귀여운 친구, 와치도 빼놓을 수 없는 피크민4의 강력한 특징이자 장점입니다. 이번 편에서 새롭게 등장한 와치는 게임을 좀 더 다양하게, 또 쉽게 플레이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합니다. 주인공과 피크민을 태우고 온갖 곳을 돌아다니는 건 기본이고, 강력한 돌진으로 전투에 엄청난 도움을 주기도 하며, 혼자서 수십 마리 피크민이 할 일을 해내기도 하죠.


뿐만 아닙니다. 와치만이 할 수 있는 특정한 조작들도 존재해요. 개구멍을 통해 던전의 개념인 동굴 속 퍼즐을 풀어나가는 데 큰 역할을 하거나, 오브젝트들을 부숴 막힌 길을 뚫거나, 돌진으로 오브젝트를 흔들어 떨어뜨리는 식이죠.

동시에 와치는 숨겨져 있는 다양한 오브젝트를 찾는 기능이 있기에 게임을 훨씬 편리하게 만들어줍니다. 땅속에 묻혀 있어 찾기 힘든 보물들 역시 와치의 뛰어난 후각을 사용하면 아주 손쉽게 찾아낼 수 있어요.


주인공과 와치를 번갈아 조작할 수 있는 교대 시스템의 존재는 이런 부분을 더 강화시켜 주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와치를 간편하게 플레이 과정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는 파트너 정도로 활용해도 되고, 직접 또 다른 플레이어블 캐릭터처럼 조작할 수도 있거든요.

그냥 생긴 것만 다른 피크민 정도에 그치지 않고, 명확하게 와치만이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포함시키면서 아예 새로운 도우미이자 중심적인 요소로 시리즈에 선보인 거죠.



시리즈 최초로 추가된 밤 모드 역시 새로운 경험을 제공합니다. 반짝 피크민과 함께 빛둑을 지키는 밤 모드는 어드벤처인 낮 모드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 디펜스에 가깝게 진행되거든요.

물론, 밤 모드의 경우 특별 모드에 가깝기에 낮 모드처럼 다양한 보상이 제공되는 게 아니라, 굳이 여러 번 플레이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우주인 친구들이 잎사귀 인간이 되면 그때 한 번씩 입장해서 빛둑을 지켜내면 되죠.


이외에도 피크민4의 핵심인 계획력을 열심히 쌓아나갈 수 있는 다양한 모드도 제공합니다. 주어진 시간 내에 맵 안에 존재하는 여러 오브젝트를 빠르고 정확하게 수집하면서 그야말로 ‘계획적인’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는 모드, AI와 대전을 통해 좀 더 흥미롭게 계획력을 단련할 수 있는 모드가 그것이죠.




이렇게 피크민4는 게임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도 충분히 어떤 방식으로 게임이 돌아가는지 경험하고 익숙해질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해 뒀습니다. 시간의 제한도, 시도 횟수의 제한도 없기에 이런저런 다양한 도전을 해낼 수 있고, 부족한 계획력을 연습으로 끌어올릴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만큼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플레이를 즐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누군가는 느긋하게, 누군가는 아주 타이트하게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어요.


실패가 무서운 사람도 시도 전의 상황으로 돌아가는 되돌리기를 통해 용감하게 돌진할 수 있고, 모든 맵을 100%로 완료하고 싶은 사람도, 빠르게 다양한 맵에 도전하고 싶은 사람도, 계획력을 아주 완벽하게 만들고 싶은 사람도 모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뤄나갈 수 있죠.

피크민4, 개인적으로는 기존 시리즈에서 최선의 요소들을 가져오고, 또 그렇게 가져온 요소를 4편만의 새로운 콘텐츠와 정말 잘 섞어냈다고 생각됩니다. 그야말로 ‘피크민’이라는 알록달록한 꽃이 활짝 피어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