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콤의 신작 격투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6(이하 스파6)'가 지난 6월 출시 후 200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글로벌 흥행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신작은 시리즈 전통의 2D 격투 시스템에 초보 게이머들을 위한 간편 조작 시스템인 '모던 타입'을 채용하고, 스트리트 파이터 속 세계관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모험을 즐길 수 있는 '월드 투어' 콘텐츠를 추가하는 등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을 꾀한 모습이 특히 호평을 받았다.

이러한 관심 때문일까. CEDEC 2023 행사장에서는 스트리트 파이터6의 게임 개발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강연들을 여럿 찾아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캡콤의 레이볼리 테오도르 게임 디자이너가 '스파6 월드 투어 모드에서의 2D 격투 시스템과 3D 레벨 디자인의 관계'라는 주제로 진행한 강연은 강연장 전체가 꽉 채워질 정도로 특히 많은 개발자들의 관심이 모였다.

▲ 캡콤 레이볼리 테오도르 게임 디자이너

스파6에 새롭게 적용된 '월드 투어' 모드는 싱글 플레이어를 위한 몰입형 스토리 모드다. 플레이어가 직접 꾸민 아바타로 스트리트 파이터의 세계를 자유롭게 탐험할 수 있으며, 거리의 파이터들과 언제라도 대결을 벌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날 강연에서는 월드 투어 모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3D 상태에서 원활하게 2D 격투 배틀로 전환하는 시스템'이 중점적으로 다뤄졌다. 그리고 해당 시스템이 3D 맵 제작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되었는지도 함께 소개됐다.

스트리트 파이터6의 게임 모드는 기본적인 1:1 대전을 즐길 수 있는 '파이팅 그라운드', 온라인으로 다른 유저들과 대결하는 '배틀 허브', 그리고 혼자서 즐길 수 있는스토리와 함께 스트리트 파이터의 세계를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월드 투어'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테오도르는 월드 투어를 '카메라 시점을 자유자재로 돌리며 3D 탐색을 즐기고 어떤 NPC와도 싸울 수 있는, 2D 배틀 모드가 포함된 RPG'라고 소개했다. 이어서 개발 과정에서의 목표는 'NPC와 만난 바로 그 장소에서 실시간으로 전투가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화면이 어두워지거나 다른 공간으로 이동되는 일 없이, 그 세계에 머무르는 '심리스 배틀'을 구현하고자 한 것이다.


▲ 영상으로 보면 이런 느낌. NPC와 조우한 그 자리에서 바로 2D 배틀이 시작된다

이 과정에서 배틀 상대를 확정하고, 전투가 벌어질 공간을 특정하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공간 특정 시에는 1)지면 상태 확인, 2)가로 세로 구역 확인, 3)필요에 따라 캐릭터 위치와 축을 소폭 회전하고, 드디어 배틀이 시작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특정된 것을 개발팀 내부에서는 '배틀라인'이라고 부른다.

배틀라인이 특정되기 위해서는 충분한 넓이의 공간이 필요한데, 테오도르 개발자는 스파6에서 이 범위를 '가로 7m x 12m, 높이 5m'로 특정했다고 소개했다. 이 범위는 두 캐릭터가 대결을 펼치게 되는 중심축인 배틀라인 외에도 캐릭터가 움직일 수 있는 '파이터 영역', 이를 화면에 담기 위한 '카메라 영역', 그리고 관전자들이 배치되는 '관전자 영역'을 모두 포함한 범위라고 할 수 있다.

먼저 '파이터 영역'의 길이는 6m, 높이는 캐릭터들의 기본적인 점프 높이인 5m를 기반으로 정해졌으며, 폭은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에서 가장 큰 축에 속하는 캐릭터인 장기에프가 더블 래리어트 기술을 사용할 때 오른쪽 주먹과 왼쪽 주먹까지의 폭을 기준으로 3m로 결정졌다.

'카메라 영역'은 파이터 영역으로부터 약 9m 떨어진 장소를 기준으로 좌우 0.5m의 여유 공간을 더 할당했고, '관전자 영역'은 배틀 성립의 필수 조건이 아니기에 최소한으로 제한됐다. 실제로 게임 내에 관전자 공간을 마련하기 어려운 경우엔 관전자들이 모이지 않고 게임이 진행되기도 한다. 이렇게 결정된 배틀 성립을 위한 최저 기준이 바로 '가로 7m x 12m, 높이 5m'인 셈이다.

▲ 2D 배틀이 성립하려면 일단 배틀라인을 특정해야 한다

▲ 스파6에서 개발팀이 정한 배틀 성립을 위한 최소한의 범위는 '가로 7m x 12m, 높이 5m'다.

이외에도 배틀 성립을 위한 조건이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지면 자체가 수평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플레이어 모델의 중심 좌표 위치와 지면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만약 고저차가 있는 공간에서 2D 배틀이 성립되면 중심 좌표가 계속 흔들리고, 판정이 달라지는 경우가 생긴다. 테오도르 개발자는 지면에 굴곡이 있을 경우 내 캐릭터는 분명 상대 공격에 닿지 않았지만, 판정이 어긋나서 피해를 입게 되는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하게 될 것이라며, 이러한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 배틀 구역의 지면을 단차 15cm 이내의 수평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 공격 판정이 들어가는 범위와 캐릭터 모델링의 범위가 일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 지면에 굴곡이 있을 시 모델링과 판정 범위가 달라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외에도 월드 투어 모드의 '3D와 2D의 보여지는 모습이 일치하는 심리스 배틀'이 어디에서나 가능하려면, 3D와 2D 양쪽에 모두 적용할 수 있는 콜리젼이 필요하다. 테오도르는 크게 카메라가 멈추는 것과 통과하는 판정의 두 가지로 나누어 배경을 만들었고, 3D에서 투과할 수 있는 것이라면 2D에서도 투과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만약 파이터 영역 내에 콜리전이 남아있다면 배틀이 종료됐을 때 다시 생성되어 캐릭터와 충돌하는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처음부터 사라지게 했고, 카메라 영역에 있는 콜리전은 파이터 영역 내의 캐릭터와 절대 충돌하지 않으므로, 3D 규칙상 투과할 수 있는 것들은 그대로 남기고 나머지만 지워지는 형태로 결정됐다.

▲ 파이터 영역에 있는 콜리전, 카메라 시야에 담기는 콜리전이 사라지는 모습

이때 투과하면 안 되는 것까지 투과해버리거나, 오브젝트가 제대로 사라지지 않는 문제가 가끔 발생할 수 있다. 테오도르 개발자는 배경의 테이블이나 의자가 사라져서 인물이 공중에 떠있거나 차량이 전부 사라지지 않아서 마치 버그가 생긴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컬링 처리 범위를 어셋별로 덮어쓸 수 있게 하거나 처리 범위를 하나로 묶는 등 별도의 노력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 오브젝트가 어색하게 사라지거나 사라지지 않는 문제를 줄일 수 있게 됐지만, 많은 양의 어셋에 일일이 작업을 해줘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했다고 설명했다.

▲ 콜리전 작업 중 너무 많이 지워지거나, 너무 안지워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 어셋마다 별도의 작업을 가해 문제는 해결했지만, 작업량은 배가 됐다

가로 7m x 12m의 전장을 어디서든 성립시키기 위해 `처음부터 길을 넓게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이러면 오브젝트와 오브젝트 사이의 공간이 너무 벌어져 거리 전체가 텅 비어있는 느낌이 들게 된다. 이에 테오도르 개발자는 오브젝트가 꽉 채워져 있는 아주 좁은 길도 함께 제작했다고 소개했으며, 7m x 12m의 공간을 하나도 만들어낼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아주 좁은 길이라도 특정 오브젝트 몇 개를 전투 시에 비워내는 식으로 작업하면 다양한 각도로 여러 개의 배틀라인을 만들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 다양한 오브젝트고 꽉 채워진 느낌을 주는 '차이나타운' 에리어

▲ 좁은 통로라도, 전투를 위한 충분한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

앞에서 전장의 최소 조건으로 높이 5m를 제안한 이유도 소개됐다. 바로 월드 투어 모드에서는 천장이 존재하는 실내에서도 전투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테오도르 개발자는 처음엔 높이 기준 12m를 계획했지만, 한 층의 층고가 12m에 달하는 건물을 만들 경우 보이는 모습이 현실과 동떨어져 어색해보일 수 있으므로, 높이 점프하는 기술을 사용할 때도 캐릭터 모델이 천장을 뚫고 올라가지 않도록 별도의 설정을 추가했다고 설명했다.

▲ 각 층의 층고가 12m인 건물은 보기에도 어색해보일 수 밖에 없다

▲ 건물 내부에서의 스크류 파일 드라이버의 높이를 제한하는 등, 별도의 설정을 추가했다

평평한 바닥을 만들기 위한 요철 한도 15cm 기준에 대한 예외 상황도 소개됐다. 최대 30cm의 굴곡이 생기더라도, 중간에 단차가 있어서 15cm씩 2단에 걸쳐 올라가는 경우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만약 도로의 연석 표현처럼 부득이하게 30cm 이상의 단차가 생기는 경우라면, 배틀라인이 연석을 가로지르는 대신, 연석을 기준으로 도로 아래, 또는 인도에 만들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 2단에 걸치는 완만한 경사는 허용 범위에 들어간다

▲ 부득이한 요철 표현이 있는 경우에는 요철을 기준으로 배틀 영역이 지정되는 식

여기까지의 조건을 모두 충족하더라도, 월드 내에는 여전히 굉장히 좁은 지역이나 고개, 언덕 같은 '배틀이 불가능한 영역'이 남아있다. 테오도르 개발자는 시나리오 배틀이나 과거작의 오마주, 또는 중요 NPC의 관전을 표현해야 하기 위해 `배틀이 불가능한 영역`에서의 전투를 가능케 해야 했다며, 이를 위해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도 함께 반영했다고 소개했다.

첫 번째 기능은 '고정된 배틀라인'이다. 스토리상 똑같은 장소에서 배틀이 이루어지도록, 컷신에 이어 자연스럽게 배틀로 연결시키는 방식이다. 이는 미션이나 NPC, 장소를 묶어서 유용하게 사용되는 기능이다.

두 번째 기능은 '테이블식 배틀라인'이다. 배틀이 불가능한 장소에서 배틀이 발생해도, 사전에 정해둔 라인으로 자동으로 이동하는 데이터를 만들어두는 식이다. 테오도르 개발자는 이것이 가능하려면 장소 전체에 배틀라인 데이터를 만들고, 생성 전용 콜리전을 작성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언덕, 경사면에 대응하기 위해선 캐릭터를 경사면 가까이에 있는 수평 구간으로 날려보낼 필요가 있는데, 테오도르 개발자는 캐릭터가 이상한 곳으로 날아가버리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가능한 게임 내에 등장하는 언덕이나 계단 등 경사면의 길이를 줄이는 식으로 대응했다고 소개했다. 이러한 개발팀의 고민을 통해 스파6 월드 투어에서는 모든 장소에서 배틀이 성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신규 시스템으로 '배틀이 불가능한 장소'에서도 배틀이 성립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규칙들을 모두 적용한 실제 맵 작성 과정도 소개됐다. 먼저 기본적인 플레이 흐름이나 구역 개요, 배틀 에어리어를 상정한 맵의 평면도를 만들고, 오브젝트나 지형의 사이즈감이나 레이아웃, 배틀 에어리어를 확보하는 '기획 모델' 과정을 거쳐 모든 오브젝트가 배치된 본 모델을 만드는 식이다. 마지막 본 모델 과정에서는 콜리전 확인부터 앞서 수차례에 걸쳐 확인한 배경 만들기 규칙들이 빠짐없이 잘 반영됐는지 최종적으로 확인하게 된다. 테오도르 개발자는 이후에도 여러 검증 작업이 필요하지만, 이로써 기본적인 스파6의 맵 개발 작업이 완료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3D와 2D 양쪽이 동시에 존재하는 플레이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배 이상의 작업량이 필요했고, 기획 단계에서부터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예측할 필요가 있었기에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을 통해 독창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며, 게임 개발자로서 감동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과정이었다고 이야기했다. 끝으로 테오도르 개발자는 함께 고생한 월드 투어 모드 하시모토 유스케 기획자, 미즈마 야스오 배틀 프로그래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발표를 마쳤다.


▲ 맵 제작은 평면도 구성을 시작으로 배틀 구역을 확보하는 기획 모델을 거쳐,

▲ 마지막으로 오브젝트를 배치하며 세부 규칙을 확인하면, 드디어 하나의 맵이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