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액션과 연애 시뮬레이션, 어떻게 보면 서로 양극단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은 정도로 동떨어진 두 개의 장르를 하나로 결합한 신작 `이터나이츠`가 지난 12일에 정식 출시됐습니다.

이터나이츠는 국내 인디 게임 개발사 스튜디오 사이에서 개발한 신작으로, 세계 멸망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청춘남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목숨을 건 전투가 이어지는 위험한 환경에서 역경을 이겨내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면, 그 속에서 사랑이 피어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자연의 순리가 그렇다고 한들, 이것을 하나의 게임으로 담아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각각의 장르가 서로 다른 지향점을 바라보는 만큼, 어설프게 만들면 어느 쪽의 취향도 제대로 충족시킬 수 없는 어중간한 작품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인데요. 스튜디오 사이의 신작 이터나이츠는 감동이 있는 스토리와 다채로운 콘텐츠로 충분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보여주었지만, 액션과 연애 시뮬레이션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지는 못했습니다.

게임명: 이터나이츠 (Eternights)
장르명: 연애 액션
출시일: 2023. 9. 12.
리뷰판: 출시 빌드
개발사: 스튜디오 사이
서비스: 스튜디오 사이
플랫폼: PC(Steam, epic), PS
플레이: PC


이터나이츠에서 '액션'을 기대했다면?


먼저 이터나이츠의 '실시간 액션' 요소에 집중해서 이야기해볼까합니다. 이터나이츠의 게임 플레이는 '일상' 파트와 '전투' 파트로 양분되며, 일상 파트에서 동료와의 유대를 통해 획득한 재화로 전투에서 활용하는 스킬, 능력치를 강화하는 식입니다. 이터나이츠에서 실시간 액션으로 진행되는 전투는 게임 전체 볼륨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있게 그려지기 때문에, 전투 자체로도 충분한 손맛과 재미를 제공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터나이츠 개발진도 이 부분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전투 파트에 깊이를 더하는 여러 요소를 담아낸 모습입니다. 먼저 실시간 3D 액션 게임의 필수 시스템이 된 록온과 회피, 패링이 있고, 강력한 마무리 공격으로 큰 대미지를 넣는 콤보, 커맨드로 발동하는 네 가지 서브 스킬, 동료들의 힘을 빌리는 여섯 가지 액티브 스킬과 상성을 찌르는 엘리멘탈 스킬까지, 전투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정말 다양한 조작이 등장합니다.

커맨드로 발동하는 서브 스킬은 평타 콤보 사이의 공백을 메꿔주는 훌륭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동료들이 구사하는 스킬은 회복부터 방어막, 화력 보조와 둔화 등 다양한 효과를 가집니다. 각각의 스킬은 저마다 다른 효과들은 물론, 발동 이펙트 역시 전부 다른 모습이기에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많은 액티브 스킬을 갖추게 되는 후반부에는 더 복잡한 스킬 조합을 전략적으로 활용해볼 수 있게 되고, 다음은 어떤 스킬이 해금될 것인지 기대하게 됐죠.

하지만 실제 이터나이츠의 전투는 상당히 단순하고, 반복적인 인상이 강합니다. 회피의 성능이 너무나도 월등하고, 보스의 공략 방식이 '반대 속성 공격으로 보호막 부수기' 하나로 획일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초반부엔 다양한 전투 스킬을 하나씩 사용해보는 것부터 마치 리듬 게임처럼 타이밍을 맞추는 보호막 부수기 패턴까지 모든 것이 신선하게 느껴지지만, 막바지까지 달라지지 않는 전투 양상에 점점 지쳐버릴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 간단한 상성 관계를 파악하는 것 외에, 전투에서는 크게 고민할 일이 없다

다행히 이터나이츠는 세 단계로 세분된 난이도 선택지를 제공합니다. 언제든 옵션에서 난이도를 변경할 수 있으므로, 전투가 너무 쉽다고 느껴진다면 `전문가 모드`를 고르고, 전투가 너무 어렵거나 빨리 넘기고 싶다면 `초보자 모드`로 변경하면 됩니다.

플레이어의 입맛대로 난이도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긍정적인 부분이지만, 일부러 전문가 모드를 골라 불필요한 고행을 즐기려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는 의문이 생깁니다. 스킬 강화에 사용되는 `검은 정수` 외에 경험치 같은 전투 보상이 전혀 없는 수준이거든요. 전투에 공을 들여도 그만큼 돌아오는 보상이 없다보니, 1회차 엔딩을 본 후에 해금된 새게임+에선 난이도를 더 올리는 대신 '초보자 모드'를 선택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죠.

이터나이츠는 있을만한 것은 다 있는, 꽤 다채로운 전투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액션 게임입니다. 하지만 스킬 밸런스와 보상 등 레벨 디자인 부분에서 플레이어에게 제대로된 동기를 부여하지 못했고, 결국 전투가 스토리를 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진행해야 하는 부차적인 콘텐츠가 되어버린 상황입니다. 만약 캐릭터와 데이트를 즐기며 호감도를 쌓아가는 연애 시뮬레이션 요소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터나이츠에서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 장비 파밍, 레벨업 등 성장 요소가 더 있었다면 전투가 더 즐거웠을지도…

전투는 다소 반복적이라고 느낄 수 있지만, 게임 속 전투 파트 전부가 단조롭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전투 사이사이 다양한 미니게임이 수록되어 분위기를 환기해주고 있기 때문이죠. 미니게임은 막혀있는 길을 뚫고 나아가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하는데요. 단서를 모아서 답을 찾아내는 수수께끼나 조각 맞추기 같은 퍼즐부터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레이싱, 순서에 맞춰 동작을 취하는 리듬 액션, 대적할 수 없는 강적을 피해 계속 도망치는 액션 어드벤처 등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미니게임인 만큼 단편적으로 마무리되는 얕은 수준에 그치지만, 하나하나가 스토리 진행과 맞물려 전체적인 진행에 몰입감을 더해줍니다. 전체 게임 플레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실시간 액션 전투에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엔딩 이후 '이터나이츠'라는 게임 전체에 대해 긍정적인 인상이 더 많이 남는 것은 이러한 요소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 단순하지만, 각기 다른 매력의 재미를 보여주는 '미니게임'

▲ 스토리 사이사이에 배치된 미니게임이 전체적인 구성을 풍성하게 만듭니다



이터나이츠에서 '연애 시뮬레이션'을 기대했다면?


이번엔 '연애 시뮬레이션' 키워드로 게임을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이터나이츠는 앞서 살펴본 전투 페이즈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연애 시뮬레이션 장르의 문법으로 채워진 타이틀입니다. 주로 대화를 통해 이야기가 진행되고, 어떤 선택지를 고르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캐릭터 능력치, 또는 호감도가 변화하는 식이죠. 실시간 액션만 바라보고 게임을 선택한 이들은 쉽게 익숙해지기 어려운 부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터나이츠의 일상 파트는 연애 시뮬레이션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라도 편하게 스토리에 몰입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전략을 활용했습니다. 장르 특성상 전투 외의 게임 플레이는 아주 정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데요. 이때 과장된 캐릭터 표정 연출이나 카메라 시점 전환, 그리고 성우 더빙이 이야기에 활기를 더해줍니다. 저도 단순히 지문을 읽는 방식의 스토리 진행이 등장하면 일단 `스킵` 버튼을 찾고 보는 타입이지만, 메인 스토리 전체에 성우 더빙이 적용되어 있으니 생각보다 더 몰입해서 이터나이츠의 스토리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데모 공개 당시엔 초반부 스토리의 대사들이 세계멸망이라는 절체절명의 상황을 앞둔 것치고는 너무 무게감 없이 진행된다는 평가도 있었는데요. 가끔 `이 상황에 이게 맞나?` 싶은 매끄럽지 못한 대사가 하나씩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스토리 구성은 꽤 좋은 밸런스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무겁고 진중한 분위기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확실히 어두워지고, 필요할 땐 가볍고 유쾌한 대사로 분위기를 환기해주는 식이었죠. 여기에 가끔 등장하는 2D 일러스트와 2D 애니메이션 컷신이 이야기의 몰입을 크게 더해주고 있습니다. 3D 캐릭터 모델링과 함께 보면 조금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크게 신경이 쓰이는 수준은 아니었고요.

▲ 연애 시뮬레이션 장르의 클리셰라고 할 수 있는 여러 장면들이 등장하고,

▲ 중간중간 삽입된 애니메이션 컷신은 이야기에 몰입을 더해줍니다

물론 이터나이츠에서 깊이 있는 `미연시`를 기대한 게이머라면 다소 아쉽게 느낄 수 있을 만한 부분들도 존재합니다. 같은 상대를 공략하더라도 선택지에 따라 결말의 방향성이 달라지는 분기 시스템이 세분되어 있지 않고, 달력 시스템을 채용했지만, 게임의 배경이 기차 내부로 한정된 만큼 다양한 활동이 그려지지는 않는 편이며, 메인 연애 상대 중 하나로 남성 캐릭터 `요한`이 등장하여 선택의 폭이 한정된다는 점 등입니다.

전투 성능을 극대화하려면 요한의 호감도를 높여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데, 차라리 친구 포지션의 캐릭터 `차니`와의 관계처럼 우정을 쌓는 모습으로 표현하고, 메인 히로인들과 다른 매력을 지닌 여성 캐릭터 `아리아`를 공략 대상 중 하나로 추가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동성 간의 연애를 그리는 것도 물론 좋지만, 차니와 야한 농담을 주고받던 초반부의 흐름과는 너무나도 방향성이 달라지기 때문에, 해당 표현에 면역이 없는 이들이라면 다소 어렵게 느낄 수 있을 것으로 보였는데요. 게임이 너무 남성향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일부러 의식한 부분이라면, 처음부터 여성 주인공 캐릭터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공략 상대에 차니를 추가해서 여성 3, 남성 2의 성비를 맞추는 것도 좋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 플레이어의 성향에 맞춰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터나이츠의 연애 시뮬레이션 요소를 플레이하며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플레이어가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에 선택했던 여러 요소들이 게임 후반부에 다시금 언급되며, '내가 직접 이야기를 만든다'는 느낌을 제대로 전달해주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야기의 결과는 같고 단순히 대사만 바뀌는 수준에 그치는 것도 많지만, '그때 만약 다른 선택을 했다면 여기서 어떤 대사가 나왔을까?'하는 궁금증도 생기고, 자연스레 다회차를 생각해보게 하는 훌륭한 동기부여 수단이 됐습니다. 충분히 몰입할 수 있는 잘 짜여진 캐릭터 서사에 플레이어의 작은 선택들이 소소하게 반영되는 모습까지 더해지니, 자연스레 엔딩에서도 긴 여운과 감동이 남게 됩니다. 어쩌면 연애 시뮬레이션 장르의 게임을 플레이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런 것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 플레이어의 선택이 다시금 언급되는 순간은 더 깊게 기억에 남습니다

▲ 사소한 요소 하나하나가 모여 캐릭터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집니다



이터나이츠는 '실시간 액션' 하나만 바라보고 플레이하기엔 여러모로 아쉬운 부분이 많은 게임입니다. 하지만 여러 장르를 결합한 미니게임과 시뮬레이션 요소, 몰입할 수 있는 스토리 등 다양한 요소들이 하나로 더해져 결과적으로는 꽤 괜찮은 구성을 이루었고, 엔딩까지 지루할일 없이 쭉 달릴 수 있는 게임이 됐습니다.

'실시간 액션'과 연애 시뮬레이션을 결합하려는 시도 자체는 참 신선하고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연애 시뮬레이션은 해당 장르가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 선뜻 접하기 어려운 장르인데, 액션이 더해졌기에 더 대중적으로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본격적인 연애 시뮬레이션 장르를 기대했던 이들이라면 아쉬움이 남을 수 있는 조합이었지만 말이죠.

1인 개발로 이터나이츠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스튜디오 사이의 유재현 개발자는 이번 경험을 토대로 캐릭터와 유저가 교감할 수 있는, 더 일신한 스토리 게임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전하기도 했는데요. 이터나이츠를 통해 개선할 수 있는 부분들이 분명하게 드러났던 만큼, 여러 면에서 확실한 변화가 반영될 스튜디오 사이의 후속작을 계속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