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스파이더맨'

지난 2018년 출시된 '마블 스파이더맨'은 너무나 명확한 목표 의식을 지니고 만들어진 게임이었다. 스파이더맨의, 스파이더맨에 의한, 스파이더맨을 위한 게임. 개발사인 인섬니악은 게임에 불필요한 요소를 완전히 배제하고, 게임의 모든 부분을 오로지 '스파이더맨'이라는 캐릭터에 맞춰 설계했다. 심지어 오픈 월드 게임에 흔히 들어가는 수집형 미니 게임마저도, '스파이더맨'이라는 캐릭터, 그리고 그 세계를 설명하기 위한 장치로서 기능했다.

이와 같은 인섬니악의 설계는 적중했다. '마블 스파이더맨'은 온갖 판매기록을 경신하면서 성공적인 흥행을 거두었고, 인섬니악은 소니의 14번째 자회사 스튜디오로 흡수되어 새로운 타이틀을 만들 동력을 얻었다. 게이머도, 소니도, 인섬니악도 모두 웃은 해피 타임이었다.

문제는, 한 달 후 출시될 후속작인 '마블 스파이더맨2'다. 앞서 말했다시피, '마블 스파이더맨'은 '스파이더맨'이라는 캐릭터에 완전히 집중해 개발된 작품이기에, 후속작의 태생적 한계가 정해져버렸다. 게임의 무대가 크게 바뀌지도 않고, 등장 인물이 바뀌지도 않으며, 서사 라인까지 이어지는 상황에서 어울리지 않는 큰 변화는 오히려 기존 게이머층의 혼돈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이머는 새로운 무언가를 기대하기 마련이며, 혁신이 없는 후속작은 아무리 좋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해도 전작의 그늘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과연 무엇을 더해졌을까? 9월 12일, LA에서 진행된 '마블 스파이더맨2'의 미디어 프리뷰는, 이 문제에 대한 인섬니악의 답안을 확인할 좋은 기회였다.




두 명의 주인공, 하나의 서사

이번 작품에서 인섬니악이 가장 강하게 홍보하는 부분은 '피터 파커'와 '마일즈 모랄레스'가 모두 플레이어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것. 실제로 게임 내에서도 스킬 트리가 '피터 파커', '마일즈 모랄레스', '공용'으로 구분되어 있고, 두 캐릭터 모두 수트를 선택할 수 있는 등 두 주인공을 골고루 다루기 위한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다.

개발진은 두 주인공을 원하는대로 바꿔가며 플레이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원하는 대로까지는 아니며, 각각의 서사가 있어 진행에 따라 플레이 캐릭터가 고정되기도 한다. 피터가 정보를 수집해 마일즈에게 전달하면 마일즈가 그 정보를 바탕으로 탐색에 나선다거나, 반대가 되는 식이다.

▲ 그 와중 눈 돌아가는 연출은 여전하다

문제는, 두 주인공의 감정선이 일치하지 않아 게이머의 몰입이 다소 흔들린다는 점이다. 피터는 피터대로의 목표와 행동 동기가 있고, 마일즈는 또 마일즈대로의 이유가 있다. 피터는 모종의 이유로 심비오트를 받아들인 후 매우 맹목적인 행동을 보이며, 마일즈는 피터를 도우면서도 자신의 목표를 늘 의식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게이머는 비장한 피터와 아쉬운 마일즈의 입장을 번갈아 경험해야 한다.

결국, 게이머가 느끼는 경험은 '피터 파커'라는, 혹은 '마일즈 모랄레스'라는 어떤 특정한 주인공의 이야기가 아닌, 이 두 사람의 엇갈린 목적과 동기가 하나의 지점에서 만나 만들어내는 시너지에 집중되어 있다. 이른바 '버디물'을 보는 느낌에 가까운데, 이야기 자체의 재미는 풍성하지만, 둘 중 어디에도 100% 몰입할 수 없다는 점은 개인적으로 다소 아쉽게 느껴지긴 했다. 데모 플레이 분량이 짧은 만큼 이 둘의 이야기가 어떻게 엮여 있고, 어떻게 마무리되냐에 따라 감상도 바뀔 수 있겠지만, 일단 지금까지의 감상은 그렇다.



전작의 액션도 대단했다, 그런데 더 훌륭해졌다.


'서사'부분이 전작에 비해 달라진 점이라면, 게임의 근간 중 하나인 '액션'은 달라지지 않고 더 월등하게 업그레이드되었다. 전작 대비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세 가지인데, 그중 첫 번째는 회피 일변도의 방어 패턴에 '패리'가 생겼다는 것이다. '패리'는 붉은색 인디케이터가 뜨는 강한 공격에 맞춰 L1을 누름으로서 발동할 수 있는데, 단순 방어를 넘어 적에게 큰 허점을 만들어낸다. 이는 보스전에서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보스의 강력한 패턴 공격을 파훼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때문에, 전체적인 플레이 감각도 전작의 액션에 소울라이크 특유의 플레이 스타일이 더해진 형태에 가까워졌다. '마블 스파이더맨'의 전투는 기본적으로 '통통 튄다'라는 느낌이 어울릴 정도로 경쾌한 분위기인데, 여기에 묵직함이 더해졌다 할까? 정상인을 훌쩍 뛰어넘는 힘을 지니고도 힘보다는 민첩함에 초점을 맞춘 '스파이더맨'의 특색이 경쾌함의 이유였겠지만, 심비오트가 더해지면서 묵직함도 충분한 설득력을 얻었다.

▲ 이전엔 없었던 '패리'

두 번째 변화는 L1+버튼으로 발동되는 스킬들이다. 전작의 전투가 커맨드로 구성된 격투 + 웹슈터를 비롯한 가젯들로 이뤄졌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쿨다운을 지닌 강력한 기술들이 추가되었는데, 기술 하나하나가 전투 중 위급상황을 탈출할 수 있는 일종의 '메가크러시'처럼 활용된다.

동시에, 전투 환경도 더 복잡해졌는데, 전작은 대부분의 전투가 인디케이터를 확인하면서 회피만 잘 눌러주면 피해 없이 전투를 마무리할 수 있었지만, 이번엔 기본적으로 등장하는 적의 수도 늘었을뿐더러 플레이어의 공격, 방어 수단을 카운터치는 요소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강력한 기술이 추가되었음에도, 전투가 전작에 비해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정도다.

▲ 때리고 피하기에서 끝이 아니다.

마지막 변화는 '수트 파워'로 분류되던 필살기(L3+R3)가 수트에 따라 바뀌지 않고, 말 그대로 '필살기'가 되어버렸다는 것. 피터의 '심비오트 서지'는 일정 시간 동안 모든 공격이 일격필살의 마무리 기술이 되는데, 이 게임이 지향하는 액션이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정리하면, '마블 스파이더맨2'의 전투는 전작에 비해 더 복잡해졌지만, 훨씬 더 깊어졌고, 동시에 캐릭터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훨씬 즐거워졌다. 게임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머리싸매고 구석구석을 찾는 와중에도, 전투의 순간만은 이 모든 것을 잊고 그냥 있는 그대로 즐겼을 정도다.

▲ 호쾌하기 이를데 없는 심비오트 서지



고층 빌딩 없는 퀸즈는 어떻게 다녀야 하나

과거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 영화가 개봉했을 때, 극장에서 같이 영화를 보고 나오시던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쟤는 뉴욕이니까 저러고 다니지 서울이었으면 여의도에서만 뱅뱅 돌았을 거다"

이상할 정도로 뇌리에 박힌 이 말은 전작을 플레이할때도 종종 더 생각났는데, 빌딩 숲을 지날 때면 자유롭게 날아다니던 스파이더맨이 하나의 건물도 없는 센트럴 파크에 들어서면 너무나 부자연스러운 각도로 나무에 거미줄을 걸고 코어에 힘을 잔뜩 준 채 비실비실 날아다녔기 때문이다.

▲ 이쯤되야 거미줄도 치고 하는거지

그리고, 이번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새로 추가된 '브루클린'과 '퀸즈' 지역은 기존 무대였던 맨해튼에 맞먹을 정도로 크기 때문에 게임의 전체 배경은 전작 대비 2배 정도 커졌다. 문제는, 이 지역 중 넓은 영역이 단층 주택으로 가득한 주거 단지이기에 도무지 거미줄을 걸고 날아다닐 건물이 없다는 거다.

인섬니악은 이에 대한 방책으로 '웹 윙'을 도입했다. 흔히들 알고 있는 '윙수트'의 개념을 도입한 건데, 게임 내에서는 팔을 펼치면 겨드랑이에 피막이 펼쳐지며 활공을 시작한다. 수트에 따라서는 등에서 날개가 펴지기도 한다. 비행 감각은 '배트맨: 아캄 나이트'의 망토 활강의 빠른 버전에 가까운데, 게임 상에서는 피막이 워낙 작게 나오다 보니 그냥 비행 능력자처럼 날아다니는 모습에 가깝다.

▲ 조금 더 커도 됐을법한 겨드랑이 날개

이에 따라, 맵 곳곳에도 다소 변화가 가해졌다. 웹 윙을 위한 상승 기류가 곳곳에 존재하고, 강을 건너는 구역에는 하강 없이 이동 가능한 '윈드 터널'이 존재한다. 재미있는 점은, 기존의 이동 수단이었던 '웹 스윙'과 신규 수단인 '웹 윙'중 어느 것도 비교우위에 놓여 있지 않다는 점이다. 고도를 유지하면서 빠르게 이동하기 위해서는 두 수단을 적절히 섞어 줘야 최대 효율이 나오기에 결국 플레이어는 스윙와 윙을 번갈아가며 활용하게 된다. 물론 그것들로도 부족할 정도로 맵이 커졌기에, 지역을 지정하는 빠른 이동 기능도 추가되었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이렇게 넓은 세계에서도 여전히 사이드 미션들은 전작과 비슷한 구조를 띄고 있다는 것. 작은 부분에서 조금씩 바뀌긴 했지만, 비둘기 대신 드론을 쫒고, 사람을 구하는 것에서 끝났던 미션이 이제 구급차까지 데려다 주어야 하는 정도의 차이다.

▲ 가방 대신 로봇모으기(...)가 생겼다



익숙하게, 그리고 더 깊게

정리하면, '마블 스파이더맨2'에 혁신은 없다. 변경점은 예측할 수 있는 수준이고, 무대는 절반이 그대로인 상황에서 두 배로 크기만 커졌다. 이제는 사멸하다시피 한 '확장팩'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수평적 확대. 그러나 부족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게임이 가져야 할 요소, 개발사가 보여주고자 하는 바, 그리고 게이머가 원하는 바가 모두 일치하고, 이러한 조건 내에서는 부족함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마블 스파이더맨2'는 전작이 그러했듯, 모든 초점이 '스파이더맨'에 맞춰져 있다. 상호작용 가능한 NPC나 건물 내부 구성, 다양한 선택지 따윈 없지만 아크로바틱한 전투와 사정없이 나불대는 주인공, 그리고 매력적인 악당들이 가득하다.

게임의 모든 것을 파악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한, 짧은 데모 버전의 체험일 뿐이지만, '마블 스파이더맨2'가 지향하고자 하는 바는 너무나 명확했다. 전작처럼, 그러나 더 깊고 흥미롭게. 그것만으로도, '스파이더맨'의 팬들에겐 충분히 매력적인 게임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