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TGS2023에 앞서 열린 505게임즈의 미디어 행사인 '퓨처 데이즈' 행사에서 래빗 앤 베어 스튜디오가 개발중인 '백영웅전'의 실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환상수호전의 개발진들이 다시 모여서 만드는 정신적인 계승 타이틀이자, 실제로도 100여명 이상의 영웅들이 등장하는 게임. 고전 JRPG의 향수를 부르면서도 2D-3D의 조합을 이루는 턴제 전략 RPG이기에, 고전 JRPG를 좋아하는 입장에선 기대하고 있는 게임이기도 했다.

현장에서 만난 시연 버전은 일반적으로 게임쇼용으로 꾸며진 시연 빌드라기보다는 지금까지 개발된 버전의 통합으로 일정 시간만 플레이하도록 제한하는 형태로 느껴졌다. 실제로 시연을 2시간 가까이하면서도 고작 두 개의 보스만 만날 수 있었을 정도로 그냥 게임의 초반부를 즐긴 느낌이 강했다.

우선 본격적인 스토리와 이야기를 하기 전에, 백영웅전의 배경 자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배경이 되는 올란 대륙은 다양한 가치관과 문화를 가진 나라들이 존재하는 세계이며, 인간뿐 아니라 다양한 종족들이 어울려 사는 곳이다. 이들은 '마도 렌즈'를 활용하여 서로 돕기도 하고 패권을 다투기도 하는 만큼, 세력의 중심이자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것은 마도 렌즈에 얽힌 이야기다. 아마 '백영웅전: 라이징'을 해본 유저들은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마도 렌즈를 적극적으로 연구하는 가르디아 제국은 좀 더 강력하고, 특별한 마도렌즈를 위해 전 세계로 탐색대를 보내게 된다. 플레이어이자 주인공인 '노아(Nowa)'의 여정은 이 탐색부터 시작하는 셈이다. 마도 렌즈 조사를 위해 가오우, 미오, 량으로 이뤄진 파티는 제국과의 공동 탐색을 준비한다.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주인공인 세이와 그의 부관인 힐디와 함께 마도 렌즈 탐색 작전을 시작하게 된다.

▲ 주인공 노아와 세이의 탐색 미션이 이뤄지는 초반부. 스토리상 극적인 큰 굴곡은 없는 편.

▲ 캐릭터 표정과 성우 연기, 그리고 2D 도트 캐릭터들의 움직임도 있어서 대화가 심심하지는 않았다.

이 탐색 과정 자체가 게임의 튜토리얼로 봐야 할 듯 하다. 전투와 파티 구성 등에 대한 별다른 안내도 없어도 JRPG를 해 본 유저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을 느낌으로 직관적인 편. 그렇지만 시작부터 만나는 적들에게 전열의 캐릭터가 한 대라도 맞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진다. 아마 마지막 밸런싱을 하고 나면 낫겠지만, 시연 버전에서는 일반 몬스터와의 전투에서 한 대만 맞아도 전열의 캐릭터들이 HP가 절반 이상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금방금방 레벨업을 하면서 쉽게 찍어누를 수 있게 됐지만, 초반에는 약간 당황스럽다.

백영웅전의 파티 구성은 재밌게도 총 10명이다. 전열에 3명, 후열에 3명을 배치하고 그 뒤에는 1명의 서포터가 자리하며 나머지 3명은 'Attendant'다. 시연 버전에서는 배치를 다 해볼 수 있을 만큼의 인원이 동료로 들어오지는 않으며 실제로도 전투에서는 전열과 후열이 가장 중심이기에, 실질적으로는 6인 전투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제대로 게임을 즐겨볼 수 있을 때 완벽한 파티의 조화와 서포터 이외의 군들의 역할을 체크해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반적으로 적들과의 전투는 랜덤 인카운터로 진행된다. 스토리와 연출 진행상으로 강제 인카운터가 되는 경우가 있지만, 일반적인 적들은 대부분 다 랜덤 인카운터로 진행된다. 전투에 돌입하면 매 턴마다 플레이어가 캐릭터들에게 행동을 지정하고 정해줄 수 있으며, 최종적으로 모든 행동을 승인한 이후에 캐릭터들이 각자 지시받은 행동을 수행하는 식이다.

이 행동 과정과 우선 순서는 플레이어가 하는 행동과 민첩성에 대한 영향력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전열과 후열의 큰 차이는 없으나, 일반적으로 당연하게도 전열이 더 많은 공격을 받는 편이다. 그래서 특히나 전열에 배치된 캐릭터들의 HP와 행동 순서를 세심하게 챙겨줄 필요가 있다. 캐릭터들은 각자 일반 공격과 룬 렌즈(스킬), 그리고 방어 및 특수 행동(회피, 실드 등)이 존재하고 아이템을 사용까지의 행동을 할 수 있다.

여기서 룬 렌즈를 활용한 행동은 일반적인 '스킬'인데, 이러한 룬 렌즈 스킬을 쓰는 데에는 여러 자원이 소모된다. 자동으로 회복되지 않는 MP와 행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증가하는 SP를 활용하는 식이다. 여기까지는 꽤 일반적인 형태라고 볼 수 있지만 좀 더 깊게 들어가면 묘한 부분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전략적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불편하게 봐야 할 요소인지 고민이 됐다.

▲ 적의 행동을 알 수 없는 6인 전장이지만, 그래도 지루하지는 않다.

▲ 턴 단위로 행동과 결과가 바로 나오는 형태다. 적들의 움직임이 안보여서 아쉽다.

첫 번째는 바로 적들의 행동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 내 파티 캐릭터들의 행동은 전부 다 내가 알고 있고,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행동을 하는 지 파악이 된다. 그런데 적들의 행동에는 이 부분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HP가 줄어든 캐릭은 어쩔 수 없이 확실하게 안전한 방어를 선택했는데 오히려 아무 공격도 당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반대로 안 맞을 거라고 믿고 행동하면 맞고 풀썩 쓰러지기도 하고.

두 번째는 적의 HP가 표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추가 화력이 필요한 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물론 초반이라 캐릭터들의 성장이 매우 빠르고 그만큼 전투 척도가 크게 올라가 신경을 쓸 일은 적었지만, 보스전에서는 이게 달라졌다. 특히나 보스전들은 단순한 공방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라 특별한 '공략 요소'들이 존재한다.

첫 번째로 만나는 룬 골렘 보스의 경우는 전열과 후열 양 사이드에 특별한 엄폐물이 생겨서, 이를 활용해서 공격을 흘리면서 공략을 해야 했다. 그렇지만 보스의 공격이 광역 공격이 많고 전열만 타격하는 경우도 많아서 실질적으로는 전열은 대부분 방어행동에 치우쳐지게 되는 느낌이 강했다. 적의 행동이 예상도 되지 않고 보이지도 않으니, 패턴이 순서대로 나오지도 않았다. 결국 수동적으로 계속 숨기만 하다가 제대로 딜링도 못하는 상황이 적지 않았다고 할까.

두 번째 보스는 또 다른 포인트가 있다. 두더지처럼 생긴 이 보스는 맵에 좌, 우측에 존재하는 마도서를 읽으면 망치 공격이 발동된다. 그래서 보스가 있는 위치에 망치를 소환시키면 강력한 대미지를 주고 기절시켜 행동 1회를 무력화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보스가 숨는 '행동'까지는 보이는데, 다음 턴에 어디서 나올지는 '랜덤'이고 안보인다. 보스의 등장 위치를 '찍어서' 내가 움직여야 하고, 그조차 안되면 그냥 기도하면서 해야 한다는 뜻인데...다행히 진행 과정에서 캐릭터들의 장비를 강화하고 레벨링에 조금이라도 신경을 써서 금방 무찔러서 큰 영향은 없긴 했다, 대신 패턴과 택틱 자체는 확실히 최종 밸런싱에서 불쾌한 부분을 좀 덜어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지울 순 없었다. 물론 어차피 정식 버전도 아니고 시연 버전이라 크게 신경쓸 거리는 아니긴 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적의 행동이 보이지 않아서 예측하고 대응해야 하는 점, HP도 보이지 않는 데다가 전열과 후열의 의미가 많이 희석되어 있는 느낌은 아쉬웠다. 그렇다고 전투가 재미없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재미있고 환상수호전 느낌도 나는데 아쉬운 부분이 있을 뿐이라고 할까.

백영웅전이 마련한 턴제 기반의 전투와 기믹들은 오랜 JRPG의 팬들이라면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캐릭터들의 전투 연출은 한걸음 물러서서 보면 어색해보일 수 있으나, 실제로 게임을 하는 와중에는 크게 신경쓰이지도 않는다. 마치 연계되는 느낌이 강하고, 특정 아군들은 '히어로 콤보'를 통해 한층 더 높은 대미지를 주는 행동도 있고 예측할 수 없는 적의 움직임을 적절한 행동으로 대응하는 과정이 즐겁다. 그리고 전열의 아군이 전투 불능이 되면 후열의 아군이 그 자리를 메꾸며, 다시 부활시키면 원래 진형대로 돌아오기도 한다.

시연 버전에서는 아군의 숫자가 적어서 한정된 느낌이 있었지만, 이 게임의 이름이 '백영웅전'이라는 점을 다시 새겨보자. 100명이나 되는 아군을 다 운용하는건 오히려 스트레스겠지만, 그만큼 영웅들마다 활약할 수 있는 전략이 다르다는 뜻이 된다. 특별하게 교류되고 있는 아군의 조합을 찾아서 전투에 투입시키고, 적의 특성에 맞춰 아군을 운용하는 재미는 오히려 이 게임을 기대하게 하는 요소가 아닐까. 오히려 영웅이 정말 많기에 전략을 다채롭게 가져갈 수 있어 이러한 사양으로 전투 방식을 세팅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무시무시한 대미지로 전투 시간 자체는 길지만, 전투가 흘러가는 템포 자체는 느리지는 않은 편이다. 전투의 연출 및 사운드, 그리고 간소화를 적절하게 섞어서 템포가 느리게 느껴지지 않도록 신경을 쓴 느낌이다.

▲ 자원 소모도 거의 없었던 시연 버전의 히어로 콤보. 확실히 대미지는 좋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러한 이야기들은 잘 되었을 때의 미래를 예상하는 것 뿐이다. 그렇지만 시연 버전 자체가 '재미있었다'는 느낌은 확실히 들었다. 미디어 시연으로 여러개의 타이틀을 시연할 수 있던 505게임즈의 퓨처데이즈 행사였지만, 사실상 2시간이 주어진 시연 시간을 전부 백영웅전에 쏟아부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게임 자체가 몰입력이 있었고, 만듦새 자체가 괜찮았다. 영상으로나 지켜보는 재미는 미묘하지만 직접 플레이하는 부분에서는 몰입력이 있다고 할까.

2D와 3D의 조합으로 이뤄낸 배경과 연출은 지루함을 덜어주고, 전투에서의 사운드 이펙트와 아군의 대사가 플레이어의 흥미를 돋운다. 그래서 계속해서 재미있게 지켜보고, 전투가 끝난 후 이뤄지는 대화와 새로운 동료들의 등장이 재미있다. 백영웅전: 라이징에서 사고뭉치였던 마법소녀 멜로어도 비교적 일찍 등장해서 든든하게 아군의 화력이 되어주고, 초반부터 동료로 생각하던 이가 빠르게 이탈하기도 한다. 파티가 계속 바뀌다보면 성장의 피곤함이 있어 호불호가 있는 요소지만 신선함은 확실하다.

랜덤 인카운터로 피곤한 이들에게는 '자동'이라는 옵션이 있기에 좀 더 나을 것으로 보인다. 적과의 전투에서 자동 전투를 선택하면, 아군 모두가 알아서 최적화된 행동을 하면서 전투가 진행된다. 물론 자동으로 처음부터 끝가지 진행되지는 않고, 한 턴만 자동으로 진행하는 식이라 언제든 플레이어가 다음 턴부터 개입해서 전투를 이끌 수 있다.

▲ 시연 버전에는 전투중에 자동 개념이 존재했었다. 전투 전체가 아닌, 한 턴만 자동이다.

▲ 등장인물이 워낙에 많은 만큼, 각 인물들의 개성도 꽤 두드러지는 느낌이 있었다.

전투는 지루하지 않고, 성우들의 연기가 좋은 편인 게임이라고 할까. 그런데 등장하는 인물이 무려 100명이 넘도록 계획됐다. 그래서 '백영웅전'이라고 이름 지어졌다. 수많은 인물들이 대립하고 협력하며 펼쳐내는 군상극. 세 명의 주인공이 어떤 이야기를 보여줄지가 기대는 되지만 걱정도 된다. 등장 인물들이 많은만큼 이야기의 중심을 잘 잡지 못하면 이도저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하는 이야기밖에 되지 못할 테니까.

개발진도 이러한 부분을 인지하고 있었다. 너무 많은 인물이 등장하면 서사의 중심을 잡기 어려울 것 같다는 질문에 "일부 캐릭터는 메인 스토리와 관련이 있지만, 다른 캐릭터는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동료로 삼을 수 있는 형태로 구성 중"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그리고 이러한 캐릭터에는 플레이어가 과거와 관계를 엿볼 수 있는 고유한 이벤트와 시스템이 들어가는 형태가 제작된다. 메인 이야기의 확실한 틀을 잡고,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가 메인 스토리를 이끄는 것이 아닌 형태라고 할까.

오히려 캐릭터들의 연출이 엄청나다고는 할 수 없다. 딱 '백영웅전: 라이징'에서의 CJ정도가 가장 많은 느낌이라고 할까. 그렇다고 해서 심심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성우들의 연기가 잘 녹아들어있는 캐릭터들의 대사,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는 초상화의 조화가 괜찮다. 초상화가 심심할 때에는 픽셀아트 형태의 캐릭터가 심심하지 않게 받쳐주고, 확실히 임팩트가 필요한 부분에서는 캐릭터들의 바뀌는 표정과 연기가 아쉬움을 메꾸고 있다.

▲ 보스전 조우/기믹 연출은 그냥 저냥 무난한 편.

백영웅전을 개발하고 있는 래빗 앤 베어 스튜디오는 현재 무시무시한 양의 그래픽 리소스의 작업을 어느정도 마치고 밸런스 조정과 버그 수정에 집중하고 있는 단계라고 했다. 이번 시연 버전에서도 대미지 밸런스와 동료 밸런스들이 좀 더 잡혀있었다면 아마 더 매력적으로 느꼈을 것 같다. 아직 보지 못한 요소들이 더 많지만, 기본기에서는 이정도면 합격점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요약하자면, 백영웅전의 시연 버전은 아쉬운 부분은 좀 있지만 재미있었다. 그래서 앞으로의 완성 과정이 더 기대되는 게임이다. 최근 JRPG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게임들이 많이 등장했지만, 아직까지 좀 독특한 포지션이었던 '환상수호전'을 계승한 게임은 없었다. 백 명이 넘는 영웅들이 펼치는 이야기. 당연히 환상수호전의 개발자들이 다시 뭉친 만큼, 백영웅전은 그 감성이 잘 살아있는 게임으로 완성되기를 기대하게 됐다. 그렇게 기대감을 주는 시연이었기에, 고전 JRPG의 팬들이라면 좀 더 관심을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 내용 수정 : 2023.09.21. 22:53 ] 캐릭터 명칭을 일본어 명칭 기반으로 수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