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고전 작품만이 아니라, 몇십 년 전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볼 때. 이 장면은 여전히 세련됐다거나, 어떤 멜로디는 지금 들어도 좋다거나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건 그대로 놔둬도 좋지만, 현재 시점의 CG나 악기, 촬영 기법을 더한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게임은 이런 생각에서 시작한 작품들이 많이 있는데요. 그런 게임들은 '리마스터' 또는 '리메이크'같은 타이틀을 달게 됩니다.

이런 작품들은 과거의 촌스러움과 현재의 세련됨이 공존하게 됩니다만, 원작이 당시에 시대를 초월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게임을 하는 내내 과거의 낡은 흔적을 발견하지 못할수도 있습니다.


게임명: 페르소나3 리로드
장르명: RPG
출시일: 2024. 2. 2.
개발사: ATLUS
서비스: 세가
플랫폼: PS, XBOX, PC

리로드는 2006년 7월 13일에 발매한 여신전생 페르소나3의 리메이크 작품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페르소나3 오리지널과 확장팩인 FES, PSP 이식판인 포터블의 콘텐츠를 모으고 다듬은 작품입니다. FES의 후일담과 여주인공 파트는 빠졌습니다.

여신전생 페르소나3는 페르소나 RPG 시리즈의 3번째 작품입니다. 그리고 페르소나3편은 아틀라스와 여신전생 프랜차이즈 전체를 보더라도 기점이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성공적인 스핀오프로 손꼽히는 페르소나 시리즈는 여신전생 시리즈를 뿌리로 두고 있습니다.

여신전생 시리즈는 대대로 어렵고 분위기가 굉장히 어두운 특징이 있어서, 취향이 맞지 않으면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게임이었습니다.

페르소나 시리즈는 여신전생 시리즈에 조금 더 학원적인 요소를 섞은 게임으로 시작했습니다. 페르소나1 출시 광고에서는 악마, 청춘, RPG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는데요, 페르소나 2편까지는 이 세가지 요소가 비슷한 균형감이었다고 보는데, 악마의 요소를 낮추고, 청춘 학원물의 요소를 크게 높인 3편이 대박을 치게 됩니다.


여신전생과 페르소나 2편까지 메인 캐릭터 디자인을 담당하던 카네코 카즈마 대신 조금 최신 트랜드에 맞는 화풍의 소에지마 시게노리가 담당했습니다. 게임의 초중반이 조금 더 학원물스럽고 밝아졌습니다. 연애 시뮬레이션, 육성 시뮬레이션 요소도 캐릭터의 성장과 잘 어우러지게 만들었고요.

매 시리즈마다 호평받는 감각적인 인터페이스 디자인과 음악은 페르소나3가 그 시작이라고 봐야할겁니다. 페르소나3의 성공으로 완전히 방향성에 감을 잡은 페르소나 시리즈는 이제 한 작품으로 1,000만장(페르소나5 시리즈)을 파는 매머드급 체급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여신전생 본가보다 더 덩치가 커졌다말은 절대 과언이 아니죠.

아틀라스는 3편부터 발전해 5편에서 고점을 찍은 그들의 게임 미학을 다시 시작점인 3편으로 가져왔습니다. 06년에 유행했던 노래를 가장 유행하는 비트를 추가하고 가장 물오른 보컬이 다시 부른 셈입니다. 당시에 가장 세련된 부분은 18년이 지난 지금도 세련됐고, 약간 낡게 느껴졌던 부분은 예전 흔적을 남기지 않고 모두 밀어버렸습니다.

비주얼적인 부분에서 많은 변화가 있습니다. 오리지널은 플레이스테이션2, 포터블은 PSP로 출시했기 때문에, 리로드에서 그래픽이 좋아지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만, 생각보다 리로드는 훨씬 더 좋은 그래픽을 보여줍니다.

첫번째로, 캐릭터 등신 자체가 변했는데요. 원작은 3~4등신이었지만, 리로드는 페르소나5처럼 실제에 가까운 체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물의 묘사 자체가 굉장히 수준 높습니다.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3D 그래픽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일러스트를 그대로 옮겼다고 해도 될 정도로 인물 그래픽이 상당히 만족스럽습니다.

페르소나 특유의 인터페이스, 전투 연출같은 부분에서 눈에 띄는 원색과 화면 분할을 과감하게 사용하는 감각적인 부분은 페르소나4와 5를 제작하면서 이미 따라올 수 없을 정도의 경지에 올랐기 때문에, 페르소나3 리로드 역시 '보여지는 부분'에서는 흠 잡을 곳이 없습니다.

그래픽 설정에서 '랜더링 스케일'이라는 부분을 50%에서 200%까지 바꿀 수 있는데요, 50%는 화면이 뿌옇게 되서 볼만한 수준이 안되기 때문에, 최대한 랜더링 스케일을 올려서 플레이 하시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리로드는 디테일이 뛰어납니다. 그래픽에서 어느정도 이어지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냥 대충 만들고 넘어갈 수도 있는 부분을 '감상'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대표적인 것들만 말씀드려보자면, 메뉴에 들어가면, 각 항목마다 캐릭터 그래픽이 따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그래픽은 그 캐릭터가 입고 있는 외형 아이템에 따라 모습이 달라집니다. 그건 주인공 뿐만이 아니라, 동료 캐릭터도 포함입니다. 캐릭터가 어떤 무기를 장비하냐에 따라 무기 외형도 달라지게 되고요.

이야기 중간마다 풀 애니메이션으로 진행하는 부분도, 게임과 이질감이 들지 않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습니다. 이런 디테일을 챙긴 부분은 엄청나게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디테일이 쌓여서 게임의 완성도가 되는 거고, 잘만든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죠.

캐릭터는 일러스트와 모델링만 변한 건 아닙니다. 한 캐릭터가 가지는 성격이나 역할은 원작과 다를 게 없지만, 정말 사소하지만 의미있는 묘사가 추가되면서 캐릭터의 양감이 추가됐습니다. 페르소나도 마찬가지고 예전 JRPG의 등장인물들은 대게 평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캐릭터의 등장부터 대사 열 줄 이내, 몇 번의 행동으로 보여주는 성격이 게임이 끝날 때 까지 이어지는 편입니다. 페르소나3도 마찬가지인데요, 동료 캐릭터들은 여러가지 사연이 있습니다만, 성격은 대게 평면적입니다.

예를들면, 3학년의 사나다 아키히코는 권투부의 에이스이자, 이성에게 인기가 많지만, 정작 본인은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고 정의롭고 선량한 성격을 가지고 있죠. 그런 사나다가, 리로드의 여름 여행 이벤트에서 야마기시 후카의 수영복 모습을 보고 잠시나마 얼굴을 붉히는 묘사가 추가되었는데요.

추가 커뮤니티가 없는 남주인공 파트에서 굉장히 평면적이었던 사나다라는 캐릭터에 입체감을 약간 추가한 겁니다. 그 캐릭터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는, 밖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을 뿐, 뻣뻣하지만은 않은 캐릭터라고 평면에 약간 볼록 튀어나온 부분을 추가한 것이죠.

완전히 입체적인 캐릭터들로 확 바꾸는 것 보다, 이런식의 변화가 캐릭터 기반의 RPG인 페르소나에 훨씬 더 맞다고 느껴집니다. 캐릭터성은 바꾸지 않으면서, 조금 더 애정이 생기는 계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동료 뿐만이 아니라, 스토리 진행 중 만나게 되는 빌런들의 추가 에피소드도 이런 방향의 시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페르소나3편의 메인 스토리에 대한 호불호는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게임의 분위기와 전개는 3편을 가장 선호하는데요, 4편과 5편에 비해 이야기 자체가 어두운 편이기도 하고, 이야기의 시작부터 진상에 다가가는 빌드업 과정이 매끄럽습니다.


단점이 거의 없는 게임처럼 보이고, 실제로 그렇지만, 몇 가지 불편하고 별로인 부분은 존재합니다. 먼저 인물 그래픽과 묘사는 훌륭하지만, 인물을 제외한 오브젝트나 환경, 배경 그래픽은 인물 묘사에 비해 수준이 많이 떨어집니다. 지나치려면 지나칠 수는 있지만, 가끔 눈에 보일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전투에 대해서 얘기해 보겠습니다. 리로드는 기본적으로 전투에 많은 것이 추가됐습니다.

처음에는 감각적인 화면 연출이라거나, 음악, 멋지고 예쁜 캐릭터에 정신이 팔려 눈치채지 못하지만, 조금 플레이를 하다보면, 결국엔 꽤나 단순한 전투 흐름이 계속 반복된다는 생각이 들게됩니다. 낮은 난이도로 플레이한다면 상대에 효과적인 동료 캐릭터를 바꾼다거나, 악마합체로 좋은 악마를 만들 필요도 없기 때문에, 더 빠르게 전투가 질릴 수 있는 부분입니다.

개인적으로 전작을 해보지 않으셨던 분도 전투의 전략적인 재미를 위해서도 노멀 난이도 이상으로 플레이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그리고 전투에서 이어지는 부분인데, 몇 공격 모션이 어색하거나 뻣뻣하고 느린 연출이 간혹 있습니다. 비현실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간 게임인만큼, 조금 더 과장되고 스피디한 연출이 주가 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페르소나에는 커뮤니티라고 하는 특정 캐릭터와 주인공의 미니 에피소드가 존재합니다. 그 캐릭터와 인연이 깊어질수록 그 타로 카드에 맞는 악마를 만들 때 보너스를 받게 됩니다. 리로드에서도 대사 수정과 같은 몇 가지 변경점이 있지만 기본 이야기는 원작과 같습니다.

페르소나4와 페르소나5에서 발전한 짧은 스토리텔링을 다시 3편으로 가져오지는 못했습니다. 몇 커뮤는 재미가 없고, 랭크업을 위해 억지로 해야했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페르소나3 리로드의 메인 던전인 타르타로스는 정말 많이 좋아졌습니다. 탐험 중간에 지루함을 느낄 때 쯤, 강적이 나오기도 하고, 던전 안의 던전인 모나드의 통로, 모나드의 문이 그 뻐근함을 많이 덜어줍니다. 그렇다고 타르타로스 모험 자체가 엄청나게 재밌지는 않지만, 나쁘지 않은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페르소나 시리즈를 입문하기 좋은 작품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저는 페르소나5 더 로얄을 추천했을겁니다. 가장 현대적인 감각을 가진 게임이고 대중적인 호불호가 적게 갈리는 걸작이니까요.

하지만, 이제 저는 페르소나3 리로드도 같이 추천하거나 먼저 추천하고 싶은 생각입니다. 페르소나 신작들보다 훨씬 더 어둡고 진중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고, 이제 낡은 부분도 완전히 개선되어 세련된 게임이 됐기 때문입니다.

제가 앞에서 말한 부분을 제외하고도, 퀘스트나 인간성 파라메터, 컨디션, 조작 편의성 등 정말 많은 개선이 있습니다. 전작을 해보셨던 분들은 물론이고, 괜찮은 JRPG를 찾으시는 분들에게 강력하게 추천드리고 싶은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