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인벤의 유저, 팬, 언니, 형아, 동생, 친구님. 5일간의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 GDC2024의 강연 기사는 잘 읽어주셨을까들.

GDC 하루 전 쓴 수기를 통해 강연 기사 열심히 쓰겠다고 했는데, 다음 편은 이렇게 샌프란시스코에서 떠나는 비행기에서 쓰게 됐다. 원래 해외 출장 가면 한국 게임 행사들에서는 못 보던 것, 못 느끼던 게 많아 매일 에세이를 써내곤 했는데. 이렇게 출장 첫날에 쓰고 다음 편을 마지막 날에 쓰는 건 또 처음이다.

사실 첫날 수기에서도 모든 행사가 끝난 마지막 날에야 다음 에세이를 쓸 수 있을 거라고 말했듯 알고는 있었다. 그리고 GDC는 진짜 그런 게임 이벤트였다. 바쁘고 또 바빴던 게임 이벤트. 나처럼 영어 듣기만 겨우 하고 스피킹 못하는 중학영어맨은 어버버 하다 끝나는 이벤트.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이 되어서야 겨우 그간의 일정을 정리할 정도로 여유가 없는 이벤트.


분명 그런 행사였는데... 다 끝나고 돌아보니 이런 생각도 든다. GDC, 어쩌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을지도?

더 정확히 말하면 출발 전 보고, 들었던 우려와 달리 처음 경험한 GDC는 너무나 체험해볼 만한 행사였다. 이전 참석자들의 말이 호들갑처럼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사실 이전 경험자들의 말이 호들갑이 아니라 진짜 그랬던 건데, 걱정거리가 맞았는데 나아졌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말이다.


GDC 열리는 샌프란시스코, 전보다 안전합니다
▲ 모스콘 센터를 중심으로 도시 정비를 끝내 훨씬 깨끗해졌다

우선 GDC가 열리는 샌프란시스코, 자세하게는 모스콘 센터 주변이 꽤 안전한 곳이었다는 점이다. 글로벌 뉴스 좀 챙겨보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샌프란시스코는 과거 영광을 뒤로하고 무너진 디트로이트처럼 붕괴하고 있는 도시로 꼽히는 곳이다.

내로라하는 테크 기업들이 샌프란시스코에 몰리고, 대형 백화점과 명품 가게들이 늘어섰지만, 임대료는 덩달아 높아졌다. 그러자 늘어난 홈리스가 거리를 점령했다. 여기에 중범죄율이 너무 높은 도시였고 교도소 자리가 모자라자 중범죄 기준을 400달러에서 950달러로 높이는 건의안이 발의됐다.

경범죄 비중이 너무 높아지니 950달러 미만의 강절도 처벌이 낮아지고, 경찰이 이를 모두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특히 많이 늘어난 마약 거래에 좀비처럼 길거리를 배회하는 사람들, 그리고 홈리스와 그들의 인분이 도로에 널렸었다. 자극적인 보도에 취한 과장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적어도 근래 GDC 취재를 위해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했던 기자 모두 과장이 아닌 경험으로 그걸 말했다.

▲ 밤에도 사진 찍으며 돌아다닐 수 있는 도시가 된 SF

하지만 2023년 말, GDC가 매년 열리는 모스콘 센터에서 APEC 정상회담이 열렸다. 시는 도로 정비에 나섰고, 적어도 그 효과가 이번 GDC 기간까지는 이어진 모양새였다. 작년만 해도 총격 소리를 간혹 듣고, 밤에는 사이렌이 멈추지 않았다. 낮에도 짧은 거리를 우버를 불러 돌아다녀야 했단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모스콘 센터 주변이야 말할 것도 없고, 꽤 어둑어둑해진 밤에도 중심가를 주변으로 골목 정도까지는 돌아다닐 만했다. 관광객도 많고, 음식점이나 백화점도 활기를 띠었다. 게임스탑을 찾아 멀리 외곽으로 가는 길도 위험하지 않았다.

물론 모든 게 정상이 된 건 아니었다. 명품 매장이 널린 다운타운에는 2개 걸러 1개 매장이 텅 비어있었다. 간혹 홈리스가 도로 가운데로 나와 눈길을 피하느라 고생하기도 했다. 그래도 작년에 이어 또 GDC 온 기자가 인정할 정도로 분명히 깨끗해졌다. 여느 미국 행사를 가도 여기와 비슷한 정도였으니, 이제 치안 때문에 GDC를 안 간다는 건 당분간 핑계 정도로 들어넘기면 될 듯하다.


스타 개발자 강연? 진짜 좋은 강연은 나한테 필요한 강연
다른 하나의 우려는 팬데믹 이후 줄어든 스타 개발자의 강연, 또 강연의 내용 부분에서의 우려가 있었다. 분명 본격적인 취재 전, 한국에서 계획을 세우는 단계에서도 꽤 고민이 있었다. 수없이 몰리는 스타 개발자, 1년 주목받았던 전 세계 개발자들의 집합. 하지만 올해는 그런 부분이 부족했다. 닌텐도가 젤다 왕눈과 슈퍼마리오 원더 각각 하나의 강연을 내놨고 발더스 게이트3, 마블 스파이더맨2, 앨런 웨이크2, 팬텀 리버티 등 특정 게임이 다수의 강연을 준비하며 다양성 부분에서는 부족해 보였다.

아무리 개발자들을 위한 컨퍼런스라지만, 컨퍼런스에는 스타 개발자, 대형 게임 강연에 참관객이 몰린다. 국내만 그런 건 아니다. 과거 GDC EU라는 이름을 달았던 게임스컴의 데브컴, 차이나조이 시기에 맞춰 진행되는 CGDC 모두 그러한 분위기는 비슷했다.

▲ 스타 개발자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그런데 GDC는 정말 달랐다. 같은 시간대에 큰 강연이 몰려, 발길이 닿을 것 같지 않은 강연에도 사람들이 몰렸다. 자신이 들어야 하는 강연, 관심 있는 분야라면 그 어떤 일보다 먼저 해당 강연을 들으러 오는 식이었다. 고급 수준의 기술 파트 강연은 여타 행사라면 주최 측에서 가장 피할 부류의 강연이지만, GDC에는 많은 이들이 몰렸다.

기술 부분만이 아니다. AI, F2P, 웹3 같은 근래 더 주목받는 새로운 분야의 별도 서밋은 꾸준히 사람들이 채워졌다. 게임 디자인, 애니메이션, 내러티브, VR/AR, 인디, UX, 비주얼 이펙트, 커뮤니티 매니징, 그리고 모든 사람을 포용하고 함께 다음을 이야기하는 페어 플레이까지 많은 주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세션들이 줄이었다.

그렇다고 모든 강연이 팬들의 주목을 받는 건 아니다. 정확히는 냉정했다고 하는 게 맞을까? 기업 홍보, 기술 소개에 그치는 세션이나 마땅한 주제 없이 옛날이야기만 남기는 일부 포스트 모템 같은 강연들은 매몰찰 정도로 빈자리가 넘쳤다.

매 강연이 끝나고, 설문조사를 잘 써달라는 행사 진행 요원의 안내가 있었다. 결국, 그저 의미 없는 강연을 선보인다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내년 GDC에서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여느 강연자는 그야말로 콘서트를 보는 듯 유창하게 발표하고, 강연 듣는 개발자들의 호응을 제대로 이끌어냈다. 그리고 내년에는 더 큰 강연장에서 만나자며 좋은 평가를 기대하는 듯한 발언을 유쾌하게 전했다.

팬, 개발자 입장에서 강연을 평가하고, 또 그걸 기반으로 새로운 강연을 준비하는 것. 사실 GDC가 30년 넘게 계속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 게임 컨퍼런스로 자리매김한 건 강연 품질에 대한 관리가 있었기 때문 아니었을까?

▲ 엑스포로 매일 수많은 사람이 몰려갔지만

▲ 어느 하루 강연 널널하게 들었던 적이 없다


이 비싼 걸 듣는 이유가 있었구나
처음에는 서밋만 듣는 패스 가격이 1,299달러, 모든 강연에 과거 세션 담긴 볼트 포함 올 액세스 패스가 2,449달러나 한다는 게 참 대단하다 싶었다. 유명 개발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비즈니스 성격 역시 가지고 있다지만, 패스 하나에 330만 원 정도 하려면 얼마나 멋지게 행사를 준비해야 하는 걸까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행사가 다 끝나고, 돌아오면서 드는 생각은, 어쩌면 GDC는 그 정도 값어치는 하는 것 같기도 하다는 거였다. 그리고 밝고 포근한 미국 서부의 날씨에도 빛 하나 들지 않는 강연장에서 5일이나 강연을 들어야 하는 이 일정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는 것도 느꼈다.

▲ 이런 풍경을 두고 어두운 강연장 안에 있어야 하는데...
그걸 견딘다는 거부터 GDC의 위엄이 드러난다

아! 이런 의미 있는 행사를 어떻게 나만 갈 수 있을까! 또 어떻게 경험하지 않을 수 있으랴!

아직 GDC를 경험하지 않은 기자들이 내년에 꼭 갈 수 있도록 응원해본다. 회사의 높으신 분들 잘 보고 계신가요? 아직 안 가본 기자가 몇 있습니다. 내년에는 그들을 보내 업계를 바라보는 식견을 더 넓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