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본 만화계의 큰 별이 졌습니다. 닥터 슬럼프, 드래곤볼의 원작자로도 유명한 토리야마 아키라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거죠. 생전 장편과 단편, 그리고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등의 게임원화가 및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발하게 활동해 온 그였기에 추모의 물결이 일기도 했는데요.

그 토리야마 아키라의 단편작 샌드랜드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게임 '샌드랜드'가 오는 4월 25일 정식 출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정식 출시까지 이제 약 한 달가량 남은 상황으로 '샌드랜드'는 현재 스팀을 통해 데모를 배포하며, 게임을 알리는데 열을 올리고 있는 모습인데요. 그런 가운데 인벤은 반다이남코 코리아에 방문해 데모가 아닌 게임의 최신 빌드를 체험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출시가 코앞으로 다가온 만큼, 사실상 정식 출시 빌드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텐데요. 1권으로 마무리된 원작의 스토리를 어떻게 게임으로 재해석했을지, 그리고 게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콘텐츠와 볼륨은 어느 정도일지 대략적으로나마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샌드랜드'는 전형적인 오픈월드 기반의 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유비식 오픈월드를 떠올리면 쉬울 것 같은데요. 지도를 열자마자 수많은 마커들이 유저를 반기게 됩니다. 이 부분은 여러모로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한때는 오픈월드 게임이라고 하면 맵을 가득 채우는 게 당연하다시피 여겨지기도 했었죠. 단순한 퀘스트, 수집요소라고 해도 그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이자 게임의 볼륨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유저들은 맵을 가득 채우는 마커를 반기지 않습니다. 억지로 볼륨을 늘리기 위한 요소로 취급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샌드랜드'의 오픈월드는 기존의 요소들을 답습하는 데 그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4개의 야영지, 회복 수단인 물을 채울 수 있는 7개의 급수터 등은 딱히 문제 될 게 없지만, 145개에 달하는 보물상자의 숫자는 여러모로 다소 억지로 플레이 타임을 늘리기 위한 요소로 넣은 게 아닐까 싶었으니까요.

▲ 지도를 열자마자 수많은 마커가 유저들을 반깁니다

▲ 메카를 강화하는 데 쓰이는 재료를 채집할 수도 있죠

드넓은 오픈월드에서 할 수 있는 콘텐츠 역시 대체로 비슷했습니다. NPC의 부탁으로 몬스터를 처치하거나 뭔가를 조사하거나 '샌드랜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다양한 메카(탈것)을 만들고 업그레이드하는 데 쓰이는 재료를 채집하는 식이었죠. 물론 다다익선이라는 말처럼 수집요소든 할 것이든 많다고 무조건 안 좋은 건 아닐 겁니다. 보물상자를 찾는 과정이 재미있다거나 재료들을 채집하거나 막아서는 몬스터와의 전투 등이 재미있다면 이런 단점은 충분히 상쇄될 테니까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과정 역시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재미있다고 느끼지 못했습니다. 체험판 빌드에서의 전투는 여러모로 단조로웠기 때문이죠. '샌드랜드'의 전투는 크게 2가지 형태로 구분됩니다. 벨제붑이 맨몸으로 싸우는 일반적인 전투와 각종 메카를 기반으로 한 전투로 말이죠. 문제는 이 각각의 전투가 영 섞이지 못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보통 이런 식으로 전투 양상이 구분될 경우 각각의 전투가 재미를 상호보완하기 마련입니다. 이를테면 맨몸으로 전투할 때는 호쾌한 액션을, 메카를 탈 경우 묵직한 액션을 선보인다든가 하는 식이죠. 하지만 '샌드랜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각각의 전투가 담당하는 재미의 비중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부분에서 '샌드랜드'는 메카를 기반으로 한 전투의 지분이 압도적이었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체험이었음에도 맨몸 전투는 형식상 넣은 게 아닌가 싶었을 정도로 말이죠.

전투의 깊이를 더해줄 스킬 시스템 역시 마찬가지였죠. 액션을 확장해야 하는 요소 건만, '샌드랜드'에서는 그러한 의도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아직 초반부 지역이라는 점, 스킬 등이 익숙하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도 여러모로 단출하다는 인상을 안겨줬습니다.

▲ 빈말로도 '재미있다'고 하긴 어려웠던 벨제붑의 맨몸 전투

물론 그렇다고 '샌드랜드'의 전투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재미없다는 그런 의미인 건 아닙니다. '샌드랜드'의 핵심인 다양한 메카가 있기 때문이죠. 체험 빌드에서는 배틀 탱크, 점프 메카, 자동차, 모터바이크, 호버 카, 그리고 배틀 아머 총 6개의 메카를 탈 수 있었는데요. 각종 메카를 타고 다니면서 앞서 언급한 맨몸 전투의 아쉬움을 약간이나마 지울 수 있었습니다.

각각의 메카는 저마다의 특색을 갖춘 걸 볼 수 있었는데요. 모터바이크의 경우 척 보면 알 수 있듯이 오토바이 형태의 메카로 드넓은 맵을 빠르게 이동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체험 빌드에서는 관문이나 마을, 야영지 등이 어느 정도 열린 상태여서 언제든 빠른 이동이 가능했지만, 실제로는 유저가 직접 발로 뛰면서 지역에 가야 하죠. 모터바이크가 진면목을 발휘하는 순간입니다. 더욱이 '샌드랜드'의 메카들은 단순한 이동용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모터바이크만 하더라도 샷건과 머신건을 장비해 잡몹들이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습니다.

▲ 다양한 탈것이 선사하는 다채로운 재미야말로 '샌드랜드'의 핵심 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터바이크로 상대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잡몹에 불과합니다. 체급 차이는 어쩔 수 없죠. 기관총이 아무리 세봐야 탱크를 이길 수는 없는 법이기에 이럴 때는 유저 역시 탱크로 갈아타야 합니다. 어딘지 앙증맞은 모양새의 배틀 탱크는 모터바이크와 비교하면 다소 느리기에 이동용으로 쓰긴 어렵지만, 기관총과 포탄으로 무장하고 있어서 어지간한 상황이라면 탱크 하나로도 충분할 정도의 범용성을 자랑합니다. 비행형 적이라거나 잡몹, 재빠른 적이 상대라면 기관총으로, 적 역시 탱크를 쓴다거나 할 때는 포탄을 이용하는 식이죠.

이러한 메카 기반의 전투는 나름 괜찮다는 인상을 줬습니다. 앞서 언급한 맨몸 전투와 비교하면 다양한 메카를, 다양한 상황에 상정해서 쓰도록 함으로써 다채로운 재미를 줬기 때문이죠. 실제로 모터바이크를 타고 가다가 적을 만나면 배틀 탱크로 바꿔타고 적을 처치하는 식으로 상황에 따라 바꿔가면서 썼을 정도입니다.

▲ 다양한 탈것은 개성만큼이나 다양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다만, 여기에도 아쉬움이 없던 건 아닙니다. 레벨 디자인 측면의 아쉬움이라고 해도 좋을 겁니다. 일부 꽤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일부 구간에서는 모터바이크를 타고 이동했다가 배틀 탱크로 바꿔서 적 탱크를 처치하고 다시 모터바이크로 바꿔서 이동하는 식의 플레이를 반복적으로 요구해 흐름을 끊는 경우가 있었던 거죠.

어떨 때는 귀찮아서 그냥 배틀 탱크를 타고 쭉 진행하기도 했지만, 앙증맞더라도 탱크는 탱크라고 모터바이크와 비교하면 답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양한 메카를 쓰도록 의도한 디자인이라는 걸 알겠지만, 애초에 먼 거리를 이동하도록 만들었다면 잡몹들을 배치해 모터바이크만으로 처치할 수 있도록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 자연스러운 전환은 나쁘지 않지만, 흐름을 끊는 건 어쩔 수 없어 보입니다

보스전은 메카를 기반으로 한 '샌드랜드' 전투의 꽃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요. 앞서 벨제붑의 맨몸 전투에 대해 형식상 넣은 것 아니냐고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체험 빌드에서 치른 2번의 보스전 모두 메카를 타고 진행했기에 그런 느낌이 들었던 거죠.

각각의 보스전은 메카의 특색을 활용해 보스를 공략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크라켄 보스전을 예로 들자면 호버 카의 호버링 능력을 활용해 보스의 공격을 피하는 식으로 진행됐으며, 로제타의 탱크를 상대로는 강력하지만, 느린 보스를 상대로 배틀 탱크로 공격을 피하고 빈틈을 노리는 식으로 흘러갔죠. 이를 고려하면 이후에 있을 다른 보스전 역시 메카의 특색을 활용하는 식으로 흘러갈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물론 아쉬움이 없던 건 아닙니다. 벨제붑의 맨몸 전투보다는 분명 나았으나 메카를 기반으로 한 전투, 그리고 보스전 모두 어딘지 싱거운 느낌이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죠. 애초에 전투의 난도가 낮을뿐더러 단조롭기까지 했으니 액션 RPG에 익숙한 유저들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어 보였습니다.

물론 앞으로 모든 전투가, 보스전이 지루하게 진행될 거라는 건 아닙니다. 아직 초반부 지역이라는 점, 그리고 메카의 파츠 역시 제한적이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게임을 진행하면서 전투의 깊이가 더해질 요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제법 다양한 파츠를 확인할 수 있었죠. 이번 체험에서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미사일 런처를 장착한다든가 레일건을 단다든가 하는 식으로 메카를 커스터마이즈함으로써 메카를 기반으로 한 전투의 깊이, 영역을 더욱 확장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 다양한 파츠를 조합함으로써 개성적인 메카를 구성할 수도 있어 보였습니다

▲ 공개된 스크린샷을 통해 미사일 세례를 날리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고요

만화와 같은 원작이 있는 게임은 반드시 넘어야 하는 벽이 있습니다. 원작과는 무관하게 게임 그 자체로도 충분히 재미있느냐는 부분입니다. 원작 팬에게 주는 선물이 아니라 원작 팬은 물론이고 원작을 몰랐던 유저들도 게임을 통해 원작에 관심을 가질 정도여야 하는 거죠. 하지만 지금까지 만화를 원작으로 한 게임 대부분은 그 벽을 끝내 넘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원작의 유명세에만 의존한 결과, 게임으로 가져야 할 콘텐츠의 깊이가 부족한 게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샌드랜드'는 원작의 유명세에만 의존하던 그런 게임들과는 다소 결이 다른 모습입니다. 기본적인 설정과 캐릭터는 원작의 것을 가져왔지만, 게임만의 신규 캐릭터로 안이 등장하는 등 원작과는 사뭇 다른 식으로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원작을 기반으로 한 별개의 게임으로 봐도 무방하죠.


여러모로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작 만화를 게임으로 거의 완벽하게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샌드랜드'는 분명한 매력을 지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원작 팬에게 있어서는 이보다 더 좋은 게임이 없다고 할 정도죠.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원작 팬 입장에서의 얘기입니다.

원작의 유명세에 의존하는 게임이 아니기에 원작을 몰라도 즐길 수 있는 게임이지만, 적어도 체험 빌드에서는 다른 게임과 차별화된 '샌드랜드'만의 코어한 매력을 확인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출시까지 '샌드랜드'가 보여줘야 할 길은 명확합니다. 다른 게임과는 차별화된 코어한 매력을 보여주는 거죠.

출시까지 이제 약 한 달가량 남은 '샌드랜드'입니다. 아직 보여주지 못한 '샌드랜드'만의 매력을 보여주기엔 충분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는 만큼, 미처 보여주지 못한 것들이 있다면 이 기회를 놓치지 말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