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1인 인디 개발자가 스팀을 통해 3인칭 택티컬 퍼즐 슈팅이라는 독특한 장르의 신작을 선보였다. 타이틀은 '칠드런 오브 더 선(Children of the Sun)'이다.

공개된 일러스트와 트레일러를 보면 '스나이퍼 엘리트' 시리즈를 연상케하는 초장거리 저격 액션 게임처럼 보이나, 게임의 실상은 퍼즐 게임 쪽에 더 가깝다. 스테이지당 주어진 단 한발의 탄환으로 모든 적을 일망타진하는, 요약하자면 한붓그리기 같은 게임이다. 영화 가디언즈 갤럭시 속 욘두의 화살 전투씬을 떠올리면 더 이해하기 쉽겠다.

어쩌면 게임 속에서 주인공 캐릭터보다 더 오랜 시간 조작하게 되는 저격소총의 탄환이 발사 후에도 탄피와 결합된 상태로 그려지는 등 개발자의 '미필 이슈'를 의심케하는 부분이 마음에 걸리지만, 염동력으로 탄환의 궤도를 몇 번이고 수정하는 판타지 슈팅 게임에서 이런 사소한 것이 어디 중요하겠는가. 짧은 볼륨이지만 퍼즐 슈팅이라는 신선한 장르와 새로운 재미를 보여주었다는 것만으로 분명히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게임명: 칠드런 오브 더 선
장르명: 스타일리시 TPS
출시일: 2024.04.09
리뷰판: 출시 빌드
개발사: René Rother
서비스: 디볼버 디지털
플랫폼: PC
플레이: PC


복수귀가 되어버린 초능력 소녀의 여정


칠드런 오브 더 선은 이단 종교 집단에 의해 평온했던 삶이 파괴된 소녀가 복수에 나선다는 지극히 명료한 스토리를 가진 게임이다. 어린 시절부터 물건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염동력'을 보유하고 있던 소녀는 한 자루의 저격 소총을 들고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 오직 하나의 목적으로만 움직이는 복수귀가 된다.

스토리는 대사 한마디 없이 단편적인 회상으로만 진행되므로, 작품 자체로는 소녀가 가진 슬픔과 아픔에 충분히 몰입하기 어렵다. 이단 종교 집단에 원한을 품게 된 소녀의 행적을 그저 따라갈 뿐인데, 몰살의 과정이 반복될수록 누가 나쁜 놈인지 구분하기 어렵게 될 정도다. 트라우마를 앓고 있는 소녀의 회상이 강렬한 터치로 소개되는 컷신들은 인상적이나, 스토리에 몰입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다소 아쉬운 구성이다. 물론, 디볼버 디지털의 퍼블리싱 게임들이 응당 그렇듯, 부차적인 수식어 없이 날것 그대로 그려지는 컷신 연출과 BGM이 취향에 맞는 이들도 충분히 있을 수 있겠다.

게임이 압도적인 힘을 지닌 소녀의 시점으로 진행되다보니, 전반적인 게임 플레이는 슈팅 게임이라기보다 퍼즐 게임 쪽에 더 가깝게 진행된다. 어떤 순서로, 어떤 각도로 총을 쏴야 더 멋진 궤적을 남길 수 있을지 시험하는 살인 놀이다. 얼마나 더 효율적이고 빠르게 사냥했는지를 두고 매 스테이지마다 점수도 매겨진다.

소녀의 전투법은 강력하고, 빠르며, 치명적이다. 저격 소총에서 발사한 한 발의 탄환을 염동력으로 조작하여 자유롭게 궤적을 바꾸고, 공간에 있는 모든 적을 단 한 발로 쓸어버릴 수 있다. 강력한 힘에 따르는 책임도 없다. 그저 낚시터에서 명당자리를 고르듯 사격 지점을 선별할 뿐. 초장거리 저격을 하는 소녀를 위협하는 적수는 없으며, 그저 아무것도 모르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먹이들을 하나씩 마법의 총알로 하나씩 사냥해갈 뿐이다.

▲ 어디서 어떤 각도로 발사할 지 고민한 뒤 그저 총알을 조작할 뿐. 나머진 일방적인 학살극이다

게임은 '타겟에 명중할 경우 탄착 지점부터 다시 조준하여 발사할 수 있다'라는 간단한 규칙 하나로 진행된다. 여기서 타겟은 이단 종교 구성원 외에도 하늘을 날고 있는 새나 물속의 물고기, 또는 자동차의 주유구나 기름통 등을 뜻한다. 탄환의 궤적 하나하나로 생명을 빼앗거나, '폭발'을 일으켰다면 OK인 셈이다.

사격을 시작하기 전에 소녀를 조작하여 사격 위치를 정할 수 있는데, 이때 스테이지에 존재하는 모든 타겟 위치를 찾아 먼저 숫자로 표시해둘 수 있다. 탄환 발사 후에는 빠른 탄속 때문에 상대적으로 시점이 제한되므로, 미리 마커를 달아두어 빠른 저격을 지원하기 위함이다. 물론 이렇게 사전 조사를 하는 시간도 클리어 스코어에 영향을 미치니, 최고점 갱신이 목표라면 전체적인 시간 배분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살육에 사용하는 무기가 저격용 총에 들어가는 대구경 탄환이라 그런지 신체의 어느 부위에 맞춰도 일격 필살이니, 점수를 신경 쓰지 않는다면 초반엔 착탄 부위를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그저 다양한 타겟을 찾아 다음 타겟으로 이어지는 각도만 만들면 된다.

▲ 최적의 사격 포인트를 찾아 소녀를 움직이고, 한 발을 발사. 이것이 계속 반복된다

'복수에 필요한 것은 오직 단 한발뿐'이라는 단순한 테마에 그치지 않도록, 게임은 스테이지를 거듭할수록 다양한 기믹들을 추가하며 깊이를 더해간다. 날아가는 탄환의 궤적을 임의로 살짝 꺾어 조정한다거나, 하이라이트로 표시되는 적들의 약점 부위를 두 차례 적중하여 `허공에서 재조준` 기능을 해금한다거나, 버튼을 꾹 눌러 충전하는 것으로 탄환을 가속, 중장갑을 입은 적을 처치할 수 있는 식이다. 이러한 기믹들은 후반부 스테이지로 향하는 과정에서 하나씩 해금되고, 이윽고 마지막 스테이지에서는 모든 탄환 스킬을 복합적으로 활용해야만 클리어할 수 있는 종합 퍼즐이 된다.

하나씩 새롭게 해금되는 새로운 능력을 시도해보며 다양한 방식으로 사격을 반복하다 보면, 분명 게임 플레이 자체는 퍼즐 게임에 더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게임의 독특한 비주얼과 BGM, 그리고 총알 한 발로 나만의 루트를 만들어 모든 적을 소탕하는 스타일리시한 액션에 빠져들게 된다.

▲ 중장갑을 뚫기 위한 거리와 가속을 얻기 위해, 때론 기다리는 순간도 필요하다

▲ 후반부엔 총알 한 방으로도 묘한 궤적이 나온다.


즐거워서 더 짧게 느껴지는 볼륨. '퍼즐 슈터'의 재미가 확장될 수 있기를


칠드런 오브 더 선의 게임 플레이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하면 다음 타겟까지의 경로에 장애물이 있어 도저히 유효한 각도가 나오지 않거나, 거리가 짧아 중장갑을 뚫을 수 있을 만큼의 가속이 나오지 않고, 한 차례 공격을 튕겨내는 적군 에스퍼의 방어막에 총알이 막히는 등 다양한 형태로 실패를 반복하게 된다. 대부분의 퍼즐 게임들이 그렇듯, 수차례의 반복을 통해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요구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실패와 반복의 과정에도 피로감이나 무력감을 느끼지 않도록 설계된 절묘한 레벨 디자인이 이 게임의 매력이다. 실제로 게임을 시작하고 클리어하는 순간까지 단 한번도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거야'라며 망연자실할 일도 없었고, 정말 어려워보이는 구간도 10번 이상 반복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었다.

여러 편의 기능도 돋보인다. 공략에 사용할 수 있는 탄환은 단 한발뿐이므로 실패와 동시에 스테이지를 다시 시작하게 되는데, 이때 이전 시도에서 타겟에 찍어놓은 마커가 그대로 유지되므로 처음부터 다시 타겟을 찾아 찍는 불필요한 반복 노동은 하지 않아도 됐다. 플레이어는 같은 스테이지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온전히 새로운 공략 루트를 찾고, 더 다양한 접근 방식을 고민하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다.

▲ 실패하는 순간도 많지만, 반복 과정에 피로감은 적은 편이다

모든 스테이지에 별도로 존재하는 '리더보드'는 이러한 편의 기능들 덕분에 빛을 발한다. 플레이어마다 첫 번째 발포 장소와 시점이 다르고, 총탄의 발사 각도, 맞추는 순서와 부위 등이 저마다 다르기에 획득할 수 있는 점수도 천차만별인데, 이때의 스코어로 경쟁하는 것이 또 하나의 재미요소다.

보통 '짧은 준비 시간, 장거리 사격, 빠른 연계로 인한 콤보, 착탄 부위' 등으로 보너스 점수가 매겨지며, 재도전 과정이 간소하다보니 점수 갱신이 어렵지 않다. 저격 게임의 고전인 '스나이퍼 엘리트'에 대한 헌정인지, 고간 보너스도 존재한다. 물론 보너스 점수 배율은 머리 쪽이 월등히 높지만 말이다.

비록 리더보드 시스템으로 반복 플레이의 여지를 남겨두기는 했지만, 게임의 기본 볼륨이 너무 작은 것은 아쉬운 포인트다. 플레이어에 따라 다르겠으나, 필자의 경우 세 시간 만에 엔딩을 볼 수 있었다. 게임 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스테이지는 총 26개이며, 여기서 스토리 전개를 위한 연출 및 미니게임 방식으로 소모한 두 개의 스테이지를 빼면 제대로 퍼즐 슈터를 즐길 수 있는 무대는 딱 24개에 그친다.

더욱이 후반부 기믹까지 모두 더해져 복합적으로 즐길 수 있는 고난이도 미션은 후반 부 몇 개에 불과하다. 다른 곳에서는 쉽게 맛볼 수 없는 '택티컬 퍼즐 슈터'라는 독특한 장르를 만들어 새로운 재미를 그려낸 만큼, 소녀가 복수를 끝마친 스토리 엔딩 이후에도 더 매운맛을 원하는 이들을 위해 고난이도 미션을 제공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소녀의 압도적인 힘을 보고 누구나 예상했겠지만, 복수는 싱거우리만큼 가볍게 끝난다




칠드런 오브 더 선은 극장 영화 한 편 정도의 가격에 기대감을 덜어놓고 부담 없이 즐기는 인디 게임이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더 파고드는 재미가 있었던 액션 게임이다. 한 발의 탄환으로 이교도 집단의 적들을 모조리 소탕하는 게임의 배경도 신선했고, 오직 마우스 하나로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머리를 쓰는 게임'이라는 점도 좋았다.

1인 개발 인디 게임인 만큼 그래픽이 깔끔하고 좋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편이다. 사지 절단 같은 극단적인 연출은 없지만, 배경도 어둡고 색감도 칙칙한데다가 타겟에 적중할 때마다 매번 피 분수가 뿜어져 나오다 보니 게임의 비주얼 부분에서는 호불호가 많이 갈릴 수 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 디볼버 디지털이 퍼블리싱하는 게임들을 선호하는 이들이라면 이러한 아트 스타일이 오히려 취향저격이 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칠드런 오브 더 선은 분명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게임이다. 개발자 레네 로터도 이점을 인지하고 있는지, 초반부 7개 스테이지를 누구나 미리 플레이해볼 수 있도록 스팀 상점에서 무료 데모를 배포하고 있다. 20분 이상의 분량이고, 심화 기믹이 없을 뿐 대략적인 게임 플레이를 미리 맛볼 수 있는 구성이다. 데모 분량이 마음에 들었다면, 분명 본편의 게임 플레이도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의 1인 인디 게임 개발자가 만든 '택티컬 퍼즐 슈터'가 과연 어떤 것인지 직접 경험해보고 싶다면, 스팀에서 이 게임을 찾아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