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게임이 있다. 막상 만들어진 이후에 생각해 보면 이거 충분히 떠올릴 법한데, 처음에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싶은 아이디어를 가진 게임. '키친 크라이시스'가 딱 그런 게임이다.

어줍짢은 아이디어는 선에서 이미 다 정리하신 스타크래프트 유즈맵에도 '요리'라는 이름을 붙은 디펜스는 더러 있었다. 그런데 그게 보통은 이름과 개념만 조리에서 따왔을 뿐 수많은 랜덤 디펜스 부류의 하나더랬다. '키친 크라이시스'는 이름만 요리와 같은 골리앗이라 히드라가 아니다. 내가 먹히지 않기 위해 조리한 음식을 올리고, 대접해서 살아남는다는 개념을 남겼다.

그래, 수없이 쏟아지는 인디 게임 시장에서 이 정도 아이디어는 있어야 눈길 한 번 더 받는 법. 그런데 팀 사모예드는 이걸 단순히 아이디어 선에서 멈추지 않았다. 게임에 조리사를 관리하고 합리적으로 정리하는 요리를 담아낸 것. 이걸 어떻게 풀어나가는 지는 게임 디자인으로 깊게 이어졌다.

그게 이 게임을 독특하고 재밌게 만들면서도, 조절하고 관리하기 어려운 난이도로 이어졌다.

게임명: 키친 크라이시스
장르명: 타워 디펜스/로그라이트
출시일: 2024.4.3.
리뷰판: V1.1.63
개발사: 팀 사모예드
서비스: 팀 사모예드
플랫폼: PC, NSW
플레이: PC


'우주인! 내가 요리한 음식을 먹어줘' 디펜스

거창하게 요리 어쩌고 했지만, 사실 어디까지나 타워 디펜스라는 개념에서만 보면 새로울 건 없다. 시작 포탈에서 종료 포탈까지 우주인이 지나간다. 우주인은 정해진 라인대로만 움직이고 우주인이 종료 포탈에 도착하면 우주인마다 다른 수치로 체력을 깎는다. 남은 체력이 0이면 우주인에게 먹히고 게임 오버.

우주인을 잡는 건 요리를 서빙해서다. 서빙도 이름만 그렇지 특별할 건 없고 타워 디펜스의 공격과 같다. 사거리도 있고, 모양새도 마치 타워 디펜스 속 타워의 원거리 공격과 다르지 않다. 컨셉만 따지면 요리로 배를 채워 떠나보낸다는 개념이긴 한데... 웃으면서 사라지는 것만 빼면 그냥 공격당하고 체력 없어서 죽는, 그냥 타워 디펜스다.

▲ 외계인을 믿지 마라, 만족 못 하면 인간 냠냠한다

타워 디펜스의 본질은 그대로다. 그럼 이 본질을 설정 넘어 게임 안에서 어떻게 요리로 엮었느냐. 바로 조리 과정에 있다. 타워와 같이 설치된 음식은 무한정 적에게 제공되지 않는다. 정확히는 먹힐 요리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요리를 만드는 과정까지가 키친 크라이시스를 채우는 핵심 게임 플레이로 남는다.

햄버거를 타워로 등록하면 햄버거 하나를 만들기까지 갖은 과정이 필요하다. 먼저 빵 위에 양상추를 재료통에서 꺼내고 고기로 만든 패티, 썬 토마토, 슬라이스한 치즈 등 많은 재료는 손질, 추가 조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렇게 긴 과정을 거친 손질 재료를 조리대에 가져와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쌓아 올리면 햄버거 4개가 만들어진다.

그렇게 온갖 정성을 담은 햄버거를 서빙대로 옮기고 외계인이 오면..

뿅, 뿅, 뿅, 뿅. 서빙이라는 이름으로 네 번 외계인을 쏘고 끝이다. 이 무슨, 정성이고 좋은 재료고 그런 거 필요 없다. 그냥 빨리 만들고 많이 만들어서 외계인 입에 쑤셔 넣으면 되지. 요리는 총알이고, 외계인은 적이다. 그걸 튜토리얼, 초반 미션에서 깨달으면 이제는 효율화를 고민하게 된다.

▲ 맛있게 찐 새우찜? 뿅뿅 두 번으로 대체되었다


타워 디펜스 위에 올린 자동화, 동선은 생존이야

조리라고는 했지만, 옛날 유행하는 미니 게임처럼 하나하나 빵 올리고, 양상추 자르고, 그러진 않는다. 재료통, 조리 도구 등만 필요한대로 깔아놓으면 조리 전 과정에서 인간이 다 알아서 만들고 타워까지 옮긴다. 팩토리오로 대표되는 일종의 자동화 개념이 타워 디펜스 핵심인 공격, 그러니까 타워의 총알을 만드는 생산 과정으로 이어졌다.

외계인 잡으려면 총알, 그러니까 음식을 더 빠르고,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조리 과정에서 재료 가져오고, 썰고, 찌고, 볶고, 튀기는 과정을 생산이라고 보자. 아니 진짜 생산이다. 그리고 이걸 옮겨주는 컨베이어 벨트이자 에너지원이 되는 자원은 모두 인간이다.

고로 인간이 얼마나 효율적인 경로로 움직이는지, 또 음식마다 다른 조리 도구들을 어디에 얼마나 두는지도 다 생산 속도와 이어진다.

그리고 게임에 존재하는 여러 시스템을 보면 아마 개발진이 플레이어들이 가장 고민하고, 즐겼으면 하는 부분이 이 자동화 부분임을 예측할 수 있다.

외계인 물리치고 받는 골드는 여러 곳에서 꽤 중요하게 쓰이지만, 적어도 이 조리 과정을 준비하는 단계에서는 쓰이지 않는다. 요리 도구도, 재료도, 기본적으로는 무료에 그 숫자에도 제한이 없다. 원한다면 맵 가득 깔아놓을 수 있으니 돈 걱정, 숫자 걱정 없이 자유롭게 동선과 제작 효율화를 고민해볼 수 있다.

▲ 낭비하는 자리 없이, 조금만 움직이게

준비 단계에서는 시간제한도 없다. 여기까지만이라면 구상한 대로 완벽하게 돌아가는 자기 만족형 자동화 게임으로도 보이지만, 핵심 목표는 외계인 디펜스다. 작은 실수에 체력 조금 남은 외계인이 통과해버리고 게임 오버로 이어지는 타워 디펜스. 그렇기에 웨이브 시작 전 동선이 만들어졌는지, 도구는 부족하지 않은지, 인간들 구상대로 진짜 일 잘하는지 테스트하며 조금씩 정리해 나가야 한다.

디펜스와 이어지는 맵의 활용도 깔끔하게 정리되는 자동화를 방해한다. 꼬불꼬불 외계인 이동 라인을 고려하면 더 많이 공격할 수 있는 위치에 음식을 배치해 두는 게 좋다. 그런데 공격에는 음식 만들기라는 기본 과정이 더해지니 재료, 조리 도구 둘 공간이 마땅치 않은 경우가 많다. 맵 위에도 벽이 곳곳에 둘러져 공격 위치만 고려했다가는 조리 위치를 제대로 잡지 못해 요리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게임 오버.

결국 디펜스와의 조합이 똑같은 자동화 구조를 모든 맵에 적용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면서도 자동화 게임이 가지는 효율성과 그 구상 과정의 재미까지를 딱 살려냈다. 물론 군대 침구 각 잡듯 완벽하게 줄 잡아 움직이는 컨베이어 벨트 보려고 자동화 게임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아쉽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사실 이러한 자동화의 자유로움과 제한은 랜덤성이라는 요소와 맞물려 반복성을 살리도록 구현됐다. 아니, 그걸 목표로 하긴 했다.

▲ 각 잡기 따위, 그냥 요리만 잘하면 다 된다


요리와 엮은, 랜덤성이 만든 재미

여러 제약이 있다고는 해도 결국 스테이지의 맵 형태는 바뀌지 않는다. 모든 웨이브가 끝나면 미션은 클리어되고 게임 진행 자체는 비슷해질 수밖에 없다. 랜덤성은 이렇게 비슷하게 흘러갈 게임 플레이를 크게 뒤흔드는 역할을 한다.

키친 크라이시스의 랜덤성은 로그 라이트로 분류되는 게임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을 담았다. 여기에 이걸 요리라는 시스템과 엮으려 하면서 시도할 거리가 많은 방향으로 만들어졌다.

▲ 내 요리에 맞는 재료, 혹은 강화한 재료에 따라 요리를 고르는 선택도 전략이다

적을 느리게 하거나 범위 공격 피해를 가하는 등의 공격 특성. 이건 재료 강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무기 강화 특성이 재료 강화마다 3개가 랜덤으로 꼽힌다. 처음에는 그 특성에 원하는 재료를 넣고 이후에는 해당 특성이 더해진 재료를 반복 강화한다. 포만감(피해량)은 줄지만, 복수 공격을 하는 특성을 닭 재료에 줬다면 다음부터는 이 특성을 가진 닭 재료를 계속 강화하는 식이다.

조리된 요리가 아니라 재료를 강화하는 만큼 어떤 요리를 올릴지도 함께 고민하게 된다. 치킨 버거, 치킨 그라탕 모두 닭이 들어간 음식이다. 하지만 닭 말고 치즈며 양상추며 다른 재료도 들어간다. 다른 재료들도 저마다 다른 강화 요소를 더하면? 하나하나 특성 강화가 이루어진 재료를 필요로 하는 음식의 배치가 전혀 다른 타워 특성을 만든다. 일종의 빌드 특색화가 이루어지는 거다. 특히 높은 등급의 요리는 재료만도 4개, 5개 점점 늘어나니 다양한 빌드 활용은 끝이 없다.

물론 원하는 요리만 줄 세우기를 할 수는 없다. 조리대에 올릴 수 있는 음식은 웨이브가 끝날 때마다 랜덤으로 주어진다. 레시피는 5종의 요리 중 내가 강화하는 재료, 도구 강화 등과 연관지어 어떤걸 골라야 할지 고민하게 한다.

▲ 생선과 감자가 강화된 상태, 다른 요리도 생선과 감자 중심으로 집었다

선택을 통한 고민과 또 다른 고민의 연속. 랜덤성은 미션마다 맵이 고정되어 굳어질 수밖에 없는 게임에 활력을 주도록 했다. 또 그게 잘 먹힌 것도 맞다. 할 때마다 새로운, 그러면서도 머리 싸매게 하는 빌드와 심시티. 장르의 장점끼리 이가 잘 맞물려 톱니가 예쁘게 돌아간다. 그래야 한다.

그런데 게임이 삐걱거리는 순간이 있다. 서로 다른 부류의 게임 특징이 잘 어우러졌는데도. 이가 잘 맞은 톱니바퀴가 그게 끼임 없이 잘 돌아가게 할, '난이도와 밸런스'라는 윤활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서다.


랜덤성이 만든 재미, 그리고 불합리함

게임은 생각보다 더 많은 부분에 무작위 요소를 담았다. 초반 깔 수 있는 요리 레시피부터 매일 새로 획득하는 레시피, 재료 강화와 도구 강화 종류까지.

이러한 랜덤성은 자동화 구성과 음식 배치라는 전략성 안에서 게임을 더 흥미롭게 만들 수 있는 요소다. 무작위로 얻어가는 무기와 강화 요소를 서로 연결하면서 어떻게 최적의 빌드를 뽑아낼지. 이건 로그라이트 부류의 게임들이 가지는 강점이다. 플레이어 손에 전략적인 선택 여지가 더 많으니 운보다는 머리로 풀어나갈 가능성도 더 크다.

하지만 어느 루트로 플레이해도 이러한 전략성이 빛을 볼 때에서야 다양한 빌트 플레이가 쓸모 있어진다. 레시피를 고를 수 없는 첫 웨이브에 걸린 음식, 그리고 초반 무료 강화 티켓을 모두 써도 제대로 된 특성이 나오지 않으면 첫 라운드를 완벽하게 클리어하지 못하는 그림이 종종 나온다.

재료 특성은 몇몇 특성이 게임 플레이에 큰 이득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건너 띄기도 되지 않아 안 쓸 것 같은 재료에 특성을 몰아주게 된다. 그러다 좋은 요리 레시피가 랜덤으로 떴는데 아까 그 못쓸 특성이 붙은 재료가 포함됐을 때는 탄식마저 나온다.

▲ 내가 원하는 요리 맞추기보다는 그때그때 빌드에 맞춰서...도 별로 없다

도구 특성도 최대 강화 후 각성 능력을 주는 데 이게 특별한 능력을 가진다. 주변 도구 강화, 재료 옮겨주는 비행 드론, 재료통 따로 설치 안 해도 되는 도마 등 게임 플레이와 전략에 큰 영향을 주는 것도 있다. 그런데 일부 도구의 능력이 강하고, 또 레시피마다 쓰는 도구도 고르게 분배되지 않아 일부 특성이 강요된다. 반대 의미로 몇몇 특성의 효과가 너무 낮은 것도 플레이 다양성을 낮추는 이유가 된다.

스테이지 길이 구성은 획일적이다. 그래서 후반에 더 긴 웨이브를 만들고 순차적으로 어렵게 만들기보다는 비슷한 게임 길이로 초반 게임 플레이가 버겁게 구성됐다.

반대로 능력이 풀리고, 좋은 특성만 가져가면 전략성이 낮아진다. 굳이 재료 많이 필요한 높은 등급의 요리 없이 초중반 얻은 요리들로 클리어 되기도 한다. 괜히 요리 바꾸면 심시티도 다시 해야하는데 생산 속도가 따라주질 않고, 그럴 필요성이 없으니 낮은 등급으로도 그냥 가게 된다.

난이도 곡선이 초반에 높고, 점점 깎여나가는 식이다. 개별 스테이지가 아니라 게임 전체로 봐도 비슷하다. 특성을 사용할 수 없는 초반 미션이 중반보다 더 어렵다.

▲ 기껏 정리 다 했는데 딜 상승 측정 어려운 음식으로 다시 세팅?


디펜스와 자동화와 로그라이트, 이 게임은 어디에 있나

물론 저런 특정 빌드가 강력하더라도 로그라이트 성향의 게임은 반복 플레이를 도모하며 새로운 전략을 시도해보게 한다. 자동화 시뮬레이션은 완벽하게 짜맞춰 돌아가는 빌드에서 재미를 준다. 그런데 디펜스 장르는 다르다. 각 스테이지를 체력 손실 없이, 완벽하게 클리어하는 것이 목표다.

게임은 이런저런 시도로 여러 도전을 하고, 체험하는 반복 플레이를 지향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걸 타워 디펜스라는 부류 안에서 보면 결국 효율적인 플레이가 정해진, 난이도에서 헤맨 게임으로 분류할 수도 있다.

팀 사모예드는 팀파이트 매니저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번 게임 역시 초반 기대만큼의 반응을 얻었다. 하지만 플레이가 반복될수록 나오는 밸런싱 등의 문제까지는 미리 잡아내지 못했다. 첫 패치 이후 랜덤 요소의 다시 굴리기 첫회 무한 제공, 후반 게임의 난이도 하향 조정 등을 진행했다. 하지만 되려 전략적인 선택 요소가 덜어지고 도전 욕구를 낮추는 패치라는 느낌도 받는다.

▲ 새로고침 도입으로 난이도가 크게 낮아지긴 했다, 대신 같은 효과의 보물을 뽑을 필요는 사라지고

큰 틀 안에서 매니지먼트라는 장르 특색을 지닌 전작과 달리 여러 게임 플레이를 섞으며 키친 크라이시스의 난이도 조절 어려움은 더 커졌다. 캐릭터마다 가진 클리어 기록을 통합시키며 반복 플레이 의욕 역시 깎아냈다. 분명 캐릭터마다 완전히 새로 플레이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여럿 나왔지만, 스테이지 클리어 기록을 통일시키며 굳이 반복 플레이할 이유가 사라졌으니 말이다.

이러한 게임의 지금을 반대로 말하면 꾸준한 후속 작업을 통해 나아질 여지가 충분하다는 의미다. 정확히는 키친 크라이시스가 만들어놓은 기반이 너무 탄탄하다. 게임 콘셉트와 어우러지는 독특한 장르의 결합은 분명 큰 재미를 낸다. 그래서 키친 크라이시스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게 나쁜 경험은 아니다. 물론 그게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면서 이루어지는 만큼, 차기 패치로 어려운 밸런스 중심 잡기도 더 나아져야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