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 아주아주 특이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게임에서 접한 적이 있습니다. 디즈니의 명작만화에서 자주 본 푸른색 드레스를 입고 흰색 앞치마를 맨 금발의 소녀가 아닌, 검은색 머리의 피범벅된 드레스를 입고 식칼을 든 앨리스였습니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어딘가 촛점을 잃은 듯한 퀭한 눈동자, 머리의 크기에 비해 손발이 과하게 가늘고 길어서 괴기스러운 느낌을 주는 캐릭터입니다. 영화에 비유하면 팀 버튼 감독의 크리스마스의 악몽이나 비틀쥬스에 등장하는 캐릭터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정도지요.





명작만화나 그림책에서 지금까지 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는 달리, 식칼을 들고 트럼프 병사나 각종 벌레들을 난도질하던 충격의 액션 게임으로 아직까지도 그 경험을 잊지 못한 게이머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0여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피를 뒤집어 쓰면서 이상한 나라를 방황했던 앨리스는 현실의 세계로 되돌아왔지만 그녀에게 안식은 사치였을까요. 이번에도 앨리스는 또 다시 자신의 과거와 무의식 속에 잠긴 기억을 찾아서 이상한 나라로 다시 발걸음을 옮깁니다.





앨리스: 매드니스 리턴즈라는 제목 답게 이번 후속작은 전작 이상의 광기를 자랑합니다. 게임은 수수하게도 정신과 상담을 받는 앨리스의 모습을 비추며 시작됩니다. 화재로 가족을 모두 잃은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의 경험과 함께 매우 어두운 소녀가 되어 있습니다. 두 눈가의 다크 써클이 더욱 진해서 보기 안쓰러울 정도지요.



병원을 나와서 영국의 빈민가 골목 사이를 걸어가다 보면 산업혁명 당시의 암울한 시대상황이 앨리스 시리즈 특유의 그림체로 일그러져서 묘사되어 있습니다. 지저분한 길거리 곳곳에 주정뱅이들이 쓰러져 있고 사회에 불만을 갖은 시민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불평을 늘어 놓는 광경입니다.





치렁치렁한 검은 장발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단발머리에 수수한 드레스를 입은 거리의 소녀가 된 앨리스는 유난히 눈부시게 빛나는 흰 고양이를 발견하게 되고, 고양이를 따라가면서 다시한 번 이상한 나라를 찾아갑니다.



이상한 나라에 들어서자 앨리스의 복장은 다시 전작의 피 묻은 푸른색 드레스로 되돌아갑니다. 처음에는 점프 연습이나 이동 등 간단한 튜토리얼 훈련을 접하고, 바닥에 꽂힌 식칼을 줍게 되면서 본격적인 전투입니다. 앨리스의 복장은 게임 챕터 진행에 따라 분위기에 맞춰 바뀌게 되며 바뀐 복장을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이번 작에서는 전작과 같이 일직선으로 진행한다는 내용을 큰 차이가 없지만 전투보다는 퍼즐과 길찾기가 강화된 것이 특징입니다. 일직선으로 진행하면서 곳곳의 퍼즐을 풀고 적을 쓰러뜨리는 것이 전부인 셈이죠. 퍼즐은 사방에 놓여 있으며 복잡한 퍼즐은 비교적 적고 숨겨진 스위치를 누른다던가 무너지는 벽을 부수는, 탐색 형태에 가깝습니다.



각 챕터별로 길 찾기도 어렵지 않습니다. 돌아다녀야 하는 지역은 매우 넓지만 물약의 효과로 앨리스를 작게 만들면 이곳저곳에 힌트가 숨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길을 잃을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됩니다.





물론 중간중간 몬스터들도 꾸준히 출현하므로 몬스터와의 전투에 필요한 컨트롤 연습도 필요합니다. 가장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식칼은 마우스 왼쪽 버튼 연타로 쉽게 사용할 수 있고, 원거리 무기인 후춧가루통은 마우스 오른버튼입니다. Caps Look 버튼으로 원하는 몬스터에 시점을 맞춰서 그 몬스터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도는 기능으로 전투도 어렵지 않습니다. 또한 버튼 하나로 나비로 변하여 공격을 회피하는 등 전투 액션도 강화되어 있습니다.



게임이 진행되어감에 따라 식칼 외에도 다양한 무기를 입수합니다. 전작에서는 보스가 사용하던 후추통 기관총 외에도 우산과 같은 방어용 무기도 있어서 날아오는 적의 원거리 공격을 우산으로 튕겨서 다시 되돌리기도 합니다. 또한 거대한 해머로 벽을 부수거나 토끼 모양의 시한폭탄도 등장합니다. 전작 이상으로 무기의 종류가 크게 늘어나서 각 무기마다 다른 액션을 즐길 수 있죠,





무기의 강화 시스템도 바뀌었습니다. 앨리스:매드니스 리턴즈에서는 몬스터를 처치하거나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곳곳에 놓여 있는 이빨을 볼 수 있습니다. 이빨이 바로 게임 내에서 화폐로 간주되어, 일정 수량을 모을 때마다 원하는 무기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강화 단계가 높을 수록 외관이 변하거나 능력이 추가되지만 비용도 늘어나므로 이빨을 부지런히 모아야 합니다.



점프 액션의 난이도는 훨씬 올라갔습니다. 한 번 점프한 후 다시 공중에서 연속으로 점프할 수 있으며, 점프 중 점프 버튼을 계속 누르고 있으면 활강을 하는데 이 거리를 잘 맞춰서 점프를 해야 하는 곳이 많습니다. 고난이도 모드의 슈퍼마리오를 하는 느낌입니다. 끝이 없는 바닥에 떨어지면 한 방에 사망하지만 다행히 자동 저장 기능 덕분에 다시 할 수 있어서 스트레스는 적은 편입니다.





그렇게 6개의 챕터를 진행하게 되고 마지막에 앨리스의 정신을 황폐화시키고 모든 사건의 근원이 된 악과 마주하게 됩니다. 게임 플레이 중간중간 과거에 벌어졌던 사건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기억 조각을 모으게 되므로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긴 하지만 전작을 해 본 사람이라면 마지막에 접하게 될 진실은 충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스포일러인 만큼 직접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원작 소설이 만들어 놓았던 세계관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집고 광기에 가득한 세계로 뒤집어 충격을 주었던 전작 발매 후 10년만에 돌아온 앨리스: 매드니스 리턴즈. 새로운 게임 제작 기술에 힘입어 10년의 시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멋지게 바뀌었습니다. 한 번 엔딩을 보면 끝이었던 전작과는 달리 여러 숨겨진 요소를 찾는 재미도 있어서 여러 번 플레이할 수도 있습니다.





적당한 길이의 플레이 타임과 빠른 스피드감의 점프 액션, 손맛이 쏠쏠한 전투와 전작 이상의 광기 등 모든 부분이 전작을 가볍게 뛰어넘을 만큼 잘 만들어진 후속작입니다. 특히 전작을 재미있게 즐긴 사람에게는 추억을 자극하면서도 재미를 주는 최고의 선물일 것입니다.



물론 전작을 해 보지 못한 사람도 아메리칸 맥기의 파격적인 상상력과 앨리스 시리즈 특유의 배배 꼬인 재미를 맛볼 수 있으니 뜨거운 여름날을 날려보낼 시원한 납량 특선을 찾는 분이라면 즐겨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