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는 듯한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서 내리쬐고 있는 무더운 여름. 더위가 극성을 부리는 무더운 여름이 다가오면 언제나 등장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한여름의 더위를 한 방에 날려줄 오싹한 공포물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름은 공포 영화도 다양하게 쏟아져 나오고 공포를 소재로 한 이벤트도 많이 진행되는 계절입니다.


그런데 게이머라면 영화를 보러 가거나 산과 바다로 피서를 가는 것보다 게임 안에서 무더위를 해결할 방법을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덕분에 매년 여름이 되면, 영화만큼은 아니지만 꾸준하게 다양한 공포 게임들이 등장해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재미를 선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자는 웬만한 호러 게임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 강심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원래 간이 컸느냐고요? 그럴 리가요. 어두운 밤 바스락거리는 소리에도 심장이 뛰던 기자를 공포 게임 면역 강심장으로 만든 한 게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게임을 클리어한 후로는 웬만한 게임으로는 별로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게임은 바로 '암네시아 - 더 다크 디센트'입니다.







◆ 전형적인 어드벤처 방식의 암네시아


암네시아는 전형적인 어드벤처의 스타일의 게임입니다. 진행 중 얻을 수 있는 작은 힌트를 활용해 퍼즐을 풀어나가는 것이 게임의 진행입니다. 퍼즐의 난이도는 그리 높은 편이 아닙니다. 어느 정도 퍼즐에 감각이 있는 분이라면 플레이 종종 발견하는 힌트가 적힌 쪽지나 속삭임을 듣고 충분히 풀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암네시아가 주는 공포감. 퍼즐을 풀려고 해도 손이 덜덜 떨리니, 이를 극복하지 않으면 게임을 진행할 수 없습니다.


암네시아는 호러 장르 게임에서 자주 써먹는 갑자기 무서운 영상이 나오는 등의 으스스한 연출도 보여주고 있지만, 이런 연출적인 공포와 전혀 다른 차원의 공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데드 스페이스나 사일런트 힐에서 깜짝깜짝 놀라서 무서웠다면, 암네시아는 서서히 조여오는 압박감이라고 할까요.


특히 주인공이 굉장히 심약한 설정을 하고 있어서, 괴물에 맞서 싸우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게이머가 받는 긴장감이 배가됩니다. 다른 게임에서 제한적이나마 총도 쏠 수 있고, 괴물을 물리칠 수도 있었던 것이 암네시아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괴물을 등지고 도망치는 사이 들리는 주인공의 심장 소리는 키보드를 잡고 있는 게이머의 심장마저 뛰게 합니다.



[ 이런식의 연출과 함께 들리는 소리는 극한의 공포를 보여준다 ]




◆ 너무나도 인간적이어서 더욱 공포스러운 정신력(Sanity) 시스템


앞서 설명하였듯이 암네시아에 등장하는 주인공 다니엘은 상당히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무기를 가지고 괴물을 상대하는 그런 멋진 히어로을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어두운 곳에 오래 있으면 환각 증세를 보이며 어지러움을 호소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화면이 뿌옇게 왜곡되기 시작합니다. 괴물과 가까이 마주치는 순간에는 이러한 증세가 심각해지며 급기야는 정신을 잃어버립니다. 이는 곧 게임 종료를 뜻합니다.


그냥 어두운 곳에 있기만 해도 정신력이 떨어지는 주인공은 괴물만큼이나 전반적인 분위기를 무섭게 만들고 있습니다. 다행히 정신력은 빛을 바라보면 조금씩 차올라 안정을 찾게 되는데, 게임 중에 얻은 랜턴에 불을 붙이거나 무너진 천장 사이로 새어나오는 빛을 찾아다니게 되는 이유입니다.



[ 좌측 하단의 뇌모양이 정신력을 나타내며 심장은 체력을 표시한다 ]



[ 정신력은 랜턴을 이용하여 빛을 쬐거나 문틈의 빛을 바라보면 자연스럽게 회복 ]



하지만 빛을 제공해주는 중요한 아이템, 랜턴은 무한으로 사용할 수도 없거니와 정신이 혼미해진다고 무작정 사용하기도 어렵습니다. 주변에 괴물이 랜턴의 불빛을 보자마자 주인공에게 득달같이 달려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게이머는 필연적으로 어둠에 익숙해져야 하고, 어쩔 수 없이 어둠 속에서 두려움에 떠는 주인공의 울렁이는 마음을 흔들거리는 화면과 가빠진 호흡소리로 그대로 느껴야만 합니다.


게임을 시작하게 되면 주인공은 어떤 성안에서 기억을 잃어버린 채 일어나게 됩니다. 어떤 이유로 지워져 버린 기억을 되살려야 하며 기억을 찾는 과정에서 암네시아가 가진 스토리가 드러나게 됩니다. 스토리 자체의 분량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숙련된 유저라면 5~6시간이라면 무난하게 클리어할 수 있을 정도의 볼륨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패키지 게임으로써는 짧은 플레이타임입니다.


하지만 그 어느 사람도 암네시아의 볼륨에 대하여 불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암네시아의 공포를 이겨내고 멀쩡한 정신으로 퍼즐을 풀어가며 5시간만에 클리어할 수 있는 유저가 얼마나 될까요... 기자 또한 너무 무서워서 몇 번이고 게임을 끄고 가쁜 숨을 몰아 쉬어야만 했습니다.






◆ 유저를 극한으로 몰아가는 사운드


화면에 표현되는 환각과 괴물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심장 소리도 공포적인 연출에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괴물이 다가오면 점점 심장 소리가 크고 빨라지는데, 듣고 있는 게이머의 심장도 덩달아 뛰게 됩니다. 괴물과 마주할 때 들리는 비명은 그 어떤 게임이나 영화의 비명보다 무섭고 극한의 공포에 가깝습니다.


심장 소리와 비명 소리뿐만이 아닙니다. 으스스한 배경음과 저 멀리 들려오는 낡은 기구의 소리, 누군가의 체인이 땅에 부딪히는 소리 등 많은 소리가 주인공 주변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음 사이에서 괴물과 조우했을 때 등장하는 비명 소리는 소름이 돋을 정도입니다.



[ 물에 빠져 발판을 밟지 못한다면 어김없이 그가 다가온다 ]



음향적인 공포의 절정은 바로 중간쯤 만날 수 있는 워터러커(Water Lurker)입니다.


소위 물귀신으로 통하는 이 괴물은 기본적으로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물을 걸어 다닐 때 물이 튀는 발자국으로 위치를 짐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인공이 함께 물속으로 들어오면 물귀신이 따라오는데 숨 가뿐 물소리와 함께 펼쳐지는 추격전은 암네시아의 백미라고 할 정도로 소름 끼치는 음향효과를 보여줍니다.


사운드에 비해 그래픽 부분에서는 그리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텍스처의 질감이 호러 게임에 어울리긴 하지만 화려한 광원효과나 이펙트는 보기 어렵습니다. 상당히 괴기스럽게 디자인된 괴물도 어둠에 가려져 있고, 정신이 혼미해지면 화면이 흔들려서 자세히 볼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그래픽의 좋고 나쁨을 따지는 것은 배부른 소리일 것입니다. 화면을 보고 있다니요. 어서 도망치십시오!



[ 어둠은 아무리 플레이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




◆ 암네시아의 공포는 후유증이 길게 남는다.


국내에는 정식으로 발매되지 않았지만, 공포 게임 마니아 사이에서는 극찬을 받고 있는 타이틀인 암네시아 -더 다크 디센트. 2010년에 등장한 타이틀이지만 암네시아가 가지고 있는 공포는 2011년에도 유효합니다. 기자가 처음으로 암네시아를 플레이했을 때 느꼈던 등골 오싹한 공포는 현재까지 플레이했던 수많은 호러 게임의 존재를 모조리 잊게 할 정도로 강력했으니까요.


가까이 다가오는 무언가에 의하여 주인공의 눈앞은 아득해져 가고 점차 환각에 빠지게 됩니다. 음산한 소리로 무언가가 근처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점점 흐려져 가는 시야 너머로 저 멀리 괴물의 흐릿한 형체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조심스럽게 어두운 구석으로 숨어 들어갑니다. 심장 박동은 빨라지고 어두운 곳으로 간 주인공의 시야에는 벌레가 기어 다니는 환각 증세까지 나타납니다. 화면이 울렁거리고 머리털이 쭈뼛쭈뼛 설때쯤 어둠 사이로 괴물의 형체처럼 보이는 실루엣이 지나갑니다.


이미 주인공이 견딜 수 있는 한계에 다다른것 같습니다. 안정을 위해 작은 불빛이라도 바라보고자 랜턴에 불을 붙입니다. 그러자 갑자기 소름끼치는 비명소리와 함께 지나갔던 괴물이 달려옵니다. 깜짝 놀란 기자는 비명을 지르며 모니터를 꺼버렸습니다. 하지만...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공포 게임이라고 하면 흔히 좀비가 나오거나 귀신이 등장하는 그런 게임들이 먼저 꼽힙니다. 암네시아 역시 그런 게임들과 마찬가지로 무서운 괴물들이 나오고, 깜짝 놀라게 하는 연출도 나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무서운 존재들을 물리칠 수 있는 다른 게임과 달리, 연약한 주인공으로 괴물들에게 들키지 않게 숨소리를 죽이고 있어야 하는 암네시아에서 게이머는 끝까지 미약하고 힘없는 존재로 남아 있어야 합니다. 바로 이 점이 일반적인 호러물에 비해 암네시아가 인상적인 공포를 남겨주는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므로 암네시아는 진정 공포를 즐길 줄 아는 게이머, 또는 웬만큼 스스로 강심장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만 플레이하길 권합니다. 물론 다른 공포물에는 놀라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은 분들이라면 당장 플레이하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공포 영화를 볼 때도 눈을 가리는 당신이라면, 이 기사를 읽었다는 사실조차 잊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암네시아를 플레이하시고 난 후 벌어질 일에 대한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 영상으로 먼저 암네시아의 공포를 맛보라.
물론 이는 게임에서 느낄 수 있는 공포의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