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껏 기대했던 동경 게임쇼 -TGS 2011- 도 끝나고 가장 인상깊었던 것들을 떠올리다보니 문득 드래곤 퀘스트 25주년을 맞이하여 발표된 드래곤 퀘스트의 신작 소식이 떠오른다. TGS를 얼마 앞두고 드래곤퀘스트의 아버지 '호리이 유지' 감독이 직접 발표한 놀라운 소식. 온라인의 비중이 큰 한국은 파장이 덜하지만, 콘솔 게임을 쭈욱 즐겨왔던 게이머들에게는 그야말로 엄청난 사건이다.


지금의 청소년 세대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을 수 있지만, 일본의 콘솔 게임들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에 가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게임들 중 하나가 바로 드래곤퀘스트 시리즈이다. 특히 JRPG로 불리는 일본식 롤플레잉의 정점에 선 라이벌, 드래곤 퀘스트(DQ)와 파이널판타지(FF)는 출시될 때마다 콘솔 게임업계는 물론 게임기의 흥행과 수명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파괴력을 갖춘 타이틀이었다.


전세계적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지만, 일본의 국민게임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것은 드래곤 퀘스트. 특히 DQ의 발매가 결정되면 하루 전부터 게임 판매점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는 일도 다반사였고, 유유백서와 헌터X헌터로 유명한 만화가 '토가시 요시히로'의 잦은 연재 중단을 막으려면 DQ의 개발 담당자를 테러해 발매일을 늦추라는 유머가 있을 정도로 일본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게다가 게임 제목과 마석 등 게임 내의 몇몇 핵심 요소를 제외하면 항상 꾸준한 변화와 화려한 그래픽을 추구해온 파판 시리즈와 다르게, 드래곤 퀘스트는 시리즈의 전통적인 장점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입장을 추구해 왔기 때문에 이번 온라인 버전의 발표가 더욱 충격적인 소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어쨌건 최초의 온라인 버전이 될 '드래곤 퀘스트 X'는 2012년 발매될 예정이다. 현재까지 공개된 바에 의하면 콘솔 게임기인 Wii 독점으로 등장할 예정이며, Wii의 후계 게임기인 Wii U 및 3DS의 엇갈림 통신을 활용한 부가적인 게임 요소들도 포함되어 있다고 하니 기존 시리즈 이상의 다양한 재미를 선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DQ의 신작이 발표될 때마다 환호하던 예전과 달리 일본 게임 업계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드래곤퀘스트의 25주년 신작 발표를 앞두고 하루 전까지만 해도 상승세였던 스퀘어 에닉스의 주가는 드래곤퀘스트 X가 온라인을 기반으로 개발된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하락세로 돌아섰으며, 현재는 개발 프로젝트를 중단하거나 방향을 선회해야 한다는 팬들의 극단적인 요청까지 들려오고 있다. (물론 시간이 좀 흐른 현재는 발매까지 기다려보자는 반응이 많다.)




[ 5일 온라인 버전 개발이 발표된 후 스퀘어에닉스의 주가. (출처:야후) ]



콘솔 게임업계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일본의 국민게임이자 JRPG의 전설, '드래곤퀘스트'가 온라인으로 개발된다는 소식에 왜 일본의 게이머들은 물론 해외의 게이머들까지 환호에 앞서 우려의 시선을 먼저 보내고 있을까? 이것은 나름의 게임성과 재미로 명작이라 칭송받던 일본의 콘솔 게임들이 온라인에 발을 들인 뒤 실패의 쓴 잔을 연거푸 들이켜야 했던 씁쓸한 기억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 나오면 무조건 실패? 일본 명작 콘솔 게임의 온라인화


일본산 명작게임들이 온라인화된다는 소식을 들으면 왜 희망에 앞서 부정적인 인상이 떠오를까? 일단 지금까지 개발되었던 일본산 명작 게임들의 온라인화 결과를 살펴보자.


과거 '파이널판타지 7'의 공습에 저항하는 새턴 게임기의 희망이자 세가의 보루였던 그란디아는 4년이 넘는 발매 연기를 거치면서까지 온라인으로 제작되었으나 공개되자마자 기대치 이하라는 혹평을 받았으며, 악마 합체라는 독특한 시스템과 난이도로 인기를 얻은 진 여신전생은 '이매진'이라는 타이틀로 온라인화되어 한국에도 진출했으나 역시 난해하다고 평가할수 밖에 없는 조작과 시스템으로 흥행에 실패했다.


콘솔 게임 최초로 보컬이 삽입된 오프닝과 미려한 그래픽, 독특한 횡스크롤 액션 전투로 또 하나의 명작 시리즈가 된 테일즈 시리즈는 이터니아를 기반으로 하는 테일즈 오브 이터니아 온라인을 선보였으나 역시 원작의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한 채 서비스 1년여만에 종료 공지를 올리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적응하기 쉽지 않은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흥행에 성공했던 파이널판타지 11편의 뒤를 이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가 목표라는 당찬 포부를 자랑했던 파이널 판타지 14편은 불편한 인터페이스와 게임 시스템, 불안정한 서버 문제로 인해 엄청난 비난을 받았고 심지어 대다수의 개발진이 교체되는 굴욕까지 겪으며 수정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빨간 머리 바람둥이 검사 아돌의 여성 편력기(?)를 그린 이스 시리즈는 원작과 전혀 상관없는 평범한 온라인 게임으로 출시되면서 2010년 한국 서비스가 종료되었으며, 세계 최고의 인지도로 초기부터 엄청난 관심을 모았던 드래곤볼 온라인은 원작의 세계를 충실하게 구현하는데는 성공하였으나, 온라인 게임으로의 시스템과 재미는 드래곤볼이라는 이름이 미치지 못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차세대 온라인을 이끌어갈 장르로 MORPG가 거론될 무렵 온라인화되면서 기대를 모았던 진 삼국무쌍 온라인은 원작이 가진 액션의 재미를 옮겨놓는데는 성공했으나, 온라인 게임에 대한 고려가 부족해 콘솔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재미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한국 서비스가 종료되었다.


얼마전 한국에서 결국 서비스를 종료한 몬스터헌터 프론티어 역시 온라인의 한계를 갖고 있는 게임. 물론 게임 자체의 재미때문에 한국에서도 상당 기간 서비스를 이어왔고 팬층도 두텁지만, 콘솔 패드를 연결해 게임을 즐길때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불편한 PC기반 인터페이스 및 멀티 플레이 수준에 그친 제반 시스템때문에 뛰어난 재미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패드가 일상화된 일본에서는 한국의 몬스터헌터 프론티어에서 제기되었던 단점들이 문제가 되지 않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으나, 일본을 제외한 해외 성적을 감안하면 역시 일본의 독특한 게임 문화와 취향만 부각되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일본산 온라인게임들이라고해서 무조건 실패한 게임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항해시대 온라인의 경우 콘솔에서 출발하였으나 PC 기반의 게임을 제작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온라인으로까지 성공적인 변화를 이루어낸 사례.

한국에서도 대박이라고 표현할 정도는 아니지만 꾸준하고 안정적인 성과를 내며 자리잡았고, 이는 애초에 무역과 항해라는 게임 특유의 시스템이 가진 한계일 뿐 온라인 게임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항해시대 온라인은 다양성이나 독특한 콘텐츠와 게임성때문에 오히려 한국의 온라인 게임이 배워야할 장점 역시 갖추고 있다.






파이널판타지 11편 역시 의외의 성공을 기록했던 게임. 다만 파이널판타지 11편의 경우 PC 기반이 아닌 콘솔 기반의 장점들을 온라인으로 가져가 성공한 케이스로, 단적인 비교는 힘들지만 기본적인 시스템이나 게임의 흐름이 현재의 온라인 게임들과 비교해볼때 적응하기 힘든 단점이 있어 역시 대중성에서 약점을 보인다.

판타지 스타 온라인 역시 명작 게임이 온라인화되어 초기부터 매니아층을 확보하며 꾸준한 성적을 보여주던 게임이지만, 역시 온라인이라기보다는 멀티 플레이에 기반한 시스템에 가깝고 콘솔 게임기에서 벗어나기 힘든 구조를 갖추고 있어 비판의 여지는 남아있다.

결국 이런 단점들을 인식한 결과 최신작인 판타지스타 인피니트 온라인 2의 경우 콘솔에서 벗어나 PC 기반으로 개발되고 있으며, 최근 공개된 정보에 의하면 기존의 판타지스타 온라인에서 벗어나 더욱 온라인에 최적화된 형태가 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 일본 명작 게임의 온라인화는 왜 실패했을까?



익히 알려져있다시피 일본의 게임 시장은 갈라파고스화라는 말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폐쇄적인 취향에 익숙해져 있다. 전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여전히 일본에서 서비스되지 않고 있으며, 이미 세계적인 추세가 된 e 스포츠 분야에 대한 반응 역시 일부 FPS 게임을 제외하면 미적지근하다.


※ 갈라파고스화 - 글로벌화의 반대 의미로 자주 쓰이며, 폐쇄적인 자국 시장에서 독자적인 진화를 추구해 다른 나라의 기준과 호환되지 않는 형태나 상품, 문화 등을 뜻한다. 한국의 통신과 IT 분야 역시 아이폰이 발매되기 전까지 갈라파고스화되어간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일본의 콘솔 게임이 전성기를 이끌며 세계의 중심으로 인정받던 시기에는 일본의 규격이 곧 세계의 기준이 되었으나, 게임이 점차 온라인으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액션을 제외한 일본의 콘솔 게임 장르들은 대부분 글로벌 유저층이 줄어들고 있다. 물론 일본의 내수만 고려해도 상당한 시장이지만, 일본의 취향에 맞춘 명작 게임들만으로 세계적인 흥행을 노릴 수 있었던 시절은 지나갔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지금까지 온라인으로 등장했던 일본의 명작 콘솔 게임들을 살펴보면 온라인이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특징이나 변화에 대한 진지한 접근은 찾아보기 힘들다. 극단적인 표현으로 설명하자면, 지금까지 등장했던 대다수의 일본산 온라인 게임들은 콘솔 버전 위에 양념으로 멀티플레이를 입혀놓은 게임에 불과하다.


여기에는 온라인 게임의 기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도 있지만, 여전히 PC보다 콘솔에 집중할 수 밖에 없는 일본 게임 산업의 한계와도 연관이 있다. 즉 어떤 형태로 게임을 만들더라도 콘솔 게임기에서 접속할 수 있어야 하며, 전체적인 인터페이스나 조작 역시 패드같은 콘솔 기기의 접근을 고려해야 한다는 제약때문에 자유로운 형태의 온라인 게임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한국 콘텐츠 진흥원의 '2011 한일 게임 이용자 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일본에서 PC로 게임을 즐기는 인구는 전체 게임 인구의 8.8%에 불과하고, 온라인 역시 4.6%에 그친다. 휴대용 게임기 35.1%와 비디오 게임기 18.4%를 합한 수치는 53.5%이니 단순하게 계산해도 무려 5배의 규모가 된다. 일본에서는 거치형이던 휴대형이건 여전히 콘솔 게임이 핵심 시장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온라인에 대한 이해 부족과 일본시장의 한계, 기존 시스템의 개선에 안주하는 개발 방향과 새로운 시도에 조심스러운 게이머들의 취향까지 겹치다보니 명작이라는 평가를 받던 콘솔 게임들이 온라인으로 제작되는 족족 참담한 실패를 맛보게 되었고, 한국이나 중국과의 합작을 통해 연이은 실패의 한계를 벗어나보려던 시도 역시 평범한 온라인 게임들과 전혀 차이점이 없는 '미투(me, too)' 전략을 취하면서 장점을 취하지 못하고 부정적인 결과로 남게 되었다.



▷ 불안한 기대속에 출발하는 드래곤퀘스트 X


여러 게이머들의 불안한 기대에도 불구하고 다행스러운 것은, 드래곤 퀘스트의 경우 전작들의 변화를 고려해보았을 때 온라인화 게임에 대한 준비를 예전부터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는 점이다.

단적인 예로 시리즈 7편까지 그래픽적인 개선을 제외하고 전혀 변화가 없이 전통을 고수해오던 기조를 버리고 전투 시스템이나 전체적인 인터페이스가 좀 더 온라인 게임에 가깝게 변화를 거쳤으며, NDS로 출시된 DQ 9편에서는 멀티플레이까지 지원해서 온라인의 가능성에 대한 시험까지 마쳤다.

전통을 버렸다는 비난을 받게 될 수도 있다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선택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개발사인 스퀘어 에닉스에서 드래곤 퀘스트라는 타이틀을 온라인으로 제작하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8편부터 이어진 일련의 변화에 대해 어느 정도 납득이 갈만한 결론을 얻었다고 추정해볼 수 있다.




[ DQ7까지의 전투장면과 (좌) DQ8의 전투. ]




그러나 드래곤 퀘스트 X 발표 당시 선보였던 동영상을 분석해볼때, 아직까지는 불안한 부분이 더 많다. 여전히 전투는 콘솔 게임 시절의 턴제와 인카운터에서 변화하지 않았고, 체감형 게임에 쓰이는 다양한 기능을 빼면 기기 자체의 성능은 동급의 게임기 중 최하위인 Wii 독점인데다 HDD의 용량이나 USB 메모리같이 부수적인 불안 요소도 있다.

게다가 온라인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혼자서도 100% 즐길 수 있을 것이라 명시한 점이나 NPC와도 동료가 될 수 있고, 술집에 캐릭터를 맡겨둘 경우 로그아웃한 상태에서도 다른 게이머와의 파티로 캐릭터가 성장하는 등 온라인에서 악용되거나 커뮤니티에 문제가 될 수 있는 단서 역시 남아있다.

앞으로 DQ X가 온라인화에 대한 충분한 연구를 통해 변화하지 못할 경우 기존의 실패한 온라인 게임들처럼 온라인은 양념에 불과한 게임으로 남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런 형태가 온라인에 익숙하지 못한 일본의 게이머들을 위한 완충 장치나 배려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글로벌한 온라인 게임을 노린다면 단점으로 남게될 약점이다.




[ 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불안 반, 기대 반 ]




나오기만 하면 팔린다는 일본의 국민 게임 드래곤퀘스트가 온라인과 만난다.

과연 JRPG의 전설이 온라인에서까지 그 명성을 이어갈 수 있을까? 게임에 대한 판단은 차후 공개되는 정보들을 살펴본 이후로 기약해야하겠지만, 지금까지의 전례를 살펴볼때 드래곤퀘스트가 온라인으로 탄생한다는 소식은 추억속에 DQ의 향수를 간직한 팬의 입장에서 걱정이 먼저 앞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일본 게임산업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드래곤퀘스트와 파이널판타지. 전설로 불리는 최고의 시리즈를 모두 보유한 스퀘어 에닉스는 이미 파이널 판타지 14편의 실패를 통해 회사가 휘청일 정도의 고난을 겪어야 했다. 최근 팬들에게 신작에 대한 도전과 모험을 포기하고 추억 장사에만 몰두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세계 최고의 개발 실력을 갖춘 곳. 스퀘어 에닉스가 다른 일본산 온라인 게임들과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