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결코 예술이 될 수 없다.(Video Games Can Never Be Art.)

이 도발적인 멘트의 주인공은 1975년 영화평론가로는 최초로 퓰리처상까지 받았으며 포브스지에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비평가라고 인정한 세계적인 영화 평론가, 로저 에버트. 그는 2005년과 2010년, 자신의 칼럼을 통해 비디오게임이 예술이 될 수 없다는 의견을 피력했으며 그 즉시 전 세계 게이머들로부터 폭발적인 어그로를 이끌어냈다.

▶ 로저 에버트 칼럼 원문 (2010.4.16) (댓글만 4천개가 넘는다.)


하지만, 로저 에버트가 오늘 소개할 게임을 잠시라도 플레이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의 확고한 생각이 조금은 흔들릴지도 모르겠다. 다름 아닌 댓게임컴퍼니(thatgamecompany)가 개발하고 SCE가 PS3 다운로드 버전으로 출시한 저니(Journey)다.

우선 개발사 소개부터. 댓게임컴퍼니는 인디게임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던 fLOw와 Flower를 출시한 회사. 새로운 아이디어와 접근방식으로 현재의 대부분 비디오게임과는 사뭇 다른 감정적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3월 13일 출시된 저니는 이런 남다른 길을 걸어온 댓게임컴퍼니의 잠재력이 극대화됐다.


게임을 시작하면 보이는 것은 바람이 몰아치는 사막의 한 풍경이다. 화면을 가리는 어떤 인터페이스도 없고 어떤 글자도 없다. 얼굴과 몸 전체를 두건과 망토로 뒤덮은 주인공 캐릭터가 몽환적인 배경 속에 홀로 서 있다. 그리고 조용히 울려 퍼지는 음악소리들. 오직 그뿐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플레이어는 크게 방황하지 않는다. 카메라 시점부터 배경 속의 오브젝트까지, 철저하게 계획된 게임 속 장치들이 저 멀리 빛이 보이는 산의 정상에 올라야 한다는 최종 목표를 명확히 제시한다. 점프하고, 소리를 내는 두 개의 버튼 조작법만 숙지하면 더는 튜토리얼도 필요없다.





게임의 기본형태는 일반적인 어드벤쳐 게임과 같다. 각 스테이지가 있고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특정 목적지에 도달해야 한다. 간단한 퍼즐을 풀고 지리적 난관을 뚫어야 하며, 매번 적절한 타이밍을 요구하는 액션도 필수가 된다. 각 스테이지에는 발견하면 보너스를 주는 숨겨진 아이템도 있다. 압도적인 규모로 깜짝 놀라게 하는 블록버스터적 장치들도 있다.

이상한 점은 게임을 진행하면 할수록 '게임 플레이'는 자꾸 망각하고 저니의 그래픽과 사운드, 그리고 카메라 시점이 어우러지며 창조하는 '아름다움'에 몰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정말 몇몇 장면에서는 게임패드를 쥐고 있는 손에 저절로 힘이 빠지면서 오직 화면만 바라보게 된다. 강렬한 감정의 출렁임을 느끼며 감탄사를 연발하게 되는 것. 저니의 가장 큰 매력이자 플레이를 지속시키는 진짜 원동력이다.

게임 플레이에서 종종 등장하는 동료도 백미다. 별다른 의사소통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하나의 목표를 위한(최종 지점까지의 길을 찾는) 협력플레이가 유도되면서 어떤 때는 퍼즐의 힌트를 주는 존재가, 어떤 때는 거센 폭풍을 함께 이겨내는 동반자가 되어준다. 또한, 나만의 스토리는 물론, 판타지 속에서의 현실감을 만들어 주기까지 하는 아주 고마운 요소이자 엔딩 후 깜짝 반전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엔딩 스탭 롤을 바라보다 성급한 마음으로 2012년 나만의 '올해의 게임'을 '저니'로 점찍으며 한동안 깊은 생각에 빠졌다.

로저 에버트는 영화나 소설, 연극, 춤 같은 자른 장르와는 다르게 게임에는 목적이 있고 규칙이 있으며 승리(Win)할 수 있기 때문에 예술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저니는 이 괴팍한 논리에 충분히 유쾌한 카운터 펀치를 날릴만하다. 산의 정상에 도달하는 것이 목적이며, 도달하기 위한 일종의 규칙이 있지만 저니의 엔딩을 본 후 승리의 도취감에 빠져들기는 어렵다. '아름다움'이 만들어낸 깊은 여운이 있다면 모를까.

반대로, 게임 내 플레이를 통해 경험을 축적하고 연속된 의사결정의 결과로 목표를 달성한다는 전형적인 게임의 요건에 비추어보면 저니는 게임으로서는 부족하다고 볼 수도 있다. 과연 저니는 하나의 게임일까? 아니면 단지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일 뿐일까?

비디오 게임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Journey)에 대해 던지는 화두가 2시간이 채 안되는 플레이 시간, 하지만 오직 '아름다움' 때문에 다시 하고픈 게임, 저니를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다.




▶ 저니, 공식 트레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