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처음 게임을 하게된 계기는 어린 시절 약주 한잔 걸치시고 집에 들어오신 아버지의 손에 들린 패밀리 오락기다. 어린 시절 일요일에는 KBS에서 방송해주던 디즈니 월드 만화를 손꼽아 기다리던 순수했던 시절 패밀리가 보여준 게임의 세상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버튼을 누르면 점프하고 내마음대로 움직이는 캐릭터를 조종하다보면 시간가는 줄 몰랐던 시절. 지금 생각해보면 집 주변에 이런 오락기의 팩을 교환해주던 게임샵도 상당히 많이 있었던 시절이다. 친한 친구를 집으로 초대해서 이름도 모르는 게임을 붙잡고 한 판씩 클리어하던 추억 등등...

기자와 같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가지고 있는 독자라면 아마 오늘 인터뷰를 진행한 '에메랄드 드래곤(에드)'님의 소장품에 군침을 흘리지 않을까? 그는 패밀리부터 PC-엔진, MSX, 메가드라이브를 비롯하여 2000 여종이 넘는 레트로 게임을 수집한 콜렉터이자 게이머이다.

처음 인터뷰 약속을 잡고 만난 자리에서 '저보다 더 많이 모은 분들이 많은데....'라고 말하던 에드님이었지만, 방에 들어서자마자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초대받은 에드님의 방에는 어린시절 그렇게 즐겁게 플레이하고 또 추억에 잠기게 해주는 타이틀이 그야말로 방의 벽을 꽉 채울만큼 가득 전시되어 있었다.

게임 팩을 쌓아 방의 벽을 채우려면 몇개의 게임이 필요할까? 엄청나게 많은 양의 게임을 보면서 밀려드는 추억에 젖어드는 것도 잠시, 이렇게 많은 게임들을 모으게 된 이유가 궁금해 질문을 던졌다.


[ ▲ 방안을 전부 카메라로 담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 ]

[ ▲ 익숙한 타이틀부터 처음보는 타이틀이 잔뜩 모여있었다. 온달장군? ]


'원래 레트로 게임을 상당히 좋아해서 예전부터 조금씩 모으고 있었어요. 본격적으로 모으기 시작한 것은 3년정도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릴적에 즐겨 플레이했던 컴보이부터 모으기 시작했거든요. 그렇게 조금씩 모으다보니 취미가 되어서 범위를 넓혀가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일본에 놀러가서 구매해오기도 했구요.

단순히 레트로 게임들을 모으는 재미뿐만 아니라 같은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점도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저보다 더 나이드신 분들은 보통 레트로 하면 미국 게임을 떠올리시지만, 딱 제 나이 또래는 패밀리부터 시작해서 여기 있는 게임 중 하나씩은 꼭 해본적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의 게임문화가 시작되었던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이거든요.'




추억을 따라 하나 둘, 모으다보니 어느새 방을 한가득 채울만큼 모으게 되었고 함께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까지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에드님. 2,000 여점이 넘는 레트로 타이틀을 수집할 만큼 대단한 열정을 보여준 그에게 레트로 게임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 ▲ 수퍼 알라딘 보이판 '우주 거북선' ]

[ ▲ MD(메가 드라이브)는 거의 모든 타이틀을 수집하셨다. ]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향수죠. 어린 시절 재미있게 즐겼던 게임에 대한 추억. 그리고 고전게임들이 좀 더 게임이 가진 재미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게임들은 그래픽처럼 외적인 부분에 더 신경을 썼다는 느낌이거든요. 고전게임에서 정해진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나날이 테크닉적인 부분과 그래픽만 발전하고 있어요.

그런데 고전 게임들의 경우에는, 물론 그래픽이나 테크닉적인 부분은 현재 게임들과 비교할 수 없겠지만, 게임이 추구하던 재미의 핵심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최초의 레이싱 게임이라면 레이싱을 어떻게 재미있는 게임으로 만들고 구현해야 하는가? 라는 가장 본질적인 고민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아요.

예전에 비하면 최신 게임들에 투자되는 규모를 비교할 수 없겠지만, 과거에는 어떻게 하면 적은 비용과 한정된 도트로 최고의 재미를 선사할까? 라는 고민이 느껴지는 타이틀이 많거든요. 그래서 MSX 시리즈가 대단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다수의 게임들이 전투를 추구할때 최초로 전투가 아닌 잠입이 목표인 메탈 기어같은 게임이 등장하고 또 재미를 느껴볼 수 있다는게 바로 레트로의 매력이죠.'



[ ▲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2와 대쉬, 그리고 닌자 거북이도 눈에 띄인다. ]

[ ▲ 비교적 최신 게임이라고 보여주셨던 PS2 타이틀과 고전중의 고전 MSX 트윈비와 그라디우스 ]



하긴, 맞는 말이다. 그 시절의 메탈기어가 없었다면, 지금의 메탈기어도 당연히 나올 수 없었을 테니까. 현재 우리가 즐기는 게임들의 원형은 사실 이미 고전 게임들이 보여주었던 틀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레트로 게임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함께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적어진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아는 사람들에겐 소중한 추억이 될 수 있겠지만, 모르는 사람에겐 구닥다리 게임기로 보일 수 있기 때문. 콜렉터 입장에서 이런 부분이 신경쓰이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물론, 제가 모은 소장품도 일부는 값비싼 골동품이 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향수 때문에 모은것이라 서서히 잊혀지겠죠. 그런데 애초부터 저 자신의 추억을 찾기 위해서 시작한 취미인만큼 후회는 전혀 없습니다.

어릴적엔 게임 팩을 판매점에서 교환했기 때문에 소장품에 대한 추억이 없었던 시절이지만, 지금은 추억을 사서 모은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비록 금전적인 가치가 사라질 지 모르겠지만, 저한테는 전부 소중한 추억이기 때문에 귀하게 다루고 있거든요.

저희 아버지도 사실 처음에는 어디 가져다 버리거나 누구 줘버리고 그랬습니다. 뭐 어머님은 말할것도 없죠. 그런데 게임을 플레이하는 건 이해해주셨어요. 제가 할 일을 확실하게 하고 게임을 즐겼기 때문에 순수한 취미 활동으로 받아주신 것 같아요.

다행히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도 제 취미에 관해서는 잘 이해해주는 편입니다. 보통의 여자분들이 싫어하는 취미는 맞지만, 전 술이나 담배는 전혀 하지 않기 때문에 그 부분을 부각시켰습니다. 그리고 언제든 되팔아 현금으로 만들 수 있다고 설득했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절대 팔지는 않겠죠.(웃음).'



[ ▲ 기자의 젊음을 불태웠던 닌텐도 64 타이틀도 다수 소장! ]

[ ▲ 희귀한 타이틀을 하나하나 소개하면 끝도 없을 것 같다. ]


수집한 게임의 양도 양이지만, 전부 소중하게 재포장되어 보관되고 있다. 특히 빵을 포장할때 쓰이는 비닐로 대부분의 게임들이 포장된 것도 눈에 띈다. 아무래도 오래된 게임인만큼 보관에도 많은 신경이 쓰일 것 같은데...


'처음에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게임의 경우에는 수술용 고무 장갑도 끼고 만졌어요. 아주 상태가 좋은 것은 메뉴얼을 한 번만 만져도 지워지지 않은 지문도 남는데, 성격이 꼼꼼하다보니 그런 부분이 싫어서 장갑까지 끼게 되더라구요. 취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라면 이상하게 보일수도 있겠죠. (웃음)

모두들 신품을 원하지만, 아무래도 제품의 특성상 남아있는 신품은 극히 없기 때문에 굉장히 귀합니다. 습기를 먹던가, 파손도 될 수 있구요. 오래된 물건이기 때문에 사람 손을 탈때마다 아무래도 기스가 생기거나 상하는 걸 최소화하기 위해서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어요.'


힘들게 수집한만큼 가급적 2차적인 피해는 막고 싶어 개별 포장을 해놨다는 에드. 고전 게임의 경우 종이 박스로 이루어져 있거나, 스티커로 되어 있어 2차 파손의 위험이 상당하다고 한다. 수집하고 보관하는 것도 상당한 어려움이 있겠지만, 모아둔 게임기나 팩이 망가질 경우 어떻게하는지 궁금해졌다. 이미 정식 A/S를 기대하긴 어려울 정도로 오래된 게임기가 고장난다면 어떻게 할까?


[ ▲ 대부분 보관용 타이틀은 물론, 실사용 기계도 깔끔하게 포장되어 보관 중이라고... ]

[ ▲ 단순 고장 뿐만아니라 기계의 개조까지 가능하다! ]

[ ▲ 시간 날때 틈틈히 공부한다는 전자 회로 관련 책자 ]


'아시겠지만 롬팩 같은 경우는 내부에 세이브 데이터를 유지해줄 베터리만 교체해준다면 반영구적으로 즐길 수 있어요. 그리고 간단한 고장 수리같은 경우는 직접 합니다. 간단하게 내부에 콘덴서가 터지거나 연결 불량이 경우가 많아요. 이런 부분은 간단하게 수리하면 다시 쌩쌩하게 돌아가죠.

수리뿐만 아니라 고전 게임기 중에 몇몇 기종은 개조도 가능해요. AV 단자로만 나오는 그래픽을 RGB로 바꿔 좀 더 선명하고 또렷한 화질로 즐길 수도 있거든요. 실제로 지인들도 이런 개조를 원하는 분들도 많고요. 얼마전 진행했던 레트로 알뜰시장&전시회에서 제가 개조한 몇몇 제품이 전시된적도 있어요.'



그는 수많은 레트로 게임기와 팩을 관리하기 위해 따로 전자 회로와 전자 기초 이론까지 공부할 정도로 열성적인 레트로 마니아이다. 단순히 수집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지인들의 개조까지 도와줄 정도의 실력자. 그와 같은 레트로 게임을 수집하는 인원이 과연 전국적으로 얼마나 될까?


'지난 행사에서 오프라인 장터에만 200 명이 넘게 찾아오실 정도로 인기가 좋아요. 서울에서 소규모로 진행한것을 생각한다면 지방에 사시거나 미처 소식을 듣지 못한 분들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되요. 이런 게임을 수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대가 조금 있기 때문에 동호회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많아요. 뭐, 금액적인 부분보단 물건만 있으면 되는거니까요.'


[ ▲ 금액적인 부분보다 추억이 우선! ]


타이틀이야 정확하게 세기 힘들 정도로 많은 양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모은 기종과 수많은 콜렉션중에서 마지막까지 남기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을 꼽을까?

'지금까지 모은 기종으로 친다면, 약 20 종류의 레트로 게임기를 가지고 있어요. 동일한 게임기는 제외하고요. 기회가 된다면 신품 재믹스를 꼭 구하고 싶어요. 레트로 게임을 수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귀한 제품이 바로 국산 제품들인데, 국내에서 정식으로 발매한 게임기의 경우 상당히 희귀한 수준입니다.

현대 컴보이 박스 신품같은건 부르는게 값이구요. 모으는 사람마다 특징이 있어서 신품만 원하는 사람도 있고 중고지만 플레이만 가능하면 수집하는 분들도 많아요. 꼭 신품이 아니더라도 국산 게임기는 구하기 엄청 어려워요.

제가 젤다의 전설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굳이 하나만 꼽자면 젤다의 전설 현대 컴보이 버전, 한국 정식 발매판이요. 이 타이틀은 아마 정말로 마지막까지 가지고 있을 것 같아요. 아! 그리고 한가지 더 꼽자면 젤다의 전설 디스켓 오리지널 신품도 애착이 많이 가네요.'



[ ▲ 마지막까지 소장하고 싶은 타이틀은 바로 젤다 시리즈 ]

[ ▲ 기자도 몽대륙(남극탐험)의 실제 패키지를 본 것은 처음이다. ]


마지막까지 가지고 싶은 타이틀로 젤다의 전설을 꼽아준 에드. 실제로 보여준 젤다의 전설 타이틀은 2중으로 매우 꼼꼼하게 포장되어 있는 상태였다. 차마, 사진을 찍기 위해 뜯어봐 달라고 부탁하기도 미안할 정도여서 그대로 사진을 찍고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실제로 엄청나게 많은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는데 갖고만 있다면 사실 게임의 가치는 제로. 게임은 직접 자신이 즐길 수 있어야 100%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 실제로도 레트로 게임을 자주 플레이하는 편인지 궁금해졌다.


'어느정도 수량이 넘어서면서 모든 게임을 즐기기보다 모으는 재미에 빠져있었던것 같아요. 하지만 요즘도 틈틈히 게임을 즐기고 있어요. 특히 게임보이용 테트리스나 PC- 엔진, 메가드라이브로 등장한 에어로 블라스터, 피클리맨 월드(원더보이 인 원더랜드), 몽대륙(남극탐험) 같은 타이틀은 자주 즐기고 있습니다.

에뮬레이터나 각종 플래쉬 게임을 이용해서도 즐길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레트로 게임은 팩을 케이스에서 꺼낸 후 전용 게임기에 딱 꼽아서 하는 맛이 있거든요. 게다가 패드의 손맛도 무시할 수 없어요.'



[ ▲ 거의 대부분의 타이틀이 비닐로 정성스럽게 포장되어 있다. ]

[ ▲ 어릴적 추억을 담당했던 마성전설! ]



인터뷰를 진행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간, 이날도 레트로 게임에 관심이 있는 지인이 방문하여 게임기에 대한 열띤 토론을 펼쳤다. 고전 게임에 어린 시절 즐겼던 게임이라고 치부하기엔 상당히 진지한 대화가 오고갔던것으로 기억한다.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끼리 모인다는 것은 어찌보면 오랜 친구를 만난 것같은 편안함을 가져다 주지 않을까?

최신 게임들도 즐기긴 하지만 작년에 출시된 닌텐도 3DS 이후로는 잘 플레이하지 않는다는 에드님. 요즘 등장하는 게임은 게임성 자체의 혁신보다 볼거리에 치중하는 것 같다는 그의 말이 더욱 공감되었다.

전투기를 조종하는 게임이라면 게임의 본질적인 재미는 그대로인 상태에서 '얼마나 더 리얼하게 전투기를 표현하였는가?', '얼마나 더 멋진 하늘 그래픽을 보여주는가?', '얼마나 사실적인 폭발 장면을 보여주는가?' 등 퍼포먼스의 발전에 치중해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

하지만, 기술이 발달하기 이전에도 게임은 충분히 재미있고 즐거웠다. 실제 사람이라고 믿을 수 있을 정도로 놀라운 지금의 3D 그래픽도 없었다. 단순한 도트 그래픽 몇개로 하늘과 구름, 땅과 바다를 표현했지만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그래픽 카드인 상상력이 더해지면서 더할나위 없는 재미와 감동을 선사해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추억을 모으는 사람들이 있다. 어릴적 즐겼던 추억과 향수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밤을 새워 이야기할 꺼리는 충분하지 않을까?


혹시, 당신은 어릴 적 어떤 게임을 재미있게 즐겼는지 기억나시나요?



[ ▲ PC 엔진, 레트로 게임기지만 디자인이 상당히 멋졌다. ]

[ ▲ 이것도 레트로 게임기라고 소개해주셨는데, 처음에는 전축인 줄 알았다.(파이오니어 레이저 엑티브) ]

[ ▲ 국내에도 발매된 적 있는 3DO의 일본 내수 버전 ]

[ ▲ 패밀리도 개조를 통해 RGB로 즐길 수 있다!(거의 혁명에 가까운 화질) ]

[ ▲ 무려 16비트! 타이틀의 종류도 다양한 메가 드라이브 ]

[ ▲ 오락실 게임을 집에서 플레이할 수 있었던 위엄있는 네오지오의 모습 ]

[ ▲ 벽돌 수준의 무게와 크기지만 재미는 최신형 못지 않았던 게임 기어 ]

[ ▲ 원작은 '도키도키 패닉'인데 북미에 인지도가 없어 마리오 스킨으로 발매되었다. ]

[ ▲ 자주 즐기는 레트로 게임이라는 '에어로 블라스터' 카메라 화면보다 실제론 선명하다. ]

[ ▲ 코나미의 러브 플러스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절대 아니다. ]

[ ▲ 에반겔리온도 이제 레트로 게임이 되어 가는구나... ]

[ ▲ 당시엔 표지에 굉장히 신경을 쓰는 타이틀이 많았다. ]

[ ▲ 희귀한 타이틀이라고 보여주신 '매지컬 체이스'와 '코륜' ]

[ ▲ 제목보다 화면을 보면 무릎을 탁치는 게임 '마법사 위즈' ]

[ ▲ 피구하다 사람 잡는 추억의 게임 '피구왕 통키' ]

[ ▲ 친구와 함께 즐기면 더욱 즐거웠던 '더블 드래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