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음이 분명하다. 이걸로 게임만 만들 수 있다면 '정말 대박날 거야'라는 생각. 순간 그는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기로 마음먹었고 게임을 함께 만들 동료를 하나, 둘씩 모으기 시작했다. 멋진 시나리오와 그것을 뒷받침해줄 게임플레이에 대한 구상은 물론, 누구보다 감동적인 음악을 선사해줄 친구도 곁에 있었다.


하지만 자신감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 법. 언제나 그렇듯이 '돈'이라는 문제가 걸린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는 없을까. 고민 끝에 그는 일본 엔터브레인사가 개발한 RPG 제작툴인 'RPG 쯔꾸르'를 사용하기로 결론을 낸다. 아무리 '인디'라지만 아마추어 게임에서나 쓰일 법한 툴로 그(그들)의 모든 역량을 쏟아 부을만한 상용화 게임을 만들 수 있을까?

결국, 루비콘 강을 건너버린 카이사르의 말처럼 주사위는 던져졌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의 도전은 성공적이다.




[ ▲ RPG 쯔꾸르로 개발된 '투더문'(To The Moon), 고전게임의 스멜이 진하다. ]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병상에 누워 임종을 기다리고 있는 한 노인이 '지크문드 인생 형성 사무소'라는 회사에 아주 특별한 의뢰를 맡긴다. 회사 이름에서 어느 정도는 눈치챌 수 있듯이 '지크문드 인생 형성 사무소'는 먼 미래에서나 가능할 것은 '기계장치'를 이용해서 의뢰인의 기억을 조작, 오랫동안 품어왔으나 이루지 못했던 '꿈'을 이루게 해주는 회사다. 즉, 의뢰인은 꿈을 이뤘다는 '조작된 기억'과 함께 행복한 죽음을 맞을 수 있는 것이다.


지크문드 인생 형성 사무소에서 급파된 두 요원은 '에바 로잘린' 박사와 '닐 와츠' 박사.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티격태격 잡음이 끊이지 않는 남녀조합이지만 그 노인, 즉 '조니'의 기억을 거꾸로 타고 들어가는 시간여행을 하면서 이제껏 경험했던 일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사랑', '비밀', '반전'이 가득한 거대한 스토리와 맞닥뜨리게 된다.



[ ▲ 임종을 앞둔 노인 '조니'는 과연 기억조작으로 달에 갈 수 있을까? ]




게임플레이도 앞서 설명한 스토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조니의 꿈은 다름 아닌 '달에 가고 싶다'는 것.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는 로잘린과 와츠 박사가 되어 기억 속 실마리를 풀면서 조니의 기억 속에 '달에 가고 싶다'는 욕망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하지만 게임진행 방식은 상당히 단조로운 편이다. 혹자는 RPG 쯔꾸르라는 툴로 만들어진 만큼 고전게임 특유의 감성을 자극한다지만 눈을 조금 낮춘다고 해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대부분 플레이가 '캐릭터의 이동', '오브젝트 클릭', '대화' 단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게임 중간마다 나오는 퍼즐도 같은 형태가 반복되어 하품이 나오기 일쑤다.


게다가 게임 중 획득하는 아이템들도 비슷한 상황인데 '정보'야 전체적인 스토리를 이해하는데 보조적인 역할을 한다지만 인벤토리에 하나씩 쌓이는 아이템들 다수는 일정한 체계 없이 구색 맞추기 식 느낌이 강하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게임 플레이' 자체만 놓고 본다면 허점이 상당하고 훌륭한 점수를 주기 어렵다.



[ ▲ 게임 속 매번 등장하는 퍼즐, 사실 재미도 감동도 찾기가 어렵다. ]




그런 상황에서도 기자를 대여섯 시간 동안 한숨도 쉬지 않고 엔딩을 볼 때까지 몰입하게 한 것은 오로지 '스토리'와 '음악'의 힘이다.


할아버지부터 초등학생까지 조니의 기억을 거꾸로 내려가면서 만나는 등장인물과 그들의 대사를 곱씹으며 감지할 수 있는 심상치 않은 스토리, 그리고 마치 독심술가처럼 사건의 전환에 따른 플레이어의 심리 상황을 반영해 주는 멋들어진 음악의 적재적소 배치는 게임플레이의 단조로움을 상쇄할 뿐 아니라 강렬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또한, 중간마다 등장하는 인디게임 특유의 깨알 같은 패러디도 놓칠 수 없는 즐길 거리며, 훌륭한 한글화 퀄리티로 개발자의 본래 의도를 최대한 가깝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도 추가로 칭찬할 부분이다.



[ ▲ 투더문 메인테마 사운드트랙 ]




[ ▲ 한글화 퀄리티도 뛰어날 뿐아니라 인디스러운 '유머 요소'도 나름 즐길 거리 ]




주인공인 로잘린과 와츠 박사가 만들어내는 스토리는 후반부에 돌입하면서 롤러코스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긴박하게 진행되는데 마침내 수수께끼가 풀리고 엔딩곡이 흘러나오는 장면에선 비장한 '전율'을 느낄 수 있다. 'To The Moon'이라는 이 게임이 개발자가 구상한 전체 스토리의 에피소드1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또 그런 복선을 엔딩 후에 발견하게 된다면 그 충격은 더욱 배가 된다.


과연 조니는 기억을 조작하고 교체함으로써 꿈에 그리던 달에 갈 수 있을까?

작년 인디게임에 '림보'(Limbo)가 있었다면 올해는 과감히 '투 더 문'(To the Moon)을 추천해 본다. '게임이냐, 아니냐'라는 논란에서 한 발만 벗어난다면 단돈 만 원에 경험할 수 있는 '사랑'과 '인생', 그리고 '꿈'에 관한 최고의 파노라마가 바로 여기에 있다.



[ ▲ 감동의 여운도 쉽게 가시지 않는 작품, To the Moon ]



[스팀] 투더문(To the Moon) 구입페이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