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혜성처럼 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던 징가(zynga)의 페이스북 게임 팜빌(FarmVille).

소셜 게임을 팜빌 이전과 팜빌 이후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팜빌이 가져다준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다. 농작물을 키우는 내용이 그렇게 인기가 있을 줄은, 그리고 소셜 플랫폼과 융합해서 그런 대단한 시너지가 날 줄은 팜빌이 존재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이전에는 없었던 중년 여성이라는 새로운 게이머층을 발견하게 된 것은 팜빌이 게임계에 가져다준 또 하나의 선물이었다.

팜빌 이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게임들이, 농자를 짓고 목장을 짓고 마을을 짓고 꽃을 심고 나무를 심고 말을 키울 수 있다며 게이머들을 유혹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고,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페이스북에 소셜 게임을 어떻게 런칭하고 서비스할 것인지에 대한 강연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게임 시장은 너무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2012년만 해도 징가의 페이스북 게임 관련 강연이 넘쳐나는 느낌이었는데, 2013년에는 온통 모바일 게임으로 어떻게 돈을 벌까 하는 이야기들이다. 페이스북 기반 소셜게임에서 모바일 부분유료화 게임으로 관심이 바뀌는 데 몇 년도 걸리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우리 기억 속에서도 팜빌은 '과거의 게임'이 되어버린 듯하다.

하지만 팜빌은 여전히 건재 중이다.

이제까지 심어진 사과나무의 수는 1억 2천만 그루에 달하고, 2억 8천만 마리의 망아지가 태어났다. 28억 개의 나무가 심어졌고, 가장 인기 있는 작물인 백포도는 169억 번 재배되었다. 양적인 면에서만 누적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초창기 농장을 가꾸는 정도였던 팜빌은 이제 유저들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수준에까지 올랐다. 공중정원을 만드는가 하며, 농작물로 최후의 만찬을 그리기도 한다.

▲팜빌 이용자들이 만들어낸 다양한 기록들


▲게임을 아트로 승화시킨 작품들


이미 팜빌2가 나와 2013년 2월 페이스북 게임 순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팜빌 원작이 13위에 올라있으며 페이스북 게임 매출 순위 10위권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팜빌2가 1위를 차지했지만 팜빌1도 여전히 순위권에 있다


그래서 더욱 눈에 들어왔다. '팜빌이 망하지 않고 있는 이유'라는 제목의 강연이 말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고 있는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Game Developer Conference, 이하 GDC)에서 팜빌의 책임 프로듀서 마이크 페리(Mike Perry)와 제품 디렉터 압히나브 아그로왈(Abhinav Agrawal)이 전해주는 '팜빌의 장수 비결 10가지'를 들어보았다.

▲팜빌의 책임 프로듀서 마이크 페리(Mike Perry)

그들이 꼽은 첫 번째 교훈은 멀리 내다보고 계획을 세우라는 것. 확장팩을 출시할 때도 계절과 감정을 생각했다고 마이크 페리는 설명했다. 예를 들어 봄에는 하와이로 따뜻함과 평온함이라는 감정을 자극하고, 여름에는 아틀란티스 같은 모험요소를 강조했다. 가을에는 할로윈과 관련된 업데이트를 하고 겨울에는 크리스마스 오브젝트를 선보이는 식으로 큰 그림을 그렸던 것.

▲유저들이 가지고 놀 수 있게 다양한 도구를 만들어줘야 한다

두 번째 교훈은 수시로 게임을 진화시키라는 것. 농사, 나무, 동물, 제작, 레벨업, 경제, 장식물 등 처음부터 핵심 시스템들이 마련되어있었지만 이런 부분조차 새로운 시스템으로 변화시켜나갔다. 코코넛이라는 새로운 화폐 시스템을 만들기도 하고, 레벨업도 새롭게 GP라는 걸 추가했다. 새로운 장식물들을 추가함은 물론 작물 시스템도 개편했다.


▲팜빌이 했던 다양한 시도들

세 번째는 게이머들이 계속 게임에 남아있게 해야 한다는 것. 재미를 주고 알람을 하는 등의 전통적인 방법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좀 더 새로운 방법을 찾기 위해 다양한 시도들을 했고 그 결과를 엄격하게 확인하면서 실제로 유저들이 게임을 계속하게 만드는 데 효과적인 것이 무엇인지 확신을 할 수 있었다.

"회귀 유저에게 보상을 주는 정책은 도움이 되었지만, 순위표를 넣는 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죠. 자동으로 이웃을 추가하거나 캐릭터의 이동속도를 빠르게 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줬습니다."

▲업데이트로 인한 역효과도 물론 있었다


역효과를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던 팜빌은 지금도 수백 가지의 실험을 하고 있다고 한다.

네 번째는 유저들에게 '게임에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 실제로 조사를 해본 결과 스스로 게임에 돌아오는 유저는 전체의 1/3밖에 되지 않았다.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게도 하고 사진을 올리게도 했다.

"효과는 있었지만 얼마나 많은 페이스북 글이 올라왔는지보다 누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는지가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걸로 확인되었습니다. 이런 부분은 다른 플랫폼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일 겁니다."

▲페이스북에 대한 연구도 꾸준히 이루어졌다

다섯 번째는 이와 같은 '상기 전략'이 게임의 핵심적인 요소와 밀접하게 통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3가지 형질을 가진 요소들에 집중했습니다. 잘 디자인 되어 있으며, 빵 부스러기처럼 유인할 수 있고, 쉽게 반복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한 것이죠."

발렌타인데이 카운트다운이나 펭귄 탈출시키기 이벤트, 간단한 설문조사 등이 3개월에 걸친 계획표에 꽉 짜여 있는 것이 바로 그런 전략의 결과물이었다.

▲다양한 이벤트를 주기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계획이 이루어져야 한다

여섯 번째는 실수를 저질렀을 때 겸손하게 인정하라는 것. 찾기 힘든 시스템상의 오류나 버그는 막을 수가 없으므로 이후 대처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하와이안 파라다이스 업데이트를 했을 때 코코넛 나무가 하와이 지역 밖에 심어지는 버그가 있었죠. 하지만 그런 나무에서는 코코넛을 수확할 수 없었습니다. 이 부분은 유저들의 기대에 어긋나는 것이었죠."

팜빌은 즉각적으로 유저들이 기대하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모두 변경하는 결정을 내렸다. 또 이와 같은 변경점을 커뮤니티를 통해 유저들에게 알리고, 즉각적으로 무료 선물을 모든 유저들에게 지급했다.

일곱 번째 교훈은 같은 미션을 가진 팀을 꾸리라는 것. 새로운 미션이 생겼을 때 디자이너와 PM이 함께 일하면 서로의 강점과 동기를 이해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과정을 거쳐 강력한 파트너쉽이 생길 수 있게 된다.

여덟 번째는 유저들이 가진 콘텐츠에 대한 욕구가 대단하다는 점. 수집하기의 달인인 팜빌 게이머들이 눈높이를 맞추다 보니 작물의 개수는 280개로 늘어났고, 동물의 수도 3200 종류가 되었다. 팜빌은 지금도 매주 10개 정도의 새로운 아이템을 추가하고 있다.

아홉 번째 교훈은 툴 제작에 과감히 투자하라는 것. 비슷한 요소들을 계속 추가해야 한다면 자금회수 기간 중이라도 과감하게 툴 제작에 투자해야 한다. 팜빌의 이런 결정은 제작 코스트를 90%나 줄이는 획기적인 결과로 이어졌으며, 더 많은 리소스를 품질 향상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전한 마지막 교훈은 계속해서 유저들을 놀라게 하고 기쁘게 만들라는 것. 매력적인 캐릭터, 창의적인 보상은 물론이거니와, 회사에 유저들을 초대하고 커뮤니티를 지원하는 일을 통해 유저들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긴 강연을 마치면서 마이크 페리와 압히나브 아그로왈은 10가지 교훈들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유저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 무엇보다 유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십시오."

팜빌이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인기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유저를 중심으로 한 운영과 서비스에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