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C의 거대한 강연장, 한 중국 남자가 연단에 서 있다. 강연 시작 20분 전. 아직 여유가 있다. PT 자료를 검토하는지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노트북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 긴장감이 돈다.

제노바 첸. 플로우와 플라워, 그리고 저니를 만든 댓게임컴퍼니의 공동창업자이자 게임 디자이너. 그의 최신작 '저니'(Journey)가 바로 어제 열린 GDC 어워드에서 '올해의 게임' 상을 포함해 총 6개 상을 휩쓴 터라 강연장 밖은 그의 얼굴을 보기 위해 시작시간 30분 전부터 입장을 기다리는 개발자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지난 D.I.C.E 강연과 비슷한 내용일 겁니다. 굳이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강연에 대한 폭발적 인기를 이제야 실감했는지 약간은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박수를 보내는 청중들. 저니는 댓게임컴퍼니가 소니와 독점 계약해 출시한 플레이스테이션 인디게임으로 출시되자마자 국내외 게이머, 게임개발자들에게 엄청난 호응을 이끌어낸 작품이다.

제노바 첸은 저니를 처음 기획하고 출시하기까지 3년간의 과정을 차분히 설명해 나갔다. 특히, 그는 저니가 GDC 어워드를 비롯해 여러 게임상을 받은 것도 좋지만 그래미 어워드나 애니 어워드, 스미소니안 박물관 전시 등 저니가 게임을 넘어 '예술'의 하나로 인정받은 것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 = 제노바 첸을 보기 위해 거대한 강연장을 가득 채운 개발자들 ]



저니를 만들며 가장 초점을 둔 부분은 플레이어의 "감정"이었다. 블리자드에 다니는 친구의 도움으로 알파테스트때부터 월드오브워크래프트를 3년간 즐겼던 제노바 첸은 플레이어의 감정을 다룬다는 측면에서 뭔가 아쉬움을 느꼈다.

학창 시절 외로움이 컸었던 그는 온라인 게임을 통해 새로운 인간관계를 기대했었지만 보스를 잡는 공략과 아이템 이야기만 하는 대부분 사람 속에서 플레이를 하면 할수록 자신은 외로운 존재일 뿐이라는 것만 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소셜'게임도 그에게는 단순히 숫자로 표시된 자원을 공유하고 관리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온라인 게임에 접속하면 우선 상대편 플레이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확인하길 원합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 대부분 해피엔딩이 없더군요. 저니를 만들면서 세운 저의 목표는 플레이어가 게임을 끝냈을 때 서로에게 이전보다 깊은 관계가 생겼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 = 플레이어의 감정을 '재정의' 하는 게임을 위해 ]




"우주비행사는 우주 공간에서 달과 지구를 보며 경외심을 느낍니다. 아무도 없는 그리고 미지의 공간에 그들은 자신에게 "왜?"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저니는 그런 미지의 목표에 도달하는 내용을 담고자 했습니다." <경외>, <미지의 세계>, <미스테리>. 제노바 첸이 저니를 기획하며 떠올린 핵심 키워드였다.

그리고 제노바 첸은 기존의 온라인 게임이 줄 수 있었던 경험을 완전히 새롭게 디자인하기로 결심한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돈과 아이템, 강력한 힘을 얻어 플레이어가 점점 더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캐릭터 그대로 유지 시키며 황량한 사막을 배경으로 단 2명의 플레이어가 함께 난관을 헤치며 산 정상에 도달하게 만들었다.


또한, 플레이의 감정 이입을 방해하는 요소는 모조리 제거해나갔다.

"보통 온라인 게임을 보면 대기실이 있고 서버이름과 핑 수치, 방제목, 플레이어 수 같은 복잡한 정보가 모조리 한 화면에 표시됩니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를 플레이할 때 볼 수 있는 캐릭터 이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요소들은 다른 플레이어를 바라볼 때 현실 속의 누구를 떠올리게 돼서 게임과 자신의 감정에 몰입할 수 없도록 합니다. 저니에서는 이 모든 것을 모조리 배제하기로 했습니다."

실제로 저니는 분명 온라인 게임이지만 플레이어들의 닉네임이나 정보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엔딩을 본 이후에야 지금까지 함께 플레이했던 플레이어들의 닉네임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상대방을 지정하거나 누군지 알 수 있는 상태에서 플레이한다면 되도록 아는 사람과 플레이하기를 원할 것이고 그것이 반복된다면 그 결과 저니는 매우 단조로운 플레이를 가진 게임이 될 것이 분명했다. UI가 없는 불편함을 상쇄하기 위해 게임 내 모든 배경이 직관성을 가져야 했다. 하지만 극 리얼리티를 추구하지는 않았다. 플레이어가 바라는 리얼리즘을 포착하려고 노력했다.


[ = 저니의 초기 프로토타입 플레이 영상 ]



협동플레이에 대한 개념도 완전히 바꿨다. 단순히 어떤 보상과 목적 (예를 들면 아이템이나 골드 같은) 을 주지 않고 물리적으로 단절된 상황을 만들어 채팅을 비롯한 어떤 의사소통 수단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협동플레이가 되도록 연구했다. 하지만 서로 다른 플레이어들을 골탕먹이려는 성향이 걸림돌이 된 적도 있었다. 저니의 초기 버전에는 한 플레이어가 다른 플레이어를 움직일 수 있는, 원래는 한 플레이어가 다른 플레이어를 들어올려 큰 바위를 함께 넘어갈 수 있도록 기획된, 기능이 들어가 있었지만, 결국 제노바 첸은 그 기능을 삭제해야만 했다. 대부분 플레이어들이 그 기능으로 절벽에서 다른 플레이어들을 낙사시켜 죽였기 때문이다.



[ = 2D 탑뷰 시점에서 좋은 감정이 이어질 수 있는 협동 플레이에 대한 실험을 계속 했다. ]



이 모든 것에 더해 제노바 첸의 가장 필사적으로 노력한 부분은 플레이어의 감정이 고조되어 폭발하는 시점, 즉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게임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가 의도하는 감정 굴곡의 목표를 정해 놓고 각 챕터별로 면밀히 분석하며 플레이어 감정을 유도하는 장치를 설치해 나갔다. 저니의 작곡가와 그래픽 아티스트도 함께 작업에 매달렸다. 아예 챕터3은 마치 영화처럼 플레이어의 감정을 클라이맥스 상태로 끌어올 수 있도록 설계됐다.




[ = 제노바 첸이 철저하게 계산해서 기획한 챕터3 '감정의 클라이맥스' ]



그렇게 1년. 완성된 결과물은 제노바 첸의 의도한 목표와는 매우 다른 거의 평평한 직선을 그렸고 그는 그 당시 상황을 이렇게 평했다. "게임의 시작부터 끝까지 정말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어요. 정말 별로인 게임이었어요. (It's a suck game)"

다시 1년을 저니에 투자하기로 한 제노바 첸과 댓게임컴피니 직원들은 피땀흘려가며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플레이어의 감정선을 끌어올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안타깝게 목표치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마지막 클라이막스 단계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포기는 없었다.

하지만 추가 개발이 진행되면서 개발비는 모두 소진되었고 댓게임컴퍼니의 개발자들은 개발비는커녕 급여도 받기 어려운 시기가 이어졌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몇 개월의 추가 개발 기간을 확보하려면 각자의 저축금도 모두 털어서 내야 할 상황.

"지금도 그때가 생각나면 이런 생각을 합니다. '과연 우리의 도전이 가치가 있었을까?'"

제노바 첸은 저니를 즐긴 유저들이 남긴 소감을 청중들에게 소개했다.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끝낸 후 서로 싸우고 헐뜯고 비난하는 게 아니라 저니를 플레이하면서 느꼈던 경외감과 신비로움, 황홀했던 기억을 공유하는 모습이었다.


[ = 다른 온라인 게임과는 차별 되는 플레이어들의 반응들 ]



마지막으로 제노바 첸은 15세 소녀가 자신에게 보낸 편지를 직접 낭독했다. 그리고 그가 멋쩍게 웃으며 강연을 마치자 수백 명의 관중이 그에게 기립박수로 답했다.




"여러분이 만든 게임이 제 인생을 바꿨습니다. 아빠가 병에 걸리셨다는 진단을 받은 후 함께 경험한 가장 즐거운 일이었어요. 아빠는 진단을 받고 나서 몇 개월 후인 2012년 봄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빠가 죽고 몇 주가 지나고서야 겨우 게임을 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니』를 플레이했는데 계속해서 눈물이 쏟아져서 타이틀 화면에서 더 이상 진행할 수가 없었어요. 저와 아빠입장에서 『저니』는 아빠 그 자체였고 아빠가 최고의 마지막을 장식한 여행이었습니다. 저는 완벽한 순간에 이 게임과 만날 수 있었어요.

저는 제 인생을 바꿔준 이 게임에, 제가 눈물을 흘리게 한 이 아름다운 게임에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저니』는 제가 지금까지 플레이한 게임 중에서 최고의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주어진 행복과 계속해서 주어질 즐거움을 언제까지나 잊지않겠습니다.

= 소피아, 15세, "제 인생을 더 아름답게 해주신 분들께"

번역 - isao의 IT,게임번역소 (원문)






[ = 감동적인 강연으로 전 세계 개발자들에게 기립박수를 받은 제노바 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