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이 마구 샘솟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한 번 해볼까 싶었던 정도. 하루가 멀다하고 수많은 게임들이 출사표를 던져대는 대혼란의 시대. 그들 대부분을 잠깐씩이나마 경험해보고 비교해봐야하는 입장에서 하나의 게임이 열흘 간의 테스트를 진행한다는 것은 흔하치 않은 기회니까.

데빌리언을 처음 만났던 작년 첫 CBT를 어렴풋이 기억한다. 게임계에서 오랫동안 기억될 듯한 '왕십리 사태' 이후 약 6개월. 그 시간동안 디아블로3는 서버 문제로 인해 천당과 지옥을 왔다갔다했지만, 비슷해보이는 신인에게 밀려날만큼 어수룩하지는 않았다. 테스트 직전 진행한 인터뷰에서 개발자 본인들도 인정했다. 디아블로와 너무 흡사한 부분이 많았다고.

그래, 닮았다는 것을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개발자 본인들도 안다. 그래서 더 이상 그것을 문제삼지는 않으려고 한다. 어차피 흠잡을 곳 하나 없이 완벽한 옥석같은 게임이 등장하기는 어려운 요즘이다.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이 원하는 것은 적당한 금전적, 시간적 여유를 투자해 재미를 얻을 수 있는 무언가. 다만, 각자 기준으로 삼는 어떤 '선'이 있기에 이토록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일 게다.

게임을 직접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열린 이상, 평가는 직접 해본 뒤에 말하는 것이 합당하다. 분명 게임은 아직 미완성이고, 그것을 보완하기 위한 테스트이니만큼 철저하게 '나를 즐겁게 해줄 수 있는지'를 예리하게 살펴보면 될 일이다. '더욱 발전한 게임이 되기를 바라는 채찍'이라는 구실로, 기자 역시 이 곳에 데빌리언 2차 CBT, 그 중에서도 PvE 콘텐츠에 대한 감상 몇 줄을 적어보고자 한다.



플레이 편의성 - 자동이동↑ 마우스 조작↓ (만족도 5.0 / 10)


요즘 온라인 게임들을 보면 '누구나 쉽고 편하게 플레이할 수 있도록' 개발하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다. 특히 다양한 취향의 유저들을 폭넓게 수용하고자 하는 장르일수록, 시스템 부문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것은 거의 필수가 되어버렸다는 느낌이다.

'게임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을 꼽으라면 자동이동을 빼놓을 수 없다. 말 그대로, 지도 상의 어느 지점 또는 퀘스트 목록에 출력되는 목표 지점을 클릭하면 그 장소까지 자동으로 움직여주는 것이다.

데빌리언에서는 탈 것을 비교적 빠른 레벨에 제공한다. 이 녀석의 속도가 영 신통치 않지만, 일단 자동이동 중간에 시비를 걸어오는 몬스터에게 따라잡힐 정도는 아니니 그럭저럭 쓸만하다. 무엇보다도 초반부에 거저 주어지다시피 하는 녀석이니만큼 적당히 양보하는 편이 정신건강상 이롭다.

조작 편의성 면에서는 약간 점수를 깎고 싶다. 키보드와 마우스를 이용해 진행하는 전투에서 마우스는 캐릭터가 바라볼 방향 설정 및 기본 공격을 위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 마우스로 클릭하는 것이 영 불편하다는 느낌이다. 몬스터 개체의 클릭 판정부위가 좁은 문제일 수도 있고, 그보다 좀 더 복잡한 기술적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이 부분은 개선되어야할 점이라고 본다.

아, 자동이동 익숙해지면 안 되는데...


정들면 나름 타고다닐만 하다. 나중에 더 좋은 녀석 주겠지 뭐



타격감 - 일단 합격, 하지만 퍼펙트는 아님 (만족도 7.0 / 10)


몰이사냥 기반의 시스템을 채택한 게임이기 때문에 타격감 문제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 때리는 손맛이 전달되지 않는다면 한꺼번에 쓸어담는 몬스터가 10마리든 100마리든 아무 쓸모가 없을 테니까.

타격감을 가늠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종종 거론되는 것으로 두 가지를 꼽아볼 수 있다. 하나는 '때리는' 모션과 '맞아서 반응을 보이는' 타이밍이 일치하는가. 다른 하나는 물리적인 효과가 과도한 스킬 이펙트에 가려지지는 않은가. 이 두 가지를 중점에 놓고 본다면 타격감은 평균 이상이다.

다만, 데빌리언은 MMO 방식으로 개발됐으며, 지금은 테스트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저 수가 적을 수밖에 없다. 즉, 정식 오픈 후에 지금보다 대규모의 유저가 몰린다면 서버문제를 비롯한 기술적 이슈들이 고질적으로 따라다닐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수천 명 이상의 유저가 널찍하게 펼치진 월드 곳곳에서 열댓 마리씩의 몬스터를 몰아잡을 때, 그들 개개인에게 모든 타격감을 만족할만큼 보장해주려면 바짝 긴장할 필요가 있다. 작년부터 최근까지 서버 관련 이슈가 시장을 달궜던 점을 생각하면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된다.

사방팔방 골고루 때려주는 칼날검무. 시원시원한 맛이 있다


데빌리언 변신 모드는 데미지는 센데 뭔가 10% 정도 부족한 감이...



강화 시스템 - 노력의 흔적은 보인다. 후반 밸런스도 고려하길 (만족도 6.5 / 10)


강화 시스템은 본래부터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눠지는 콘텐츠다. 성공과 실패 확률, 단순한 실패가 아닌 등급 하락이나 장비 파괴의 가능성 등은 '고급 장비'의 가치를 높이는 데 보탬이 됐지만 유저 간 격차를 만드는 것에도 일조하고 말았다. 특히, 유료화 모델과 강화 시스템이 어떻게 맞물려있는가는 신작 게임이 나올 때 초유의 관심사 중 하나다.

데빌리언에는 웹게임에서 볼 법한 강화 관련 모든 시스템이 총망라되어있다. 전반적인 게임 진행을 쉽게 하려고 의도한만큼, 강화 시스템에서도 스트레스 요소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초반부 플레이를 하는동안 각각의 강화 시스템을 하나씩 개방하고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것이 메인 퀘스트의 하나일 정도.

테스트 기간동안 플레이해보면서 파란색이나 보라색 등급의 아이템을 한계치까지 강화해본 결과, 성공률은 항상 90%대였다. 인간의 심리상 결코 불안해할 필요가 없는 수준. 그 몇 퍼센트의 모자라는 확률을 꺼림칙해할 유저들을 위해 플레이 도중 얻을 수 있는 행운석 시스템까지 도입해 강화 스트레스를 좀 더 낮췄다.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다면, 아이템 등급별로 강화의 한계치가 다른데다가 똑같은 아이템을 합성할 경우 한계치 돌파도 가능하다는 부분이다. 게임 후반부 보다 높은 수준의 강화 단계에서는 시스템이 어떻게 달라질지 확신할 수 없다. 몇몇 유저들은 +20, 30까지 강화가 가능해진다면 뒤로 갈수록 확률은 점점 떨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강화 부분의 스트레스가 여타의 게임들과 다를 것이 없어진다는 우려를 내놓기도 했다.

녹색 똑같은 거 2개를 가져오시면 파란색으로 바꿔드린다니까여



레벨링 - 레벨이 높을수록 편해진다? 조금 의문 (만족도 4.5 / 10)


대체로 초반부 구간을 집중적으로 플레이하면서 레벨링이 생각보다 수월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시로 갱신되는 일일 퀘스트 중 많은 경험치를 주는 높은 등급의 퀘스트를 해결하면서 플레이하면 다소 빠르긴 하지만, 순수하게 메인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성장하는 속도는 평균보다 좀 떨어진다는 느낌.

CBT에서 제공된 최고 레벨에 근접한 유저들 중에는 '후반부로 갈수록 레벨업이 더 편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렇다면 레벨링 그래프의 경사도를 좀 완만하게 잡았다는 의미가 된다. RPG에서는 초반부 레벨링을 빠르게 하고, 후반부로 갈수록 레벨링에 투자해야하는 비용이 가파르게 높아지는 구조가 많다.

전체적인 흐름을 봤을 때 조금 특이한 노선을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후발로 유입되는 유저들에게는 레벨업도 허들 요소가 될 수도 있음을 생각해보면 보다 면밀하게 재검토해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쉽게 쉽게 갑시다~


높은 등급의 일일퀘스트를 같이 하면 레벨업이 좀 더 수월하지롱



UI 및 화면 디자인 - 이게 뭐야, 잘 좀 해봐! (만족도 3.0 / 10)


단언컨대, 이것은 가장 시급한 문제다. 뭐랄까, 편의성을 추구하다가 미학적인 균형을 넘어섰다는 느낌이다. 미적인 감각이 둔한 사람이라고 해도 데빌리언의 마을에 유저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을 본다면 '너무 투박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 본다.

테스트 버전에서 게임을 바라봤을 때 발견되는 문제점들을 병증에 비유해보자면, 전체 시스템 상의 문제는 지속적으로 케어해야할 심각한 중병이요, 화면 안에 보이는 시각적 문제는 얼굴이나 피부에 나타나는 증상 정도로 빗댈 수 있겠다. 이런 비유에 따르면 데빌리언의 2차 CBT 버전은 피부 트러블이 있는 셈.

요즘 게임에서는 외관 상의 이미지가 차지하는 중요성이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글자의 크기라든가 색깔과 같은 문제는 보다 자연스럽고 깔끔한 방향으로 재고해봤으면 한다. 막상 정식 오픈에서도 전혀 변화가 없다면 여드름 자국을 미처 지우지 못한 사춘기 소년 느낌으로 다가올 듯하다.



폰트 크기, 색깔, 모양... 영 적응이 안 된다



스킬 밸런스 - 편애 금지! 박애주의자가 될 것 (만족도 5.0/10)


각 클래스마다 세분화된 스타일마다 액티브 스킬의 갯수는 약 5~6개 정도. 하지만 스킬들 간의 밸런스가 잘 맞는지를 묻는다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듀얼리스트를 예로 들면, 쾌검 스타일에 있는 '쾌속 찌르기'와 '칼날검무'의 효율성이 상대적으로 좋은 편이다. '돌진'은 주로 분노 수급이나 탈출 용도로 사용되기 때문에 논외로 치더라도, 다른 스킬들의 활용도는 그리 높지 않다는 판단이다. 특히 칼날 소용돌이는 분노 소모량 대비 데미지가 영 만족스럽지 못해 무의식적으로 손이 잘 가지 않는다.

엘리멘탈리스트나 쉐도우 헌터도 스킬 밸런스 상의 자잘한 문제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비록 '심각하다'고 말할 수준은 아니지만, 보다 단조롭지 않은 플레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조정을 거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소싯적에 자주 쓰던 스킬인 것도 그렇고 데미지도 그렇고 영 맘에 안 든다


분명히 수치 상으로는 별로 안 센데 말이지...




다시 한 번 언급하지만, 이 게임은 겉과 속이 상당히 다르다. 겉으로 본 모습은 디아블로와 너무도 닮았다. 게임 디자인에도 설계도면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대로 복사해서 가져다가 슬쩍슬쩍 바꿔서 그려놓았다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실제 플레이해본 소감은 다르다. 외형은 같되 내부 구조가 다르게 만들어진 것이다.
테스트 기간 내내 기자가 플레이하는 것을 이따금씩 살펴보던 동료들은 대개 '디아블로 판박이'라는 평을 내놨지만, 겉모습만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어차피 완전한 참신함을 기대할 수 없는 작품이라면 나름의 재미요소 몇 가지만 갖추고 있더라도 플레이해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이 게임의 핵심이 될 데빌리언 시스템은 이제 걸음마 단계 수준이다. 후반부 콘텐츠에서의 굵직한 존재감은 당연한 것이고, 게임 전체에 걸쳐 위력적인 임팩트를 뽐내야할 콘텐츠이건만, 이번 CBT에서 보여준 수준은 초라한 감이 있었다. 이 콘텐츠가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지켜본 뒤에 최종 선고를 내려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어디든지 안전하게 모십니다~


스킬 좀 더 배우니 높은 랭크가 잘 나온다?


이것저것 해볼 것이 꽤 풍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