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명 게임사에서 10년여의 경력을 보낸 개발자가 홀로서기를 결심했다. 남들처럼 투자도 받고 돈도 좀 끌어모으고 해서 크게 시작했으면 좋았을텐데, 꿈은 컸으나 사는 곳이 부산이다보니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래도 '부산 사나이, 뚝심이 있지!' 힘들지라도 일단 있는 것들로만 시작해 보기로 마음을 먹는다.

출발이 소소하다보니 아는 사람은 모두 힘을 합쳐야 했다. 디자인을 전공한 아내는 일러스트를 담당했고 지금의 개발 이사가 합류해서 세 명, 이후 마음 맞는 직원 세 명이 손을 더했다. 그렇게 6명이 모여 이런저런 고생을 하며 내놓은 게임은 '애니멀 다운'. 첫 게임인데 T스토어의 공모전에서는 대상을 받았고, 이들을 눈여겨본 한게임과 함께 일본에 진출하는 행운까지 거머쥐었다.

그렇게 탄탄대로가 열렸...으면 좋았을텐데, 이후 행보는 순탄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호평받았던 '애니멀 다운'은 결과적으로 손해가 더 컸다. 소규모 스타트업들에게 첫 게임의 실패는 생각보다 훨씬 더 아프게 다가온다. 회사가 휘청거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나 그는 부산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키운 인내심으로 한번 더 도전을 결심한다.

절치부심, 실패에서 얻은 노하우에 힘든 고민과 노력을 더해 내놓은 다음 게임은 다행히 일본에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예상보다 성과가 너무 좋다. 조금씩 매출 순위가 상승하더니 절대 불변일 것만 같았던 '퍼즐앤드래곤'까지 제치고 잠시나마 최고 매출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일본에서는 최고 매출 2위를 유지하고 있다.

▲ 현재 일본에서 최고 매출 2위를 기록중인 포코팡


처음 시작은 6명, 현재도 개발 인원 10명에 불과한 부산의 게임 개발사 '트리노드'는 그렇게 세계 유수의 게임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세계 안드로이드 매출 3위의 게임사가 되었다. 그들이 만든 '포코팡'은 한국에서도 최근 600만 다운로드를 돌파하는 등 흥행 궤도에 오른 퍼즐게임이다.

"안녕하십니까? 김준수라고 합니다." 정중하지만, 타지 사람들에게는 왠지 거칠게 느껴지는 부산 사투리에 듬직한 체형. 앞니가 튀어나온 토끼 '보니'가 그려진 후드 티에 낡은 청바지. 미리 약속을 하고 만난 것이 아니었다면 방금 어디에선가 코딩을 하다가 달려나온 듯한 개발자로 착각할만한 모습. 트리노드, 김준수 대표와의 첫만남이었다.


사실 김준수 대표는 여전히 직접 코딩을 하는 개발자이기도 하다. 심지어 포코팡의 한국 출시 간담회를 기다리는 와중에도 직접 가져간 노트북으로 코딩을 할 정도. 그래도 이런 열정이 있었으니 불과 10명의 인원으로 세계 안드로이드 매출 3위를 달성할 수 있지 않았을까.

▲ 인벤 지스타 어워드 2013, 최고의 캐주얼 게임! B2B 부스에서 만난 트리노드 김준수 대표


업계의 모두가 '애니팡 이후로 퍼즐 게임의 신화는 끝났다.'고 여겼지만, 포코팡은 현재 그야말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미 600만 다운로드를 돌파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꾸준히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많은 게이머들은 '팡류 게임 이제 지겨워서 안한다.'고 하는데, 포코팡 돌풍은 과연 어떻게 된 일일까?

"애니팡이 성공하고 비슷한 퍼즐들이 엄청나게 쏟아져나왔지만 정말로 성공한 게임은 거의 없다. 팡류 게임이 지겹다는 게이머들의 의견은 나도 잘 알고 있고. (웃음) 그런데 이름에 팡이 들어가고 장르가 퍼즐이면 다 같은 게임일까? 퍼즐이라고 해도 소셜, 성장, 퍼즐 자체의 재미 등 차별화할 수 있는 부분들이 굉장히 많다. 결국 장르의 문제보다는 잘 만든 게임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일본 라인(LINE)에서 처음 런칭할때 게이머들이 흔히 퍼즐이라 부르는 게임들 4개가 라인으로 함께 나왔는데 포코팡만 살아남았다. 일본의 그 대단한 개발사들이 만든 퍼즐들인데도 안된다. 아무리 단순한 게임이라도 게이머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든데, 바로 여기에 성공하는 게임의 핵심이 있다고 본다."


맞는 말이다. 퍼즐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넓은 장르의 게임들을 포함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퍼즐 게임은 다 똑같다'는 말은, 'MMORPG는 다 똑같다'나 '슈팅은 다 똑같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단순한 게임일수록 오히려 개발이 어렵다. 코딩으로 베끼기는 쉬울지 몰라도 다른 퍼즐 게임과 차별화 되었다고 할만큼 잘 만들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김준수 대표가 포코팡을 개발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도 바로 차별화였다. 쉽고 단순한, 그러면서 기존의 퍼즐들을 뛰어넘는 콘텐츠까지 갖춘 게임. 누구나 간단히 즐길 수 있는 퍼즐 게임의 틀은 유지하면서 이미 출시되었던 퍼즐과 다른 재미를 보여주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조카가 4살인데 비주얼드 블리츠나 애니팡같은 매치 방식의 퍼즐은 잘 못한다. 다만 같은 색깔을 이어주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그래서 포코팡의 '한붓 그리기가 탄생했고, 포코팡을 즐기는 연령이 훨씬 더 넓어지게 되었다. 또 그냥 친구가 보내주는 클로버만 받는 것이 아니라 한시간 내에 응답을 해주면 FP가 쌓이고 친구를 소환해 도움을 받는다.

처음부터 퍼즐 자체의 재미를 쉽고 간단하게 유지하면서, 기존의 퍼즐들과 다른 재미를 줄 수 있는 게임을 목표로 잡았다. 그래서 랭킹에 코멘트가 달리고 퍼즐인데 동물을 소환해 공격한다. 이런 다양한 요소들을 퍼즐의 틀 안에서 내러티브하게 하나의 재미로 풀어가는 것이 포코팡의 특징이다."



▲ 한붓 그리기. 단순하면서도 독특한 포코팡


달걀을 탁자에 세울 수 있을까? 콜롬부스의 달걀, 단순하지만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발상의 전환. 완성된 게임을 보고 '그걸 누가 못 만드냐?'고 비난할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만든 사람은 없었다. 포코팡도 마찬가지. 하나 하나 뜯어보면 누구나 만들 수 있겠지만, 그렇다면 왜 포코팡만큼 흥행한 게임을 만들지 못했을까? 비판하는 사람들의 말을 빌자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퍼즐 게임'일 뿐인데.

"보통 퍼즐은 누구나 평등하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포코팡은 퍼즐이면서 무기 업그레이드가 있다. 게다가 적들을 물리쳐야 하고 친구를 소환해 도움도 받는다. 이렇게 소소해 보이지만 정제된 아이디어들이 퍼즐의 틀에 맞아 떨어지면서, 또 일관된 재미를 줄 수 있는 형태로 조합되고 완성되기까지 정말 엄청난 고민을 해야 했다."

캐릭터도 독특하다. 앞니가 튀어나온 토끼 '보니'를 시작으로 포코팡에 등장하는 많은 캐릭터들은 김준수 대표의 아내 '김보경'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전작인 '애니멀 다운'에도 등장했던 캐릭터들은 모두 예쁘거나 아름답다는 말과는 거리가 있지만 개성이라는 면에서 보면 만점이다.

"그냥 예쁜 그림은 많다. 그러나 기억에 남는 캐릭터는 다르다. 못생겼는데 정감이 가고 살짝 기분나쁘게 생겼는데 또 보면 뭔가 웃기고. 일본이 예쁜 캐릭터를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런 독특한 캐릭터성도 굉장히 중요하다. 포코팡의 대표 캐릭터인 '보니'는 앞이빨이 툭 튀어나온 토끼인데, 다른 게임이라면 엑스트라로나 쓰이지 않았을까? (웃음)

MMORPG를 봐도 예쁜 캐릭터들은 굉장히 많지만, 상징성이라는 측면에서 기억나는 캐릭터는 몇 개 없다. 또 다들 예쁘기만 하니 어떤 게임에서 나왔던 캐릭터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름다움과 캐릭터성은 구분해야 하고, 포코팡의 캐릭터들은 그런 개성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 정말 미묘한 개성을 갖춘 포코팡의 캐릭터


익히 잘 알려져있다시피 포코팡은 일본의 라인(LINE)을 통해 출시되면서 iOS 최고 매출 1위라는 엄청난 성적을 기록했다. 한국에서 일본에 진출해 이만한 성적을 거둔 개발사는 전무후무하다. 뿐만 아니라 세계 안드로이드 매출은 최고 세계 3위까지 올랐다.

일본의 모바일 게임 시장에 진출하면서 뭔가 재미있게 느꼈던 부분이나 신기하게 느꼈던 점은 없을까? 김준수 대표는 게임이 문화가 되어 정착되고 당당한 산업으로 발전한 일본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는 말을 남겼다.

"일본의 게이머들은 자신의 기호에 맞으면 주변과 상관없이 꾸준히 한다. 한국은 어느정도 트렌드를 쫓아가는 편이고. 그래서 오히려 일본이 더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열심히 업데이트하고 유저들의 요구를 파악해서 관리해주면 진짜 오래 갈 수 있는 게임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다.

이렇게 제대로 만드는 개발사와 게임들이 유명한 IP가 되고 10년 이상 가는 타이틀이 된다. 포코팡도 열심히 노력해서 오래도록 사랑받을 수 있는 게임이 되었으면 좋겠다. 현재 6개월 가량 일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데, 앞으로 더욱 노력한다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김준수 대표는 일본에서 부러웠던 점 들 중의 하나로 각 지역을 대표하는, 지역색을 갖고 있는 유명 개발사들을 배출하는 게임 산업의 환경도 꼽았다. 서울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한국을 대표하고 나아가 세계 시장에 도전할 수 있는 개발사가 많이 나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도쿄 뿐 아니라 교토나 오사카 등 각 지역마다 유명한 개발사가 있다. 포코팡도 계속 발전하면 트리노드가 부산을 대표하는 개발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지 않을까? '부산 정보 산업 진흥원' 이라는 곳이 있다. 부산의 정보 통신, SI, 애니메이션 등 여러 콘텐츠를 다루는 곳인데 여기 서태건 원장님이 특별히 게임쪽에 관심이 많다.

지스타 리셉션에서 허남식 부산 시장님도 잠깐 뵈었는데 포코팡도 알고 우리가 함께 개발하는 부부 개발자라는 것도 아시더라. 부산은 확실히 게임 산업쪽에 포인트가 있으니 부산 출신으로 세계에서 통하는 게임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꼭 보여드리고 싶다."


부산. 김준수 대표의 고향. 구글 플레이 세계 매출 3위, 모바일로는 가히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퍼즐 게임이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부산을 떠날 생각이 없다. 부산 토박이로 애정이 깊을 뿐더러, 그의 꿈 역시 부산에서 세계적인 개발사로 인정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포코팡 정도의 흥행 성적을 올린 게임사가 서울에서 개발자를 구한다면,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실력의 개발자들을 골라서 뽑을 수도 있다. 그러나 김준수 대표는 서울에 올라갈 생각이 없다. 오히려 그들에게 부산으로 내려오라고 권한다.

"내년 초에 사무실을 옮기고 충원도 할 예정이다. 부산에서 최고로 멋진 위치에 최고의 인력들을 뽑아서, 굳이 서울에 안 올라가도 글로벌 수준의 개발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다. 서울에는 좋은 개발자 분들이 많다. 그러나 저는 부산에서, 진짜 평생 직장이라는 생각으로 열정에 대한 검증을 거친 인재들을 기다리고 있다.

부산을 대표하는 개발사로, 또 많은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최고의 회사로 거듭날 준비를 하고 있다. 글로벌에 통하는 게임을 만들고 내 이름이 올라가 있다는 자부심. 세계에서 인정받을만큼 멋지고 좋은 게임을 만들었다는 뿌듯함을 느껴보고 싶다면, 우리와 함께할 자신이 있다면 부산으로 오라. (웃음)"




▲ 지스타 2013에서 소감 발표중인 김준수 대표


일본은 이미 흥행 궤도에 올랐고 한국에서도 포코팡 열풍이 불고 있다. 포코팡을 다듬고 완성해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래에 대한 기대 역시 클 터. 김준수 대표는 과연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을까?

"캔디크러시사가를 만든 영국의 킹이나 캐주얼의 명가 팝캡같이 한 분야를 정말 깊이 파서 인기를 얻고 유저들의 기대까지 받는 회사가 되고 싶다. 이것저것 신경쓰기보다는 우리가 잘하는 분야를 갈고 닦아서 유저들의 기대를 절대 저버리지 않는 회사로 인정받고 싶기도 하고.

또 하나 바라는 것이 있다면 우리 캐릭터가 멋진 IP가 되었으면 좋겠다. 일본에는 만화 아톰을 모티브로 한 기차역까지 있다. 그런 부분이 정말 부럽다. 부산 어딘가에 포코팡 거리가 생기고, 바닥 타일에 포코팡 퍼즐이 있고, 보니 캐릭터도 돌아다니고... 글로벌 시장에 부산도 알리고 또 우리 게임도 함께 알릴 수 있는 그런 멋진 IP로 자라났으면 좋겠다."


부부와 몇 명의 친구가 모여 게임을 개발해서 세계 3위 매출의 모바일 게임으로 성공시켰다. 그러나 최근 한국 모바일 게임 시장은 그리 희망적이지 못한 것 같다. 경쟁이 치열하다는 이야기를 넘어 살아남는 것조차 쉽지 않다. 지금도 열심히 개발중인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

김준수 대표는 유저분들이 다른 게임을 재미있게 하다가 '다른 게임 보상 받으러 우연히 왔는데, 해보니 이 게임이 더 재미있네?' 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야 하고, 그런 유저들의 댓글이야말로 개발자들에게 제일 큰 칭찬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탕하고 넘기자는 마인드로는 안된다. 자신만의 개성이 없고 트렌드를 따라가는 게임들은 마케팅 등 외부의 도움을 얻어 몇백만을 찍어도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특징있고 개성있는 게임을 갈고 닦으면 유저들부터 반응이 오고 판가름이 난다. 특히 작은 업체일수록 진짜 온갖 발버둥을 쳐서라도 제품에 먼저 집중해야 한다.

저 스스로도 창업하면서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느낀 적이 많다. 노력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살아남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평소부터 회사 살림을 잘 꾸려서 위험한 순간에 대비해야 하고, 스스로의 무기를 갈고 닦는 노력도 멈추지 않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외주도 하고... 쉽지 않은 길이지만 하나라도 개성이 있는 게임을 갈고 닦으면 반드시 어디선가 기회가 찾아 온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포코팡은 일본에 이어 한국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10명에 불과한 개발자가 안드로이드 세계 매출 3위의 게임을 만들었으니 이제 좀 쉬고 싶지 않을까? 그러나 김준수 대표는 앞으로 더욱 해야할 일, 하고 싶은 일이 많아졌다면서 웃음지었다.

"게임이 크게 떠서 잘되면 모든 걱정이 사라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고민은 더 많아졌다. (웃음) 하루에도 수백만명이 포코팡을 켜고, 천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접속해주신다. 그런 분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 있을까? 그래서 제대로 만들자고 항상 다짐하고 지금도 계속 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도 포코팡을 10년 이상가는 멋진 게임이자 IP로 키워나가고 싶다."


▲ 지스타 2013, 포코팡 야외 부스의 김준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