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기사는 창천 인벤에 소개된 일당백 군벌의 인터뷰입니다. 게임을 함께 즐기는 동료들이 군벌의 정모로 태안 기름 유출 현장 자원봉사를 떠났다는 것이 인상적이어서 소개해드리려합니다.


와신상담



중국 춘추 시대, 월왕 '구천'과 싸워 크게 패한 오왕 '합려'는 부상을 입고 목숨을 잃었다. 임종 때 합려는 태자인 '부차'에게 반드시 월나라를 쳐서 원수를 갚으라고 유언했다.

오왕이 된 부차는 부왕의 유명을 잊지 않으려고 '섶 위에서 잠을 자고(와신)' 자기 방을 드나드는 신하들에게는 방문 앞에서 부왕의 유명을 외치게 했다.

오나라는 이와 같은 부차의 행동을 되새기며 칼을 갈았고, 결국 오자서의 계략을 이용하여 월나라를 크게 물리치고는 월왕 구천을 항복시켜 포로로 잡아내었다.

구천은 오나라의 속령이 된 월나라로 돌아와 일개 농사꾼이 되었다. 항상 옆에 쓸개를 차고 다니면서 앉으나 서나 그 쓸개를 핥아(상담), 항복하던 순간의 그 치욕을 되새겼다.

12년 후, 오왕 부차가 천하를 제패하기 위해 하남 성 기현으로 나아가 제후들과 회맹하러 간 사이 구천은 군대를 이끌고 오나라를 쳐들어갔고, 7년이 지나 오나라의 고소(소주)를 함락하여 부차를 자결시켰다. 그 후 구천은 부차를 대신하여 춘추의 패자가 되었다 한다.



와신상담에서 '상담'의 주인공인 월왕 구천



뒤치기와 역전이 기묘하게 얽힌 이 한편의 고사.
흡사 창천의 전국을 돌아보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 춘추 시대의 이야기가 전혀 무관하지 않은, 어찌 보면 오히려 잘 어울리는 서버가 있다.

바로 관도대전 서버이다.



그들과의 인터뷰를 예정하다


기자가 관도대전 서버의 일당백 군벌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던 것은 군벌 시스템이 패치된 후 스스로의 본분에 맞게 이 서버 저 서버를 유랑하면서 각종 군벌들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던 때였다.

창천 온라인의 군벌 창설 이벤트(2007년 10월 23일)에서 1등 먹은 군벌 일당백.

당시 워낙 이것저것 바빠서 큰 신경은 쓰지 못하고, 이벤트 1등 군벌 일당백이라고 기입하여 따로 분류해 둔 후 그들을 잊어버렸다.

시일이 흘러 3개월 정도 지난 후, 그들의 이야기가 다시금 귓가에 들려왔다.

그들이 정기모임을 가진 것이다. 그것도 아주 특별한 정모를.



일당백군벌




월요일 18시. 대남, 일당백 군벌원에게 인터뷰 의사를 타진하다.
화요일 20시. 일당백 군벌 홍보부장 홅홅과 접선. 이어 군벌장 톰캣 과 접선 성공.
그들에게서 인터뷰 일시를 약속 받다.
목요일 22시. 대남, 인터뷰 시간에 맞추어 관도대전 서버로 접속.






2007년 10월 26일자 관도대전 서버 지도




인터뷰에 응하는 자의 교과서


인터뷰 장소인 회음으로 달려가니 20명 약간 넘는 인원이 모여있었다.

슬쩍 홍보부장 훑훑을 찔러 물어보니 군벌원 한계수인 50명을 꽉 채운 상태에서도 가입희망자가 많아 현재 자매군벌을 새로 만들어 30명 정도 더 받았다 한다.

그 사람들이 모두 한날 한시에 접속하여 전쟁을 치를 수는 없는 노릇이라 대충 30명 정도만 활동한다 하더라도, 이 정도면 상당히 활성화되어 있는 군벌이다. 이 정도 수준의 군벌이 현재 오나라에 몇 개 더 있다고 하니 도대체 언제 관도서버 오나라에 사람이 이리 많아졌던가.



기자 : 좀 의례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어쩔 수 없다. 먼저 군벌의 소개를 부탁한다.

군벌장 톰캣 : 일당백 군벌은 창천을 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이 모여, 적은 인구수를 악과 깡으로 이겨보고자 만들었던 군벌이다. 전쟁에도 활발한 참여를 하고 있고, 정책결정에도 적극적이며, 정책제안에도 그만큼 적극적이다. 물론 사공이 많아서 산으로 가면 곤란한지라 같은 군벌이 아닌 다른 오나라 유저들과 긴밀한 협조체계를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기자 : ......



답변이 마치 교과서 같다. [군벌인터뷰를 당하면 이렇게 방어하라 ]라는 참고서를 미리 읽고 오신 듯하다. 난감했다. 누구나 다 아는, 지극히 뻔한 이야기를 쓰면 그걸 무슨 재미로 읽겠나.

약간 약을 올려주기로 했다. 역시 창천 유저에게는 전쟁 이야기가 즉효약일 것이다.





2007년 11월 21자 관도대전 서버 지도. 천하통일이 이루어진 모습




그들의 허점을 찔러 약을 올리다


기자 : 그 긴 시간 동안 촉나라의 천하제패를 보며 좌절도 많이 했을 것이고 많은 분들이 떠났을 것이다. 가장 어렵고 힘들다고 느꼈던 점들은 무엇인가.

군벌장 톰캣 : 사냥터만 가면 당하는 바지저고리 취급이나 촉나라의 강세로 인한 위화감, 혹은 촉나라로 대거 몰려드는 멋진 제련 제작 아이템들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런 것들은 오히려 우리를 더 악에 받치게 했을 뿐이다.

우리가 정작 힘들었던 것은 줄어든 사냥터로 인해 신규유저에게 외면 받던 순간들이 아니라 힘을 잃고 희망을 빼앗긴 채 결국 서버를 떠나던 전우들을 보는 순간이었다.



어려웠던 순간을 회상시키면 누구나 약간은 부아가 돋아나기 마련이다. 분노한 마음에서는 속마음이 나오기 마련. 진솔한 인터뷰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기자 : 2008년 1월 17일 현재, 촉나라의 천하통일로 인해 많은 유저가 이탈했던 관도대전 서버의 지도가 변했다. 지도를 보면 문외한도 한눈에 확 느낄 수 있겠지만 관도대전 서버의 촉나라는 더 이상 예전의 촉나라가 아니다. 위나라와 오나라의 약진을 막아내야 하는 과거의 서버최강국 촉나라의 발길은 이제 무겁기만 하다. 촉나라를 배제한 양 국 간의 어떠한 합의사항이 있었는가?

군벌장 톰캣 : 소문 속에 떠도는 위오동맹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거라면....할 말이 없다. 거기에 대해서 우리나 그들이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겠는가. 사실 그 정도까지 영토를 빼앗겨 수도 성만 남았던 두 나라가 이빨을 들이대고 피 터지게 싸우면 그 무슨....우리가 붕어도 아니고.



하긴 그렇다. 위나라나 오나라나 수도 하나만 남긴 채 몰려드는 촉나라 군사들을 맞아 싸우며 번번이 그들에게 국경전 승리보상을 주어야만 하는 굴욕을 겪었다. 과부 마음은 홀아비가 안다. 위나라와 오나라가 서로 싸울 마음이 들겠는가. 얼굴들을 살펴보니 다들 약간씩 열 받아서 들뜬 모습이다. 약점을 쿡쿡 찔러대며 아픈 상처를 들쑤시는데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하여간 약간씩 열 받았으니 이제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긴 생각 못하고 바른대로 이야기해 주겠지. 흐흐흐...


▶ [관련기사] 관도서버 촉나라, 사실상 천하통일!! (클릭!!)




어딜 가나 이런 유저는 반드시 한 명 이상 찾을 수 있다




그들은 복수에 연연하지 않는다


기자 : 그렇다면 이건 어떻겠는가.
촉나라와 위나라를 수도에 가둬버린 후 지난 시기의 촉나라처럼 천하를 통일할 수 있는 기회가 일당백 군벌에게 주어졌다고 가정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군벌장 톰캣 : 우리는 다른 서버도 아니고 관도서버에 산다. 한 나라가 힘을 잃고 망하면서 이국지가 되는 순간 신규유저 영입이 거의 중지되는 거나 마찬가지인 당금 창천의 현실 속에서, 전무후무했던 한 나라의 천하통일을 목도한 사람들이다.

위나라와 오나라의 신규유저 영입은 거의 중지된 상태나 마찬가지였고, 심지어 촉나라마저 인구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천하통일은 현 시스템 하에서는 장기적으로 볼 때 서버를 죽이는 짓이요, 단기적으로는 자기 나라를 죽이는 짓이다.

물론 우리가 당한 것이 뼈아프기도 하고, 그에 대한 복수의 감정 역시 만만치 않지만 대승적으로 보아 천하통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는 불상사이다.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인데, 창천은 [전쟁]이라는 키워드로 설명되는 온라인 게임이지 상대를 영원무궁 세세토록 회복불능의 구렁텅이로 밀어넣는 전쟁이 아니다.

온라인 게임은 일종의 스포츠라고 생각해야 한다. 대한민국 대표팀이 2002년 월드컵에서 4강까지 진출하는 동안 패배한 상대팀을 전원 총살한 적이 있던가?

기자가 제시한 그러한 기회가 온다면, 받아들이지 않겠다. 우리는 적이 필요하고, 적은 우리가 필요한 거다.



호오. 이건 의외다. 그들은 별다른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사실 다른 나라가 천하통일을 달성하게 되면, 남아있는 사람들의 고초는 말할 수 없을 정도가 당연하다.당장 사냥터에서 마주치는 다른 나라 유저들의 비 매너행위를 속 시원히 나무랄 수도 없고, 그들이 두르게 되는 각종 멋진 아이템들에 대한 위화감도 상당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떠나서, 더 이상 신규유저가 영입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앞날에 대한 희망을 박탈당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어두운 밤 망망대해를 표류하는듯한 막막함을 느껴야 한다는 사실은 가혹하기까지 한 형벌이다.

그들은 그런 것을 당했다.

그러나 그것을 돌려주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알고 있는 거다. 그들의 진정한 적, 모든 창천 유저의 진정한 적은 상대국 유저들이 아니라 바로 그 막막함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들이 다른 나라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 순간이 바로 그 막막함이라는 적에게 자신의 멱살을 잡히는 순간이라는 것을.






인터뷰가 이루어지던 1월 17일자 관도대전 서버 지도




그들은 사람을 믿는 법을 배웠다



기자 : 태안반도에서의 1월12일 정기모임을 가졌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곳은 근사한 분위기에 어울려 먹고 마시며 즐길 수 있는 정모 장소는 결코 아니다.

당신들은 흥겹게 놀고 마시며 군벌의 단합을 기르는 대신 봉사와 극기(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태안에서의 기름제거작업은 그야말로 극기에 다름 아니다)를 택했다. 사실 대놓고 말하자면, 술집에서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군벌정모하고 놀았다고 해도 누구라도 무어라 하지 않는 상황이었는데, 굳이 그 어려운 기름제거작업의 고행을 정모로서 채택한 이유가 있는가?


군벌장 톰캣 : 물론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 정도로 태안의 기름제거 작업은 어려웠고 힘들었으니까. 그러나 단지 먹고 놀며 즐겨야만 단합이 이루어진다는 선입견은 억지다. 오히려 단합이란, 어려울 때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혜에 가깝다.

생각해 보라. 창천이야말로 전장에서의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뒤에서 피리를 부는 오케스트라도 중요하고 죽을 줄 알면서도 앞에서 적진을 향해 개돌하는 사람도 중요하다. 돌아오지 못할 줄 알면서도 적의 회복부대를 테러 뜨러 가는 협객들도 중요하고 국챗을 호도하는 적의 세작들도 없으면 이젠 어딘가 허전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이렇게 한명한명이 모두 소중한 것이 바로 창천이고, 게임의 분위기이다. 우리는 이러면서 전장에 나가고, 이러면서 승리를 맛보고, 이러면서 패배를 씹는다.

그때 태안은 기름에 물들어, 국민 한 명 한 명의 손길을 부르짖는 때였다.

우리는 정모를 태안에서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창천을 즐기던 우리는, 한 명 한 명이 모인 힘이 얼마나 크고 강한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임을 하면서 느꼈던 개인 일인 일인의 힘을 모아, 우리를 부르는 구원의 요청에 응답하고 싶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자식들에게 그날의 정모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해 줄 수 있다.

어떻게 게임에서의 만남에 불과할 수도 있었던 인연을 모아서 태안 바닷가에서 기름에 쌓여 죽은 소나무를 다시 심을 수 있었는지 말이다.


기자 : 태안에 갔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는가? 아마 거대한 재앙을 마주하여, 두려웠을 것이다. 어떠한 경로를 통하여 군벌의 단합을 얻을 수 있었는지 알고 싶다.


군벌장 톰캣 : 우리의 힘은 미약했다. 그래서 태안의 거대한 재앙에 마주했을 때 비통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의 적은 기름이었다. 100 vs 100 전장에서 100 vs 5 로 싸워야 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개인은 비록 약할 지라도, 태안에 모였던 모든 사람의 힘은 크고 강했다.

우리는 태안의 재앙만을 보며 절망했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옆의 전우들과 함께 스스로를 지탱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그것은 반드시 이겨야 하는 싸움이었다. 그리고 그 봉사의 결과, 우리는 사람을 믿을 줄 알게 되었다.


기자 : 그러한 경로로서 군벌의 단합을 촉구했다면, 오히려 군벌의 신규가입 유저에게는 쉽사리 어울리지 못할 짐이 되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모든 군벌원이 다 참석한 것도 아닌데, 참석하지 않은 군벌원들은 위화감을 느낄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것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군벌장 톰캣 :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리고 실제로도 충분히 가능한 견해이다. 그러나 당시 태안정모에 참석했던 사람들이라면 그렇게는 절대 생각하지 못한다. 그들은 자기 외의 타인이 자신에게 있어서 어떤 존재인지 태안에서 뼈저리게 느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 똑같은 사람들이다. 마침 시간이 나서 정모에 참여했건 개인사정으로 참여하지 못했건, 그것은 그 사람을 저울질하는데 필요한 잣대가 될 수 없다.

누가 되었건 시간만 났다면, 아니면 누군가가 함께 태안으로 가자고 손을 내밀어 주는 식의 작은 동기만 제공했다면 태안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우리를 움직이는 데에는 동기가 필요하다. 크고 작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특별히 잘나서 간 게 아니라는 소리다.

가득 차 있는 찻잔 속의 물을 넘치게 하는 것은 한 방울의 물이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그들의 와신상담


그들의 박력과 힘은 기자를 도취시켰다. 물론 그들 개개인의 캐릭터는 강하거나 약할 수 있다. 어쩌면, 유명한 컨트롤로 이름 높은 유저들이라면 그들 가운데 약한 사람을 '관광'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굴복시키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들은 이미 나락의 밑바닥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그곳을 떠나거나 피하지 않고 바닥에서 기어올라올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최선을 다했다. 그들은 태안이 내밀었던, 선뜻 잡기 어려웠던 손을 대뜸 잡아 용기를 증명했고, 그를 통하여 군벌원의 단합을 촉구하면서 기름에 오염되었던 태안도 도우며 게임 내에서도 승리했다.

일타 쌍피아닌가. 그렇기에 그들의 용기는 상찬 받을 권리가 있다. 관도대전 서버의 지도는 한때 붉은 깃발이 가득했지만, 이제는 달라지고 있다.

기자는 어떻게 그 나라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대답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21세기의 와신상담을 두려워하지 않은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들이 태안에서 저지른 일은 '기름유출작업'이라는 소문도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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