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그 시절. 3일 밤낮의 전화(戰火)


오픈베타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던 그 때 그 시절. 추석 연휴의 공방전은 지금도 유저들의 이야깃거리다. 당시의 창천은 지금과 달리 정책제안의 시간제한이 없었기에 하루에도 여러 번 많게는 수십 번의 국경전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물론 계속되는 전쟁에 손가락이 부러질 듯 지치고 힘들었지만 국가의 명예를 위해 인챈트가 낮아도, 레벨이 낮아도 동원령을 받은 예비군 마냥 우리는 전장으로 달려갔고 적의 칼을 칼로, 몸으로 받아내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몸을 불살랐다. 휴일 내내 이어진 전쟁에서 적의 창에 몸을 방패삼았던 무명용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추석 연휴 내내 열렸던 국경 전장은 너무 큰 피로를 안겨주었다. 지지 않기 위해, 국가를 위해 싸웠던 유저들의 몸에는 전쟁의 상흔이 마를 새 없었고 전쟁과 전쟁 사이에 휴식시간이 필요함을 모두 알게 되었다.


게다가 하루에도 몇 번씩 국경전장이 열리게 되면서 위, 촉, 오를 가로지르는 국경선은 너무도 급격하게 변화를 가져왔다. 도시가 적어질수록 강력한 장수 NPC 들이 한 전장에 모이면서 밸런스가 유지될 것이라는 게임사의 희망은, AI를 뛰어넘는 유저들의 힘과 국가 간 인구 불균형 앞에 가차 없이 무너져 내렸다.


위메이드가 이후 공성전과 수성전의 도입, 국경 전장 시간 축소 고정, 전장에 소모되는 군량미의 조정 등 국경의 변화를 막기 위한 일련의 전쟁 억제 정책을 내 놓은 것은 이런 이유 때문.


그러나 이 같은 억제 정책이 미봉책에 불과했음은 관도대전 서버의 사례로 드러났다.



[ 2007년 11월 21일. 관도대전 서버는 사실상 통일되었다 ]



통일된 후의 창천은 비참했다.


상대적으로 협소해진 사냥터. 불리한 조건에서 활동해야 하는 패국의 유저들은 정든 서버를 뒤로했고, 망국을 바라보며 들어올 신규 유저의 유입도 뜸해지면서 결국 서버 전체의 활기가 사라졌다.


전쟁이 끝난 후 찾아온 수성의 시대는 창천이 지향하는 바와도 맞지 않았다. 다스려야 할 국민도 경영해야 할 농토도 관제해야할 운하도 없는 오직 군인만이 존재하는 창천에서 수성시대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었다.


전토를 통일했음에도 칭송받지 못하는 통일 국가의 예는 다른 서버 유저들로 하여금 '국가 간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트라우마가 되었다. 통일을 막기 위해 상대적으로 강한 나라를 두 나라가 연합하여 수비하거나, 혹은 이미 주도권을 쥔 국가가 다른 국가의 숨통을 일부러 트여주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 되었다.


현재 창천은 몇몇 축복받은 서버를 제외하고 삼국지(三國志)가 아닌 이국지(二國志), 혹은 실제로는 일국지(一國志) 이지만 연출된 삼국지(三國志)의 기형적인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상태.


적의 사정을 어느 정도 봐주면서 싸움을 거는 국가. 상대방의 의중을 살펴보며 인구수에 밀려 서로의 동맹이 결정되는 국가. 그러나 통일을 막기 위한 유저들의 이 같은 '연출'은 통일 후 망국의 유저들이 어떤 식으로 창천의 세계에서 활동할 수 있을지에 대한 막연함 때문이지 ‘통일 자체에 대한 거부감’ 때문은 아니다.





진삼국무쌍BB가 통일에 대처하는 자세


삼국지를 배경으로 지역 점령전을 먼저 선 보였던 일본 KOEI 사의 진삼국무쌍BB이 통일과 통일 후의 세계를 어떻게 구현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진삼국무쌍BB가 창천과 가장 다른 점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여러 명의 군주가 동시에 등장하고 유저가 어떤 군주의 소속이 될 지 선택할 수 있다는 부분. 즉 창천이 위, 촉, 오의 세 나라로만 이루어진 세상이라면 진삼국무쌍BB는 시대에 따라 나라가 여러 개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 창천의 구조와 비슷한 모습. 대신 나라가 많다 ]



전장 시스템은 창천과 큰 차이가 없다. 진삼국무쌍BB에서도 군주가 장악하고 있는 지역은 타 군주와의 전쟁을 통해 점령당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모든 영토를 빼앗기고 멸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때 망국이 된 국가 소속의 유저는 자유롭게 새로운 군주를 선택할 수 있으며, 이런 과정이 반복되어 전국이 통일되면 다음 년도의 시나리오로 시대배경이 바뀌면서 새로운 시대를 맞아 또다시 천하통일을 향해 경쟁하게 된다는 점이 창천과의 큰 차이.


통일 후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면서 캐릭터의 레벨과 장비는 그대로 남고, 국가 소속 등의 데이터는 초기화되므로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국가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것도 가능하다. KOEI의 유명한 삼국지 시리즈를 경험했던 유저라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진삼국무쌍BB의 시나리오 선택 방식은 삼국지의 그것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진삼국무쌍BB에서는 ‘통일’이 서버 전체를 우울하게 하는 피해야만 하는 낭떠러지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갈 중요한 전화점이 되면서 전체 서버 유저들의 축제이자 흥겨운 이벤트가 된다.



[ 에피소드 1 ‘반동탁 연합’ 에서 통일을 이루면 다음 에피소드인 ‘비장 여포’ 로 넘어간다 ]



삼국지가 아닌 창천사를 향해...


창천이 역사를 바탕으로 시나리오 분기점을 가진 진삼국무쌍BB의 해법을 그대로 차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시스템의 구조가 애초에 다르기도 하지만, 사실상 창천의 삼국지 세계는 과거와 미래가 혼재되어 ‘역사’와는 거리가 먼 또 다른 가상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은 동탁 사후에 활동했던 서서나 강유가 동탁과 같은 시대에 등장하는 점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데, 비교적 충실한 삼국지의 역사적 배경 위에서 활동을 하게 되는 진삼국무쌍BB와 비교하면 창천의 세계란 삼국지를 배경으로만 하고 있다 뿐 '환상의 세계'에 다름 아니다.


어차피 환상의 세계라면 기존 위, 촉, 오의 삼국체제를 과감하게 깨어버리는 것은 어떨까. 삼국지에 등장하는 영웅호걸이 아닌 유저들이 주인공이 되는 세계로의 전환 말이다.





삼국지의 영웅호걸과 함께 호흡할 수 있다는 점이 창천이 우리를 끌어들인 것은 틀림없지만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이 NPC가 되어버린 장비의 옆에서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전설적인 장비의 장팔사모를 손에 들고 적토마를 타며, 손자병법을 손에 들고 전장을 누비는 어느 영웅 유저의 휘하에 기라성 같은 장수들이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 전장에 참여하며 공로를 세우며 이름을 알리다보면 여포나 장비, 제갈량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니 뛰어 넘을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NPC 들의 힘을 빌어서가 아니라 직접 적장의 목을 베어 천하를 호령하는 영웅호걸이 되고 싶은 건 기자만의 상상인가.


잠시 거론되었던 제후국 시스템이나 장수 포로 시스템이 결합되어 유저가 혹은 군벌이 세운 나라가 세워질 수 있다면... 혹은 점령을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진 나라 소속의 유저가 국가 부흥운동을 할 수 있다면... 위, 촉, 오가 아닌 유저의 이름을 내건 국가가 중원통일을 이뤄낼 수 있다면...


이렇게 '삼국지'가 아니라 '창천사'를 써내려가는 건 어떨까. 위, 촉, 오가 아닌 유저가 중심이 되는 역사 말이다.





물론 이 같은 상상은 하나의 예, 기자만의 생각에 불과할 수도 있다. 현재 창천이 안고 있는 통일 후의 모습에 대해서는 게임사의 기획자는 물론이고 창천을 즐기는 유저들 각자도 다양한 미래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사실 창천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창천 유저들이 아닌가. 여러 사람의 생각이 하나로 합쳐진다면 더 좋은 해결책이 분명히 나올 것이라 믿는다. 창천의 시대를 써내려가는, 창천의 진정한 주인인 우리. 이제 슬슬 변화되어야 할 창천에 대해 주인으로서의 목소리를 낼 때가 되었다.


여러분은 통일 후 창천에서 어떤 모습을 꿈꾸시는지...


iNVEN Curry
(curry@inv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