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 사건의 발단은 아무 것도 적혀있지 않은 CD 한 장이었다. 갑갑한 교실에서 벗어나 대학 새내기의 물결에 흠뻑 취해 있던 당시, 하숙집에 들어가다 우연히 한 선배가 처음 보는 화면에 집중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한국에는 정식 발매되지 않는다며 용산에서 어렵게 구했다는 CD 한장, 그 게임의 이름은 디아블로.


압도적인 그래픽과 음산한 사운드, 화려한 게임플레이에(그 당시에는 정말 최고였다.) 한 눈에 반한 나는 그 형이 외출한 틈을 노려 CD를 빌려와 틈틈이 플레이 했었고, 결국 나중에는 '늦잠 -> 지각 -> 결석 -> 학고' 콤보로 이어지는 필살기를 맞게 되면서 주위에서는 '걱정의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오직 내 머리 속에는 '디,아,블,로'라는 네 글자가 지배할 뿐이었다.


100메가 초고속 인터넷은 상상도 할 수 없던 시절. 집 전화기에 '삑삑~'거리는 모뎀을 연결해 배틀넷에 접속하면서 한 달 전화비가 그때 돈으로 20만원이 넘게 나오는 테러를 당하면서도, 때문에 한 달 용돈을 모두 탕진해 꼼짝없이 방 구석에 처박혀야 하는 운명에 처하면서도, 난생 처음으로 수 천 킬로미터 떨어진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와 하는 파티플레이에 설레였던 행복한 나날이었다.


말 그대로 '생활'이 없던 삶을 살아가던 나. 어쩔 수 없는 '군대 크리'를 맞게 되면서 2년 2개월 간의 '살벌한' 공백이 디아블로가 점령한 내 마음을 치유해줄 거라 굳게 믿었지만, 그 사이 스타크래프트로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던 (악마같은) 블리자드는 나의 군대 제대 시기에 맞춰(정말 그랬다.) 디아블로2라는 핵폭탄을 터트린다.



[ 디아블로, 어떤 의미에서 진정한 악마가 아닐까? ]




'결심, 각오.. 그게 도대체 뭔가요?' 제대하는 첫 날 급한 마음에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디아블로2패키지를 구입해 컴퓨터에 설치해놓으라는 주문을 하고, 그것을 아버지에게 발각돼 거의 빈사상태까지 이르게 되었지만, 전화위복이라고 했던가? 동네 근처에서 ‘새로운 각오’를 위장한 12시간 야간근무 아르바이트 자리를 따내게 된다. (어찌나 기뻤던지 눈물까지 흘렸다.)


일주일 내내 PC방 같은 자리에서 디아블로2만 하면서 컵라면 사발을 마치 63빌딩처럼 쌓던(치우려고 해도 그냥 놔두라고만;) 기인(?)아저씨부터, 디아블로2를 하다 아이템 때문에 서로 머리채까지 잡으면서 대판 싸우고 헤어진 커플 손님, 그리고 새벽 4시만 되면 대종상 영화제에나 어울릴 듯한 화장과 옷차림으로 출석한 후 어김없이 나에게 '디스 한갑이랑 콜라주세요'라는 대사를 뱉었던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누나까지.. 그 시절 대한민국 PC방의 밤은 디아블로가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몇일 전부터 추석 날 아침까지 밤을 세다가 집에서 전화가 몇 통이나 와서야 귀가하는 진정한 용자도 보았었다.



전지현, 오양검, 듀얼링, 소서, 바바, 훨윈드, 복사파동, 카우방, 조단링, 릴레이방, 우버디아... 디아블로2를 연상시키는 수많은 키워드들. 아마존의 가이드 애로우로 바바를 몇 초만에 잡았을 때의 전신에 타고오르는 PK의 쾌감과 감동들. 그때 디아블로2가 얼마나 인기가 많았던지 하나 있던 아시아 서버는 맨날 폭주해 서버다운이 일상이었고, 주말에는 그 많은 인원을 뚫고 접속하기만 하면 그 자리에 온 PC방 사람들이 몰려들어 구경해, 마치 잔칫집 풍경을 자아내기도 했었다.


장시간 서버다운이 지속되면 사람들은 아이템 거래 게시판에서 서버다운에 대한 짜증을 서로에 대한 공격으로 해소하기도 했었는데, 특히 "백수 어른 VS 학생(초,중,고)"의 대립구도는 그 중 으뜸이었다. 누군가가 "학생은 공부나 해, 너희들 때문에 서버다운이잖아"(욕설은 제거한 버전)라고 올리면, 즉시 "백수들아 일자리 좀 구해, 나는 전교1등 하면서 디아블로2한다."라는 식의 대화들. 거의 실시간 채팅을 방불케 하는 게시판 플레이 속에 누군가가 갑자기 나타나 "지금 접속되요"라고 한마디를 던지면 그 많던 사람들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곤 했었다.



[ 다시 등장한 악마, 디아블로2 ]




무의미한 글이 태반이었지만, 그 중 글로벌시대, 대한민국 청년의 바른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끔 한 글 하나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올 정도다. 다름아닌 전 세계를 상대로 한 블리자드의 음모론.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블리자드는 평범한 게임회사가 아니라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 청년들을 게임에 중독시켜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미국 정부기관. 그런 블리자드의 첫 번째 타겟은 아시아에서 가장 경제력이 월등했던 일본. 블리자드는 장시간 동안 일본과 아시아 시장을 철저하게 연구해 마약보다도 중독성이 강한 '디아블로'를 내놓게 된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자신만의 게임관과 거대한 게임 시장을 형성하고 있었던 일본의 청년들은 오히려 '디아블로'에 무관심했고, 엉뚱하게도 일본 옆에 위치한 우리나라에 디아블로의 마수가 뻗쳐 폐인들이 생겨나고 나라가 망해가고 있다는 충격적인 스토리.


전직 국정원 직원이 작성한 듯 한 건조하면서도 빈틈없던(?) 그 글은 오랜 시간 동안 게시판을 접수하고 있던 '백수VS학생' 구도를 순식간에 무너뜨렸으며, 조단링 하나에 영혼을 받쳤던 이들이 아주 짧은 시간이나마 현실을 돌아보며 각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사기, 계정 도용은 완전 일상과 다름없고, 논문과 맞먹는 양과 퀄리티의 캐릭터 육성법을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달달 외우고 다녔던 그 시절.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소떼를 썰지 않으면 하루가 개운하지 않고, 주고 받는 국셋 속에 피어나는 우정과 사랑에 훈훈했던 2001년이 그렇게 지나가고, 확장팩 : 파괴의 군주 출시에 맞추어 큰 마음 먹고 디아블로를 접고 본래 생활을 찾아갔지만 (게임 접은 후에 바라보는 하늘은 너무나도 맑지 않은가?), 그 이후로도 디아블로 대규모 패치(수수께끼 등 룬워드 아이템 등장) 때 다시 플레이를 하게 되었고, 졸업시즌에는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라는 또 다른 괴물을 만나 결국 전공과는 관련이 없지만 정말 하고 싶어하는 일을 찾아 인벤에 입사하게 되었다.


디아블로를 빼놓고는 정말 이야기할 수 없는 청년기를 보내온 입장에서 이번 프랑스에서 열린 2008 WWI의 디아블로3 소식에 무척이나 긴장되고 흥분도 되었지만, 기억 속에서 까맣게 잊고 지냈던 예전의 암흑기가 다시 생각나 한참을 공포감에 떨기도 했었다. "하악하악"과 함께 찾아온 "후덜덜"이라고나 할까? 아마 인벤 가족들 중에서도 이런 느낌을 받은 사람이 셀 수도 없이 많을 것으로 사료된다. WoW 때와는 완전히 다른 수준의 압박감말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우리는 게이머. 오직 할 수 있는 것은 "디아블로3 빨리 나와라, 나랑 한판 붙자."라는 외침 뿐이다.


WWI가 폐막한지 일주일이 훌쩍 넘은 지금 이 시점에서도 아직까지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 게임계에 디아블로3 얘기가 끊이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옛 생각에 젖어 가벼운 마음으로 펜을 들어보았다. 댓글로 디아블로과 관련한 추억담을 올려주시는 인벤가족들에게는 글에서 묻어나는 폐인게이지를 측정해서 특별 제작한 '티리엘 아이콘' ( ) 을 선물하도록 하겠으니 눈물 없이는 못 읽는 스토리 많이들 올려주시길....



[ 빨리 나와라, 디아블로3! 형이랑 한판 붙자. 굽신굽신.. ]




"간만에 디아블로2 패키지를 깔았다 지웠다를 반복한..."
Inven Vito - 오의덕 기자
(vito@inv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