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에 구현된 10,000 명의 NPC. 그냥 집어넣기만 한 것이 아니라 NPC들마다 주변의 적을 향해 무기를 휘두르고, 전장의 한복판에는 거대한 오우거가 등장해 주변 병사들을 날려버리면서 위압감을 드러낸다. 강력한 오우거를 물리치기 위해 수많은 병사들이 달려들고, 한쪽에는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거대한 공성 장비가 성벽을 향해 전진하는 이 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을 방불케하는 중세 전장의 모습 그대로.

지금까지 등장했던 수많은 온라인 게임들이 전쟁을 표방했었지만, 실제 온라인 게임에서 대규모 전장을 구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게이머들도 알고 있다. 최고 수준의 사양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수준의 컴퓨터에서도 원활하게 구동되어야 하며, 충분한 숫자의 NPC는 물론 등장하는 NCP들의 개성이나 품질 역시 고려해야 한다.

결국 전쟁이라 납득할만한 NPC의 숫자를 집어넣어야 한다는 최적화의 문제와 게이머들이 좋아할 만한 전쟁의 재미를 함께 가져가기 위해 초반에는 야심차게 전쟁을 내세웠던 게임들도 막상 게임에 들어가보면 소규모 전투 정도의 수준에 만족해야 했었다. 결국 수많은 NPC들이 격돌하는 전장을 온라인에서 구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무려 10,000명의 NPC들이 격돌하는 전장을 그려낼 수 있는 게임? 다른 게임 개발자들이 범용적이라고 칭찬하는 상용화 엔진으로는 구현조차 힘들었다. 그래서 직접 만들었다. 블루사이드에서 개발중인 킹덤 언더 파이어2의 페임테크2 엔진.


과연 대규모 전장의 구현에 특화되어 있다는 페임테크2 엔진의 성능은 어느 정도일까? 킹덤 언더 파이어 2와 함께 공개되었던 페임테크2 엔진에 대한 설명은 아래의 영상만으로 충분히 설명이 가능할 것 같다.


[ ▲ 실제 게임 화면을 녹화한 영상 ]





'가장 이상적인 게임 개발을 위해서는 그 게임을 위한 최적화된 게임 엔진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상윤 PD의 지론에 의해 킹덤 언더 파이어 시리즈는 대대로 자체 개발된 페임테크 엔진을 사용해 왔고, 2000년부터 현재까지 킹덤 언더 파이어의 시리즈가 거듭되며 성능 역시 향상되었다.

게임 엔진은 결국 게임을 제작하는 도구의 성격이 강하다. 개발자의 상상력을 얼마나 쉽고 멋지게 표현할 수 있느냐가 바로 엔진의 목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에서 개발중인 대부분의 게임들이 해외 유명 엔진을 이용하여 제작되고 있는 상황에서 게임과 함께 발전해가는 자체 제작 엔진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상용화 엔진이라는 쉽고 빠른 길 대신, 버전업을 하면서까지 자체 제작 엔진을 고수하고 있는 블루사이드의 페임테크2 엔진 담당 부서, 핵심 개발자인 앙헬 쿠냐도 부장과 김성균 PM 그리고 데이빗 쥬즈버리 리드 프로그래머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 좌측부터 앙헬쿠냐도, 김성균PM, 데이빗 쥬즈버리 ]



외국인, 그나마 익숙하게 느껴지는 미국도 아니고 생소한 스페인과 호주 출신의 외국인 개발자라는 이야기에 만나기전부터 긴장했지만 의외로 인터뷰 분위기는 어색하면서도 가벼운 분위기. 기자를 반갑게 맞아주는 앙헬 쿠냐도 부장과 데이빗 쥬즈버리 리드 프로그래머가 어떤 연유로 한국에서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져 물었다.

(앙헬 쿠냐도) "아내의 국적이 홍콩입니다. 저는 스페인이고요. 아내가 홍콩과 가까운 아시아에서 살고 싶어했는데 아시아에서 트리플 에이급 프로그램을 만들 능력을 갖춘 회사를 찾던 중에 블루사이드를 만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블루사이드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데이빗 쥬즈버리) "저는 이곳에 입사하기 이전까지 호주에서 게임을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히어로즈 오브 퍼시픽이라는 게임과 Xbox용 비행 시뮬 액션 게임을 제작한 경력이 있죠. 현재 이곳에서 엔진의 리드 프로그래밍을 담당하고 있는데 이전부터 아시아에 관심이 많아 이쪽에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차에 블루사이드와 접촉이 되었습니다. 예전부터 킹덤언더파이어라는 게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함께 일하게 되었죠."

(김성균PM) "저도 생각해보니 블루사이드에 들어온지 벌써 2년 정도 지났네요. 개인적으로 게임 기술쪽 일을 계속 하고 있었어요. 국내에는 언리얼이나 크라이 엔진 이외에 자체적인 기술을 가진 회사가 몇 없는데 그 중 장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회사라고 생각되어 블루사이드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평범한 게이머들에게 엔진은 논외의 대상이다. 언리얼, 크라이, 게임브리오 등 유명한 몇몇 엔진들은 게이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지만 실제 게임 개발에서 어떤 영향을 발휘하는지는 미지수. 그래도 직접 엔진을 개발한다는 것은 모험일 것 같은데, 직접 엔진을 개발하고 있는 이유 그리고 장점은 어떤 것이 있을까?


"상용화되어 있는 범용 엔진을 쓰지 않고 자체 개발을 선택한 이유는 저희가 표현하고자 하는 방향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죠. 킹덤언더파이어 2에서 대규모 전장을 표현하고 싶었고 이런 전장의 구현에 최적화된 엔진이 필요했는데 그런 기능을 지원하는 엔진은 없었거든요.


그리고 상용화 엔진을 쓰게 되면, 아무래도 때깔이라고 하나요? 게임의 겉모습이 대체적으로 비슷하게 되는 성향도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성능의 문제도 있었고 킹덤 언더 파이어만의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엔진을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 ▲ 페임테크 2 엔진 화면 ]




게임 개발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구현하기 위해서 엔진을 개발했다고 하지만, 게임 개발자와 엔진 개발자의 입장은 약간 다르지 않을까? 앙헬 쿠냐도 부장은 상용화된 엔진 역시 비슷한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부에서 개발된 엔진은 범용적인 기능이 뛰어나지만 기반이 되는 장르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이런 상용화 엔진을 가져오면 결국 우리가 원하는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서 세부적으로 고쳐야할 부분이 많은데, 이런 노력을 들여도 결과물까지 최적화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하지만 처음부터 엔진의 설계를 원하는 방향으로 한다면 처음에는 시간적인 노력이 들어갈지 몰라도 세부적인 표현력을 맞추거나 대처가 훨씬 쉽다는 장점이 있어요. A- 급의 게임을 목표로 했다면 그냥 엔진을 구매해서 수정하는 것이 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최적화에 품질까지 원한다면 결국 자체적으로 엔진을 개발하는 것이 장점이 많습니다."




[ ▲ 자체 엔진 개발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라고.... ]



개발자들의 요구를 수용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엔진을 개발하다보면 게임을 개발하는 내부 인력들과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도 충분히 필요할 것 같은데... 혹시라도 개발자들끼리 의견이 충돌하거나, 반대로 엔진 개발에 도움이 되는 일은 없을까?


"엔진 개발자들은, 물론 게임의 구현이 최우선이지만 좀 더 다양한 부분을 생각하게 됩니다. 엔진을 완성한 뒤 여러가지 프로젝트에 사용할 수 있는 부분까지 염두에 두니까요. 그런데 게임 개발의 경우에는 해당 게임이나 시스템에만 적용되는, 좀 더 세부적인 부분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테면 엔진 개발자는 좀 더 범용적인 기능을 생각해서 엔진을 개발하고, 게임 개발자는 원하는 부분만 딱 구현되는 최적화를 바라는 거죠. 그래서 게임 개발팀에서 A 라는 기능을 원하면 엔진 개발팀에서는 이런 기능을 좀 더 일반적인 기능의 형태로 제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중에 이런 준비가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고, 서로 피드백을 주고 받으며 점차 업그레이드 되고 있습니다."




게임은 출시가 끝이지만 엔진은 게임 개발을 위한 기능 구현이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엔진은 완성품이면서 도구의 성격이 강한데, 실무자의 입장에서 엔진과 게임을 개발할때 업무나 목표에서 어떤 차이가 있을까?


"어떻게 보면 도구를 만든다는 점에서 이미 결론이 났네요. 게임 개발과 달리 저희는 유저를 포커스로 맞추는 것이 아닙니다. 게임 개발자의 생산성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적인 목표거든요. 엔진 개발자는 게임 개발자보다 좀 더 근본적인 단계의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같은 기능을 구현해도 CPU나 그래픽 카드 사용량과 같이 좀 더 원천적인 문제를 고민하거든요. 하지만 서로 킹덤 언더 파이어2를 만들어간다는 공동의 목표가 있죠."



[ ▲ 대규모 전장에 대한 표현력은 최고라고 할 수 있다. ]




프로젝트 매니저이자 엔진 개발팀의 개발 방향과 공정 인력관리등 다양한 업무를 맡고 있다는 김성균PM은개발팀의 인력이 부족하면 자신이 직접 뛰어들어 개발을 맡기도 한단다. 페임테크 엔진의 경우, 킹덤언더파이어 2로 넘어오면서 2로 바뀌게 되었는데 어떤 점이 업그레이드 되었을까?

"페임테크의 경우 KUF의 첫 3D 버전인 '킹덤언더파이어:크루세이더' 부터 시작해서 '서클 오브 둠'까지 사용되었어요. 당시 기종인 Xbox에 맞춰서 개발을 하게 된 엔진이죠. 물론 페임테크 엔진 역시 꾸준히 개선되어 왔지만, 이후 새로운 기종에 적응하기 위해서 완전히 처음부터 엔진을 새롭게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페임테크 엔진에서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기능적인 개선은 물론 멀티 플랫폼을 좀 더 효율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바탕부터 재설계되었습니다. 결국 최신 게임 개발에 사용되는 다양한 기술을 적용시키기도 매우 편하게 제작되었습니다"



언리얼 엔진이 인피니티 블레이드를 성공시킨 이후 많은 상용화 엔진들이 스마트폰 시장에 눈을 돌리고 있는데 페임테크 엔진도 그렇게 발전될 수 있을까? 회사 차원의 답변이라면 아직 시기상조. 그러나 엔진 개발자의 입장에서는 긍정적이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엔진은 게임에 쓰이지 않는다면 테스트 자체가 될 수 없어요. 개발자의 입장에서 모바일쪽 역시 지원을 하고 싶지만 충분한 연구와 테스트가 필요합니다. 현재 전념하고 있는 킹덤 언더 파이어 2의 개발이 마무리되고 엔진까지 안정적으로 구현된 후라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현재는 킹덤 언더 파이어 2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사실 엔진이라는 것은 결과물이 나오기 전까지 성능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궁금증만 계속 커져 뭔가 눈에 보이는 단서가 필요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을 무렵, 인터뷰를 받아 적느라 정신없는 기자의 맥북을 보더니 맥북 에어에서도 충분히 킹덤 언더 파이어2가 돌아간다는 개발팀의 제보.

물론 맥북이 좋은 축에 속하는 성능을 갖고 있긴 하지만 최신 게임을 플레이하기에는 다소 부족하지 않을까? 개발팀에서는 최적화 및 성능 테스트를 위해 직접 설치해놓은 맥북을 가져와 킹덤 언더 파이어 2를 실행시켰다. 그냥 실행만 가능한 수준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놀랍게도 전혀 무리없이 킹덤 언더 파이어 2를 플레이할 수 있었다.



[ ▲ 높은 사양이 아닌 맥북 에어에서도 원활하게 돌아가는 KUF2 ]



"페임테크2 엔진의 장점은 대규모 전장의 구현뿐만 아니라 가볍다는 겁니다. 수치로 엔진의 성능을 비교할 만한 바로미터는 없지만, 현존하는 상용엔진 중에서 수천의 NPC가 기존 품질 그대로 등장하는 엔진은 페임테크가 유일하죠. 결국 현존하는 하드웨어에서 어떻게 성능이나 비주얼을 이끌어내느냐는 것이 관건인데, 지금 유명한 게임 엔진들은 대부분 FPS에 맞춰져 있습니다.

페임테크 2는 한국 시장에 맞춰 개발을 했기 때문에 MMO가 기반이면서 상당히 가볍죠. FPS의 경우 많아봐야 몇십개의 NPC가 최고의 퀄리티로 등장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페임테크 2는 MMO에 적합하게 수천 이상의 NPC를 구현하는데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페임테크2 엔진은 MMO에 특화된 엔진으로 개발하고 싶습니다. 물론 해외의 엔진들도 성능이 뛰어나지만, FPS에 좀 더 적합한 경우가 많거든요. 국내에서도 MMO를 만들때 해당 엔진을 고쳐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페임테크2 엔진의 기능이 모두 완성되면 MMO에 최적화된 모든 시스템을 갖춘 엔진이 될것입니다.

규모가 큰 회사라면 좋은 외부 엔진을 고쳐서 사용할 수 있겠지만 중소규모의 개발사는 그런식으로 사용하기 어려운데 페임테크 2는 엔진 그대로도 수월하게 MMO를 제작할 수 있도록 완성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지난 2008년 당시, 블루사이드는 페임테크 엔진을 장차 언리얼과 같이 상용화 엔진으로 만들어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힌적이 있었으며 당시 기대작이었던 카르마 2에 페임테크가 실제 적용되기도 하였다.

"카르마 2에 적용된 엔진은 페임테크 1이었고, 현재는 킹덤 언더 파이어2에 맞춰 페임테크 2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멋진 엔진을 개발했다고 해도 성능을 검증받는 기간이 필요합니다. 만약 상용화에 뛰어든다면 충분히 시장의 검증을 받은 이후가 될 것입니다.

물론 당시의 발표처럼 내부적으로는 상용화 엔진을 위한 준비도 하고 있습니다. 다만 현재는 페임테크2 엔진의 성능을 확실히 보여줄 수 있는 킹덤언더파이어 2의 개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사업적인 이야기는 그 이후가 될 것 같습니다."



지난 GDC 2011에서 에픽 게임즈에서 발표한 '사마리아 인' 데모가 굉장한 이슈가 되었다. 엔진의 그래픽 성능을 유감없이 보여주며 많은 화제를 일으켰는데, 페임테크 2만의 특징을 알려줄 영상을 낼 계획은 없을까? '킹덤 언더 파이어2에 어울리는 준비를 하고 있으니 기대해도 좋다.'라는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다.


한국에서도 언리얼이나 게임브리오 못지않은 세계적인 게임 엔진이 탄생한다면 그 역시 게임 산업에 기념비적인 일이 되지 않을까? 페임테크 2 엔진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 킹덤 언더 파이어 2는 최근 2차 CBT를 성황리에 마쳤다.


국내를 대표하는 온라인 게임은 많지만 국내를 대표할만한 엔진은 없다. 기초 학문이 튼튼할수록 산업의 잠재력이 커진다는 것은 불문가지. 게임 못지않게 미들웨어도 중요하고, 게임 개발의 핵심 분야 중 하나인 엔진 역시 충분히 매력적인 파트. 페임테크 2 엔진에 대한 짧은 평가를 마지막으로 블루사이드의 엔진 개발을 담당하는 핵심 개발자 세명과 작별을 고했다.


(데이빗 쥬즈버리) 킹덤 언더 파이어2, 게임이 보여주는 느낌 그대로의 엔진이다.
(김성균PM)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대규모지만 가볍다.
(앙헬 쿠냐도) 최고의 MMO RTS 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