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색하면? R2의 유저라면 성향치가 마이너스가 되면서
점점 붉어지는 아이디의 카오 유저가 떠오를 것이다.


R2 가 클로즈베타 테스트를 시작한지 1주일도 지나지 않아
아이디가 붉은 카오 유저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조직적이고 전문적으로 PK(Player Killer)단을 구성해
사람들이 많은 어두운 동굴이나 머맨 서식지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사냥하는 유저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여 공개창에 이들을 주의하라는 메시지도 심심찮게 올라오기도 했다.


실제로 카오 유저에게 공격을 당하여 어렵게 모은 장비를 잃고 게임을 접는 유저도 생기는 등
아직 카오 플레이어에 대한 게임 내 제재조치가 뚜렷하지 않은 부분은 문제로 지적되기도 한다.


성과 스팟을 놓고 서로 분쟁을 벌이고, 이러한 분쟁과정에서 상호간 PK 나 PvP 가 이루어지고,
이런 PK 나 PvP 에서의 자유도를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부여하겠다는 것이 R2 가 가진 컨셉인만큼
이번 1차 테스트 뿐만 아니라 향후 테스트 및 오픈에서도 PK 는 지속적으로 거론될 가능성이 높다.




[ 공개창에 심심찮게 올라오는 PK단 모집글 ]




니모도 사냥을 하다가 카오 유저를 만난 적이 있다.


보통은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 지나가는 니모의 뒤통수에 큼지막한 롱소드를 찔러 넣는 부류지만
(이럴 때는 아깝게 물약을 빨며 버티느니 그냥 귀환을 하는 것이 이득이다.)


몇 몇은 재미난 추억을 남겨주기도 했는데
그 중 한 분(감히 '분'이라는 호칭을 쓰기로 한다)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다음과 같다.



얼마 전 패치가 있기 전만해도
머맨 서식지 북쪽은 그램린, 고블린들이 무리지어 있고
동족인식을 하는 코볼트들도 3마리 이상은 나오지 않아
레인저의 경우는 자리만 이동하면서 무한으로 사냥이 가능하여
니모는 20레벨 중반부터 거기서 레벨업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전체 채팅창에 올라온 글 하나.


“지금부터 뒤치기를 들어갈 테니 저렙 분들은 그냥 고이 누워 주세요.”
라는 내용의 공개적으로 당당하게 PK를 선언하는 글이 계속 올라오는 것이었다.


이렇게 뒤치기를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로 보이기도 하지만
또 약간은 작전상의 미스가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
왜냐하면 자신의 아이디를 가릴 수 없는 바에야 이 사람이 근처에 오는 것을 보면
그 누구라도 경계하고 자리를 피하거나 싸울 준비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 당시만 해도 니모가 레벨업을 하던 사냥터는 그리 많은 유저가 찾아오지 않는 외진 곳이라
채팅창의 이런 선전포고문에도 동요하지 않고 꿋꿋이 사냥을 계속하...허걱!


바로 앞에 그가 있는 것이다!


방금 전까지 공개창에 PK를 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포한 그가
니모가 3번이라고 이름붙인 몬스터 무리를 등지고 (모두 5번까지 있다-_-)
칼을 땅에 짚고 보무도 당당히 서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전체채팅으로 외쳤다.


“뒤치기를 할 테니 레벨이 낮은 분은 그냥 고이 눕도록 하세요.”


말투는 정중했지만 그 뜻은 무시무시했다.
자신의 장비와 아이템에 대해 자신감이 없다면 이런 선전포고를 하기 힘들 텐데
바로 그런 사람을 눈앞에 두고 있는 니모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인적이 드문 곳에서 서로의 존재를 눈치 챈 둘은 가만히 서서 서로 상대방의 눈을 응시하였다.


칠까? 말까? 도망갈까?


3초간의 정적이 지나고 니모는 죽을 때 죽더라도 사냥은 하고 죽자고 결정했다.
(이 때만해도 한 푼이라도 아껴보려고 귀환 물약을 안사가지고 다녔다.)


그래서 옆에 있는 4번 무리의 코볼트에게 화살을 한 대 날리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그가 결국 말을 걸어왔다.


“저기요. 제가 님을 좀 공격해도 될까요?”


잉? 이게 무슨 소리지 ?


아무 말 없이 뒤로 다가와 칼을 휘두르는 게 빨간 아이디의 행동 패턴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그는 그저 PVP를 해보고 싶었던 평범한 유저였단 말인가.
전체 채팅창에서 당당히 말하던 그의 선전포고는 그럼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이 질문이 진지한 것이라면 니모에게는 행운인 셈.
만약 거짓이라도 달라질 것은 없다는 판단을 하고 똑같이 정중하게 대답해 주었다.


“제가 지금 사냥 중입니다. 당분간 사냥을 좀 했으면 합니다.”


그는 말이 통하는(?) 친구(!)였다.


“예 알겠습니다.” 하며 깨끗이 포기하고 북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게 아닌가.




[ 그를 만났던 4번(-_-) 사냥터 ]




장자에는 대도大盜로 불린 도척이라는 인물에 대한 일화가 있어
그는 도둑이 가져야 할 성용의지인(聖勇義知仁)의 도에 대해 설파한 적이 있는데


PK를 통해 아이템을 얻는데도 어찌 다섯 가지 도가 없을 수 있으랴.


목표로 삼은 상대가 얼마나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지
겉모습만 보고도 인벤토리까지 꿰뚫어 볼 수 있는 성(聖),

뒤에서 몰래 접근하지 않고 당당히 앞에서 공격을 하는 용(勇),

위험한 상황일 때 동료들을 먼저 귀환시키고 끝까지 남는 의(義)

PK가 성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미리 판단할 수 있는 지(知),

상대방이 게임을 접을 정도로 중요한 아이템은 돌려주는 인(仁),


이것을 PK단이 가져야할 다섯 가지 도(道)라고 할 때



기습을 통해 상대방을 눕히고 아이템을 얻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일반적인 카오 유저와는 다르게 정정당당히 대결을 신청하고
미련 없이 떠난 그의 뒷모습에서 PK의 大道를 느꼈다면 과장일까.


1차 클로즈베타임에도 대책 마련에 대한 의견이 오가고 있는 카오 시스템.


유저들의 이야기처럼 시스템 상으로 카오 유저에 대한 페널티가 어느 정도 있어야 하기는 하다.
하지만 게임 내 제약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유저들이 스스로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부분도 존재한다는 것.


이는 비단 카오 유저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PK단들로부터 공격을 받는 일반 유저들도 PK문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게임 내 질서를 자리잡게 하는 것은 게임 시스템만으로는 힘들고
유저들 스스로 형성한 도덕률이 크게 작용을 하는 까닭은,

게임은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이 사회의 축소판이자 또 다른 모형인 때문이다.


이제 1차 클로즈베타가 마무리되는 R2.
앞으로 R2의 기사들은 어떤 가치관과 어떤 도덕률을 스스로 정립해 나갈 것인가.


Inven Niimo (Niimo@inv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