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놀랐다. MBC 뉴스데스크에 R2 가 나올 줄은... 소개하는 앵커의 멘트를 들을 때까지도 상상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2006년 대규모 해킹 사건으로 뉴스투데이에서 주연을 맡은 적 있는 R2는 이로써 MBC 뉴스 2회 출연을 기록하게 되었다. 두 번 다 주연급이다.


먼저 방송 내용을 살펴보면, 5월 9일 MBC 뉴스데스크 기획 특집 보도 내용은 다음과 같은 앵커의 멘트로 시작한다.


'가정을 파괴하는 게임 중독에 관한 연속 기획 2번째, 어른들 실태를 보겠습니다. 밤 새워 게임에 빠져 큰 돈을 날리고 집과 직장을 모두 잃은 어른들을 조윤정 기자가 만났습니다.'



[ 돈 잃고 가정파탄? 대체 뭘 했길래 ]


그리고 화면에 등장한 것이 R2의 게임 화면이었다.


방송에서는 R2 를 '자신의 캐릭터를 키우면서 전쟁을 하는 온라인 게임'이라고 소개하면서 R2에 빠져 직장을 그만두고, 건강도 해친 박모씨의 사례, 아내가 마우스 줄을 가위로 끊어버린 강모씨의 사례를 인터뷰했다. '게임에 빠질 경우 가정생활이 제대로 될 리 없다'고 말한다.


역시나 아이템 현금거래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관련해서는 1년 반 동안 아이템을 사는데 1억 5천만 원을 쓴 R2 유저 이모씨의 사례가 나왔다. 게임 아이템 거래 사이트가 130여 개로 거래 규모가 연간 1조 원에 이르며 아이템 하나가 1900만 원에 거래되기도 했다는 말도 덧붙여졌다.







화제는 인챈트로 이어진다. 방송에서는 인챈트를 '돈을 주고 비싼 아이템을 사는 대신, 상대적으로 싼 아이템을 걸고 당첨을 노리는 것'이라고 소개하면서 '성공할 확률이 매우 낮은데도 계속 하는 바람에 큰 돈을 날린다'고 문제점을 지적한다. 아이템을 사는데 1억 5천만 원을 썼다는 이모씨는 인챈트로 '하루에 천만 원까지도 잃어본 적이 있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신경정신과 병원장의 분석이 이어진다. '아이템이 실제 경제적 가치 있는 돈이 걸린 문제가 되면서 도박과 비슷해져.'







논리의 흐름을 따라가보자면, ▲ 아이템 현금거래가 되고 ▲ 인챈트라는 시스템이 이와 결부되면서 ▲ 도박에 빠지듯 게이머들은 중독에 빠지게 되고 ▲ 결국 가정 생활이 엉망이 된다는 것이다.


방송을 보고나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R2 라는 게임은 마치 도박을 하는 것과 같은 인챈트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서, 게다가 아이템 하나가 1900만원에 거래되는 엄청난 사행성을 보여주며, 그래서 R2 를 하면 도박 중독에 빠지듯 헤어날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야 마는, 그래서 가정 생활이 파탄나고 이혼까지 하게 하는 그런 물건이라는 것일까.


물론 R2 라는 게임이 어떤 중독성을 가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리고 R2 의 아이템 현금거래가 활발한 편이기도 하다. 인챈트라는 시스템이 운에 의해 득실이 결정되는 행운놀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R2 를 즐기는 수많은 게이머들이 중독성에 빠져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게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일상생활을 무너뜨리면서 게임을 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R2 유저들은 여가시간을 즐기기 위한 여러가지 엔터테인먼트 중 R2 라는 게임을 선택했고, 어느 정도 가벼운 수준의 현금 거래를 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돈벌이가 목적이 아니라 결국 게임을 더욱 즐겁게 하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이같은 건전한 게이머들이 이번 방송으로 얻게 된 것은, 뉴스데스크를 본 가족들이 '중독성이 있어서 가정을 파탄내는 게임을 하고 있나요'하고 보내는 따가운 시선이 아닐까.


물론 보도에 언급된 사례들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특수한 사례다. 현금거래를 전혀 하지 않고 인챈트도 전혀 하지 않은 유저가 아무런 문제 없이 게임을 즐기는 사례가 차라리 더 많을 것이다. 이런 사실을 굳이 외면하면서 특수한 사례와 제보에 근거하여 마치 게임이 마약이나 도박이나 되는양 보도하는 것은 형평성과도 공정성과도 맞지 않는다.


이를테면 술도 중독성이 있다. 음주운전은 늘 사회적 문제가 되고, 알코올 중독은 가정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술 자체를 문제삼지는 않는다. 알코올 중독에 대해서는 생물학적으로 (알코올 중독을 유발하는 인자가 있다), 심리학적으로 (스트레스에 잘 대처하지 못하는 성격), 사회학적으로 (이혼, 별거 등 사회문화적 요인에 의해), 정신역동학적으로 (방어기제·적응기제·내적 통제가 부족한 심리적 배경) 와 같은 원인의 분석이 이루어지고 알코올 중독자에 대해서는 '치료'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게임 중독도 마찬가지다. 정확히 말하자면 방송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이 정신과 병원장의 인터뷰인 것처럼, 설령 게임 때문에 가정이 파탄나고 돈을 모두 잃어버린 사람들이 있더라도 그에 대해서는 정신심리학적으로 접근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그것을 R2 게임의 문제로, MMORPG 장르의 문제로, 게임의 문제로, 현금거래의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물론 주류로 일컬어지는 기존 언론들이 게임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을 하루 이틀 겪은 바는 아니다.


가정의 달인데 가정을 엉망으로 만들면 안 되지 않나. 게임이 가정을 엉망으로 만들다니! 이런 건 기획 특집으로 다뤄서 9시 뉴스로 때려줘야 마땅했을 것이다. 그러나 게임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영향에 대한 보도는 철저히 외면하는 이들의 관행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금할 길 없다.





지난 5월 15일. 문화체육관광부 유인촌 장관은 엔씨소프트 본사를 찾아와 게임계 CEO 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영화, 음악, 연극, TV, 드라마와 같은 여러가지 문화컨텐츠들 중 유인촌 장관이 가장 먼저 게임사를 찾은 것은 올해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게임 수출 규모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적게는 십만불에서 많게는 천만불 단위로 수출이 이뤄지는 게임의 수출실적에 대해서는 9시 뉴스가 다루지 않는다. 디워 한 편이 벌어들일 외화가 자동차 몇 대를 판 금액과 맞먹는다는 이야기는 나와도 말이다.


리니지의 혈맹 전투를 '심야의 난투극'으로 묘사한 때부터 줄기차게 주류 언론들은 온라인 게임 때려잡기에 팔을 걷어부치고, 잊을만하면 게임의 부작용을 선전하기에 앞장서왔다. 최근까지도 서든 어택과 같은 FPS를 '사람의 머리에 총을 쏴서 죽이는 게임'이라고 설명하는 등 게임에 대한 그들의 몰이해와 편향된 시각은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건전한 여가 생활을 즐기는 대다수의 게이머들이 마치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사회적 인식은 개선될 줄을 모르고 있다.


우습고도 씁쓸한 현실이 아닌가. 'R2 유저는 집도 있고 직장도 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말이다.


☞ 5월 9일 해당 뉴스데스크 방송 보러가기


ps. 그런데 MBC는 하고 많은 게임 중에 NHN의 R2 를 유독, R2 유저의 사례를 유독 집중해 보도했을까. 물론 와우나 리니지2의 게임화면도 한 두 번 나오긴 했지만...


Inven Niimo
(Niimo@inv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