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9일 부산에서 재미있는 강연을 들었다. 게임의 접근성(Accessibility)에 관한 내용이었다. 접근성이란 단어를 얼핏 본다면 게임에 얼마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가격, 플랫폼, 배포 방식, 심의나 규제에 관한 것들은 아니다. 이것은 장애인의 게임 접근에 관한 이야기이고, 접근성은 본인의 능력과 무관하게 누구나 접근해서 게임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왜 장애인의 게임 접근성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 그것이 정의롭고 정치적으로 올바르기 때문일까. 에이블게이머즈 채리티의 마크 발렛은 굉장히 실리적인 이유를 들었다. 장애는 인구의 20%가 일생에서 영구적이든, 일시적이든 얻게 되며, 그들이 게임에 소비할 수 있는 가처분소득이 상상 이상으로 거대하기 때문이라고 얘기했다. 한국에서만 가정에 게임용 기기(콘솔, PC 등)을 보유한 장애인 수만 6백만 명이고, 미국에서 게임에 지출할 수 있는 장애인들의 가처분 소득이 210억 달러이며, 이것은 한국 전체의 게임 시장의 규모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을 덧붙였다. 접근성을 정치적 올바름으로 접근하지 말고, 덜 개척된 거대한 시장으로 접근하게 하는 것이 게임사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접근성 옵션은 색약에 관한 것과 자막이다. 200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색각 이상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게임 접근성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색약은 가장 흔한 장애 중 하나다. 색약은 남성 12명 중 한 명이 겪는 장애이며, 특히, 백인 커뮤니티에서는 남성 7명 중 한 명은 색약 장애를 가지고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2012년, 그들이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기 전부터 색약 모드를 개발했고, 2012년 1월에 색약 모드 옵션을 게임에 추가했다. 현재 메이저한 e스포츠 경쟁 게임들은 색약 모드, 자막, 자막 크기와 같은 필수적인 접근성 옵션이 존재한다.


치열한 경쟁 게임에 접근성 옵션은 굉장히 민감하다. 접근성 옵션은 장애인뿐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접근성 옵션이 게임에 접근하는 것 이상으로 작용할 경우 공정한 경쟁이라는 원칙이 깨져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인크래프트에 있는 것 처럼 게임에 발생하는 모든 소리를 자막으로 화면에 출력할 경우, FPS 게임에서 중요하게 생각되는 사운드 플레이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지금 색약 옵션도 게임에 따라 색각 이상이 없는 사람도 시인성을 위해 켜놓기도 한다. 그래서 현재 메이저한 온라인 경쟁 게임들은 접근성과 공정함의 사이에서 계속 저울질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에는 키 바인딩, 색약 모드, 자막, 자막 크기와 같은 최소한의 범위에 한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시청자의 접근성은 확장해야 할 필요가 있다. e스포츠를 시청, 청취하는 장애인들을 위한 접근성은 현재 많이 부족하다. 색각 이상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다른 채널이 없고, 해설자들의 말이 자막으로 나오지 않는다. 2017년에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4강전에서 '롤드컵 속기사'라고 불리는 김태웅씨가 자신의 재능을 기부해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문자 통역 중계를 진행해 좋은 반응을 얻어냈지만, 개인의 선행이었을 뿐, 이것을 계기로 시스템이 구성되진 못했다. 지금부터 개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 아무런 문제 없이 e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장애를 얻게 될 수 있다. 반드시 잘 안 보이게 되고, 잘 들리지 않게 될 것이다. 그들은 e스포츠에 충분히 소비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소비하고 싶어도 보이지 않는 것에, 들리지 않는 것에, 내가 접근할 수 없는 것에 돈을 쓸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