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땅:듀랑고를 개발하고 있는 왓스튜디오 이정수 기획자]

'야생의 땅:듀랑고'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 이정수 기획자는 입사 11개월 된 새내기였다. 당시 이은석 디렉터는 이정수 기획자에게 “우리 게임은 뭐든 할 수 있어. 우리 게임은 가죽 장화도 끓여 먹을 수 있는 게임이야”라고 말했다. 이정수 기획자가 놀라서 “정말이요?”라고 다시 물었을 때 이은석 디렉터는 웃으며 “그걸 이제부터 너가 만들면 돼”라고 말했다.

이정수 기획자의 “가죽장화를 먹게 해주세요”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정수 기획자가 맡은 프로젝트K(듀랑고)는 높은 자유도를 표방하는 개척형 MMORPG다. 아이템 디자인에서도 획일화되고 고정된 탬플릿을 사용하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유저들이 각 재료의 특성을 활용해 아이템을 제작하고 창발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기반을 제공해 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과정에 따라 전혀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 이정수 기획자는 평소 자신이 즐겨했던 ‘롤러코스터 타이쿤’을 예를 들어 설명했다. 롤러코스터 타이쿤의 룰은 간단하다. 놀이기구를 만들고 관람객을 모아 돈을 번다. 하지만, 플레이의 성향에 따라 완전히 다른 놀이동산이 만들어진다. 주어진 재료도 같고 시스템도 같지만 결과물은 완전히 다른 게임. 그것이 바로 이정수 기획자가 생각하는 최고이 게임이었다.

핵심은 "자유도와 창발성이 게임을 더욱 풍부하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야생의 땅:듀랑고'에서는 시스템 디자인을 ‘한가지 아이템을 여러가지 용도로 사용하게 할 것", 그리고 "조합 등으로 아이템이 변화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구현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이정수 기획자가 가죽장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아이템은 1.0~3.0까지 3단계에 거쳐 변했다.

[▲듀랑고의 아이템 모델, 처음엔 이러했다]


1. 아이템 1.0, “가죽장화를 먹어보자"

기본은 레시피로 아이템을 제작하는 것이었다. 가죽이 있고 레시피가 있다면 ‘가죽장화’를 만들 수 있었다. 각 재료는 태그를 달아 속성을 알 수 있게 했다. 가죽장화는 가죽으로 만드는 것이었고 가죽은 먹을 수 있는 태그가 달려 있었다. 덕분에 가죽 장화를 먹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때는 재료마다 특성이 있어 아이템의 자유도가 어느정도 확보되었다. 아쉬움 점은 프로토타입 버전이다보니 레시피 자체가 이른바 ‘생코드’였다는 점이다. 손으로 직접 쓰다보니 실수가 잦았다. 잘못된 데이터를 그대로 올려서 시스템이 죽기도 했다.

또한, 제작 아이템의 성격상 거의 무한 제작이 가능할 수도 있었는데 그 때문에 수치 모델이 검증해줄 틀이 없어 발산하는 일이 많이 생겼다. 발산을 룰로 제어할 수도 있었지만 처음에는 전체 시스템단의 문제로 치부해버렸다. 그리고 아이템 2.0으로 넘어왔다.


2. 아이템 2.0 “장화를 분해해서 가죽만 먹게 하자"

의도 자체는 단순했다. 좀더 기획자가 제어권을 가질 수 있게 하자. 데이터 밸리데이션을 강화하자. 좀더 태그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해보자였다. 당시 이은석 디렉터는 “아이템 1.0때를 보니 아무래도 가죽 장화를 먹는 것은 이상한 것 같다”며 “가죽장화를 먹을 수는 있는데 유저한테 권하지는 말자”고 웃으며 설명했다.

그래서 시도한 것이 특성과 속성을 그룹화해서 관리하게 만들었다. 분해 개념도 넣었다. 가죽장화를 해체하면 버클도 있고 밑창도 있는데 이걸 한꺼번에 먹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빌드나 반응은 괜찮았다. 아이템 1.0에서 문제가 되었던 잘못된 데이터로 시스템이 죽던 문제도 해결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이터는 어려웠고 언어를 바꾸면서 데이터 구조 및 변수 사용이 복잡해졌다. 랜덤 상수를 쓰면서 에러를 확률적으로 못잡기 시작했다.

3. 아이템 3.0 “장화를 분해해서 가죽만 끓여 먹자"

아이템 3.0은 아이템간의 관계성만 보장하고 나머지는 풀었다. 아이템 2.0에서 가죽장화를 분해해서 먹을 수 있었지만 딱딱했다. 딱딱한 속성을 풀기 위해서는 끓은 물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렇게 가죽장화를 분해해서 먹는 것은 복잡했고 시간이 많이 걸렸다. 결과적으로 먹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게 재밌는지도 중요했다. 아이템 3.0 역시 최종적으로 완성된 빌드는 아니었다.

[▲가죽장화는 결국 이렇게 되었다]


과연 듀랑고에서는 '가죽 장화를 먹게 될까?' 그의 프로젝트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정수 기획자의 이날 강연은 재미있는 주제 때문인지 청중들이 폭발적으로 몰려들어 화제를 모았다. 듀랑고 프로젝트의 첫 강연이라 관심이 높기도 했지만 자신의 경험담을 설명하는 자리여서 그런지 학생들은 물론 많은 현업 개발자가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듀랑고 프로토타입 버전인 Z5]


[▲아이템 1.0~3.0 요약 정리]


[▲듀랑고의 아이템 기획 컨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