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건희 한국보드게임 개발자모임(KBDA) 대표


KGC2014 2일차, 한국보드게임 개발자모임 김건희 대표가 '보드게임 디자인'을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우리나라 보드게임은 조용히 성장하고 있다. "아무도 모르지만요" 라며 김건희 대표는 웃었다. 외국에서도 관심을 많이 갖기 시작했다고. 김건희 대표는 '고려'라는 게임을 만든 뒤 프랑스에서 히트를 쳤고, 그 뒤로 보드게임 개발에만 집중했다고 밝혔다.

보드게임을 비즈니스는 책과 비슷하다. 개발자와 출판사(퍼블리셔)가 따로 있다. 외국에서는 개발자를 보드게임 디자이너라고 한다. 이번 강연은 개발자가 하는 일에 초점을 맞췄다.

▲ '플럭스'라는 미국 게임은 플레이할 때마다 게임 룰이 바뀐다


강연에서는 보드게임을 개발하려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을 꼽았다. 첫 번째 질문은 처음 개발을 시작할 때 테마가 먼저 떠오르는지, 시스템을 먼저 만드는지였다.

둘 다 맞다. 테마로부터일 때도 있고, 매커니즘에서 떠오를 때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테마가 떠오른다고 바로 게임이 되진 않는다. 하지만 매커니즘만 떠오르면 그것은 바로 게임이 될 수 있다는 것. 개발자는 그 매커니즘, 시스템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테마를 담당해야 하는 쪽은 퍼블리셔다.

고려를 처음 개발했을 때 제안한 이름은 '포켓 킹덤'이었다고 한다. 프랑스에 출시할 때 한국적인 이름 몇 가지를 후보에 올렸고, '고려'가 그 중 하나였다. 그런데 테마는 스팀펑크였다. 왜일까. "당시 프랑스에서 핫한 테마"였기 때문이다. 그런 테마를 퍼블리셔가 짜게 된다.

"개발자 역시 테마가 있으면 좋아요. 하지만 그 테마가 그대로 나오긴 힘들 겁니다."

▲ 하늘 아래 모든 매커니즘은 보드게임 DB에 정리되어 있다


두 번째 질문은 "아이디어는 바로 떠오르는지, 아니면 이런 게임을 만들어야겠다 하고 분석하는지" 였다.

이번에도 대답은 "둘 다 가능하다"였다. 하지만 어떻게 만들든간에, 하늘 아래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 것은 어렵다. 나올 수 있는 모든 매커니즘이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모두 분석하고 있으면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 "게임을 많이 하는 것이 게임 매커니즘을 익히는 가장 정확한 길"이라고 말했다.


"게임을 더 많이 하고,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고민하라"
- 매직 더 개더링 개발자, 리처드 가필드


"창의력도 요령인 것 같아요". 유명한 장면인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 최초 공개 프레젠테이션 영상이 나왔다. 아이팟, 전화, 인터넷. 이 세 가지는 새로운 게 전혀 없었다. 그런데 왜 창의적이었을까. 이걸 하나에 섞었기 때문이다. 남들과 다르게 카테고리를 묶어보는 데서 창의력이 나온다는 것이다.

▲ 재미를 느끼게 되는 4요소


사람들은 크게 네 가지 상황에서 재미를 느낀다고 한다. 머리를 쓸 때 좋아하고, 운에 맡기는 주사위를 통해 즐거워하고, 감정을 이입할 때, 그리고 롤러코스터 같은 혼돈의 상황에서도 재미를 느낀다. 보드게임은 보통 Agon + Alea다. 대부분 적절한 실력과 운이 조합된 게임이다.

하지만 다른 방면에서도 보드게임은 나오곤 했다. 마피아 게임의 원조인 타뷸라의 늑대는 역할놀이를 통해 감정을 이입하게 되고, 또 하나의 대표적 장르인 TRPG도 여기에 속한다. 혼돈을 이용한 게임도 있다. 젠가가 대표적이다. "할리갈리나 젠가 같은 게임이 간단해 보이지만, 이런 걸 만들기가 제일 어려운 거예요. 만드시면 부자가 될 수 있어요".

이런 게임이 대단한 이유는, 남들이 생각하는 재미 공식만 떠올린 게 아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남들과 다른 카테고리를 들여다보는 것이 창의성에 있어서 중요합니다"

▲ 보드게임 구성 4요소, 개발자의 담당 요소는 컴포넌트


보드게임을 구성하는 요소는 네 가지가 있다. 판(컴포넌트), 규칙(매커니즘), 세계관(테마), 디자인(아트워크). 규칙을 제외한 나머지는 퍼블리셔가 담당한다. 하지만 개발자 역시 나머지 카테고리를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창의성을 발견하는 요령을 가져야 한다고.

최근 해외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도미니언'은 한 개 박스 안에 돈도 들어 있고, 새로 사야 하는 카드도 있다. 가상의 화폐로 카드를 사서 내 덱을 만들어가는 게임이다. 매직 더 개더링이 보드게임 하나 속에서 구현되는 셈이다. 대박이 날 수 있는 아이디어였다.

스토리 자체가 게임이 된 경우도 있다. TRPG의 대부 던전앤드래곤(D&D), 카드를 이용해 플레이어가 이야기를 이어가는 '원스 어폰 어 타임'이 여기에 속한다. 아트워크를 이용해서 창의적인 게임을 만든 '딕싯'도 빠질 수 없다.

해외에는 물을 부어서 배가 떠내려가다 멈춘 곳에 이벤트가 일어나는 게임, 모래를 붓는 게임도 있다. 심지어 냉동을 시킨 다음 플레이하는 게임까지 있다. '멜트 다운'이라는 게임은 얼음이 녹기 전까지 북극곰을 구해야 하며, 환경에 관한 메시지도 던진다. 심지어 재미있단다.

"물론 이 게임은 단점도 있어요. 한판 더 하고 싶으면 다시 얼려야 합니다."

▲ 냉동실에 보관해야 하는 '멜트 다운'


글을 잘 쓰는 방법을 물어보면 흔히 나오는 대답은 "많이 써보고, 많이 읽어봐라"다. 보드게임도 같다고 한다. 많이 해보고, 만들어봐야 한다는 것. 매커니즘을 만드는 것은 규칙을 쓴다는 뜻이다.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테스트해보고, 재미없으면 다시 써보고. 이걸 반복하라고 김건희 대표는 조언했다. 앉아서 아이디어만 생각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일단 만들어보세요. 이게 규칙입니다."

▲ 과거와 현재의 게이머 분류


보드게임 성공을 위한 고려 요소에는 세 가지가 있다. 재미, 타겟, 매력.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보드게임은 '우노(UNO)'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재미있는 게임이다. "사실 저는 별로 좋아하는 게임이 아니에요. 단순해서요. 하지만 가장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게임이, 가장 재미있는 게임입니다." 재미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전에는 하드코어 게이머, 가끔 즐기는 게이머, 게임을 안 하는 사람으로 나뉘었다. 지금은 모두가 게임을 하는 세상이 됐다. 스마트폰 때문이다. 그래서 타겟 분류도 바뀐다. 소위 국민게임들을 즐기는 소셜 게이머, 가볍게 취미 삼아 즐기는 캐주얼 게이머, 그리고 맨 위에는 프로게이머가 생겼다.

그중 보드게임 퍼블리셔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캐주얼 게이머를 잡는 게임이다. 카탄과 할리갈리 사이, 그 '타겟'을 잡는 것이 인기를 끄는 지점이라고. 세 번째 지점은 '매력'이다. 이것은 테마를 통해 발현된다.

▲ 같은 룰에 매력 있는 테마로 바꾸어 대박이 난 게임 '알함브라'


스마트폰 시장이 발전하면서 모바일과 보드게임이 결합한 형태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김건희 대표는 모노폴리나 인생게임 등 기존 게임이 아이패드와 연동되면서 더 흥미로워지는 해외 사례를 보여주며 강연을 마쳤다.

▲ 이제는 보드게임을 타블릿PC로 컨트롤하는 시대


Q. 보드게임하다가 재미있어서 모바일 게임으로 만들 생각이 있으면, 저작권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나.

매커니즘은 보호가 안 된다. 그림만 다르게 내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다만 그렇게 내는 분들은 앞으로 비즈니스를 못 하겠지. 나쁜 짓은 하면 안 된다. 퍼블리셔와 연락해서 양해를 구하고 서로 홍보가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쪽이 좋다.


Q. 아이패드 말고 안드로이드 기종은 보드게임과의 접목이 없나?

보드게임은 iOS가 많은 편이다. 안드로이드도 적지만 나오고 있다. 화면 사이즈가 천차만별이라는 점이 걸림돌이다. 규격화된 사이즈가 중요한 듯하다.


Q. 프랑스 말고 보드게임이 활성화된 곳은?

유럽은 프랑스와 독일이 크고, 미국도 물론 크고, 일본은 생각보다 안 크다. 중국 역시 우리나라보다는 크지만 안 크다. 보드게임은 선진국 문화다. 시간과 돈이 있어야 즐길 수 있고, 자식이 부모와 함께 게임을 즐기며 자라야 성장한다.


Q. 퍼블리셔에게 내 매커니즘을 제안할 때는 기획서나 제안서를 메일로 보내면 되나?

거의 힘들다. 그런 부분에서 힘들면 연락을 주길 바란다. 직접 가서 보여주는 게 제일 좋다. 우리나라 회사들은 아직 시간 약속만 내면 만날 수 있다. 해외 퍼블리셔에 접촉하고 싶으면 독일 에센 보드게임 박람회에 찾아가서 이메일을 뿌리면 몇 군데는 만나줄 거다.


Q. 전통게임 중에도 보드게임이 많은데, 이런 걸 현대화하는 아이디어는 어떤가.

굉장히 좋은 방법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이제 막 시작하는 산업이라면. 물건을 집을 때 사람들은 친숙한 것을 고르기 마련이다. 최근 '모두의 마블' 오프라인 보드게임이 나오자 부루마블을 제치고 1위가 됐다. 세련된 뭔가로 바꿔서 낸다면 분명 시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