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민우 작가의 만화 '프리스트'를 게임으로 옮겨놓았던 조이시티의 '프리스트 온라인'이 생각난다. 썩 괜찮은 게임이었다. 하드코어 액션을 표방하며 2003년 1월에 오픈 베타 테스트를 시작했는데,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시체를 꿰매 만든 모습이고, 무기는 핏물 가득한 살덩어리에 갈비나 척추뼈를 마구 쑤셔넣어 만든 것들이라 취향 맞는 사람들만 하는 게임이었다.

결국 1년만에 문을 닫고, 좀 더 밝은 분위기로 리뉴얼해서 '러쉬 온라인'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선보였다. 그리고 또 망했다. 이번에는 매니아층도 모두 떠나버린 것. 이듬해였나, 중국에서 '천지유협'이라는 엉뚱한 이름으로 서비스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 지금은 서비스 종료된 프리스트 온라인


이후부터는 어떤 게임이 리뉴얼을 강행한다고 하면 '망했다'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게 됐다. 리뉴얼을 해야 할 정도로 갈피를 잡지 못하던 게임이라면 그 다음에도 길 잃을 가능성이 크니까. 그리고 애초에 게임의 바탕이 잘못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기자의 상식을 깨는 게임이 하나 등장했다. 다름 아닌 스퀘어에닉스의 파이널판타지14다. 최초 2010년에 선을 보인 파이널판타지14는 소위 말하는 '망작'이었다. 무엇 하나 당시 출시되던 게임과 견줄만한 것이 없었고, 서버 최적화마저 엉망이라 유저들이 플레이해주는 걸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수준이었다. 그러자 이듬해인 2011년 9월, 스퀘어에닉스는 파이널판타지14를 리뉴얼한다는 강수를 뒀다.

이를 악물고 리뉴얼에 매진한 결과, 2012년 겨울에 파이널판타지14: 어 렐름 리본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선보일 수 있었다. 알파 버전까지는 여전히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베타 버전부터는 게임 요소 전반이 비약적으로 개선되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이후 2013년 8월 27일에 정식 서비스를 시작. 예상을 깨고 동접자가 약 40만 명에 육박하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탄력을 받은 스퀘어에닉스는 약 한 달 주기로 크고 작은 업데이트를 하며 볼륨을 점점 키워갔다. 2년이 지난 지금은 해후편, 바하무트 침공편, 투신 오딘 토멸전, 바하무트 진성편 등,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의 콘텐츠들이 즐비한 상태다. 이런 구구절절한 사연을 지닌 파이널판타지14가 2015년 6월 11일을 기해 국내 첫 CBT를 시작한다고 했으니 어찌 기대를 안할 수가 있을까. 얼마나 잘 만들어진 게임인지 직접 확인해보기로 했다.







■ 순백의 게이머 "P"와 함께하는 파이널판타지14 CBT

기자는 어디까지나 직업 활동의 일환으로 게임을 하므로 온전한 '즐겜' 자세로 임하질 못한다. 특히나 리뷰를 쓸 예정인 게임을 플레이할 때는 더욱 그렇다. 게다가 이건 한 번 리뉴얼을 거쳐 나온 작품이 아닌가? 이미 선입견을 가지고 볼 수가 있어, 편협한 진단을 방지하고자 실제 지인인 20대 후반의 남성을 PC방 옆자리에 앉혀두고 파이널판타지14를 함께 플레이하도록 했다.

이 친구, 아니 편의상 P라고 해두자. P는 20대지만(물론 곧 앞자리가 바뀔 예정이긴 하다) 움직이는 것은 잘 인지하지 못하는 동체시력과 버퍼링 심한 손가락을 가지고 있는 게이머다. 게다가 '어그로'의 개념을 알지 못한다. 순백의 게이머라고나 할까,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 순백의 게이머 P씨가 CBT 리뷰의 좋은 자료가 됐다


런쳐를 실행시키고 게임에 접속하자 건너뛰기가 되지 않는 오프닝 영상이 재생됐다. 유저들에게 파이널판타지14의 스토리를 들려주는 내용이었는데, 강제로 봐도 따분하지 않을 정도로 영상의 퀄리티가 상당했다. 콘솔 게임 오프닝을 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특히 잠에서 깨어난 바하무트가 대지를 강타하는 장면에서 파이널판타지 시리즈의 내공이 묻어나는 영상 감각을 엿볼 수 있었다.


▲ 바하무트의 강력한 힘 앞에 무력해지는 용사들


한편 P는 "기가 막히네, 기가 막혀."를 연발 중이었다. 게임 내용이야 어찌됐든 오프닝 영상이 마음에 드니 게임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파이널판타지 시리즈를 단 한 편도 플레이해보지 않은 그가 "역시 파이널판타지!"라는 근본없는 멘트를 내뱉을 때는 소름이 돋았다.

다음으로는 캐릭터 생성과 서버 선택 화면. 탄생일과 별자리, 종족 등을 골라야 해서 일반적인 온라인 게임에 비하면 복잡한 편이었다. CBT 일정이 4일뿐인 데다가 첫날은 6시간 밖에 열려 있지 않는 관계로 서둘러 캐릭터 생성을 하고 서버에 접속을 시도했다. 그런데 벌써부터 서버 혼잡으로 대기열이 발생하고 있었다.


▲ 평일 오후 여섯 시인데도 대기열이 발생했다


대기열을 뚫고 접속했으므로 당연히 시작과 동시에 엄청난 랙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시작 지점인 모험가 길드 안에는 서버가 열리자마자 칼같이 접속한 유저들로 빽빽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랙은 전혀 없었다. 첫 번째 메인 퀘스트를 수락하고 광장으로 이동하는 중에도 인파를 헤쳐가야 했지만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

CBT 전날인 6월 10일, 파이널판타지14의 국내 서비스를 맡은 액토즈게임즈가 '레터라이브'를 통해 서버 안정성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밝힌 바가 있는데, 그 말이 실제로 검증되는 순간이었다.

서버가 공개형으로 전환되는 CBT 3일차에는 서버가 터질 경우 접속자 전원에게 외형 변경 아이템인 '환상약'을 지급하는 이벤트를 진행했으나, 서버가 너무 안정적인 탓에 결국 터지지 않았다. 물론 상품은 지급됐다.


▲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랙이 없으니 어색할 정도였다



■ 상세한 지도, 하지만 불편한 도시 구조

NPC들이 주는 퀘스트를 따라 열심히 도시 안을 뛰어다니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P가 도움을 요청해왔다. 퀘스트 목적지를 찾지 못하겠다는 것. 지도를 열어 살펴보니 기자가 있는 그리다니아와 다른 도시인 림사 로민사였다. 지도상으론 퀘스트 대상이 인접해 있다고 나오는데 실제 게임 화면에선 아무것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알고 보니 NPC는 한 층 아래, 그러니까 현재 캐릭터의 발밑에 있었다.

NPC가 아래층에 있다는 걸 알고 난 뒤에도 찾아가는 건 쉽지 않았다. 지도상으론 그저 평탄한 길인데 실제로 가보면 저만치 하늘 위에 떠 있는 다리거나 내리막, 혹은 오르막인 경우가 많았다. 도시 구조가 복잡하게 되어 있어, 지도만 보고 찾아가기는 쉽지 않은 것이 당연해 보였다. 일종의 초보자 마을인데 좀 더 간단한 구조로 설계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다니아만 해도 지도에 표시되는 퀘스트 마크만 잘 찾으면 이동 중에 길이 막히거나 지도를 다시 펴봐야 하는 번거로움은 없었다. 그러나 림사 로민사나 울다하같은 도시는 여러 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승강기를 타고 이동하는 경우도 있어서 NPC를 찾는 게 종종 고역이었다.


▲ 구조가 복잡해 길을 찾기 쉽지 않은 림사 로민사

▲ 이동이 번거로웠던 울다하


하지만 필드에서의 지도는 제 기능을 다하고 있었다. 에테라이트나 길드 의뢰, 초코보 관리인 등의 중요 요소들이 고유의 아이콘으로 큼지막하게 표시되어 있고, 퀘스트 종류가 많은 만큼 수행 지역을 색깔로 구분해둔 것이 편리했다. 물론 여기에서도 목적지의 고저 차이를 알 수가 없어, 지도상으론 퀘스트 마크가 바로 앞에 있는데 멀리 한 바퀴를 돌게 되는 일이 간혹 있었다.


▲ 많은 정보를 나름대로 잘 풀어주는 지도 시스템



■ 이게 전투야, 바둑이야?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 전투 시스템

세상에는 수많은 성향의 유저가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 것은 파이널판타지14에서 첫 전투를 치르게 되면서다. 기술 하나를 사용하면 나머지 기술들의 쿨타임도 함께 돌아가는 '글로벌 쿨타임'이 있어서 지금까지 해왔던 게임과 다르게 기술 난사가 불가능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쿨이 함께 돌아가는 기술끼리 연계 시스템도 갖춰져 있다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1번 기술을 사용하고 난 뒤, 2번 기술을 적중시키면 추가 피해를 입힐 수 있다. 그런데 1번 기술을 사용하면 글로벌 쿨타임이 적용되어 2번 기술을 2.5초 후에나 사용할 수 있게 된다. 2초 내외의 쿨타임이라면 짧은 게 아니냐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쿨타임이 도는 동안 몬스터가 기자의 명치에 긴 장대를 박아넣으려고 하는데 조급증이 안생길 수가 없었다.


▲ 두 개뿐인 기술의 쿨타임이 같이 돈다!!!!


이에 반해 P는 바둑 두듯이 한 수씩 주고 받는 느긋한 전투를 마음에 들어 했다. 커피를 마시며 사냥을 할 수 있어 좋았다고. 실제로 초반 구간의 전투는 한 손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했다. 약 2초에 한 번씩만 기술을 사용하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템포가 빠른 기존 RPG 게임의 전투에 익숙해져 있던 기자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투만 시작하면 갑자기 게임이 턴제로 바뀌는 느낌이어서 김이 샜다.

꽤 참신한 요소도 있었다. 저레벨 몬스터가 마치 레이드 보스처럼 장판이나 범위형 기술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부채꼴이나 원형, 혹은 직사각형으로 범위 표시가 되기까지 해서 나름대로 컨트롤을 하는 재미가 있었다. P는 RPG 게임 경험이 많지 않아 유난히 법석을 떨며 몬스터의 기술을 피했는데, 마치 혼자 25인 레이드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파이널판타지14를 제대로 즐기고 있는 것은 P일지도. 비록 길은 잘 못 찾지만 말이다.


▲ 몬스터마다 필살기 하나씩은 보유하고 있다

▲ 일반 몬스터 주제에 제법 위협적인 패턴을 가진 녀석


글로벌 쿨타임 덕에 사냥이 단조롭긴 했지만 캐릭터의 성장 속도는 매우 빨랐다. CBT에서 달성 가능한 최대 레벨인 20을 하루 정도면 찍을 수 있을 정도다. 메인 퀘스트나 길드 의뢰의 보상이 짭짤했던 이유도 있지만, 필드에 무작위로 생성되는 돌발 임무의 영향이 컸다.

돌발 임무는 수행 지역 내의 유저들과 자동적으로 공유되며, 각자 임무 완수에 기여한 만큼의 보상을 챙겨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때문에 근처에 돌발 임무가 생성되면 모두가 사냥을 멈추고 임무 지역으로 뛰어가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돌발 임무 중에는 도시와의 거래가 무산되어 화가 난 고블린들을 막는다는 내용도 있었는데, 정말로 고블린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와 당황스러웠다. 물론 그만큼이나 임무 수행 유저들도 많아 다행히 어렵지 않게 완수할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서 20레벨 이후 수행 가능한 개인용 초코보(탈것) 획득 퀘스트에 필요한 '군표'가 돌발 임무를 통해서만 획득이 가능한 관계로 임무 지역은 항상 인산인해를 이뤘다. 덕분에 우두머리 처치같이 혼자서는 수행이 어려운 임무가 걸린 경우에도 항상 돌발 임무 지역을 찾아다니는 20레벨의 유저가 있어 어렵지 않게 완수가 가능했다.


▲ 우두머리를 사냥하는 돌발 임무는 난이도가 높아서 주변 유저들과 협동해야 한다

▲ 거래 무산을 항의하러 몰려오는 고블린족을 해치워야 하는 임무도 있다



■ 진짜 재미는 15레벨부터? 본격 콘텐츠 개방!

P는 이미 10레벨부터 파이널판타지14에 푹 빠져 있었다. 협동 퀘스트인 '길드 작전'이 활성화됐기 때문이다. 원격 파티 매칭 시스템인 '임무 찾기'를 통해 탱커, 딜러, 힐러 역할의 유저들과 만나 인스턴스 작전 지역에서 우두머리 몬스터를 쓰러뜨리는 것인데, RPG 초심자에게는 무척이나 매력적인 콘텐츠였던 것 같다.

그러나 이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에버퀘스트, 급기야 애쉬론즈 콜까지 플레이해본 경험이 있는 기자에게 길드 작전은 소꿉놀이에 불과했다. "이런 게임은 던전을 돌아봐야 알 수 있지."라며 인스턴스 던전 입장 레벨인 15를 달성했다.

이때 15레벨에 맞춰 기술이 하나 더 추가됐는데, 지금까지 습득한 기술과 달리 독립적인 쿨타임을 가지는 공격기였다. 독립 기술이 하나 추가된 것만으로도 전투의 템포가 훨씬 빨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 독립 기술 추가만으로 전투의 느낌이 달라졌다


15레벨부터 입장 가능한 던전인 사스타샤 침식 동굴은 사실 공략이라고 할만한 게 없을 정도로 쉬웠다. 임무 찾기 기능의 자동 매칭을 통하면 탱/딜/힐 각 직업군이 모두 모여야 입장이 가능한데, 탱커 클래스가 쉽게 매칭되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림사 로민사 북쪽의 던전 입구로 이동해 파티원을 구했다.

결국 탱커없이 1힐 3딜러 체제로 출발하게 됐지만, 큰 무리없이 던전 클리어가 가능했다. 마지막 보스 스테이지에서는 물거품이 올라올 때 딜러들이 사방 네 곳에 있는 덮개를 막아줘야 한다는 정도. 던전 입문용으론 적합한 난이도였다.


▲ 중간 보스는 궁술사로 드리블이 가능한 정도였다

▲ 거품이 올라올 때 문을 닫아주기만 하면 손쉽게 공략 가능한 마지막 보스


사실 CBT에서 육성 가능한 최대 레벨인 20은 튜토리얼 수준에 불과하므로 던전의 난이도는 낮은 게 맞다. 다만, 기자가 주목한 것은 아이템의 분배 방식이었다.

우선, 요즘에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직업 주사위와 비슷한 개념으로 '선입찰'이라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었다. 선입찰은 입찰하려는 장비를 자신이 착용 가능할 때 활성화되며, '나는 이 아이템이 꼭 필요하다'를 어필하는 방법이다. 선입찰은 일반 입찰보다 우선권을 가지게 되어, 선입찰자가 있을 경우 일반 입찰자들을 제외하고 주사위를 굴리게 된다.

여기에 추가로 이미 보유 중인 아이템은 입찰은 물론 선입찰도 불가능하게 되어 있었다. 파이널판타지14에서는 클래스 체인지 시스템을 이용해 하나의 캐릭터로 모든 클래스를 육성할 수가 있어, 현재 클래스가 착용 불가능한 장비라도 다음 클래스 육성을 위해 입찰을 원할 때가 있다. 이런 경우를 배려하고 1인 독식을 막기 위한 장치가 아닌가 생각한다.


▲ 사스타샤 침식 동굴에서 획득한 녹색 등급의 장비


20레벨이 되자 드디어 CBT의 엔드콘텐츠라고 할 수 있는 이프리트 토벌전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이프리트는 에오르제아에 도사리고 있는 여러 야만신 중 첫 번째로 맞닥뜨리게 되는 대형 보스다. 정식 서비스 버전에서는 하드, 익스트림 모드까지 준비되어 있어 상당한 난이도를 자랑하지만 CBT의 이프리트는 일반 모드뿐이라 어렵지는 않았다.

딜러들은 이따금씩 생기는 장판 공격을 피해주면서 꾸준히 딜을 하다가, 이프리트가 '염옥의 말뚝'을 소환할 때 점사를 통해 빠르게 철거해주면 사실 공략이 끝나는 셈이었다. 탱커는 이프리트의 화염 숨결 공격에 힐러나 딜러들이 맞지 않도록 아군 반대 방향으로 이프리트를 돌려놓고 탱킹하면 된다.


▲ 첫 번째 야만신 이프리트

▲ 이프리트가 딜러 위치 반대 방향을 보도록 자리 잡자


그럼에도 보스전에 익숙하지 않은 유저들은 염옥의 말뚝을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다가 몰살기를 맞고 파티가 전멸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P 역시 마찬가지로 이프리트 토벌전을 상당히 힘들어 했는데, 본인이 딜러면서도 말뚝을 공격하는데 동참하지 않아서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간단한 패턴의 4인 레이드였을 뿐이지만, 겨우 20레벨의 콘텐츠라고 생각하니 향후 OBT에서 만나게 될 보스들의 난이도가 어느 정도 짐작됐다. 특히 레벨이 오르면서 독립 쿨타임을 가진 기술들이 하나씩 늘어나는 걸로 봐서는 레벨 50이 되면 스킬창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했다.

개인적으로 이프리트보다 난이도 있는 던전이나 보스 몬스터가 하나 더 공개되었으면 했다. 그러나 4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최대한 많은 유저들에게 다양한 콘텐츠를 맛보여주려면 이 정도가 절충선이었을 것이다.


▲ 전투 도중 소환하는 염옥의 말뚝을 빠르게 파괴하지 못하면 전멸!



■ '무난함' 이상이 필요한 파이널판타지14

4일 동안의 CBT를 모두 마친 뒤, 개인적인 소감은 '무난하네' 정도였다. 이번 테스트가 정말로 'CBT'였다면 나쁘지 않은 평이다. 하지만 파이널판타지14는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리뉴얼을 한 번 거쳐서 2년 동안이나 정식 서비스를 해온 외국 게임이다.

OBT를 올해 3/4분기로 잡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미 게임은 준비가 다 되어 있다. 이번 테스트를 통해 4일 동안 랙 하나없이 깔끔한 플레이가 가능했던 것을 돌이켜보면 서버 안정성도 검증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대로 괜찮을까?

신작 게임을 접한 유저들은 첫 전투 때, 줄어드는 몬스터의 체력을 보는 게 아니라 미래의 자신을 본다. 이 전투를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 만레벨이 되면 어떻게 싸우게 될까?


▲ RPG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전투. 그러나 조금 싱거웠다


이런 관점에서 사실 파이널판타지14의 첫 인상은 별로였다. 글로벌 쿨타임이 전투를 방해한다는 느낌이 들었고, 캐릭터의 공격 애니메이션이 전투 대상인 몬스터와 잘 어우러지지도 않았다. 물론 몬스터가 갑작스럽게 범위형 기술을 시전하면서 좀 더 해볼까라는 생각은 들었다. 그러다가 돌발 임무에 놀라 찾아가보게 되고, 그 다음엔 던전, 그리고 이프리트.

4일 동안의 CBT는 이런 식이었다. 좋게 말하면 꾸준히 흥미를 끄는 요소가 있었고, 나쁘게 말하면 강력한 한 방이 없었다. 성격이 급한 유저라면 10레벨을 달성하기도 전에 서버를 이탈했을 것이다. 마지막 20레벨의 이프리트 토벌전도 시각적으로는 만족스러웠지만 난이도 면에서는 어디까지나 튜토리얼 색채가 짙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 길드 작전을 통해 우두머리 몬스터와 전투할 수 있었지만 특별하진 않았다


위와 같은 이유로 초반 구간에 유저들을 휘어잡을 한 방이 없는 게임이라는 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본다. 물론 함께 CBT를 즐긴 P는 전투가 느긋해서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MMORPG 경험이 많지 않거나, 빠른 템포의 게임이 부담스러운 유저들에게는 파이널판타지14가 좋은 놀이터일 수 있다.

그러나 기존 RPG의 틀을 깬다든지, 파격적인 무언가를 바라고 온 유저들에게는 그저 무난한 온라인 게임이라는 인상을 심어줬을 거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파이널판타지14는 리뉴얼 과정에서 전세계 유저들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재기에 성공한 전력이 있다. CBT에서는 그저 튜토리얼을 체험했을 뿐, 이 게임의 진가는 OBT에서 드러나지 않을까?

하나의 캐릭터로 모든 클래스를 육성해볼 수 있는 클래스 체인지 시스템,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에오르제아에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돕는 여러 생활 기반 콘텐츠, 2년 동안 꾸준히 축적되어온 던전과 레이드 시스템 등까지, 전세계인을 사로잡은 파이널판타지14의 매력이 무엇일지 섣불리 판단하기에는 이른 지도 모른다.


▲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진 모른다! 머지않은 OBT를 기대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