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게이머가 있었으니, 그들의 무대는 TV요, 무기는 손에 잡힌 패드라더라…. 아 맞다 본체도.

어릴 적, 집에 오는 길은 항상 기대되는 길이었다.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20분 거리. 길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지만 항상 오가는 길은 멀게만 느껴졌다. 특별히 집에 일찍 와야 하는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곳에서 놀다 늦게 들어가도 부모님은 크게 신경을 쓰는 스타일이 아니었고, 오히려 친구들하고 잘 논다고 즐거워하시곤 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내가 꼬박꼬박 칼같이 집으로 들어간 이유는 학교에 가진 이 몇 없는 '슈퍼 패미컴(컴보이)'이 집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에야 '콘솔'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지만 '게임기'는 아마 많은 게이머에게 추억의 단편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팩을 꼽고, 보조 메모리를 끼워가면서 플레이했던 시간. 인체공학 따위 고려하지 않은 사각형 패드에 담긴 그때 그 이야기부터, 8세대 콘솔들의 빛나는 정상결전까지, 많은 게이머에게 '게임기'에 대한 추억은 절대 가볍지 않으리라.

매주 게임 史 사건들을 되짚어보는 시간. 오늘의 주제는 바로 '게임기'다. 어린 시절 팩을 꼽고 플레이하던 시절부터, 타이틀은 소장용에 불과할 뿐, 내려받기만으로도 게임 구동이 가능해진 지금에 이르기까지, 국내 게이머들이라면 한 번쯤 만져 보았을 그 녀석들을 다시 한번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 닌텐도와 세가, 8090을 수놓은 거장들


게임 콘솔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되었고, 거슬러 올라가면 놀런 부쉬넬 시대부터 시작하겠지만, 국내에서는 80년대 말부터라고 보면 된다. 선발 주자는 세가의 '세가 마스터 시스템(국내명 삼성 겜보이)'과 닌텐도의 '패미컴(현대 컴보이)'.

이 두 콘솔은 그 태생부터 비범하기 짝이 없다. 때는 80년대 초, 북미 비디오게임시장이 '북미 비디오게임 파동'으로 폭삭 내려앉자, 닌텐도는 무주공산이 되어버린 북미 시장에 'NES(닌텐도 엔터테인먼트 시스템)'라는 이름으로 패미컴을 수출해 어마어마한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또한, 세가의 마스터 시스템은 몇 년 늦어 북미와 일본 시장에서 패미컴을 밀어내지 못했으나, 유럽과 남미 시장에서 대박을 터뜨리면서 주류 게임기로 우뚝 선다.

▲ 북미 사양의 패미컴(NES). 국내에 들어온 것도 이 버전이다.

이 녀석들이 그 유명한 '8비트 게임기' 되시겠다. 어릴때 학습만화에서 철없는 주인공이 부모님한테 사달라고 조르던 그 8비트 게임기 말이다. 물론 지금에야 박물관에서나 볼수 있는 몸이고(기사 쓰던 중 패미컴을 12년동안 어쩔수 없이 갖고 놀았다는 동료 기자가 있어서 소름이 돋았다), 당시에도 '게임기'는 오로지 '아이들을 위한 놀잇거리'정도로만 분류된데다 가격도 비쌌기 때문에 주변에 갖고 있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 동네에 한 대 정도 있는 것이 자연스러웠달까? 때문에 8비트 게임기들은 세계 시장에 큰 영향력을 끼쳤음에도 한국 시장에선 후기 기종들에게 금방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 오라오라오라오라!

이후 등장한 녀석들이 16비트 게임기이자 4세대 콘솔에 해당되는 닌텐도의 '슈퍼 패미컴(현대 슈퍼 컴보이)',와 세가의 '메가드라이브(삼성 알라딘보이)'인데, 이 때부터 국내 게임기 시장은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한다. '슈퍼 패미컴과 메가드라이브는 각각 '마리오'와 '소닉'이라는 간판 스타들을 내세워 선전했고, 국내 콘솔 시장의 기틀을 닦게 된...'다고 말하면 옳겠지만 사실 슈퍼 패미컴과 메가드라이브에 이렇게 많은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을듯싶다.

90년대 중반, '게임기'는 오로지 아이들을 위한 놀이 기구며 '고가의 장난감'정도로 취급받았다. 어른들이 가끔 같이 게임을 하곤 했지만, 아이들과 놀아주기 위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당시엔 인터넷도 초창기 PC 통신이 겨우 가동되던 시절이기 때문에 게임에 대한 정보를 나누기도 어려웠다. SNL의 김민교처럼 그냥 게임가게 아저씨가 재밌다고 하는 거 가져가서 하는 식이랄까?

▲ 현 20대 후반, 30대 초반에게 익숙할 모습

이 시대의 추억이라 하면 역시 해적판 복사 팩을 빼놓을 수 없다. 그중에서도 '합팩'이라는게 유명했는데, 아마 그 시절에 게임기 좀 만져 보았다 하는 분들이라면 다들 알고 계실 거다. 팩 하나에 적게는 30종류에서 많게는 수백 개의 게임을 말 그대로 욱여넣은 팩을 말하는데, 문제는 이게 죄다 불법이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당시 게임을 즐기던 주 소비층인 어린이들은 저작권 의식이 희박하다 못해 전혀 없었고, 합팩을 파는 판매자조차도 이게 불법이라는 사실을 모르거나,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게다가 게임 자체도 문제가 많았는데, 같은 게임을 쪼개서 다른 게임으로 만드는 것은 물론, 게임 제목이나 라이센스 마크가 사라져 있는 경우가 빈번했다. 지금에서야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1번부터 수백 번까지 나열된 다양한 게임을 보면서 즐거워했던 추억은 아직 지워지지 않고 있다.

▲ 양심 합팩으로 이름났던 64 in one



■ 콘솔, 아이들 장난감에서 청년층의 놀이 기구로


세월이 좀 흘러 슈퍼 패미컴이 창고에서 기나긴 숙면에 빠져들 무렵 또 다른 게임기가 게이머들에게 슬금슬금 다가왔다. 전통의 닌텐도도, 아케이드 강자 세가도 아닌 '소니'가 만든 역작 '플레이스테이션(이하 PS) 시리즈'가 그 주인공이었다.


PS는 다소 황당한 과정 끝에 개발된 제품인데, 닌텐도는 당시 슈퍼 패미컴의 다음 세대 게임기를 준비하면서 CD를 인식할 수 있는 주변기기를 개발하기 위해 소니와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라이센스 문제로 갈등을 빚자 닌텐도는 소니를 차버린 채 필립스와 계약을 체결해버렸고(이 와중에 MS와도 협력을 추진했으나 닌텐도가 거절, MS는 XBOX를 만들게 되었다), 갈 곳을 잃은 소니는 두 번째로 강력했던 세가와 의견 조율에 나섰으나 이마저도 실패, 15억 엔이란 엄청난 개발비를 이미 소모했던 소니는 'SCE(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를 만들고 개발 중이던 기기를 뚝딱뚝딱 고쳐 '플레이스테이션'이라는 이름의 게임기로 만들어냈다.

▲ 닌텐도와 이야기가 오가던 시절의 유물도 발굴되었다

이후 전통의 거장이던 세가와 닌텐도의 다음 세대 콘솔보다 빠르게 출시했다는 점을 무기로 삼은 플레이스테이션은 생존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었고, 결국 닌텐도와 세가를 모두 밀어내버리면서 가정용 게임기의 패왕으로 우뚝 섰다. 하지만 이 거친 과정 끝에 우뚝 선 'PS'가 가장 잘한 일은 따로 있었다. 바로 후속 기종인 'PlayStation2'에게 그 영광의 자리를 제대로 넘겨주었다는 것이다.

'PS2'.

▲ 1억 5천만대 이상 팔린 걸작

아마 지금도 플레이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PS2'는 출시와 동시에 게임 좀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탐내는 궁극의 머신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가정용 게임기는 비쌌고, PS2 역시 학생들이 길가다 구매할만한 금액은 아니었기 때문에 패미컴 시절과 마찬가지로 PS2는 금수저들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나 역시 PS2를 너무나도 사고 싶은 마음에 부모님을 졸라 봤지만, 전교 1등을 해야 사주겠다는 말을 듣고 열심히 아르바이트해 샀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콘솔 게임을 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은 국산 온라인 게임들의 황금기가 막 시작하던 순간이었으며, 동시에 PC방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게임' 하면 '친구들과 PC방 가서 하는 것'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나야 친구들과 PC방을 가는 것보다 집에서 혼자 패드를 잡고 있는 것을 좋아했지만, 솔직히 나와 같은 학생들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더 흐르면서, 'PS2'는 '위닝일레븐'이라는 초절의 대중성을 갖춘 타이틀을 내세워 '플스방'의 주력 기종이 되는 데 성공했다. 친구와 같이하는 콘솔 게임이 얼마나 재미있는지는 해본 이들만이 알기 때문이다. 지금에야 멀티플레이가 거의 모든 게임에 기본 탑재 돼 있는데다 사람들이 게임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그다지 신기할게 없지만, 당시만 해도 선택된 이들만이 즐긴다는 PS2의 초절정 게임들을 친구와 함께한다는 쾌감은 어마어마했다. 오락실에서 한번에 100원을 넣어야 할 수 있는 '철권 TT'를 더 좋은 그래픽에 공짜로 할 수 있다는 것도 뭔가 의미 모를 승리감에 일조했고 말이다.

▲ 참고로 2012년은 PS4 발매 1년 전이다...

'PS2'는 무려 13년 동안이나 생산되며 하는 사람들만 한다는 '콘솔 게임기'의 이미지를 굉장히 많이 바꾸었다. 패미콤 시절의 콘솔 게임기는 '애들 장난감'이었고, 'PS' 시절에는 '남다른 취미를 가진 이들의 전유물' 정도였다. 하지만 'PS2'와 플스방이 등장하면서 '콘솔'은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고, 나아가 7세대와 8세대로 이어지는 콘솔 라인의 기반을 제대로 닦았다. 비록 내 PS2는 아버지의 당수 한방에 명을 달리했지만, 그 시절 쌓아온 게임들의 기억만큼은 아직도 온전히 남아 있다. 패드가 익숙지 않은 친구를 때려눕히며 즐거워하던 기억까지



■ 'PS3', 'XBOX360'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두 별


'PS3'와 'XBOX360'은 아직 현역으로 뛰고 있는 콘솔이자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콘솔들이라 할 수 있다. 2000년대 중반, 6세대 게임 콘솔의 전성기가 저물 무렵, 소니와 MS는 새로운 콘솔을 발표했다. 'PS2'로 잡아둔 왕좌를 그대로 유지하고 싶었던 소니와 북미에서 성공적인 데뷔를 마치고 떠오르는 강자 MS. 둘의 대결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성사되었다.

▲ 제대로 맞붙은 두 콘솔

7세대를 기점으로 콘솔 시장은 전보다 더 밀집되었다. 전통의 강호였던 '닌텐도'와 '세가'는 6세대를 끝으로 그 빛을 잃고 말았다. 그나마 닌텐도는 'Wii'로 명맥을 유지했지만, 세가는 '드림캐스트'를 끝으로 가정용 콘솔에서 손을 떼게 되었다. 그나마 '드림캐스트'가 인지도에 비해 굉장히 뛰어난 콘솔인지라 2015년 현재까지 게임이 개발되고 있다는 것이 위안일까? (무려 15년…!)

결국 '코어 콘솔' 시장에는 소니와 MS만이 남게 되었고, 이들은 지금껏 쌓아둔 노하우를 최대한 발휘해 전무후무한 역작들을 만들어낸다. 바로 그 주인공이 앞서 말한 'PS3'와 'XBOX360'. 2000년대 중반, 마치 서로 노린 듯 등장한 두 콘솔은 시작부터 피를 튀기는 경쟁에 돌입한다. 여기서 많은 사람이 잘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 '닌텐도'의 상황인데, 닌텐도의 7세대 콘솔인 'Wii'의 경우 소니와 MS의 차세대 콘솔과는 전혀 방향을 달리해 '모션 인식'과 '가족 오락'에 초점을 맞춰 대박을 내게 된다. 물론 '코어 게임'을 다루지 않는 만큼 기기의 성능은 PS3나 XBOX360에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말이다.

▲ 일반인을 공략해 대박을 거둔 Wii, 하지만 Wii로 충분했던 일반인들은 Wii U를 외면했다...

다시 두 콘솔 사이의 대결구도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초반엔 많은 이들이 PS3의 승리를 예상했다. 'XBOX'가 북미에서 히트한 것은 사실이지만, PS2의 기세가 너무나도 강했다. 6세대 시절엔 PS2가 콘솔의 표준과 다를 바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XBOX360'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당시 소니의 마인드가 과거 닌텐도가 품고 있던 생각과 유사했다는 점이다. 앞서 말했듯 '플레이스테이션'의 첫 기종이 나올 당시, 소니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기 때문에 닌텐도는 출시가 조금 늦어도 당연히 '닌텐도64'가 시장을 석권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패미컴과 슈퍼 패미컴으로 쌓아온 닌텐도의 브랜드 파워는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웬걸? PS는 피 터지는 노력 끝에 닌텐도64마저 물리치고 시장에서 기반을 다지는 데 성공해버렸다.

소니 역시 PS, PS2로 오랜 기간 콘솔업계에서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굉장한 자신감을 드러냈고, 때맞춰 갖가지 망언마저 덧붙이며 'XBOX360'과의 승부에서 승리를 자신했다. 하지만 자신감이 과했던 소니는 개발사에 '그 타이틀은 PS3와 맞지 않는다'며 개발을 거부하는 경우까지 보여주었고, 결국 PS3 출시 초반 킬러타이틀의 약세를 드러냈고, '헤일로'와 '기어즈오브워'등 강력한 독점작으로 무장한 'XBOX360'의 공격에 부진을 보였다. 초기 물량이 부족해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도 한몫했고 말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훗날 MS가 XBOX ONE 출시 전에 그대로 답습한다. 아….)

▲ '언차티드'가 불붙기 전까지 PS3의 타이틀은 그다지 특별할게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PS 개발의 1등 공신이자 당시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의 3대 사장이었던 '쿠타라키 켄' 사장은 'PS3'를 게임기가 아닌, 종합오락 플랫폼으로 인식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이도 저도 아닌 정체성 사이에서 애매한 위치를 차지해버리는 바람에 판매 부진으로 직행, 켄 사장이 판단 실수의 책임을 지고 퇴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후 한동안 PS3는 XBOX360을 꺾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고, 다양한 독점작들을 발표해 관심을 끌었으나 'XBOX360'은 '헤일로', '기어즈오브워', '페이블', '포르자 모터스포츠'라는 몇 안 되는 독점 타이틀을 무지막지하게 강하게 푸쉬해 오히려 그 파급력으로 'PS3'의 라인업을 상대해내는 기염을 토했다.

▲ XBOX360의 독점작 라인은 많지 않았지만 하나하나가 강력했다.

하지만 'XBOX360'이라고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른바 '죽음의 레드링(오류가 발생하면 본체의 링 부분이 붉게 점등한다.)'이라 불리는 현상은 여러 유저들의 뒷목을 잡게 하였고, 선택적으로 멀티플레이가 가능한 'PS3'의 'PSN'에 비해 유료 결제를 해야만 멀티플레이가 가능한 'XBOX LIVE'에 대한 불만도 상당했다. 'PS3'의 컨트롤러인 '듀얼쇼크3'에 비해 월등한 성능과 그립감을 보여주는 게임 패드(이 패드는 전설이 되었고, MS를 패드 깡패 기업으로 만드는데 일조했다) 덕분에 인기가 식지는 않았지만, 'PS3'와의 경쟁은 진흙탕 싸움으로 번졌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경쟁구도가 두 기종의 잠재력을 끌어내는데 한몫을 했다.

하지만 사실 7세대 콘솔 시장에서 진짜 승자는 XBOX360도, PS3도 아니었다. 코어 게이머 시장에서 두 기종이 피 터지게 싸울 동안 시선을 돌린 닌텐도는 게이머가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콘솔인 'Wii'를 팔아 말 그대로 대박을 쳤고, 두 기종을 모두 넘어서며 7세대 콘솔 중 가장 잘 팔리는 콘솔이 되었다. 물론 기기 자체가 더 싼데다 타겟층이 달랐기에 어려운 부분이지만, 닌텐도의 저력이 드러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게이머로서 7세대 시장은 굉장히 축복받은 시기가 아닐 수 없었다. 'PS3'도 후속 모델들이 등장하면서 상당 부분 개선되었고, 'XBOX360'또한 구매하기에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더불어 경쟁하듯 쏟아내는 타이틀의 향연은 바라만 보아도 흐뭇할 정도였다. 당시 내 친구들도 둘 중 무얼 사야 하는가를 굉장히 많이 고민하곤 했다. 그리고 이 경쟁은 7세대에서 끝나지 않고 다음 세대로 그대로 이어지게 된다.



■ 8세대의 돌입, 다시 찾아온 콘솔의 황금기


7세대에서 불꽃 튀게 벌어진 승부 이후, 소니와 MS는 바쁘게 다음 세대 콘솔을 준비했고, 재대결을 준비했다. 이쯤 돼서 콘솔은 점점 완벽한 게임용 기기로 진화했는데, 그 진화의 실마리는 바로 '강력한 온라인 기능'이었다. PC와 콘솔의 장단점은 매우 확실했다. PC는 자유로운 사양 조절과 강력한 온라인 기능을 보여주었고, 콘솔은 최적화된 기계와 상대적으로 싼 가격, 그리고 적절한 수준의 게임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 기름기 쪽 빼고 등장한 'PS4'

하지만 이 장단점의 고리는 콘솔이 PC 못지않은 온라인 기능을 갖추기 시작하면서 금이 갔고, 사양 조절 또한 콘솔 값에 버금가는 그래픽 카드를 PC에 박아넣느니 그냥 콘솔을 한대 사는 쪽으로(...) 선회하는 유저들이 많아지면서 오로지 '게임'이 목적이라면 콘솔 구매를 고려하는 유저들이 더욱 늘어났다.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진 게임용 기기가 다시 한 번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하여튼 소니의 8세대 주자인 'PS4'와 MS의 최신 기종 'XBOX ONE'은 2013년 말, 큰 차이 없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여기서 또 재미있는 점은, 닌텐도와 소니로 거슬러 올라오는 콘솔 강자의 실책을 이번엔 MS가 저질렀다는 점이다. MS는 'XBOX ONE'을 발표하면서 여러 가지 정책들을 함께 논했는데, 그중에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정책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기기를 사용하는 동안 항상 온라인에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든가(온라인 연결이 힘든 환경이 있다는 불평에 MS는 'XBOX360'을 추천했다...), 24시간마다 온라인으로 인증을 받아야 한다는 등 말이다.

▲ 'XBOX ONE'에 대한 MS의 자신감은 대단했고, 사실 지금도 여전하다

결국, 유저들의 열화와 같은 비난세례 속에 대부분의 정책은 철회되었지만, 'XBOX360'으로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구축한 그들의 자신감이 꺾이지는 않았고, 'PS4'를 상대로 보지 않는다는 등의 발언을 일삼았다. 'PS2'로 재미를 본 이후 'PS3'를 발표할 당시 소니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두 기종간의 대결은 어느 한쪽으로 쉽사리 기울지 않았다. 7세대 때도 'PS3'가 초반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결국 비슷한 점유율을 가져간 것과 마찬가지로, 'XBOX ONE'은 충성 유저들이 드글드글한 홈그라운드인 북미 시장과 남미 등지에서 1위를 꿰어차며 나쁘지 않은 출발을 보여주었고, 'PS4'는 아시아 시장과 영국을 제외한 유럽에서 압도적인 판매량을 보이며 성공적인 이륙을 보여주었다.

반면 한국 내에선 조금 달랐다. 적어도 한국 시장에서는 'PS4'가 'XBOX ONE'을 말 그대로 '압살'해버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일단 출시 날짜부터가 문제다. 두 기종의 출시일 차이는 무려 10개월이 차이나며, 경쟁 기종이 뚜렷한 상황에서 10개월의 공백은 굉장한 차이를 불러오고 말았다.

▲ PS4 국내 출시 행사 당시, 눈물을 흘리는 SCEK 前 사장 '가와우치 시로'

더불어 양사의 한국 시장 대응 역시 근본적인 부분에서 차이가 났는데, 소니의 한국 지사인 'SCEK(Sony Computer Entertainment Korea)'의 경우 사장인 '가와우치 시로'가 눈물을 흘리고 한국어로 영상을 찍는가 하면, 매 발표회마다 굉장히 많은 타이틀의 한국어화를 발표하면서 유저들의 호감을 샀다. 때문에 'PS4'유저들은 큰 어려움 없이 게임라이프를 이어갈수 있었고, 어지간한 대작 타이틀들은(MS의 독점 타이틀을 제외하고) 'PS4'버전이 발매되었으므로 불편함도 없었다.

반면 MS의 초기 대응은 썩 좋다고 보기 힘들었다. 나쁘다고 말할 수도 없는게, 유저들이 느끼는 MS의 대 한국 정책은 '무관심'이었다. 그냥 콘솔을 풀어 두었을 뿐, 아무런 노력이나 행사도 진행하는 것 같지 않은 느낌. 'XBOX ONE' 유저들도 처음엔 불평을 쏟아내었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뭐 항상 그렇지' 하는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물론 뒤늦게나마 MS도 정신을 차리고 'XBOX ONE'의 독점작들을 한국어화(무려 음성 더빙이 포함되는 일도 있다)하고, 적극적으로 이를 유저들에게 어필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지만, 비교적 최근의 일이기에 아직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 '라이즈 오브 더 툼 레이더'는 음성 더빙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8세대 콘솔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난 모습이다. 8세대의 가장 큰 특징이 '어디 하나 빠지는 곳이 없다.'는 점이다. 'PS4'와 'XBOX ONE' 모두 강력한 온라인 기능을 갖췄으며, 높은 퀄리티의 음성 채팅과 커뮤니티 기능을 제공한다. 사양의 차이도 크지 않으며, 호환되는 게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라고 해봐야 몇 안 되는 독점작과 주변기기, 그리고 서로 다른 서버를 쓴다는 정도다. 7세대 당시 'PS3'와 'XBOX360'은 서로 특화된 게임 장르가 어느 정도 달랐기에(PS3는 RPG와 액션 어드벤처에, XBOX360은 슈터에 강력한 모습을 보여줬다) 본인의 취향에 따라 구매를 고려하곤 했다. 하지만 그 구분마저도 무의미해져 버렸다.

물론 8세대의 승자는 아직 정해진 것이 아니다. 소니는 'PS VR'이라는 카드를 준비했고, MS는 윈도우 기반이라는 강력한 호환 능력과 '홀로렌즈'라는 신무기를 장전해둔 상황이다. 게다가 다음 세대인 9세대 콘솔 역시 분명히 등장할 것이다. 아직 이른 이야기일 수 있으나, 'PS4'와 'XBOX ONE'의 하드웨어 성능이 이미 한계에 다다른 지금, 전문가들은 콘솔의 사이클이 전보다 빨라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으니 말이다.

▲ 앞으로 어떤 대결이 펼쳐질지 아직 알 수 없다

어찌 됐건, 우리의 어린 시절부터 성장기, 지금까지 함께해온 '게임기'의 역사는 끝나지 않고 진행 중이다. 아니, 오히려 점점 더 커지고, 발전해나가는 상황이다. 우리가 취해야 할 액션은 없다. 그저 게임을 즐기고, 이들의 경쟁을 즐겁게 지켜보면 될 일이다. 게임을 좋아하고, 또 즐기는 이들이라면, 앞으로 '게임기' 시장이 어떻게 변해갈 것이며, 또 어떤 기기들이 우리에게 찾아올지 기대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 아니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