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갖춘 기본기, 그러나 뒷심이 아쉬운 메트로배니아



로스트 루인즈라는 게임을 처음 봤을 때 가장 눈에 들어온 건, 기억을 잃고 이계로 소환된 주인공이 마왕의 추종자를 물리친다는 내용이었다. 이야기만 들어서는 그 옛날부터 가장 전형적인 이계물로 손꼽힌 이계로 간 고등학생의 깽판물, 줄여서 이고깽의 스멜이 느껴질 법하다. 정갈한 픽셀 그래픽과 덕스럽고 친숙한 풍의 일러스트에 혹해서 접근했다가, 설마 하는 생각에 식은땀이 흘렀다고 할까.

만일 그 클리셰에 충실해서 전설의 검을 얻거나 어쨌든 거대한 힘을 얼마 지나지 않아 얻어버렸다던가 혹은 좀 지능이 부족하게 묘사되어버린 마왕 추종자들을 머리 조금 써서 그냥 다 공략해버렸다는 황당한 구성이었다면 더 이야기할 게 없을 거다. 그렇지만 직접 해본 로스트 루인즈는 다소 짧았어도 그 과정을 착실하게 메트로배니아의 정통파 문법에 맞춰나가면서 풀어간 작품이었다.

게임명 : 로스트 루인즈(Lost Ruins)
장르명 : 액션 메트로배니아
출시일 : 2021. 5.14.
개발사 : 알타리 게임즈
서비스 : 단겐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 PC

관련 링크: '로스트 루인즈' 오픈크리틱 페이지



잘 갖춘 메트로배니아의 기본기와 엇나간 조작감의 묘한 시너지


로스트 루인즈를 훑어보면 처음엔 캐릭터를 내세운 게임 아닐까 싶을지 모르겠다. 덕심을 잘 노린 듯한 예쁜 캐릭터 일러스트에 깔끔한 픽셀 그래픽까지, 게이머들이 한 눈에 반할 요소가 바로 보였던 만큼 그 갭이 크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메트로배니아치고는 맵 구조는 비교적 단순한 편이고, 포탈도 잘 갖춰져있는데다가 물리쳐야 할 추종자 수도 많지 않아 순식간에 끝날 것 같은 인상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막상 플레이를 하다보면 꽤나 여러 번 죽게 되서 생각보다 플레이타임이 길고, 까다롭다는 게 느껴진다. 마치 소울류에서 죽고 또 죽다보니 플레이타임이 늘어나는 그런 식이라고 할까.

물론 로스트 루인즈는 소울류를 표방한 작품이 아닌 만큼, 난이도도 세분화가 잘 되어있었다. 조금 과장하자면 단순히 교복 입은 여고생이 마왕 때려잡는 액션을 다이렉트로 즐기기에 무리가 없는 쉬운 난이도부터 단 한 번밖에 기회가 없는 하드코어 난이도까지, 즐길 수 있는 폭이 상당히 넓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우린 종종 "아 분명 눌렀는데"라는 변명을 하지 않던가. 또다른 변명으로는 "판정이 왜 이래"도 있고. 그 중 로스트 루인즈는 후자의 변명이 나올 확률이 상당히 높았다. 처음에 키를 누를 때부터 재깍 칼 같이 반응하지 않고 약간 딜레이가 있는 느낌이랄까. 방향키는 잘 먹히기 때문에 방향전환 자체는 무리가 없지만, 나머지 동작은 조작하다보면 조금은 낯설게 느껴진다.

▲ 생각한 것보다 공속이 느리다

특히나 무기로 공격할 때는 더욱 더 그렇다. 단검은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그보다 조금이라도 느린 무기는 예비 동작과 공격 판정이 있는 동작 사이의 빈틈이 생긴다. 그 때문에 더 느리게 느껴질뿐만 아니라, 그 틈새를 적이 파고들면 얄짤없이 공격이 취소된다. 공격받아 잠시 숨돌릴 틈도 주지 않고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적을 만나면 그저 회피를 누르면서 어떻게든 빈틈을 비집고 빠져나가길 바라는 일도 있다. 그나마 공격속도가 빠른 무기들은 이런 일이 없지만, 사거리가 짧아서 회피한 이후 반격하기가 여의치 않다.

그래도 회피는 빠르게 바로 발동되는 편이긴 한데, 문제는 착지점에서 자세를 잡느라 느려지고, 그 뒤 기상했을 때 무적 판정이 풀린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건 느낌상 피했는데? 싶은 것도 고스란히 맞고 비명횡사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래서 더욱 더 캐릭터만 앞세운 듯한 그런 첫 인상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 피하며 때리자니 각이 안 나오는데 그 사이를 비집고 화살까지 쏴대니...익숙해지기 전까진 애먹는다

여기에 각종 기믹들이 얽히면서 전투 템포는 상당히 묘하게 흘러간다. 공격하다가 의도치 않게 흘러내린 기름에 불이 붙으면서 나와 몹 둘 다 불타버리는 상황이라던가, 독 묻은 무기를 휘두르다가 물이 오염되는 바람에 독뎀을 고스란히 받는 등. 아차 하는 순간에 체력이 훅훅 빠질 요소들이 다분하다.

다만 대부분 이런 기믹들이 적에게도 통용되는 만큼, 이를 활용해서 적을 피해 없이 소탕하는 맛은 충분했다. 오히려 초반에는 조작감이 다소 낯선 만큼 이를 잘 활용해서 최대한 물자를 아끼고 축적해나가는 맛에 심취한다고 할까. 다만 아차하는 순간에 죽을 수 있는 터라 항상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 스킬 및 상호작용엔 피아구분이 없다. 주의하자

▲ 그래도 탐사하면서 이런 아이템을 하나하나 모으다보면

▲ 갖가지 기믹에도 융통성 있게 대처해나갈 수 있다

이러한 엇나간 불편함은 맵을 탐사하면서 아이템을 모아갈 때마다 하나둘씩 해소가 됐다. 그에 따라서 전투 방식도 달라졌다. 점프 공격을 맞추고 싶어도 착지 때에나 공격이 맞아 애매하던 것이 신발을 얻고 나서는 체공 시간이 잠시 길어져서 칼 같이 맞출 수 있었다. 오븐 장갑을 얻고 나면 갑작스런 불길 때문에 화상을 입는 일이 없고, 정수기를 착용하면 바닥의 독장판에 면역에 물속에서 체력 회복도 된다. 그러다보니 어지간해서 한 번에 죽는 현상은 잘 일어나지 않고, 어느 정도 적응이 되면 초보자들도 헤쳐나갈 수 있을 정도로 안전장치가 갖춰진 셈이랄까.

더군다나 이런 장비의 효율을 한 번 맛보다보면 메트로배니아 장르에 친숙하지 않아 보스전 및 스피드런식 플레이에 급급하던 유저도 맵 곳곳을 뒤져보게 되니 일석이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런 시점에서 로스트 루인즈를 살펴보면, 맵의 규모는 작지만 아귀가 잘 맞아떨어지게 구성한 디자인이 눈에 띈다. 초반에 찾기 쉽게 배치된 개구멍에, 앞서 적들과 맞서싸우다보면 절로 깨치게 되는 상호작용들을 이용한 퍼즐과 기믹 배치까지 플레이의 흐름이 점차 매끄럽게 이어지도록 레벨디자인을 설계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다소 낯선 조작감은 있지만, 그것이 점차 해소되고 그 맛에 탐사를 이어가다보면 자연스레 빠져들게끔 유도했다고 할까.

다만 그런 걸 감안한다고 해도 초반의 다소 낯선 조작감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라 마음의 준비는 필요했다. 그냥 키 누르면 바로 공격이 들어갈 거라고 생각했다간 선제공격 두들겨 맞고 픽픽 쓰러지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게 될 테니 말이다.

▲ 미니맵에서 여러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어 탐사도 편하다



다소 짧은 분량과 부족한 편의성 및 후반부 설계는 흠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보니 기존과는 다른 무언가를 접해도 몇 번 하다보면 금세 적응하기 마련이다. 로스트 루인즈는 그렇게 적응하면서 재미를 느껴갈 만한 짜임새를 갖춘 터라, 그 어색한 고비를 넘기고 나면 금세 진행에 속도가 붙는다. 그러다보니 볼륨이 짧다는 것이 새삼 체감이 됐다. 순수 플레이타임으로 5시간 정도면 맵을 다 훑어보고 클리어할 정도 분량이니 말이다.

물론 이 분량은 하드코어 난이도 도전은 제외한 분량이다. 그렇지만 노데스로 플레이해야 하는 하드코어 도전은 마니아층을 제외한 일반 유저들에겐 계륵 같은 존재다. 없으면 허전하고 언젠가 도전할 것 같은데, 막상 실제로 손을 대자니 스트레스 받을 것 같아 꺼려진다고 할까.

특히나 한 번 플레이하고 나면 전투 조작감보다는 불편한 편의성이 자꾸 맴돈다. 여러 기믹과 출현하는 몬스터에 맞춰서 계속 장비를 바꿔줘야 하는데 퀵슬롯이 너무 적은 것이 먼저 눈에 밟힌다. 일반적으로 콘솔 게임도 무기, 스킬 퀵슬롯을 4개씩 갖춰두는데 로스트 루인즈는 각각 두 개씩만 있다. 그러니 더욱 더 자주 인벤토리에 가서 무기, 주문, 장비 세팅을 하나하나 해야만 했다.


▲ 보스전을 앞두고 세팅하는 거야 당연하지만

▲ 매번 체력회복 할 때마다 계속 인벤창 열고 소모품창 하나하나 찾자니 맥이 끊어진다

특히나 각 기믹에 맞춰 대응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생사가 갈릴 수 있는 레벨디자인이라, 계속 중간중간 플레이를 멈추고 장비를 갈아끼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그만큼 자주 계속 신경을 쓰다보면 더 불편하게 느껴지고 눈에 밟히기 마련이었다. 더군다나 아이템 퀵슬롯도 없으니, 초보일 때는 매번 인벤토리에 들어가서 아이템을 먹느라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가뜩이나 조작감도 좀 낯선데, 그렇게 계속 맥이 끊기다보면 플레이 흐름이 잘 안 이어지는 느낌이랄까.

그나마 가면 갈수록 쓸만한 장비를 얻고 이를 활용하면 불편함이 줄어들지만, 그렇게 특정 장비로 편의성을 충당하는 방식이 이어지면서 후반 설계가 조금 어그러진 느낌이 들었다. 특히 마력이 채워지는 수호부가 추가된 이후에는 무기와 마법 밸런스가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초반에 그 특유의 전투 템포나 아슬아슬한 맛 대신, 원거리에서 마법으로 처리하거나 투명화를 건 뒤에 기습하는 패턴 일변도로 흘러가기 쉬웠기 때문이다.

물론 메트로배니아가 맵을 돌아다니면서 좋은 장비를 얻으면 진행이 쉬워지는 맛이 있다. 오히려 맵 탐사를 좀 더 적극적으로 해보라는 의미에서 각종 히든 요소들을 넣고는 한다. 그 요소를 하나하나 찾으면서 가면 갈수록 달라지는 그 느낌을 천천히 음미한다고 할까. 다만 로스트 루인즈는 전체적인 볼륨이 짧은데 이를 압축해서 우겨넣다보니 상당히 이른 시점부터 플레이가 급격히 바뀌는 구간이 찾아왔다. 그래서 더욱 짧다는 느낌이 들었다.

▲ 투명화 등 일부 스킬 의존도가 가면 갈수록 커지는 편이다





로스트 루인즈는 짧긴 하지만, 장르의 기본기는 충실히 지킨 작품이다. 그냥 칼 한 자루로 시작해서 독과 불, 가시 함정과 곳곳에 도사린 몬스터를 피해다니다가 성 곳곳을 탐사하며 얻은 장비와 여러 스킬로 그 난관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재미는 확실했다. 상호작용이나 기믹, 퍼즐 요소도 충실해서 이를 활용해서 적들을 쉽게 처리하거나 숨겨진 구간을 찾는 맛도 있었다.

캐릭터가 즉각 반응하는 느낌이 아니라서 조작감은 다소 느릿하고 엇나가는 느낌이지만, 이를 탐사 요소와 결합시키면서 나름의 시너지는 냈다. 전설의 아이템마냥 적을 다 때려잡는 그런 건 아니지만, 장비를 찾을 때마다 전투의 양상이 달라지는 터라 맵 곳곳을 뒤지며 탐사하는 그 의미를 직접적으로 제시했다. 그 안에 패러디 섞인 스토리와 여러 에피소드들을 구석구석 넣어두면서 소소한 재미를 주거나, 숨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적은 볼륨에 불편한 UI로 맥이 끊어지는 플레이와 부족한 뒷심이 아쉬웠다. 볼륨 자체는 적으니 다양한 모드나 멀티 엔딩에 도전할 법하다고 쳐도, 불편한 조작감에 이어 매번 아이템 바꾸고 장비 바꾸고 하느라 플레이의 흐름이 끊겼던 경험이 선뜻 손을 대기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기본 구성 자체도 좋고 짜임새도 괜찮았으니, 출시 전에 이런 부분만 조금 더 손을 보고 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다만 예쁜 캐릭터와 메트로배니아를 동시에 즐겨보고 싶다고 한다면, 한 번쯤은 플레이해봐도 괜찮을 듯하다. 일러스트뿐만 아니라 장르의 기본기와 재미도 충실하고, 플레이타임도 짧아 부담 없이 밀도 있게 즐길 수는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