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스트 챔피언은 틀리지 않았다.

지난 3일 2021 LCK 스프링 16일 차에 진행한 T1-농심 레드포스, DRX-젠지 e스포츠의 경기는 모두 풀 세트 접전이 나왔다. 하위권으로 떨어질 수 있는, 상위권 도약을 위해 1승이 절실한 팀들에게 모두 중요한 경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경기에서 해당 팀의 선수들 선택이 놀라웠다. 현 메타 최적의 챔피언이 아니더라도 자신들이 가장 잘 다룬다는 자신감 있는 픽을 가져왔다. 심지어 이전 경기에서 패배한 경험이 있음에도 선택을 바꾸지 않는 챔피언 장인다운 면모를 볼 수 있었다. 어제 경기로 전승 기록이 끊긴 모스트 카드도 있지만, 이들의 선택은 변함없었다.



'페이커' 이상혁 - 모스트1 챔피언 아지르 / 2승 3패 KDA 3.4

2021 LCK 시즌이 시작할 때 화두는 '언제까지 '페이커' 이상혁이 아지르를 선택할지'였다. 첫 경기부터 3세트를 연속으로 선택했고, 그 이후에도 풀리면 자주 가져오는 픽이었다. 이제는 LCK 내에서 아지르에 관한 인식이 많이 바뀌긴 했다. 이와 상관 없이 '페이커'의 아지르 사랑은 시즌 초반부터 2월 3일 경기에서도 계속 됐다. 그리고 첫 세트부터 그 이유는 잘 드러났다.

가장 주요한 플레이는 상대 점멸을 뽑아 놓는 것이었다. 아지르의 오랜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빅토르를 상대로 압승을 거뒀다. 빅토르의 점멸이 돌 때마다 돌진해서 '황제의 진영'으로 압박을 넣어 점멸을 강요했다. 이는 '상체' 합류전 싸움에서 '뚜벅이' 빅토르를 무력화하는 데 큰 힘이 됐다. 나아가, '케리아' 류민석의 레오나가 올라와 과감한 다이브 설계를 할 수 있는 밑그림을 그렸다. 해당 경기 2-3세트에서 '페이커'의 아지르는 모두 밴 될 정도로 위협적임을 입증했다. 아지르를 고집한 이유를 어느 정도 입증했다고 할 수 있다.






'표식' 홍창현 - 모스트2 챔피언 우디르 / 3승 0패 KDA 7.8

또 한 명의 승자인 DRX '표식' 홍창현에겐 우디르가 있다. LCK에서 6승 9패를 기록 중이기에 좋은 카드인가 의문을 품을 수 있는데, '표식'이 잡으면 3전 전승의 OP 챔피언이 된다. LCK에서 가장 먼저 우디르를 사용한 선수로 우디르의 입지를 끌어올린 장본인 다운 플레이를 선보였다.

어제 젠지와 대결에서도 그 위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이동기가 있는 챔피언이라도 우디르의 속도 앞에 도망칠 수 없었다. '표식'이 쓸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의문이 드는 챔피언이라고 할 수 있다. 라이브 11.3 패치에서 우디르가 주로 활용하는 아이템과 불사조 태세의 피해량이 너프를 받았다. 그래도 '표식'의 우디르라면, 다를지 또 기대해 본다.






'구마유시' 이민형 - 모스트2 챔피언 베인 / 2승 1패 KDA 3.7

사미라의 카운터로 등장할 줄만 알았던 베인을 '구마유시'가 꾸준히 뽑고 있다. '구마유시'가 캐리력 면에서 뛰어나다는 것은 시즌 초반 경기에서 사미라-카이사-아펠리오스 플레이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베인은 최대 장점인 캐리력을 보여주지 못한 픽이다.

특히, 라인전 단계에서 중심을 잡지 못한 느낌이다. 어제 경기에선 농심 레드포스의 집중 견제 대상이 돼 고전하기도 했다. '선고'로 첫 다이브를 받아치면서 팀 스노우볼을 굴릴 수 있었으나 포탑 주변에서 베인이 고통받는 시간은 그대로 이어졌다. 반대로, 지난 KT전에는 '하이브리드' 이우진의 사미라를 포탑 앞에서 압박하려다가 솔로 킬을 내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구마유시'가 베인을 다시 꺼낸 이유를 입증할 수 있을까.






'라스칼' 김광희 - 모스트2 챔피언 레넥톤 / 3승 1패 KDA 5.5

지난 시즌부터 자주 나왔던 레넥톤-볼리베어 구도의 장인. 어떤 챔피언을 잡더라도 승리하는 법을 안다는 '라스칼'의 레넥톤 선픽 사랑은 여전했다. 카운터 픽이라고 할 수 있는 퀸과 대결 역시 두려워하지 않기에 올해도 '라스칼' 레넥톤의 적수가 없어 보였다. 거기에 찰떡 궁합인 니달리와 같은 AP 정글이 추가 됐을 때 힘이 배가 된다. '라스칼' 레넥톤과 AP 정글러 조합은 오랫동안 젠지의 승리 공식이었다.

어제 경기에서도 '라스칼'은 레넥톤 고수다운 모습을 선보였다. 2세트에서 상대 무리한 다이브를 받아치며 '룰러' 박재혁이 활약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냈다. 3세트에선 레넥톤의 초반에 관한 안 좋은 인식을 뒤집어버렸다. 레넥톤이 3레벨 이전에 약하다, 상대 볼리베어가 든 착취의 손아귀가 초반 라인전 단계에 강하고 레넥톤이 든 정복자가 초반에 약하다는 기존 관념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1레벨 부터 적극적으로 딜 교환을 하더니 레넥톤으로 볼리베어를 상대로 솔로 킬을 만들어낸 것이다. 아쉽게도 해당 킬을 바탕으로 스노우볼을 굴리진 못했다. 상대 '표식' 올라프의 갱킹에 레넥톤을 비롯해 젠지 전체가 흔들렸기에 그렇다. 전승이었던 '라스칼'의 레넥톤 기록이 깨지게 됐지만, 여전히 레넥톤의 위력을 볼 수 있었던 경기였다.






'라이프' 김정민 - 모스트2 챔피언 자르반 4세/ 3승 1패 KDA 3.2

또 하나의 젠지 전승 카드가 깨졌다. 바로 '콩자반'으로 불리는 '라이프'의 서포터 자르반 4세다. 그동안 3연승을 거둘 때, 무결점의 플레이를 선보였다. 궁극기로 살려줄 수 있는 칼리스타와 궁합이 잘 맞는다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칼리스타 없이도 출전해 승리를 거둔 바 있다. 라인전 단계에서 상대 '뚜벅이' 원거리 딜러를 위협하고 한타 때도 흐름을 이어가던 픽이었다.

어제 경기는 아쉽게도 '표식'의 우디르에게 발목이 잡혔다. 분명 먼저 가두고 한타를 시작했는데, 오히려 자르반 4세의 대격변 안에서 끝까지 버티고 서 있는 우디르에 역습을 당하고 말았다. 반대로 우디르에게 도망치려고 초시계를 쓰면서 발버둥을 쳐 봤지만, 그 속도를 당해내지 못했다. 그동안 무결점에 가까웠던 서포터 자르반 4세 플레이가 유일하게 막힌 경기였다.

앞서 언급한 챔피언들은 프로게이머들이 갈고 닦은 내공이 느껴진다. 아직 빛을 발휘하지 못한 챔피언도 있고, 전승이 끊기기도 했지만 언제든지 다시 기용될 수 있을 만큼 숙련도가 높다고 할 수 있다. 다음 경기에서도 이들이 등장해 알고도 못 막는 챔피언의 위용을 뽐낼지 지켜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