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철 감독은 국내 팬들에게 생소한 인물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세월이 그렇게 만들었다. 이인철 감독은 2012년부터 활동한 베테랑이다. 2012년 제닉스 스톰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롤판에 발을 담갔다. 그리고 1년 뒤인 2013년, 북미, 유럽, 중국을 제외한 기타 지역 LoL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을 시절, 베트남이라는 변방으로 떠났다.

베트남이 노인은 적고 10~30대의 인구 비율이 압도적이라곤 하나, 이때만 해도 베트남 시장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사이공 조커스 LoL팀에 합류한 이인철 감독은 2017년 잠시 중국을 거쳐 2018년 한국, 그리고 2019년 다시 베트남으로 넘어가 지휘봉을 잡았다.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온 이인철 감독은 세베로스를 지금까지 이끌고 있다. 이미 베트남 LoL, 아니 베트남 e스포츠 시장에 한 획을 그은 그는 LoL은 물론, 세베로스에서 다른 종목 팀까지 운영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있다. 그 정도로 베트남에서의 뿌리 깊은 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제는 조금 더 다양한 방향을 열어 놓고 싶고, 새로운 도전을 꿈꾸고 있다.

독특한 이력으로 롱-런하고 있는 이인철 감독만의 철학, 베트남 시장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 어떤 도전을 이어가고 싶은지 그와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었다.


Q. 정말 오랜만에 찾아뵙는 것 같다. 생소한 팬들도 있을 테니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아마 해외로 처음 진출한 감독이지 않을까 싶다. 2013년 베트남으로 넘어갔고, 중국 2부 리그 등을 거쳐 현재 다시 베트남 세베로스라는 팀에서 일하고 있다. 현재 롤팀 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팀 관리도 함께 겸임하고 있다. 왕자영요, 발로란트, 와일드리프트, 배틀그라운드 정도가 있다.


Q. 정말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다. 그래도 언제나 롤이 메인이다. 게임 내적인 부분도 크게 관여하고 있으며, 다른 종목은 관리직이라고 보시면 된다. 그러던 찰나 정말 많은 것들을 하고 있다 보니까 이제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 생각이 들더라. 이제는 정말 롤팀 하나만 보고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다.


Q. 2013년 베트남으로 향했다. 중국이나 북미, 유럽도 아니라 정말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내가 베트남을 간다고 했을 때, 한국 출신 해외 지도자가 없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중국이나 미국에서도 대화가 오고 갔다. 그리고 처음에 베트남이 아닌 말레이시아였다. 당시 가레나에서 만들 LoL팀을 맡아줄 사람을 구하고 있었고, 가레나는 동남아에서 꽤 큰 기업이지 않나.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미팅을 위해 말레이시아로 떠났는데, 꽤 높은 직급의 사람이 직접 맞이해주더라.

그런 부분에서도 진짜 관심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동시에 베트남쪽 가레나 CEO에게 연락이 왔다. 내가 말레이시아에 있다는 정보를 듣고 왔던 연락이었고, 베트남에서 출발하자고 하더라. 그래서 합류한 게 사이공 조커스다. 그렇게 사이공 조커스 감독으로 일하면서 비시즌에는 동남아에 생겨나는 여러 팀들을 돌아다니며 우리나라에서 진행하는 소양교육처럼 기본적인 것들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리고 중국이나 북미에 바로 진출했다면 더 나은 대우를 받았을 수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당장 빠른 길이 아니라 조금 돌아가는 길이라도 베트남 시장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더 비전이 있다고 느꼈고, 후회는 없다.


Q. 베트남에서 일하면서 가장 어렵거나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

지금은 전혀 아닌데, 초반에는 스스로 굉장히 방어적이고, 압박하며 살았다. 수백 명의 회사에서 나 혼자 한국인이라 뭔가 조금이라도 오해를 사거나 안 좋게 보일만한 행동 자체, 불씨를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서 행실에 신경을 많이 썼다.

그리고 초반에는 우리나라가 2000년대 초반에 겪었던 것처럼 e스포츠에 대해 생소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현재는 베트남도 한국처럼 부모님들이 먼저 관심은 가지는 경우도 많고, 먼저 찾아와서 상담을 요청하거나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에 호의적인 분들이 꽤 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겪었던 기본적인 질문, 프로게이머가 뭔지, 나쁜 일은 아닌지 등등 예전에는 좋은 선수를 찾으면 부모 설득이 먼저였는데, 이제는 설득이 아닌 설명을 해드린다. 특히 베트남 LoL에서 중국으로 진출한 'SOFM'이 굉장한 롤모델이다. 직접 'SOFM'을 언급하며 아이보다 적극적인 부모들도 종종 있다.


Q. 선수들의 기본 마인드도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초창기에는 선수들 역시 기본적인 게 갖춰지지 않은 선수가 대부분이었다. 그 와중에 모범을 보이고, 많은 베트남 LoL 선수들의 롤 모델이었던 선수가 있는데 바로 '옵티머스'라는 선수다. '옵티머스'의 경우 원래 축구 선수였다고 한다. 그런데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축구를 그만뒀고, 게임을 시작했다.

'옵티머스'가 사이공 조커스에 왔을 때, 정말 벼랑 끝에 몰린 사람처럼 연습 벌레였다. 프로게이머로서 성공하기 위한 마인드를 알려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자신이 어떻게 해야 성공할지 알았던 것 같다. 생활적인 부분에서도 언제나 모범이 됐고, 오히려 나중에는 내가 연습을 그만하고 자러 가라고 말렸다.

그런데 한 번은 잠을 자는척 하면서 몰래 새벽에 연습실로 가다 걸리기도 하는 등, 정말 대단한 선수라 기억에 많이 남는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대부분은 게으르고, 그저 게임으로만 받아들인 선수가 더 많았다. 또한, 이건 개인적인 의견인데, 베트남이 공산주의라 그런지, 모든 게 공평하니 사과에 대한 개념이 기본적으로 조금 다른 것 같다. 이는 중국에 잠깐 있었을 때도 느낀 부분이다.

사과를 굉장히 수치스럽고, 자존심 상하는 것으로 느끼는 선수들이 은근히 많았고, 이런 부분이 LoL이란 게임에 있어 피드백할 때 정말 어려웠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베트남에 왔던 많은 해외 코칭 스태프들 중 한 시즌도 버티지 못하고 돌아간 사람들도 대부분 이런 부분에서 오는 선수들과 트러블이 크다.

그리고 '옵티머스'의 경우 좋은 예일 뿐이고, 기구하고 정말 특이한 사연을 가진 선수들도 꽤 많다. 하나만 말하자면, 한 모바일 게임 선수를 선발할 때, 대화를 시도했는데, 베트남이 아닌 태국에 있다는 것이다. 태국으로 가겠다고 해도 만남을 주저하더라.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부모님이 베트남 사람인데, 밀입국으로 태국에 거주하고 있고, 거기서 태어나 불법체류를 하고 있는 거였다. 이런 것처럼 한국에 비해 굉장히 극단적이고, 다이나믹한 일이 종종 생긴다(웃음).


Q. 베트남이 본격적으로 관심을 받기 시작한 건, 퐁 부 버팔로의 MSI 활약 이후다. 그렇게 뭔가 박차를 가할 것 같았던 VCS인데, 코로나 19로 성장은 물론, 교류마저 뚝 끊겼다.

많은 분들이 코로나19로 VCS의 성장이 주춤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전부터 아쉬운 문제는 여전했다. 기본적으로 지금도 많이 언급되고 있는 국제대회 시 비자 문제다. 우리나라 여권은 정말 대단한 수준이다. 베트남에서 어디를 가기 위해 비자를 발급 받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미국이 아니라도 말이다.

그리고, 우리팀의 경우도 작년 윈터에 우승을 했는데, 국제무대에 갈 수 없었다. 선수들은 이런 부분에 대해 정말 아쉬워한다. 큰 무대, 대회를 겪으면 돈주고 사지 못할 엄청난 경험치를 얻지 않나. 베트남 선수들은 그런 것들에 굉장히 목이 말라 있고, 우승을 해도 MSI나 롤드컵 같은 큰 대회를 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1%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그것만 보고 열심히 달리고 있다.


Q. 그런 부분에 대한 걸림돌이 없었으면 VCS는 어느 정도까지 성장했을까?

한돋안 롤드컵에서 모습을 보이지 못해 VCS에 대한 평가가 생각보다 과소평가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올해 기준으로 지역마다 조금 스타일의 차이가 있지만, GAM e스포츠는 LCS 3번, LEC 3, 4번 시드와도 비벼볼만 하다고 본다. PCS와 비교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 올라온 비욘드, CFO의 경우 베트남과 스크림을 정말 많이 하는데, 나는 VCS 진출팀이 이들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북미 C9이나 100시브즈는 정규 리그부터 엄청 잘했다기보단 플레이오프에 들어와서 '버서커', 'FBI' 같은 특정 선수의 폭발력을 통해 올라온 팀이라, GAM이나 사이공 버팔로도 이들과 경쟁이 가능하다. 그 말은, 4대 메이저 지역을 제외하면 나머지 리그 중 VCS가 가장 잘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은 LCK끼리 스크림을 하는 게 대부분인데, 베트남은 반대다. 서로 경쟁하는 사이와 스크림은 최대한 하지 않고, 주로 PCS, LJL, 중국 2부리그 팀들과 많이 한다. 스크림 성적만 가지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고, 여러 가지를 참고했을 때 VCS가 더 뛰어나다.

그리고 VCS하면 다들 엄청난 공격성을 떠올리지 않나. 나는 공격적인 롤을 좋아한다. 사이공 조커스 시절부터 항상 하는 말이 '초반이 없으면 후반도 없다'였다. 내가 2013년부터 베트남에서 이 이야기를 했으니 어쩌면 VCS의 스타일에 어느 정도 지분이 있지 않나 싶다(웃음).


Q. 그러고 보니 롤드컵이 코 앞이다. 그리고 VCS 대표 두 팀은 여전히 비자 문제로 골치다. 어떻게 될 것 같나?

내가 소속된 팀도 아니라 뭐라 말하는 게 조심스럽지만, 그동안 베트남에 오래 있으면서 다양한 문제를 겪어봤고, 그런 것들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순수 GAM, 사이공 버팔로로 참여하는 건 어렵지 않을까 싶다. 다만, 여러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고, 마지막 비행기에 타기 1시간 전에도 뭔가 해결책이 생길 수 있는 게 베트남이라 끝까지 지켜봐야 알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소속된 팀들의 문제지만, 어떻게 보면 저 자리가 나의, 우리의 일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 부분에서 제발 잘 해결되기를 바랄 뿐이다.


Q.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해외에 정말 오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뭔가 잊혀진다는 느낌이 없지 않아 생기기도 하고, 그렇게 되고 싶진 않다(웃음). 더 늦기 전에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싶다. 베트남으로 제한을 두지 않고, 한국을 포함에 어디서든 현업, 감독직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다. 해외에 오래 있으면서 남들이 가지지 못한 노하우가 분명히 있고, 나만의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부분에서 관심이 있는 팀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니 연락 바란다.